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1화 (12/200)

7장: 가지가지 하는 놈

로만 제국을 필두로 슈라우드와 여러 왕국이 자리 잡고 있는 에펜시아 대륙.

드넓은 대륙에서도 슈라우드 왕국이 위치한 지역은 북부에 해당했다.

그냥 북부 정도가 아니었다.

대륙 최북단이자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극한의 동토인 북방극지대, 이 북방극지대 바로 밑에 위치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으로 한정한다면 슈라우드 왕국은 대륙 최북단에 자리 잡은 왕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슈라우드 왕국과 북방극지대를 확실하게 나눠 주는 선이 바로 카르가디아 산맥이었다.

비단 슈라우드만이 아니었다.

산맥은 대륙 북부 자체를 횡으로 가로질렀다.

그걸로 모자라 종으로도 일부 지류를 길게 뻗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다시, 이 거대한 카르가디아 산맥으로부터 슈라우드 왕국을 구분 지어 주는 기준점이 바로 바르코스 요새였다.

산맥과 맞닿은 왕국의 최전선에서 슈라우드를 지키는 방패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왕국의 방벽인 바르코스 요새를 대대로 맡아온 가문이 바르코스 후작가였고, 그렇기에 바르코스 후작가는 북부의 방패라고 불렸다.

라인하트 자작가는 바로 이 북부의 수호자, 바르코스 후작가와 친분이 깊었다.

누대에 걸쳐 함께 북부를 지켜 온 역사 덕분이었다.

더욱이 전대 라인하트 자작은 바르코스 요새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도중 장렬하게 전사하기까지 했고 말이다.

그런 곳에 라인하트 영지군이 도착했다.

그것도 요새를 향하는 길목에 수두룩하게 깔린 몬스터 떼를 억지로 뚫어 내고서.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환영식 비스무리한 것조차도.

그저 에릭스가 브라이튼 바르코스 후작에게 홀로 도착을 보고하고 온 것이 전부였다.

그간 양가가 축적해 온 우정의 세월을 고려하면 지독한 홀대라 해도 할 말 없는 대접.

하지만 라인하트 영지군 중 이에 대해 불만을 품은 구성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환영식?

그따위 건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조차 못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몬스터에게 뚫리느냐 마느냐가 시시각각 왔다 갔다 하는 판국이었다.

이런 판국에 불만 따위를 품을 새가 어디 있겠는가?

불만도 일단 목숨이 붙어 있어야, 또 생각이라는 걸 할 만한 여유가 있어야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르르르.”

“트롤, 트롤이 올라온다! 빨리 기사님 불러!!”

“젠장할, 늦었어!!!”

후웅~

휘둘러지는 트롤의 거대한 손바닥.

그 무자비한 것이 성벽 위의 병사들을 덮치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그대로 쥐포처럼 짓눌리기 일보 직전의 순간.

쿠웅!

하나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트롤의 손바닥과 병사 머리 사이로 검 하나가 끼어든 덕분이었다.

“공자님!!”

검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굳이 살펴볼 필요 없었다.

라이오넬 라인하트,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바비, 레몬드.”

일단 최우선 목표인 라인하트 병사 구하기는 성공적으로 달성한 상태.

하지만 고작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후속 조치도 수반되어야만 했다.

해서 내 부관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퍽 퍽 퍽 퍽!

신호에 따라 바비와 레몬드를 비롯한 내 휘하 병사들이 트롤에게 일제히 창을 내질렀다.

물론 창날이 가죽을 뚫고 박혀 드는 경우는 없었다.

트롤의 질긴 가죽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였고, ‘푹’이 아닌 ‘퍽’ 소리가 울려 퍼진 이유이기도 했다.

즉, 병사들의 창은 트롤에게 이렇다 할 타격을 입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 사실에 대해 전혀 괘념치 않았다.

“밀어붙여!!!”

그저 바비의 지시에 따라 있는 힘껏 창을 밀어젖힐 뿐이었다.

이대로 트롤을 밀어 성벽 아래로 떨어뜨리기라도 할 기세.

당연히 이 역시 될 리가 없었다.

트롤은 대형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고작 병사 서넛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거라면, 애초에 요새가 뚫리니 마니를 걱정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트롤이 밀려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 자리에 병사들만 있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비틀.

“그륵?”

그러나 가정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했다.

가정과 달리 이 자리에는 내가 함께였으니까.

검을 이용해 트롤의 중심을 비틀었다.

