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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9화 (20/200)

11장: 결판(2)

물론 인간 실력자의 정제된 마나처럼 밀도가 높거나 일점집중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것인 듯 거칠고 투박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마나는 마나였다.

마나가 무의식중에 몸을 보호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쪽이 더 무서운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놈이 규격 외로 강한 이유이기도 했다.

푸가각!

반격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물러나야 했다.

내 혼신의 일격은 결국 실패한 셈이었으니까.

그래서 검을 억지로 비틀어 빼내며 재빨리 몸을 뒤로 날렸다.

사실 이것도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칙적으로는 공격이 실패한 순간 검을 버리고 곧장 물러나 안전부터 확보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트윈의 반격이 곧바로 이어지지 않아 살짝 틈이 생겼고, 그 틈에 약간의 도박 수를 던진 것이다.

“크롸롸롸라라!!!”

그것이 통했다.

있는 대로 괴성을 질러 대는 트윈.

고통의 비명으로 가득 찬 그런 괴성이었다.

한데 그 정도가 좀 과했다.

오죽하면 놈이 요새에서 내질렀던 포효나 끌고 온 오우거의 실종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것보다 더 컸다.

마나로 귀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고막이 터져 나갈 뻔했다.

그만큼 트윈은 커다랗게 울부짖었다.

더불어 이로부터 느껴지는 것이 고통 말고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당황.

놈은 고통에 극도로 당황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게 추론 가능했다.

“트윈의 몸을 마나가 자연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놈, 고통에 익숙하지 못해요. 이 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일행에게 알린 대로였다.

놈은 고통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오우거 기준으로는 조금 깊은 찰과상 정도에 불과함에도 저리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태어나기를 황제로 태어나 그럴 것으로 짐작됐다.

그간 누가 감히 트윈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었겠는가?

그럴 능력이나 의지를 지닌 몬스터가 주변에 존재할 리 만무했다.

그러다가 오늘 내 검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상처란 걸 입어 본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고야 이런 과한 반응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물론 아직 상황은 역전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역전은커녕 여전히 암운이 짙게 드리운 상황이었다.

다만 이 암운을 뚫고 들어온 한 줄기 빛이 그 단초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크르르르르!”

트윈이 고통, 당황 따위의 감정을 이내 분노로 치환시켰다.

지극한 분노였다.

오로지 자신에게 생소한 고통을 유발한 흉수에게 집중되는 끝을 모르는 분노.

그리고 그 대상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였다.

제 놈의 발목에 상처를 남긴 나에게 그 분노를 오롯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원래는 거목이었던, 그래서 아직도 휘둘러질 때마다 흙더미가 뚝뚝 떨어지는 몽둥이와 가히 바윗덩어리만 하다고 할 수 있는 무식한 주먹의 향연.

땅거죽을 족히 1m씩은 푹푹 파내 버리는 한 방 한 방이 연타로 쏟아졌다.

도저히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칫 호기를 부렸다가는 그대로 골로 갈 것이 분명했다.

하여 무조건 피했다.

막아서겠다는 생각 같은 건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조금 전이야 놈이 게인을 노렸으니 어쩔 수 없이 막아섰다지만, 지금 녀석의 타깃팅은 오로지 나를 향해 있었으니까.

또,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쉽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며 회피에만 집중하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간발의 차이로 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필사의 회피가 지니는 의미는 단순한 생명 연장의 꿈에 그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의미를 도출해 냈다.

두 번째 찬스라는 아주 커다란 의미 말이다.

“디그.”

움푹.

다시 한번 환상적인 타이밍에 게인의 마법이 시전됐다.

갑자기 푹 꺼진 지면이 트윈의 축인 오른발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놈의 신경이 온전히 나에게 쏠려 있던 터라 그 효과는 첫 번째 그리스 마법 때보다도 더 컸다.

그렇게 트윈의 몸체가 또다시 균형을 잃으며 휘청거렸고.

퍼거거거걱!

이번에는 에릭스가 그 기회를 덥석 물었다.

오러를 내뿜는 에릭스의 검이 트윈의 왼 발목을 파고들었다.

마나의 보호 때문인지 에릭스의 검도 놈의 발목을 완전히 베어 내지는 못했다.

