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5화 (16/200)

9장: 영웅과 열등감, 그리고 입단속

“공자님께서 올해 16살밖에 안 되셨다고?”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렇게 강하셔? 말이 되나?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오우거 슬레이어가 되신다는 게?”

“어허, 의심하지 마. 자네들도 직접 봤잖아? 우리 라이오넬 공자님께서 그 흉폭한 오우거의 심장에 칼로 아예 말뚝을 박아 버리시는 거.”

“그렇긴 하지.”

“정 자네들 눈을 믿지 못하겠거든 요새에 있는 병사 아무나 잡고 물어봐 봐. 다 같이 봤으니까.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리셔서는 단칼에 오우거 숨통을 끊어 버리신 우리 공자님 위용.”

레몬드는 신날 대로 신이 났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요새를 거닐 때마다 병사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한 몸에 받는데.

모두 그의 가죽 갑옷에 박혀 있는 라인하트 문양, 그리고 그가 모시는 상관 덕분이었다.

물론 이 문양, 그리고 모시는 상관이 처음부터 자랑스웠던 것은 아니었다.

문양이야 별생각 없었다 쳐도 솔직히 상관은 탐탁지 않았었다.

동기인 바비와 함께 직속 상관으로 모시게 된 영지의 둘째 공자, 라이오넬 라인하트.

사실 그는 조건만 놓고 봤을 때 결코 바람직한 상관이라고 할 수 없었다.

라이오넬은 다른 기사들과 달리 태생부터 진짜 귀족이었다.

검술에 재능이 있다는 소문은 접해 봤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실제로는 강해 봐야 16살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당연히 지휘 경험도 전무했다.

태생부터 귀족이자 실력 미상에 이번 몬스터 웨이브가 처녀 출전인 16살짜리 둘째 공자.

객관적인 지표상으로는 지휘관으로서 최악이었다.

비록 심각병 말기 환자인 바비만큼은 아니었지만, 낙관적인 레몬드조차도 걱정부터 앞섰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걱정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지휘 완벽, 실력 강함, 그리고 몬스터가 나타날 때마다 최전방에서 무쌍을 찍기까지.

심지어 귀족치고는 까탈스럽지도 않았다.

완벽한 상관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나 라이오넬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는 레몬드와 병사들에게 만족을 넘어 감동을 선사해 줬다.

귀신 같은 신위로 병사들을 대형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지켜 준 것이다.

덕분에 라인하트 영지군은 주변의 이목을 끌었으며, 동시에 무수한 부러움까지 수집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이 감동마저 한계치를 넘어서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폭발했다.

라이오넬의 활약도, 그를 향하는 존경심, 그리고 그를 모시는 라인하트 영지군에 대한 주변의 부러움까지 전부.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우거의 주먹을 정면에서 막아낸 것으로도 모자라 성벽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더니 그대로 괴물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이 요새 전 병력 앞에서 행해졌다.

이런데도 폭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슈라우드 왕국 최연소 오우거 슬레이어.

이 타이틀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거늘, 라이오넬은 단순한 오우거 슬레이어가 아니었다.

그는 영웅이었다.

요새를 붕괴 위기에서 구해 낸 구원의 영웅 말이다.

그리고 레몬드는 바비와 함께 그런 영웅을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부관이었다.

대형 몬스터를 떨구는 일에서부터 항상 함께하다 보니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지나갈 때마다 부러움과 선망의 시선을 보내오는 병사들.

레몬드의 기분이 째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믿지. 우리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나? 그저 부러워서 그러지, 부러워서. 우리 처지랑은 너무 다르니까.”

특히 현재 대화를 나누는 중인 병사들 앞에서는 그 감정이 더더욱 선명해졌다.

지나치게 선명해지다 보니 되려 눈앞의 병사들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음, 그쪽 공자님이 좀 그렇긴 하지.”

“어디 좀 그렇다는 말로 표현이 돼? 그때 자네도 봤잖아? 트롤한테 집적거리다 안 될 것 같으니 병사들을 방패막이로 세우는 거. 그뿐이야? 오늘 오우거 앞에서는 또 어땠고? 아주 그냥 벌벌 떠는 게 우리보다도 더…….”

상대가 발터우스 영지의 병사였기 때문이다.

라인하트 쪽과 본의 아니게 여러모로 비교되는 바로 그 발터우스 영지 말이다.

특히 지금 병사가 극렬 성토 중인 르로이 발터우스가 주된 비교 대상이었다.

사실 평소였다면 르로이가 욕은 먹을지언정 이렇게 부각될 만한 사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귀족들이 대개 그렇다는 걸 평민 중에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특별했다.

