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2화 (13/200)

7장: 가지가지 하는 놈(2)

“아까 그 엿 같은 귀족 놈…….”

“레몬드, 말조심해.”

몬스터들이 물러가며 오늘의 전투가 끝이 났다.

요새 전체적으로 손해가 상당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 또한 승리는 승리.

조금이나마 승리의 기쁨을 느끼며 종일 성벽 위를 뛰어다니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막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데 그 와중에 레몬드가 귀족에 대한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이를 바비가 황급히 끊으며 그를 자제시켰다.

평소 레몬드의 성격대로라면 바비에게 뭘 또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하느냐며 한 소리 하고도 남을 일.

없는 자리에서는 왕도 욕한다는데 그깟 다른 영지 귀족 나부랭이 좀 욕한다고 해서 이렇게 쿠사리를 줄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레몬드의 반응은 그의 평소 성격과 달랐다.

“아,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가 욱하는 마음에 그만…….”

내가 함께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레몬드라고 하지만 귀족인 내 앞에서 귀족을 욕하는 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 더 해도 돼. 어차피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지요? 역시 공자님이시라면 그런 귀족 같지도 않은 놈 행태에 분노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암, 그렇고말고요. 우리 공자님 같은 진짜 귀족과는 비교 자체가 역겨운 쓰레기니까요, 그 르로인지 레로인지 하는 새끼는.”

“그래도 레몬드…….”

“뭐 어때? 공자님께 직접 허락도 받았는데. 솔직히 바비 너도 그 새끼한테 구역질 났을 거 아냐?”

단, 레몬드는 역시 레몬드였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르로이 발터우스에 대한 욕을 뭉텅이로 쏟아 내는 그였다.

신중한 바비 역시 르로이에 대한 감상평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더는 적극적으로 레몬드를 만류하지 않았다.

“공자님 말씀대로 진짜 가지가지 하는 놈이었습니다. 명색이 귀족이고 기사 수련까지 받는다는 놈이 저가 싸지른 똥에 병사들을 희생시킨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런 주제에 뭐라도 되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꼴이 어찌나 같잖던지, 어휴.”

르로이가 벌인 짓은 트롤을 막기 위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낱낱이 목격한 참이었다.

가지가지 한다는 내 비아냥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르로이를 향하던 병사들의 경멸 어린 눈초리 역시도.

“그리고 제가 무엇보다 제일 열 받는 건 놈이 공자님께 칼을 들이밀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깟 놈이 어디 감히 주제도 모르고 우리 공자님께 칼을 겨눈단 말입니까? 공자님께서 그리하신 거 아니었으면, 저 진짜 그 새끼 들이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당시 상황은 단순히 말 몇 마디로 정리된 것이 아니었다.

좀 더 복잡한 과정을 수반하고 있었다.

* * *

레몬드가 욕지거리를 내뱉던 때로부터 반나절가량 거슬러 올라간 시점.

내가 르로이에게 가지가지 한다는 말을 내뱉은 직후, 내 목덜미에는 칼이 겨눠진 상태였다.

겨눈 이는 르로이.

내 반응에 뭐라 뭐라 역정을 내더니 곧장 검을 빼 들어 목에 겨눈 것이다.

“혈통조차 불분명한 네깟 놈이 감히 발터우스 자작가의 후계자인 나를 모욕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네놈의 목을 베어 주마.”

대충 이딴 씨부림이었다.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또 없었다.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알량한 가문의 이름만 믿고 나대는 꼴이라니.

가소롭다 못해 이쯤 되니 얼핏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당장에라도 내 목에 겨눠진 검을 빼앗아 역으로 겨눠 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르로이를 보며 나는 당장 움직이기보다 잠시 사색에 빠져들었다.

발터우스 자작가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가문이었다.

회귀 전, 검에 미쳐 사는 내 귀에도 소문이 들려올 만큼 유명세를 떨쳤기 때문이다.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현시점으로부터 20년 뒤, 발터우스 자작가는 백작가로 격상된다.

물론 이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전공을 세워 작위가 오르는 경우는 심심찮게 존재하니까.

그러나 이 격상이 특별한 점은 전공 혹은 그 외의 눈에 띌 말한 업적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오로지 영주의 수완만으로 작위를 올리게 되며, 그렇기에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영주 자체의 특이한 이력도 주요했다.

차기 발터우스의 영주, 그러니까 발터우스를 백작가로 격상시키는 인물은 장남이 아닌 차남이다.

