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6화 (17/200)

10장: 정찰대

“이대로는 안 됩니다, 후작 각하.”

제프너가 강력한 어조로 단언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고.

그 진중한 태도에 걸맞게 제프너가 그의 아버지에게 사용하는 호칭 역시 공식적이었다.

당연한 태도와 호칭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그가 주장을 피력하는 곳은 요새 내 핵심인사들이 모여 작전과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라이오넬 공자 덕에 무사히 넘기긴 했지만, 만약 오늘 오우거가 한 마리만 더 있었어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간 트윈의 행태로 볼 때, 다음 전투에서 몇 마리를 더 끌고 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회의 참석 인원 모두가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제프너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오히려 피해는 걷잡을 수 없었으리라는 표현도 상당한 순화한 편이었다.

정말 한 마리만 더 있었어도 라이오넬의 깜짝 활약이고 뭐고, 방어선 자체가 무너졌을 확률이 높았다.

요새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트윈이 직접 전투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왕실에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남부의 델로나 후작에게도 따로 연락했고. 왕실과 델로나 후작 모두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둔 상태야.”

그래도 대책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왕실의 승인을 받아 남부에서 활동 중인 소드마스터 디카프리 델로나 후작을 불러온다면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될 것이다.

소드마스터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존재였으니까.

“델로나 후작께서 직접 와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기는 합니다만, 아시지 않습니까? 소드마스터라 해도 남부에서 북부 끝인 여기 바르코스 요새까지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지는 못합니다. 그사이 오늘 같은 공격이 한 번만 더 들어와도 솔직히 견디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델로나 후작이 아무리 빨리 온다 해도 최소 한 달은 걸린다.

이 기간을 무사히 넘기지 못한다면, 델로나 후작이 트윈을 제거한다 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시간을 벌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해서 정찰대 편성을 강력히 건의드리는 바입니다.”

제프너는 무작정 부정적인 의견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찰대라는 나름의 대책을 지니고 있었다.

“트윈을 추적해서 놈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 미리 파악하는 겁니다. 미리 알기만 해도 방어 가능성이 커지는 건 자명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임무 과정에서 놈에게 틈이 생긴다면 중간중간 방해해 가며 시간을 끌 수도 있을 겁니다.”

제프너가 주장하는 정찰대의 임무는 트윈에 대한 추적과 감시·정찰.

트윈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모르고는 확실히 방어 난이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인물 중 당연히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반대급부 역시 모두가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네 뜻이 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쉽게 결정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성공 가능성에 비해 위험도가 너무 높아. 그렇다고 많은 인원을 투입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자칫 괜한 전력 손실만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야.”

지나치게 위험했다.

추적을 위해서는 직접 카르가디아 산맥에 발을 들여야 했다.

이 자체만으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인데, 추적 대상은 심지어 트윈 헤드 오우거.

범의 아가리에 무방비로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진배없었다.

개죽음으로 끝날 확률이 다분한 임무인 것이다.

누구라도 선뜻 나서기를 꺼리는 것이 당연했다.

“위험도가 얼마나 높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임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래도 제프너가 직접 나선다면 얘기는 살짝 달라졌다.

물론 제프너가 나선다고 해서 임무의 성공 확률이 획기적으로 올라가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불리할 조건을 뒤집을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으니까.

대신 의미가 달라졌다.

제프너는 후작가의 장남이자 정식 후계자였다.

요새 사령관인 바르코스 후작이 직접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후작가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큰 패이기도 했다.

이렇듯 후작가가 솔선수범하고 나선 이상, 다른 가문도 위험성을 이유로 마냥 빼기만 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인원을 투입한다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됩니다. 요새 방어가 훨씬 중요할뿐더러 추적과 감시에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니까요. 정찰대는 소수 정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렇게 직접 참여를 선언하면서까지 정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제프너.

한데, 그런 그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다소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기 위함이었다.

“염치없지만 에릭스 경의 참여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임무의 성공을 위해서는 에릭스 경의 뛰어난 실력이 절실합니다.”

그 누군가란 바로 에릭스.

아니, 에릭스일 수밖에 없었다.

요새에서 바르코스 후작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실력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처음부터 인원 구성에 그를 못 박아 놓고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에릭스는 이번 임무에 있어 필수 요소에 가까웠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이 점을 에릭스 또한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다.

“음…….”

그럼에도 에릭스는 즉답을 내놓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제프너 또한 이런 에릭스의 반응에 대해 실망하는 기색 같은 건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에릭스가 망설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대 라인하트 자작께서도 이곳에서 전사하신 마당에 또다시 이런 무리한 부탁을 드리는 것이 저로서도 정말 면목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라인하트 영지에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컸다.

전대 라인하트 자작이 전사한 지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3년 동안 라인하트 영지는 심한 부침을 겪었다.

이드리스가 한다고 했지만, 그 역시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마 에릭스가 아니었다면, 그가 영지의 정신적 지주로서 굳건히 버텨 주지 않았다면 라인하트 영지는 그대로 몰락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지난 했던 3년을 거친 뒤 이제 겨우 안정기에 접어들려 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에릭스마저 임무 중 전사한다?

라인하트 영지에 잃어버린 3년에 대한 보상은커녕 또 다른 3년을 선사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에릭스 개인의 입장만 고려하여 쉬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

이것이 에릭스의 고민이 길어지는 원인이자, 제프너가 그를 재촉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동시에 제프너가 던지는 또 다른 제안의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영지에 대한 걱정이 크시다면 에릭스 경,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 * *

“받아들이시죠.”

회의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돌아온 에릭스.

그런 그에게 내가 말했다.

제프너의 요청을 받아들이라고.

