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정찰대(2)
“오히려 내가 부탁함세. 제발 좀 뜯어먹어 주게. 몸 성히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후작성이라도 내어 줄 테니까.”
물론 후작의 성격상 필요 없는 작업이었다.
그는 더 주면 더 줬지 이런 걸로 절대 후려칠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나 역시 후작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차원에서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고 말이다.
“아버님, 저도 갑니다만? 몸 성히 돌아오면 아들인 저에게는 뭘 주실 생각이십니까?”
“네놈은 입 다물고 대장 역할이나 똑바로 하거라. 괜히 대원들한테 짐 덩어리나 되지 말고.”
“아들 걱정은 못 해 주실망정,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후작의 배웅은 이제 나를 넘어 아들인 제프너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부자간의 살갑기 그지없는 대화를 뒤로하고 나 역시 내 사람들에게로 넘어갔다.
첫 번째는 역시나 다이너였다.
“전 지금이라도 공자님께서 결정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럴 리 없다는 거 잘 알잖아?”
“그럼 지금이라도 저를 데리고 가 주시든지요. 최소한 에일린 아가씨께 떳떳할 기회라도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임무에 나서는 것이, 심지어 본인은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된 것이 불만인지 아까부터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다이너.
물론 그렇다 해서 어떤 방향으로든 녀석이 원하는 바를 들어줄 리는 만무했다.
“꼭 말로 해야 알아? 내가 널 왜 안 데리고 가는지?”
“…….”
“억울하면 죽어라 실력부터 키워.”
“하아, 내가 어쩌다가…….”
당연히 우쭈쭈 달래 줄 리도 없었다.
그렇게 쓰린 사실로 아프게 얻어맞은 녀석은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더니 이내 체념했다.
“맘대로 하십쇼, 맘대로. 대신 이거 하나만 명심하세요. 제 목숨이 공자님 안위에 달려 있다는 거. 어디 한 군데라도 잘못돼서 돌아오시면 전 진짜 아가씨께 죽습니다.”
“걱정 마. 안 다치고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이렇게 다이너까지 넘기고 나면 남은 이는 두 명이었다.
“바비, 레몬드. 나 없는 동안 다이너 녀석 잘 챙겨 줘. 알지? 따지고 보면 저 녀석도 이번이 첫 출전이었다는 거.”
“걱정 마십시오, 공자님. 제가 공자님 최측근의 이름을 걸고 다이너 경을 확실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공자님께서는 아무 걱정일랑 마시고 몸 성히만 돌아와 주시면 됩니다.”
제 가슴을 팡팡 치며 호기롭게 답하는 레몬드.
르로이에게 죽을 뻔한 걸 구해 준 뒤로는 자칭 나의 최측근이 된 녀석이었다.
“바비, 나 돌아올 때까지 레몬드 녀석 완전군장 구보 꼼꼼히 체크해. 절대 하루도 빼먹지 말고.”
“공자님, 그건 이제 좀 봐주실 때도…….”
“예, 공자님. 명 받들겠습니다.”
바비와 레몬드를 끝으로 인사도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내 사람들의 배웅을 뒤로한 채 바르코스 요새를 나섰다.
그러고는 트윈의 흔적을 쫓아 몬스터의 천국, 카르카디아 산맥에 발을 들였다.
* * *
카르가디아 산맥을 헤쳐 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간의 유입을 허락지 않던 곳이니만큼 길이 없는 것은 기본이고, 몬스터의 습격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선 나의 감각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몬스터 출현을 미리 감지한 덕에 쓸데없는 전투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오히려 라인하트 영지군을 이끌고 바르코스 요새로 향할 때보다 더 쉬웠다.
현재 내가 이끌고 있는 인원은 4명밖에 안 되는 소수.
300명을 이끌 때와 운신의 폭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이 4명의 소수가 정예 중의 정예였다.
피해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순식간에 전투를 종결지어 버렸다.
다른 몬스터들이 알아챌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4명 모두 그 정도쯤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들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마법사인 게인 프루다 남작의 공이 컸다.
그가 마법으로 우리의 냄새나 흔적 따위를 최대한 지워 버린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카르가디아 산맥을 전례 없는 속도로 헤쳐 나갈 수 있었다.
