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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4화 (15/200)

8장: 비극의 원흉(2)

투웅, 투웅~

이번에도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이너와 같은 기합성도 아니었다.

작동음이었다.

거대한 기계 장치의 둔탁한 작동음, 발리스타였다.

세 마리의 오우거가 등장하자마자 곧장 바비와 레몬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병사들과 함께 발리스타 작동을 준비해 놓으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 그 만약의 경우가 펼쳐진 상태였고 말이다.

쐐애액~

그렇게 쏘아진 발리스타의 살 두 발은 오우거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 크기와 속도로 봤을 때 상당한 위력을 보유했을 것이 분명한 공격이었다.

일단 살부터가 일반적인 창의 수준조차 훌쩍 뛰어넘었다.

차라리 기사의 랜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크고 우람했다.

더구나 속도까지 범상치 않았다.

살에 의해 찢겨 나가는 대기의 비명이 그 증거였다.

대형 몬스터 척살을 위해 특별히 제작·설치된 대몬스터용 발리스타다운 위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 이것만으로는 모자랐다.

특제 발리스타이기는 하지만 타깃은 트롤이나 미노타우루스 정도까지였다.

오우거는 사실 논외였다.

애초에 발리스타로 적중시킬 수 있는 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우거는 지나치게 빨랐다.

그렇지 않아도 느린 대몬스터용 발리스타의 조작 속도로는 조준 자체가 불가능했다.

설령 운이 따라 조준 후 발사까지 성공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오우거의 힘과 속도라면 날아오는 살을 그대로 공중에서 낚아채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한마디로 오우거 사살은 대몬스터용 발리스타의 제작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사용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노리는 목표물이 바로 오우거였다.

모자란 것이 당연했다.

평소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푸확! 푸확!

“크라라라라!!”

하지만 지금은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이 그 모자란 부분을 메워 주었다.

쏘아진 두 발 모두 오우거의 옆구리에 그대로 적중된 것이다.

현재 오우거가 처한 특수한 상황 덕분이었다.

오우거는 양팔이 묶여 있는 상태였다.

한 팔은 성벽에, 다른 한 팔은 나에게.

그냥 묶여 있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 놈의 온 신경까지 빼앗기고 있었다.

성에 매달린 팔에는 다이너가 난도질을 일삼는 중이었으며, 나를 찍어 누르려던 팔은 되려 내 검에 묶여 회수조차 제 맘대로 못하는 실정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쏘아진 살도 캐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대가로 고통 가득한 비명을 요새가 무너져라 질러 대는 중이었고 말이다.

“떨어집니다.”

다이너의 알림대로였다.

오우거가 끝내 양팔의 힘을 풀었다.

연속적인 타격과 수반되는 고통에 결국 매달리기를 포기한 것.

그렇게 오우거는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돌진 저지라는 1차 목표에 이어 요새 위 병력의 안전 확보라는 2차 목표까지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고도 남을 수준의 활약이었다.

“어어……? 공자님?”

하지만 나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야 이 미친놈아!!!”

내 등 뒤로 터져 나온 다이너의 욕설.

아무리 나한테 할 말 다 한다 해도 절대 선은 넘지 않던 다이너였다.

한데 지금 막 그 선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럼에도 난 다이너 녀석의 만행을 용서해 줄 생각이었다.

이번만큼은 녀석이 어떤 수위로 선을 넘더라도 이해해 줄 만했기 때문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명색이 영주의 친동생이자 영지의 둘째 공자라는 놈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따지고 보면 다이너의 격렬한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었다.

무려 15m에 달하는 바르코스 요새.

그런 높이를 무장한 상태로 뛰어내렸다.

아무리 기동성 확보를 위해 가죽 갑옷만 착용한 상태라 해도 미친 짓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이너의 눈에는 죽고 싶어 환장한 짓거리로 비칠 수밖에 없는 노릇.

휘이이잉~

그러나 여기서 끝장을 봐야 했다.

놈이 이처럼 무사한 상태로 떨어져 내린다면 다음 상황은 가늠이 불가했다.

밖에 나간 기사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잡다한 몬스터들까지 달고 오우거를 상대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놈이 성벽을 포기하고 그 분노를 밖에 있는 기사들에게 쏟아 낸다면?