“그렇게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도 개인적으로야 받아들이고 싶다만, 이건 라인하트 영지 전체의 입장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야.”

“정찰대 자체가 무산된다면 모를까, 편성된다면 어차피 에릭스 경은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릭스 경 말고는 적임자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끝까지 빼기만 한다면 시선이 고울 리 없어요. 에릭스 경께는 물론이고 라인하트 영지에도요.”

제프너가 임무에 자원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 끝끝내 거절한다면, 아무리 라인하트 영지 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앞으로 바르코스 후작가와의 관계는 적잖이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참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대신 그 대가를 확실히 받아 내는 걸로 하죠. 웨이브 후 몬스터 부산물 거래에 있어서 최우선권을 달라고 하세요. 라인하트 영지의 운명을 여기에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적어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합니다.”

차라리 정찰대 참여에 대한 반대급부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

속물처럼 비칠 수도 있으나, 라인하트 영지만큼은 이 부분에서 자유로웠다.

전대 영주까지 이곳에 뼈를 묻은 마당에 임무 참여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마저 받아 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심각한 호구로 비칠 터.

라인하트 영지에는 당당히 보상을 요구할 자격이 있었다.

“설령 임무에 참여한다 해도 네가 말하는 대가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영지들이 너무 과하다며 반대할 테니까. 내 한 목숨이 싼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우선권을 보장받을 만큼은 되지 못해.”

물론 보상 요구 자격과 보상 수준은 별개의 문제였다.

요구 자격이 있다 하여 보상의 수준과 정도까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모두가 목숨을 내놓고 방어에 임하는 중이었다.

에릭스의 말마따나 다른 영지들에서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컸다.

특히 이번 웨이브에는 트롤과 미노타우루스가 넘쳐남은 물론이고 오우거까지 포함돼 있었다.

부산물의 양과 질이 어마어마한 만큼 쉬이 넘어가 줄 리 만무했다.

“값을 추가하면 되죠. 정찰대에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라인하트 영지 둘째 공자에,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현 바르코스 요새 영웅이라면 그 정도 값어치는 충분히 될 테니까요.”

그러나 여기에 나를 추가한다면 근거는 충분히 강화할 수 있었다.

아예 불만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누그러뜨리는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라인하트 영지의 기사단장에 둘째 공자가 함께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정 불만이라면 다른 영지에서도 정찰대 임무에 이 정도 투자를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결코 그런 도박 수를 둘 리 없겠지만.

“그건 안 된다.”

“제프너 자작님께서도 분명 반기실 텐데요? 잠깐이지만 제 감각을 직접 경험하셨으니만큼 내심 제 참여를 바라실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작님께서 내가 안 될 것 같으면 네가 참여할 수는 없느냐고 하시길래 확실히 못 박아 뒀다. 너는 절대 안 된다고. 너무 위험해. 그러니 허튼 생각 말거라.”

역시나 제프너도 나를 떠올렸다.

당연했다.

따지고 보면 정찰대 임무에는 에릭스보다 오히려 내가 훨씬 적합했으니까.

이건 전투 임무가 아닌 추적과 감시 임무였다.

그렇다면 이 임무에 몬스터 탐지 능력을 갖춘 내 감각보다 더 적합한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허튼 생각이 아니라는 건 에릭스 경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제 걱정에 반대하시는 건 알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이번 임무에 제 감각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따라서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반드시 나도 이 정찰대 임무에 함께 할 작정이었다.

“만약 끝까지 제 참여를 반대하신다면, 저 역시 에릭스 경을 보내 드리지 않을 겁니다. 저라는 안전장치도 없이 에릭스 경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건 제자가 스승님께 드리는 사적인 부탁이 아니라, 영지 둘째 공자가 기사단장님께 드리는 공적인 요구입니다.”

자신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에릭스를 죽게 하지 않을 자신, 그리고 임무에 성공해 이드리스와 영지에 커다란 선물을 안겨 줄 자신 말이다.

* * *

결국 에릭스는 내 설득에 넘어갔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내 말이 모두 옳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정찰대 편성은 눈 깜박할 사이에 마무리됐다.

인원은 총 넷.

제프너, 에릭스, 나, 그리고 4서클 마법사인 게인 프루다 남작이었다.

말 그대로 소수 정예였다.

임무에 가장 적합한 규모이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다른 영지의 지원자도 전무했기에 별다른 잡음은 없었다.

“에릭스 경과 제프너 녀석이 찬성하니 허락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난 아직도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정말 자네에게 그런 특별한 감각이 있는 게 확실한가?”

편성까지 완료된 이상 투입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정찰대는 곧바로 임무에 나서게 됐고, 그런 우리를 배웅하며 바르코스 후작이 나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거쳤다.

“제프너 자작이 보증하지 않았습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저 녀석은 영 믿음이 안 가서 말이지.”

내 확답에도 아들인 제프너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 젓는 후작.

“좀 믿으시죠? 아니, 이렇게 믿지 못하실 거면서 애초에 허락은 왜 하신 겁니까?”

“널 믿어서 허락했겠느냐? 에릭스 경을 보고 한 것이지.”

“아이고…….”

나는 그런 후작에게 확신을 심어 주고자 객관적인 지표를 제시했다.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좀 쑥스럽지만, 아시다시피 저 오우거 슬레이어입니다.”

“그래, 그래서 보내는 것이긴 하지. 아니었으면 작고한 전대 자작에게 미안해서라도 절대 보내지 않았을 거야.”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저 이번에 후작 각하 제대로 뜯어먹을 작정입니다. 후작가 기둥뿌리가 흔들릴지도 모르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동시에 나 또한 확인받고자 했다.

이번 임무, 절대 공짜가 아니며 약속한 대가가 확실히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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