“트윈은 멀리 자리를 비운 것 같습니다. 놈의 기운 자체가 이 근방에서 느껴지지 않아요.”
그리하여 요새를 떠난 지 일주일 만에 트윈의 레어로 추정되는 곳에 도달한 참이었다.
산맥 내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넓은 공터와 깊지도 얕지도 않고 적당히 아늑해 보이는 동굴.
어떤 몬스터라도 레어로 삼고 싶을 이 장소에 여타 몬스터의 흔적이라고는 뼛조각 말고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트윈의 그것뿐.
트윈의 흔적이 너무도 뚜렷해 이곳이 놈의 레어라는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과정도 그러했다.
산맥 안에서 트윈은 제왕을 넘어 황제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놈은 자신을 숨기려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흔적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덕분에 놈의 뒤를 쫓아 레어를 찾는 과정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했다.
그리고 현재는 놈이 자리를 비운 상황.
그 틈에 놈의 레어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찌릿.
무언가가 감각을 잡아끌었다.
“몬스터가 이곳으로 접근 중입니다.”
“트윈인가?”
“아니요, 놈의 기운이랑은 달라요. 다른 개체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몸부터 숨기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내 제안에 따라 일행 모두가 적당한 위치에 은신했다.
여기에 게인이 마법으로 기척까지 확실하게 감춰 주었다.
잠시 후, 내 감각에 잡힌 개체가 레어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오우거였다.
감각이 일러준 대로 트윈이 아닌 일반 개체의 오우거.
기웃기웃.
그런데 놈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했다.
다 와 놓고 공터 안으로는 발을 들이지 않은 채 밖에서만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지상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우거에게는 심히 어울리지 않는 행동.
물론 이곳이 트윈의 레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놈의 행동은 경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놈은 지금 잔뜩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그로 인한 부정적 감정이 내 감각을 건드리고 있었다.
동시에 갈팡질팡하는 중이었다.
어떤 중대한 선택의 기로를 앞에 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저 녀석 상태가……?’
특이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우거의 몸 상태.
놈은 미세하지만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절뚝였다.
또, 초록색 피부와 눈에 띄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푸르댕댕한 자국들이 몸 전체를 덮고 있었다.
종합하면 성치 않은 몸으로 트윈의 레어 주변을 기웃거리며 갈팡질팡 중인 것이다.
극도의 두려움, 불안함 따위의 감정을 한가득 품은 채로.
지켜보는 입장에서 불쌍하고 애잔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랄까?
이런 놈의 상태 덕분에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더불어 지금 우리가 내려야 하는 판단까지도.
“저 오우거…….”
겁에 질려 불편한 몸으로 덜덜 떨고 있는 불쌍한 저놈.
“죽여야겠네요.”
죽여야 했다.
지금 당장.
* * *
“크라라…….”
제왕답지 않은 애처로움이 묻어 나오는 울음소리.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우거의 흉폭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아무리 양 발목이 잘리고 목에 칼까지 겨눠진, 한마디로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오우거란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 흉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괴물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식이었으니까.
한데 어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것이라도 겪는 모습이랄까?
우리의 기습으로 전투가 시작된 이래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기만 하자 놈은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진짜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됐다는 뜻은 아니었다.
회귀와 함께 내 감정이 풍부해졌다지만, 다른 놈도 아니고 오우게에게 동정심을 느낄 만큼 감상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내 손으로 직접 오우거의 발목 하나를 잘라버리지도, 지금 막 내리쳐지는 에릭스의 검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지도 않았을 터.
슈각!
거침없이 뻗어 나간 에릭스의 검은 단칼에 오우거의 목숨줄을 끊어 냈다.
그렇게 전투라고 하기 뭐했던 전투는 놈의 죽음과 함께 순식간에 종료됐다.
“그러니까, 트윈이 이놈을 두들겨 패서 복종시켰을 거다, 이 말인가? 지난 전투에 등장했던 오우거 세 마리도 마찬가지이고?”
오우거를 처리하자마자 제프너가 질문을 던져 왔다.