기사들의 대열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놈에게 어느 정도 상처를 입혔다 하나 결코 위중한 타격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오우거의 회복력이 트롤 만큼은 아니지만 피륙에 입은 상처쯤은 간단히 회복 가능했다.

따라서 바닥에 착지한 뒤에는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더구나 원거리에서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쉬지 않고 투척을 해 대는 중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신속하게 한 놈이라도 줄여 놔야 했다.

놈이 당황한 지금이 바로 그 기회였다.

그래서 뛰어내렸다.

파앗!

그리고 떨어져 내리는 와중에 성벽을 박찼다.

이를 통해 놈과의 거리를 좁혔을 뿐 아니라 나의 낙하 방향을 조정했다.

목표 지점은 놈의 심장 어림.

다행히 오우거는 제 옆구리의 고통에 매몰돼 내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구우우우웅~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그리하여 현재 내가 뿜어낼 수 있는 최대 경지의 오러로 변환시켰다.

힘의 효율적인 배분이고 뭐고, 내게 허락된 오늘 자 힘의 총량을 모조리 여기에 쏟아부은 것이다.

따라서 이격은 없었다.

이 일격에 전부를 걸었다.

스아악~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담은 검이 오우거의 가슴을 향해 내질러졌고.

푸욱!

정확하게 목표 지점을 파고들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 * *

쿠과과과광~!

성벽에서 떨어진 오우거의 거대한 몸체가 이윽고 지면과 충돌했다.

육중한 몸체만큼이나 자욱한 먼지가 뒤따랐고, 그것이 전장을 뒤덮었다.

고용한 정적을 싣고서.

다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때마침 전장에 불어온 바람 덕에 자욱했던 먼지는 금세 가라앉았다.

먼지와 함께 찾아온 정적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씻겨 나갔다.

널브러진 오우거의 사체 위에서 한 사내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우와아아아아아아~!”

그리고 함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절망만이 가득했던 좌절의 순간, 바르코스 요새에 혜성처럼 등장한 새로운 영웅.

그 영웅을 향한 우레와 같은 함성 말이다.

* * *

“올해 16살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후작 각하.”

브라이튼 바르코스 후작, 바르코스 영지의 주인이자 요새의 사령관인 그가 내게 나이를 물었다.

전투가 마무리되고 대강의 정리가 끝나자마자 곧장 후작에게 불려 온 참이었다.

그러고는 호구조사를 받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작에게 직접.

“고작 16살의 나이에 오우거 슬레이어라…… 심지어 그런 전무후무한 일을 벌이기까지 했고 말이지?”

후작 말대로였다.

난 오늘 바르코스 요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족히 수십 년은 흐려지지조차 않을 굵직한 한 획이었다.

고작 16살에 오우거를 참살했다.

이것만으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적.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우거를 죽이는 과정은 완전히 소설 속 한 장면이었다.

15m 높이의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공중에서 성벽을 한번 박차더니 그대로 오우거에게 날아가 놈의 심장을 도려냈다.

그렇게 공중에서 오우거를 참살한 뒤에는 지상의 전장 한복판에 우뚝 서서 건재함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과장 좀 보태 신화 속 한 장면이라 해도 좋을 정도.

16살의 그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신위였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거야 어이가 없을 지경이구만.”

이 장면을 후작을 비롯하여 전장의 모두가 보았다.

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오우거가 요새에 주먹질을 하는 장면부터 죽임을 당하는 과정까지가 워낙 드라마틱했으니까.

물론 모두가 보지 못한 부분도 존재했다.

살아남기 위한 내 필사의 몸부림이 바로 그것이었다.

오우거를 죽인 뒤, 나 또한 추락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발악을 했다.

낙하를 시작한 지 시간이 꽤 흐른 시점이었고, 그만큼 속도가 붙은 상태였다.

이걸 줄여야 했다.

하여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했다.

오우거의 몸을 발판 삼아 차고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짧은 순간 갑옷을 있는 대로 뜯어냈으며, 조금이라도 속도를 줄이고자 양팔에 최후의 마나를 끌어모아 날갯짓까지 했다.