그것도 단순한 차남이 아닌 서자 출신 차남.

장남이 비명횡사하며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결국에는 가문 자체를 번창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사적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바로 차기 영주와 내가 동갑이라는 사실.

유력 귀족가의 자제들이 일반적으로 왕도 아카데미에서 교육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와 차기 영주는 동기로서 인연을 쌓을 수도 있었다.

하나 회귀 전, 나와 차기 영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얼핏 듣기로는 가문 내부 사정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내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세부적인 사정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랬던 것이 오늘 르로이 발터우스와 마주하며 퍼즐 맞추듯 하나씩 들어맞기 시작했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에서 르로이가 죽는 거라면?

그래서 차기 영주가 갑작스레 후계자가 되고, 이런 사정 때문에 아카데미에 입교하지 못하는 거라면?

그리고 이렇게 맞춰진 퍼즐을 기반으로 미지의 영역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가 보는 것도 가능했다.

만약 이곳에서 르로이가 죽지 않고 무사 귀환하게 된다면, 그때는 흐름이 어떤 식으로 뒤바뀌게 될 것인가?

그래도 원래 운명을 되찾아 갈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인가?

“@#$%@#$%!!!”

내가 잠시 이런 생각들에 빠져 있는 사이 르로이는 점점 더 의기양양해져 갔다.

아마도 내가 겁에 질려 대꾸조차 제대로 못 한다 여기는 모양.

뭐라 뭐라 떠드는 소리가 한층 더 커진 상태였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뭐라 떠들든 하등 중요치 않았다.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개소리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자꾸 떽떽대는 게 시끄러워 슬슬 정리할까 싶은 참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머어어~”

더는 여유 부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노타우루스의 포효였다.

트롤보다 상위 몬스터가 성벽 위로 기어오른 것이다.

더구나 현재 서 있는 곳에서 거리도 꽤 되는 편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곧장 행동에 나섰다.

덥석.

왼손 엄지와 검지, 중지로 내 목에 겨눠진 검의 면을 잡았다.

그러고는 가볍게 비틀었다.

“어어……?”

털썩.

가벼운 한 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결과는 극적이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기라도 한 듯 르로이가 털썩 무릎 꿇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쥐고 있던 검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난 뒤였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얌전히 내 손아귀에 쥐어진 상태였다.

물론 난 쓰레기의 체취가 잔뜩 밴 것을 취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검이 도구에 불과하다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하여 원주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푹!

“히끅!!”

꿇려진 르로이의 양 무릎 사이, 그 좁은 틈으로.

여기에 상당한 친절까지 베풀었다.

검을 회수할 때 좀 더 편할 수 있도록 손잡이 부분이 위로 향하게 해 주었다.

즉, 르로이의 무릎 사이에 검을 박아 세운 것이다.

이에 르로이가 질겁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르로이의 반응 따위가 어떻든 내 알 바 아니었다.

양 무릎 중 한 곳에 꽂아 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 입장에서는 크나큰 아량을 베푼 셈이었으니까.

“내 이름을 물었었지? 라이오넬 라인하트다. 오늘 일 복수하고 싶거든 전투 끝나고 찾아오도록. 언제든 환영이니까.”

더욱이 원하던 바까지 들어주었다.

이만하면 친절이 과도하다 해도 무방한 수준.

“가자.”

그렇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곧장 미노타우루스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 * *

레몬드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르로이에 대한 욕을 늘어놓았다.

나와 바비는 적당한 수준에서 호응해 주었고 말이다.

덕분에 원 없이 풀어냈는지 막사에 도착해 갈 때 즈음해서는 더 이상 르로이를 씹지 않았다.

단,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르로이를 씹지 않는다 해서 입을 멈췄다는 뜻은 아니었다.

레몬드는 주제를 바꿔 쉬지 않고 말을 이어 가는 중이었다.

“이건 제가 바르코스 영지 병사한테서 얻어들은 얘기인데, 이번 웨이브가 말도 안 되게 끔찍해진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데다 친화력까지 좋은 성격답게 다른 곳에서 물어 온 소식이 그 주제였다.

그리고 이건 매우 심각하면서 중요한 주제이기도 했다.

르로이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웬 괴물 한 마리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어찌나 흉악한지 암묵적으로 ‘트윈’이라는 별칭까지 붙여 준 괴물이라고 하는데, 놈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그 병사 얼굴에 질린 기색이 역력하지 뭡니까? 어쨌든 그놈이…….”