기습 직전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부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
“예. 이놈,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살짝 절뚝이고 있었습니다. 여기 자세히 보시면 피멍 자국들도 수두룩하게 보이고요. 또, 오우거답지 않게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었습니다. 트윈이 아니면 누가 오우거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트윈이 오우거를 모은 방식은 결국 몬스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단순무식한 폭력, 그리고 이를 통한 공포와 트라우마 심기.
영악하다 하나 역시 몬스터는 몬스터였다.
대신 말도 안 되게 효과적이었다.
오로지 단독행동만 고집하는 오우거를 무려 셋이나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모이는 순간 바로 사생결단을 벌였을 테니까.
오히려 단순무식하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오우거의 회복력은 트롤 다음가는 수준이니 단순무식한 폭행의 상처와 흔적쯤이야 요새 침공 즈음하여 회복됐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일단 이놈부터 치우고 도망친 것처럼 위장해 놓은 뒤, 다음 순번을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하면 지금부터 정찰대가 할 일은 간단했다.
트윈이 오우거를 끌고 올 때마다 몰래몰래 죽이는 것.
그리고 마치 도망이라도 친 것처럼 꾸며 놓는 것.
그러면 트윈은 오우거들이 감히 제 명령을 무시한 것으로 여기고는 길길이 날뛸 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오래 지속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트윈도 이상함을 눈치챌 테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소드마스터인 디카프리 델로나 후작이 도착할 때까지만 시간을 벌면 되는 일.
그가 도착한 뒤로는 직접 트윈을 노릴 것이니 더 끌 필요도 없었다.
“음……. 공자 말이니 틀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살짝 의아하기는 해. 솔직히 내 눈에는 겁에 질렸다기보다 그냥 화나서 으르렁댄 것으로밖에 안 보였거든. 에릭스 경이나 게인 남작님은 어떠셨습니까?”
다만 이런 확신은 나만이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오우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자신들도 그냥 화난 것처럼 보였다며 제프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머지 두 사람의 반응이 이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들의 반응이 정상적인 것이기도 했다.
아마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물론 저라고 백 프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확률이 높기는 해도 아직은 가설일 뿐이니까요. 몬스터의 행동을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한번 같이 확인해 보시죠.”
* * *
확인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정찰대의 눈앞에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사라졌던 트윈이 나타났다.
그 뒤로 온몸이 피투성이인 오우거 두 마리를 달고서.
내 가설이 완벽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크르르.”
트윈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비록 음역대 자체는 낮을지언정 원체 큰 울림통을 타고 넓게 퍼져 나가는 놈의 소리.
그 의미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도 먼저 잡아다 둔 오우거를 부르는 것일 터.
…….
그렇다면 아무 반응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트윈의 소리에 반응했어야 할 놈은 이미 황천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고개를 갸웃한 트윈이 다시 한번 으르렁댔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놈의 부름을 받아 준 것은 고요한 침묵뿐이었다.
이윽고.
“크롸롸롸라라~!”
트윈이 포효했다.
극도의 분노가 담긴 포효였다.
쾅! 쾅! 쾅! 쾅!
산맥 전체가 울리도록 발을 구르며 분노를 폭발시킬 만했다.
감히 일개 오우거 따위가 저의 엄포를 무시한 꼴이었으니까.
이에 미친 듯이 분노를 표출하는 트윈.
그러더니 놈은 그것을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오우거 두 마리에게 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엉망인 상태였던 오우거들은 아예 곤죽이 되어 갔고 말이다.
“크롸롸라라~!”
그렇게 한참이나 쿵쾅대며 분풀이를 하던 놈은 이내 다시 한번 크게 포효하더니 발을 굴러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도망쳤으리라 판단되는 오우거를 잡으러 간 모양.
당연히 숨이 껄떡거리는 오우거 두 마리는 그대로 내팽개쳐 둔 상태였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기는 했다.
오우거의 회복력은 숨넘어가기 직전의 상태라 할지라도 일단 붙어만 있다면 어떻게든 회복시켜 내고야 말았으니까.
시간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가능했다.
“자, 그럼 작업 시작하시죠.”
회복할 시간, 그놈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