라이오넬이라는 오우거 슬레이어이자 요새의 영웅이 바로 옆에 있었다.

눈이 달렸다면 비교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상황.

특히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발터우스 병사 입장에서는 더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병사의 감정 섞인 하소연은 한참 동안 계속됐고, 레몬드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길었던 한탄이 간신히 멎은 뒤, 위로 차원에서 말미에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

“그래, 내가 봐도 못마땅한데 직접 받들어야 하는 자네들 입장은 오죽하겠나? 아무래도 발터우스 공자가 우리 라이오넬 공자님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 건 사실이지. 솔직히 비교 자체가 우리 공자님께 죄송스러울 정도로…….”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레몬드로서는 혹시 몰라 조심하고 조심하다 말미에 내뱉은, 말 그대로 정말 한마디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한마디가 결국은 사단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르로이 발터우스.

하필이면 본인이 등판한 것이다.

* * *

르로이는 요 며칠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수준을 넘어 아주 그냥 개같이 더러웠다.

현재 그가 당하고 있는 비교를 당사자라고 모를 리 없었으니까.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괜히 더 신경 써서 평판을 듣는 중이었다.

그리고 방금 그 더러운 기분이 결국 폭발하고야 말았다.

감히 일개 하찮은 병사 따위가 다 들리도록 대놓고 르로이를 깎아내린 것이다.

심지어 그 병사의 소속은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라인하트 영지군.

하여 재고할 것도 없이 이 자리에서 그 죄를 묻고자 했다.

더러운 입이 달린 천한 목을 두 동강 냄으로써.

“말로 할 때 비켜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검부터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곧장 르로이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앞을 막아선 한 놈 때문이었다.

“저 천한 놈이 감히 귀족인 나를 모욕했다. 그런데 나더러 진정하라?”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겁니다. 진정하시고 오해를 풀어 가면…….”

“오해는 무슨 오해! 분명 내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다이너라는 놈이었다.

라이오넬 옆에 붙어 다니는 쥐새끼 같은 놈인지라 얼굴은 익숙했다.

한데 이놈이 르로이가 병사의 목을 베어 버리려는 찰나에 끼어들었다.

르로이의 베기를 제 검으로 가로막으며.

즉, 그와 다이너라는 놈은 현재 검을 맞댄 채로 대치 중인 것이다.

“마지막 경고다. 비켜라.”

“말씀드렸다시피 그럴 수는 없습니다.”

르로이는 다이너와 대치하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꼴에 기사 차림을 하고 있기는 하나 어디 이름도 없는 잡배 따위가 그의 앞을 막아선단 말인가?

발터우스 영지 내에서 검의 천재 취급만 받으며 자라 온 르로이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현재 소드 유저 최상급이자 곧 소드 익스퍼트에 오르리라 전망되는 그의 앞길에 별 시답잖은 놈들이 자꾸만 훼방을 놓았다.

하여 다시 한번 결심했다.

지금의 이 치욕을 결코 그냥 넘기지 않으리라고.

상처 입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입을 함부로 놀린 병사뿐 아니라 검을 막아선 이 다이너란 놈의 목까지 취할 작정이었다.

“좋다, 하면 어쩔 수 없지. 날 원망하지 마라. 모든 건 천한 주제에 건방지기까지 한 네놈들 탓이니까.”

우우웅~

르로이가 그의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18살의 나이에 나름 뛰어나다 할 수 있는 소드 유저 최상급의 마나.

기껏해야 동년배로 보이는 애송이 따위가 버텨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놈의 목은 금세 잘려 나갈 터.

머지않았다.

그의 검이 그의 마나를 미친 듯이 빨아들이고 있었으니까.

까가각.

“이게…… 크읍!”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마나를 주입하고 또 주입해도 놈의 검이 꿈쩍도 않았다.

르로이가 낼 수 있는 힘은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

자연스레 그의 표정 또한 있는 대로 찌푸려지는 중이었다.

반면 상대인 다이너의 그것은 여전히 평온했다.

위장은 아닌 듯했다.

맞대고 있는 검에서도 전혀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이 상황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다이너가 르로이보다 더 강하다는 것.

기가 막혔다.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그보다 강하다는 건 내심 인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라이오넬을 혐오한다 해도 직접 본 게 있으니 이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개 같고 거지 같은 일이었다.

다만 애써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이 절대적인 진리를 르로이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오넬을 이 경우로 치부했다.

불공평한 세상의 더러운 섭리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간신히 받아들이고 애써 넘겼다.