대신 적잖은 타격을 준 것은 확실했다.

질긴 가죽과 탄탄한 근육을 넘어 허연 발목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타격했던 그 지점을 재차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

이어지는 트윈의 고통 어린 비명 또한 타격의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크롸롸롸라라라~!!”

그래도 이미 한번 고통을 경험해 봤기 때문일까?

그 고통을 분노로 치환하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에릭스가 상황을 짧게라도 브리핑할 시간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트윈의 분노가 곧장 에릭스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검이라도 빼낼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트윈이 당황을 드러낸 시간은 짧았다.

그리고 그 줄어든 시간 만큼 에릭스를 짓뭉개려는 시도에 열과 성을 다하는 중이었다.

쾅! 쾅! 쾅! 쾅!

분명 발목을 다쳤음에도 놈이 내지르는 타격의 위력은 되려 올라갔다.

한 방 한 방에 파내지는 땅거죽이 거의 1.5m에 달했다.

당연히 힘은 물론이고 속도까지 빨라진 상태였다.

에릭스의 회피가 점점 더 힘겨워져 가고 있는 상황.

어찌 보면 절체절명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

하지만 그런 것 치고 에릭스의 표정은 침착했다.

조금씩 궁지에 몰려가는 중임에도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

그것은 회심을 한 수를 노리는 눈빛이었다.

타앗!

아니, 회심의 한 수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나에서 에릭스로 타깃팅을 돌린 트윈.

역시나 앞뒤 안 가리고 에릭스만을 노리는 놈의 발목을 향해 이번에는 제프너가 짓쳐 들었다.

목표 지점이 허연 뼈를 드러내고 있는 트윈의 왼 발목이라는 점은 굳이 말로 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

또, 짓쳐 드는 제프너의 검에 그가 뿜어낼 수 있는 최대의 오러가 넘실거리고 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마나가 보호하고 있다 해도 동일 지점에 가해지는 세 번째 검격까지는 버텨 내기 어려울 터.

이걸로 트윈의 발목을 날려 버리고 나면 그때는 정말 암운이 걷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역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크르르.”

그러나 신을 내도 너무 낸 모양이었다.

“자작님!!”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다.

트윈의 별칭이 왜 트윈인지를.

또, 놈이 그간 꽤 영악한 모습을 보여 왔다는 사실도.

트윈은 머리가 두 개이기에 트윈이었다.

그렇다면 눈도 두 쌍 달린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흐름을 지켜보던 내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현재 에릭스에게 고정돼 있는 트윈의 눈은 한 쌍뿐이었다.

하면 남은 한 쌍은?

정확하게 제프너를 향하고 있었다.

동시에 뻗어 나가는 놈의 바윗덩어리 같은 주먹과 함께.

콰광~!!

필살의 일격을 날리는 중이던 제프너는 그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다급히 방어 자세를 취한다고 취했으나 결국 정통으로 맞아 버리고 말았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한 방으로 제프너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번 전투에서 더 이상 그의 활약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극도로 암울해진 상황.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트윈은 영악했다.

“피해요!!!”

놈은 일석이조를 노렸다.

제프너를 타격해 날린 방향이 그러했다.

게인이었다.

하필이면 세 번째 마법을 막 시전 중이던 그에게 제프너를 날려 버린 것이다.

“커헉!”

게인은 피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나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트윈의 공격을 피하며 게인과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린 탓이었다.

“크르르르.”

트윈이 다시금 웃음을 지었다.

제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사실에 대한 희열?

이제는 둘밖에 남지 않은 사냥감을 가지고 놀 생각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혹은 드디어 제 분노를 풀 수 있게 됐다는 쾌감?

이 중 어떤 하나의 감정인지, 아니면 셋 모두 뒤섞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알 수 있는 것, 확실한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젠장…….”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사실, 오직 그것뿐이었다.

* * *

“쿨럭, 쿨럭, 쿨럭.”

기침을 뱉을 때마다 검붉은 선혈도 한 덩어리씩 튀어나왔다.

그만큼 현재 내 속은 완전히 걸레짝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지경.

비단 내부만이 아니었다.

속이 이럴진대 겉이라고 멀쩡할 리 만무했다.