동시에 라인하트 검법이 지닌 무거움을 이용해 밀어붙였다.

병사들과 같은 방향, 성 밖을 향해서.

“그롸라라라라…….”

잠시 후.

쿠과광~!

트롤의 당혹성에 이어 지면과의 충돌에 따른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 굉음 안에 지지리 운도 없는 소형 몬스터들의 피륙음과 비명이 섞여 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고 말이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어? 차라리 그냥 내 손으로 죽여 주리?”

“아, 아닙니다!”

덕분에 생긴 막간의 틈.

이 틈을 이용해 레몬드가 방금 죽을 뻔한 병사들을 사정없이 갈궈 댔다.

정신 무장을 다시 시키는 것이다.

이곳은 현재 눈 한번 잘못 깜박이는 것만으로도 곧장 육포가 될 수 있는 생지옥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만 했다.

더구나 추락한 트롤이 죽은 것도 아니었다.

충격에 잠시 기절한 것일 뿐.

정신 차리는 대로 재차 기어오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따라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갈궈서라도 정신을 무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트롤의 목을 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방안이 되기 어려웠다.

인간의 체력과 마나는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오러를 발산해 대다가는 검 몇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금세 방전되어 버릴 터.

힘의 적절한 분배는 필수였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요새를 지키는 모든 기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인 동시에, 평범한 기사들이 꾸준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반면 나에게는 평범한 기사들이 지니지 못한 무기가 존재했다.

깨달음이라는 무기가 바로 그것.

이를 기반으로 종횡무진 꾸준한 활약을 펼치는 중이었다.

성벽 위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죽이는 게 아닌 밀어서 떨어뜨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니만큼 그 속도 또한 상당했다.

한마디로 효율의 끝판왕이랄까?

“으아악~!”

그때였다.

막간의 틈은 말 그대로 정말 막간에 불과했다.

저 멀리서 또다시 절망으로 가득 찬 비명이 들려왔다.

“가자.”

그렇게 나와 내 병사들은 다시금 성벽 위를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했다.

* * *

“그르르르.”

“트롤이다, 트롤이 올라왔다!”

요새 성벽 위로 또다시 트롤이 올라왔다.

그 커다란 괴물 앞에 병사들이 무방비로 노출됐고 말이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공자님!!”

병사들을 바라보며 군침 흘리는 트롤에게 호기롭게 짓쳐 드는 이가 있었다.

“타앗!”

있는 대로 기합을 내지르며 트롤을 향해 돌진하는 사내의 이름은 르로이 발터우스.

슈라우드 왕국 북부 곡창지대인 발터우스 자작가의 장남이었다.

동시에 18살의 나이에 벌써 소드 유저 최상급의 경지에 올라 있는 유망주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르로이는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했다.

하여 발터우스 영지군 방어 구역에 난입한 트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든 것이다.

스악~

푸억!

그런데 어째 소리가 시원찮았다.

검으로 벤다기보다는 둔기로 가격하는 쪽에 가까웠다.

혹은 그 중간쯤이랄까?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도 울려 퍼진 소리를 그대로 반영했다.

휘둘러진 르로이의 검이 트롤의 목 언저리를 절반가량 파고든 상태.

파고듦의 수준으로 볼 때 어느 정도 타격이 들어간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그 정도라는 것이 어정쩡해서 트롤의 회복력을 이기지 못한다는 점이었지만.

“그롸라라~!”

더불어 이것이 되려 트롤의 광기를 완전히 폭발시켜 버렸다는 점까지.

“아직은 안 되는 모양이군.”

이에 순순히 현 상황을 받아들이는 르로이.

그러고는 곧장 뒤로 빠졌다.

“고, 공자님……?”

아예 병사들의 등 뒤로.

즉, 병사들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저가 돋워 놓은 트롤의 분노를 돌릴 제물로 말이다.

쾅! 쾅!

제물은 그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눈 뒤집힌 트롤에게 제 목에 상처를 낸 흉수가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현재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자 할 뿐이었다.

그렇게 트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소요와 혼란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이 틈에 한층 더 뒤로 빠지는 르로이.

병사들의 목숨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재화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더욱이 르로이가 물려받게 될 발터우스 영지는 북부 최고의 곡창지대였다.

병사 머릿수 다시 채워 넣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다음 대 발터우스 자작을 승계할 르로이 본인의 안위뿐.

그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그깟 병사의 목숨 따위 얼마를 잃든 상관없었다.

이런 생각과 함께 물러나는 발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르로이였다.