그런데 이건 해도 너무했다.

불공평함에도 정도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어떻게 이런 시정잡배 따위조차 그보다 더 강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실까지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격차는 충분히 느꼈을 텐데, 이제 그쯤 해 두지?”

그리고 그때였다.

이렇듯 불타오르는 르로이의 심정에 아예 기름을 들이붓는 존재가 등장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라이오넬이었다.

사실상 이 모든 사태의 원흉.

애초에 라이오넬이 아니었다면 르로이가 지금 이런 꼴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이익……!!!”

그래서 더 그만둘 수가 없었다.

라이오넬까지 등장한 이상 더더욱.

뭐가 됐든 이대로 끝을 볼 작정이었다.

“어쩔 수 없네. 다이너, 눈치 볼 것 없어. 그냥 네가 끝내.”

“예, 공자님.”

구우우웅~

챙강!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생각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이너의 검에서 뿜어진 오러, 두 동강 난 그의 검과 함께 르로이의 자존심은 산산이 조각나고야 말았다.

* * *

“내 병사가 무례를 범했다. 이 점 부하를 대신해 사과한다.”

일의 전말은 여기까지 달려오며 바비에게 대강 들었다.

해서 도착 후 르로이와 다이너의 대치 상태를 정리하자마자 레몬드에게 직접 물었다.

정말로 르로이를 모욕한 것이 맞느냐고.

이에 레몬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이로써 일의 선후가 확실해졌다.

레몬드의 잘못에 대해 정확히 사과부터 하는 것이 선이었고, 하여 곧장 실행에 옮겼다.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을 모욕한 사건이다. 고작 사과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

내 사과에 대한 르로이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르로이의 반응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귀족 모욕은 충분히 중범죄로 다뤄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맞는 말이야.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 대신 이걸로 네가 내게 진 빚을 탕감하는 건 어때?”

따라서 이 부분을 무마하는 것이 일의 후였다.

다행히 지금이라면 그 또한 어렵지 않게 달성 가능했다.

“빚?”

“목숨 빚. 오우거에게 죽을 뻔한 걸 살려 줬으니 내게 빚을 진 셈 아닌가?”

“헛소리하지 마라. 난 네놈에게 살려 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

“날 콕 집어서 부탁하지는 않았지. 하지만 난 분명히 들었어. 오우거를 막아 달라는 네 비명, 난 그걸 듣고 너와 발터우스 영지군을 구한 거야.”

내가 확실한 카드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로이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조커급 카드 말이다.

귀족 모욕이 가볍지 않다고 하나, 목숨과 비교하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물론 이걸 르로이가 내게 진 빚이라고 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었다.

“…….”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전에 르로이가 내질렀던 처절한 비명을 현재 이곳에 있는 모두가 들었으니까.

이들 모두가 증인이었다.

더구나 이들, 발터우스 병사들은 내 편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구한 것은 르로이의 목숨만이 아닌 이들 모두의 목숨이었으니까.

어이없어하던 르로이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입을 다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일단 이게 내 제안이기는 한데, 정 마음에 들지 않거든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해. 피하지 않고 받아 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 그것은 르로이가 힘에서 철저히 짓밟혔다는 점이었다.

귀족 모욕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했다.

중범죄로 다뤄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아무 죄를 묻지 않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끝까지 갈 경우, 결국은 힘의 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말로 안 되면 검으로.

이것이 에펜시아 대륙 전체를 관통하는 제1 원칙이었다.

그런데 르로이는 방금 이 1원칙에서 철저하게 짓밟힌 참이었다.

심지어 나도 아닌 다이너에게.

즉, 명분과 힘 모두에서 밀리는 상황이었고, 이 점을 한 영지의 후계자씩이나 되는 녀석이 모를 리 없었다.

“…….”

따라서 르로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것, 그리고 결국은 찌그러지는 것뿐이었다.

비참하게.

“……두고 보자.”

잠시 후, 르로이가 휑하니 몸을 돌려 떠나 버렸다.

그렇게 상황은 일방적으로 정리됐다.

덕분에 나는 자칫 죽을 뻔한 레몬드를 살려 낼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가 조심한다고 했는데 그만…….”

하면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이었다.

“완전군장 후 연병장으로. 3분 준다.”

“예……?”

“늑장 부리는 거 보니까 여유 있나 보네. 2분.”

“헉! 가, 갑니다!”

바로 철저한 입단속.

레몬드 녀석이 언젠가 입으로 더 큰 사고 치기 전에 단속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뼈에 새겨지고도 남을 만큼 아주 처절한 단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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