이렇게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 뒤에도 오우거의 몸뚱이 위를 겨냥해 떨어졌고, 떨어지자마자 데굴데굴 구르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살기 위해 필사적이고도 처절한 노력을 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우거의 거대한 몸뚱이에 가려져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당연히 탈진을 넘어 반쯤 기절한 상태였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곧장 몸을 일으키기는 했으나, 만약 추락 직후 기사들이 다가와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머잖아 몬스터 밥이 됐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난 오우거의 돌진을 막아 요새를 지켜 냈으며, 놈을 죽임으로써 오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후작과 에릭스가 각각 오우거를 쓰러뜨렸고, 이에 조용히 물러난 트윈 헤드 오우거까지, 모두 나의 활약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그리하여 바르코스 요새의 영웅이 됐다.

객관적인 활약상만 놓고 보면 바르코스 후작, 에릭스와 비슷한 수준이나, 임팩트가 달랐다.

어이없어하는 후작의 반응처럼 고작 16살짜리가 펼친 활약이었으니까.

영웅이 되기에 이보다 완벽한 조건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범상치 않은 공자이니 꼭 눈여겨보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역시 아버님과 달리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이 자리에는 나와 후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활약이 마치 제 기쁨이라는 듯 환하게 웃음 짓고 있는 후작의 장자이자 후계자, 제프너 바르코스도 함께였다.

“자랑이다, 이놈아. 저보다 20살 넘게 어린 친구 활약 보고서 부끄러워하지는 못할망정. 명색이 저도 기사라는 놈이, 쯧.”

“제가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그럴 거면 아버님부터 부끄러워하셔야죠. 아버님도 16살에 공자처럼은 못하지 않으셨습니까?”

부자 관계에 참 허울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후작의 성격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얼씨구? 그럼 한번 따져 볼 테냐? 난 그래도 60이 넘는 나이에 오우거 한 마리 때려눕혔다. 이 늙은 아비가 힘쓰는 동안 우리 팔팔한 아드님은 뭘 하셨나? 못해도 공자나 이 아비처럼 오우거 한 마리쯤은 꿀꺽하셨겠지?”

“아니, 후작 각하씩이나 되는 분이 대범하지 못하게 그런 걸로…….”

“방귀 뀐 놈이 성내고 있구나. 네놈이 먼저…….”

역시 듣던 대로 격식 같은 거 차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바르코스 부자는 그렇게 손님인 나를 앞에 두고도 서로 간에 허울 없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나도 완전히 긴장을 풀고 관전자 모드로 이 콩트 아닌 콩트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아깝구나. 우리 다나가 작년에 혼인만 올리지 않았어도 공자를 내 사윗감 삼았을 것인데.”

“그러게 왜 그리 일찍 보내신 겁니까? 하여간에 막내딸이라면 사족을 못 쓰셔서는. 그렇게 쉬이 허락하실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그럼, 다나 녀석이 시집 보내 달라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버티는데 아비가 돼서 보고만 있으리? 그리고 네놈은 마치 그때 다나한테 한 소리 했던 것처럼 말하는구나. 누가 보면 사리 분별 확실한 오라비인 줄 알겠어.”

“흠흠,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말이.”

“쯧, 망할 아들놈 같으니라고.”

부자간 공방의 불꽃이 갑자기 내게 튀었다.

어째 상당히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 형태로 말이다.

“됐고. 다나 다음은 데이지인데, 데이지는 너무 어린 것이겠지?”

“제 딸 데이지요? 말이 되는 말씀을 좀 하십시오. 이제 겨우 네 살인 아이입니다. 어떻게 그 어린 것을…… 음, 잠깐만. 안 되는 게 아닌가? 흐음…….”

심지어 잘 꺼지지도 않는 불꽃이었다.

제프너의 기겁으로 잡히는 듯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열린 그의 입과 함께 재차 타오르기 시작했다.

“공자, 혹시 결혼 일찍 할 생각인가? 꼭 그런 게 아니라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부인은 어떤가? 한 10년 정도만 기다려 주면…….”

* * *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가문 사정상 혼인을 일찍 해야 한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빨리 가정을 꾸리고 싶다 따위의 어설픈 핑계까지 지어내고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씨는 완전히 잡히지 않은 듯했으나 당장 몸을 빼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여 후작의 처소를 빠져나오자마자 황급히 막사로 향했다.

혹시라도 다시 발목이 붙잡히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잰걸음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공자님!!”

그때 저 멀리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바비?”

바비였다.

그가 나보다 훨씬 다급한 기색으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달음박질쳐 왔다.

“레몬드가 사고를 쳤습니다, 공자님. 녀석이 죽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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