그때였다.

쿠웅!

거침없이 병사들을 육포로 만들어 가던 무자비한 트롤의 주먹.

그것이 묵직한 충돌음과 함께 공중에서 우뚝 멈춰섰다.

당연히 트롤 자의에 의한 멈춤일 리는 없었다.

시뻘건 핏줄로 붉게 물든 트롤의 눈은 당장에라도 모든 걸 박살 내고 싶다는 광기를 줄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퍽 퍽 퍽 퍽!

“밀어!”

웬 기사 한 놈과 병사 넷이었다.

우선 기사가 검으로 트롤의 주먹을 멈춰 세웠다.

이에 움직임이 잠시 중단된 트롤.

그 틈을 병사들이 파고들어 몸통에 창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밀기 시작했다.

힘이 작용하는 방향은 성벽 밖.

그대로 밀어붙여서 밖으로 추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쯧쯧, 이래서 무식한 것들이란.”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저런 무식한 짓거리가 통할 거였다면, 처음부터 르로이의 검이 트롤의 목을 두 동강 내고도 남았을 터.

성공할 리 만무했다.

“저게 될 리가…… 어?”

쿠구구구.

그런데 됐다.

트롤의 육중한 몸뚱이가 속절없이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끝내.

“떨어뜨려!”

“그롸라라라라…….”

트롤이 성 밖으로 밀려나 추락했다.

쿠과광~!

3초가량 지난 후 들려온 굉음이 트롤의 추락 사실을 뒷받침했다.

무식한 짓거리, 그래서 르로이가 코웃음 쳤던 짓거리를 결국 성공시킨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도 없었다.

바로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더욱이 함께 목격한 병사만 족히 수십은 됐다.

그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고 말이다.

“우와아아아~!”

덕분에 살짝 얼이 빠져 있던 르로이도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방금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광경의 주역들을 살펴봤다.

기사 하나에 병사 넷.

이것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이었다.

한데 그때, 기사인 자가 투구 바이저를 열었고, 그 덕에 구성의 특별함이 확보될 수 있었다.

기사의 얼굴이 상당히 앳돼 보였던 것이다.

기껏해야 10대 중·후반 정도?

18살인 르로이 본인보다는 어릴 것이 확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얼굴 확인을 통해 나이 대 말고도 확신 가능해진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사의 지위.

좀 더 정확히는 어린 기사의 지위가 르로이보다 낮으리라는 사실이었다.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르로이는 북부 주요 영지들의 가계도를 어느 정도 꿰고 있었다.

특히 영주와 그 직계 가족들은 그의 레이더 안에 확실히 포함돼 있었다.

한 영지의 후계자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적어도 그가 아는 각 영지의 가계도 내에서 저 어린 기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주 직계 가족 중 검을 업으로 삼은 이는 적지 않았으나, 그중 르로이보다 어린 나이에 최소 그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이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사의 정체에 관한 경우의 수는 수십, 수백 가지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노릇.

당연히 추론 불가능했다.

단, 정체 추론은 어렵다 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처음 밝혔던 대로 르로이 본인보다는 지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설령 어린 나이에 기사 작위를 달았다 해도 발터우스 자작가의 후계자보다는 낮은 것이 당연했다.

그 이하라면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고.

하여 르로이는 아량을 보이고자 했다.

비록 저 저들이 트롤 처치라는 그의 업적을 가로채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높은 자의 아량으로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동시에 공적을 치하해 줄 수도 있었다.

발터우스 영지의 후계자로서 이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저벅저벅.

그래서였다.

환호하는 병사들을 헤치고 트롤을 떨어뜨린 장본인들에게 다가간 것은.

“수고했다. 그대들의 공을 발터우스 자작가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나 르로이 발터우스가 치하한다.”

“…….”

고귀한 귀족의 칭찬에 얼어 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입을 다문 채 르로이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어린 기사였다.

불쾌함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

어디 감히 진정한 귀족인 그의 말을 대차게 씹는 것으로도 모자라 똑바로 눈을 맞춘단 말인가?

“크흠.”

그래도 공적을 생각해 한 번의 실수는 눈감아 주기로 했다.

고귀한 혈통으로서 그 정도 관대함은 보일 수 있었다.

“문양을 보아하니 라인하트 영지 소속인 듯한데, 이름이 무엇인가?”

“내 이름이라…….”

이윽고 어린 기사의 입이 열렸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대답의 뉘앙스가 르로이의 예상과는 다르달까?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달랐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180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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