올해 웨이브의 최대 난제이자 모든 비극의 원흉, 트윈.

이놈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서 입을 타고 알음알음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수뇌부에서는 혼란과 패닉을 최소화하고자 기사들에게까지만 전달하고 병사들에게는 쉬쉬했으나, 역시 소용없는 일이었다.

최근 2주 가까이 출현하지 않고 있다 해도, 이미 여러 차례 그 흉폭함을 뽐낸 뒤였다.

새로 편입된 병사들에게만이라도 전달을 늦춰 보고자 한 것이나 그게 가능할 리 만무했다.

물론 수뇌부 역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말이다.

더구나 지금 수뇌부에게는 트윈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말고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미 밝혔다시피 트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벌써 2주째였다.

이대로 끝까지 놈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군을 이끌고 요새를 지키는 입장에서 그런 천진하리만치 낙관적인 기대에 운명을 걸 수는 없는 노릇.

놈의 재등장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놔야만 했으며, 여기에만 신경을 쏟아붓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기에 알음알음 퍼져 나가는 트윈에 대한 소문을 막을 여력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 소문이 지나친 혼란으로 번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 병사가 하는 말로는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그때는 절망밖에 남지 않을 거라고…….”

* * *

“또 슬슬 라인하트 쪽으로 쏠리고 있잖아. 병사들이 자리 지키게 관리하라니까? 이러다 우리 구역 뚫리면 어쩔 건데?”

르로이가 있는 대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몬스터와의 전투가 한창인 와중임에도 말이다.

다만 이 짜증에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라이오넬과의 사건 이후 심각하게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는 르로이였지만, 현재 그의 짜증은 나름 타당한 근거를 갖추고 있었다.

최근 발터우스 영지군은 요새 방어 중 툭하면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였다.

쏠림의 방향은 발터우스 영지군 방어 구역의 왼편, 바로 라인하트 영지군 쪽이었다.

당연히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이러다가 반대편의 방어가 허술해져 르로이의 말마따나 뚫리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따라서 르로이의 쉼 없는 짜증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발터우스 병사들의 불만이 쌓여 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쏠림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건 물론 병사들도 알고 있었다.

하나 본능에 의한 이끌림을 어쩌란 말인가?

심지어 다른 본능도 아니고 생존본능인 것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하루에도 수백 번씩 병사들을 구원해 주는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그곳에 있었다.

라이오넬이 최대한 넓은 범위를 커버하려 노력한다지만, 주 활동 영역은 라인하트의 구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불만을 품는 것조차 송구할 만큼 너무나 당연한 일.

대신 생존본능은 끊임없이 병사들에게 속삭였다.

한 발자국이라도 라인하트 쪽에 가까워져야 목숨을 보전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이다.

따라서 저도 모르는 새에 라인하트 쪽으로 가까워지는 몸뚱이를 병사들도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라인하트 쪽으로 다가가는 놈은 용서치 않겠다. 그놈은 내가 직접 벨 것이니, 이를 명심하고 자리를 지키도록.”

이런 와중에 영지 후계자라는 놈이 짜증과 엄포만 늘어놓고 있으니 자연히 병사들의 불만은 쌓여 가는 중이었다.

짜증이나 내고 있을 시간에 기사답게 가서 대형 몬스터 한 마리라도 상대하든가.

검 몇 번 휘둘러 보고는 힘들다며 쉬는 주제에 뒤에서 괜히 분위기만 망치고 있으니 심히 아니꼬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벽 위를 누비며 활약 중인 라이오넬과 비교하니 더더욱.

아니, 애초에 대형 몬스터에게 깔짝이는 것도 제 공적 쌓기를 위함인 인간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라이오넬에게 송구한 일이었다.

라인하트 쪽으로의 쏠림 현상이 왜 유독 발터우스 영지군에서 심한 것인지 짐작조차 못 하는 놈일 테니까.

“…….”

그렇게 쌓이고 쌓인 불만이 하나둘 발터우스 병사들의 얼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있기에 르로이와 기사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방향으로 폭발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

그런데 이를 한 방에 해결해 주는 기제가 출현했다.

“노, 놈이다!!”

사실 해결보다는 압도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폭발 일보 직전까지 쌓였던 불만이고 뭐고 단숨에 압도해 버리는 놈이었으니까.

전투가 한창임에도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존재감.

그럼에도 이 순간, 요새의 병력 손실은 전무했다.

몬스터들조차 잔뜩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윈! 트윈 헤드 오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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