입고 있던 갑옷은 넝마가 따로 없었으며, 찢긴 갑옷 사이로는 피가 줄줄 새 나오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것이다.

조금 전 얻어맞은 한 방 때문이었다.

제프너와 게인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뒤로도 나와 에릭스는 나름 잘 버텼다.

죽을 힘을 다해 트윈의 공격을 피하고, 간간이 틈이 보일 때마다 필사의 각오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하여 트윈의 몸에 몇 군데 더 줄을 그어 주었다.

라인하트 검법에 기반한 나와 에릭스의 합공, 발목이 불편한 트윈의 상태가 적절히 어우러져 기적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상황 자체를 역전시킬 결과물은 끝내 만들어 내지 못했다.

트윈의 몸에 그은 줄이라고 해 봐야 놈 입장에서는 생채기 몇 줄 추가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되려 놈의 성질만 더 돋웠을 뿐이다.

그리고 끝내 한 방을 허용하고 말았다.

더는 회피가 불가능할 만큼 궁지에 몰린 지점에서 놈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은 것이다.

역시나 두 번은 안 됐다.

최대한 힘을 흘려 보려 별짓 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가 작금의 내 모습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무릎 꿇은 채로 에릭스의 분투나 지켜보는 무력하고 비참한 모습.

쿠궁! 쾅! 콰광!

에릭스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었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트윈과 맞부딪쳤다.

놈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하고 있는 대로 전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으니까.

나를 지키고자 무지막지한 트윈의 한 방 한 방을 온몸으로 견뎌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래갈 수 없는 분투였다.

떨림이 커져 가는, 점점 힘이 풀려 가는 에릭스의 다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비록 나를 등지고 있기에 얼굴을 볼 수는 없으나, 그의 표정이 어떠할지는 눈에 훤했다.

콰광!

“커헉!!!”

이윽고 끝이 도래했다.

결국 에릭스는 비스듬히 휘둘러지는 트윈의 몽둥이를 견뎌 내지 못했다.

뿜어져 나오는 피 분수와 함께 튕겨 나가 거목에 틀어박혔다.

그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리하여 나는 트윈과 똑바로 눈을 마주하게 됐다.

태산처럼 굳건히 서 있는 놈과 무릎 꿇은 채 몸에 제대로 힘조차 주지 못하는 나.

승패는 이보다 명확할 수 없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트윈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이제 승자의 권리 이행과 패자의 대가 지불이 이뤄질 차례.

“크르르르르.”

한데 트윈은 이 부분까지 철저하게 즐길 작정인 듯했다.

놈이 나를 내려다보며 한 차례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틀었다.

내가 아닌 에릭스에게로.

그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의도는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게 나에게 전달됐다.

나를, 우리를 끝까지 철저하게 가지고 놀겠다는 것이다.

움직일 수조차 없는 내 앞에서 에릭스를 비롯한 모두를 하나씩 하나씩 처참하게 짓밟는 방식으로.

그럴 의도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웃음이고 걸음이었다.

쩌적.

그래서였다.

비로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과연 지금 내가 내리려 하는 이 선택이 맞는 것일까 하는 그런 고민.

회귀 후 내 삶의 목표는 오로지 내 사람들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리는 이 선택은 앞으로 나의 목표 이행을 어렵게 만들 테니까.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쩌저저적.

그러나 트윈이 에릭스를 향해 몸을 트는 그 순간, 결심을 내렸다.

당장 에릭스 하나 못 지키는 주제에 다음 일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여 현재 눈앞의 내 사람 하나부터 제대로 지켜 내기로 했다.

이로 인해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잃게 되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여분으로 주어진 삶이었다.

두려울 것도, 후회스러울 것도 없었다.

쩌저적~

쨍강!

내 안의 그릇을 깨뜨렸다.

그리고 그 파편들을 단숨에 전신으로 내돌렸다.

쿠구구구~

순식간에 전신에 활력이 돋았다.

동시에 용솟음치는 힘이 느껴졌다.

회귀 후에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회귀 전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막대한 힘이었다.

스륵, 척.

그 힘을 바탕으로 꿇려져 있던 무릎을 똑바로 세웠다.

저벅저벅.

그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트윈을 향해.

산산이 조각난 마나 하트가 불어넣어 준 전신의 소용돌이 치는 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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