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기(2)
오러는 소드 익스퍼트를 나타내는 객관적인 지표 혹은 상징이었다.
비록 내 관점에서는 깨달음의 과정에 따라오는 부산물에 불과하다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지향점이기도 했다.
오히려 후자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강력했다.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자와 오르지 못한 자 사이의 간격을 극대화하는 제1의 기제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오러였다.
위력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오러 자체를 절대화하거나 지향점으로 삼지 않는다 해서 그 위력마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강력한 힘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그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중이었다.
콰강! 카가각~!
에릭스가 오러를 뿜어내기 시작한 뒤로 대련의 양상은 완전히 역전됐다.
나는 계속해서 물러나고 에릭스는 짓쳐 드는 그림.
이것이 반복해서 그려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했던 힘의 격차가 에릭스의 오러 발현과 함께 절대적인 수준이 되고 말았다.
조금 전과 같은 정면 대결?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다.
그랬다가는 검이 순식간에 박살 나 버릴 터.
단순히 마나만 주입된 검으로는 오러가 실린 그것과 맞대응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상하구나. 말이 안 돼.”
이것이 에릭스가 그답지 않게 대결 중에 입을 연 이유이기도 했다.
“오러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나와 검격을 이어 갈 수 있다니, 대체 무슨……?”
원래라면 이렇게 대결이 계속될 수조차 없어야 했다.
검을 맞대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버티겠는가?
아무리 몸놀림이 빠르고 회피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내가 소드마스터 경지를 회복하기라도 한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난 극도로 불리할지언정 에릭스와의 대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것도 에릭스와 검을 부딪쳐 가며 말이다.
“무게중심을 활용한 겁니다. 무게중심을 흩트려 제 검에 가해지는 힘을 가능한 한 분산시키는 중이에요.”
“아직 익스퍼트에조차 오르지 못한 듯한데, 그러는 게 가능하다고?”
“이번에 폭주를 겪으면서 운 좋게 검을 보는 시야도 많이 넓어졌습니다. 물론 당장은 맞대응이 힘들어 불가피하게 쓰는 편법에 가깝지만요.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이 역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결과물이었다.
에릭스가 검에 마나만을 싣던 때처럼 그의 무게중심을 비트는 방법은 더 이상 활용할 수 없었다.
오러를 뚫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해서 차선책을 택했다.
오러를 머금은 검과 맞닿는 순간, 검이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인 그 찰나의 순간에 내 검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흩트려 버리는 것이다.
충격이 한 점이 아니라 검 전체로 분산되도록 말이다.
이런 깨달음에 기반한 편법을 통해 에릭스의 오러를 버티는 중이었다.
다만 오래 갈 수는 없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충격을 검 전체로 분산시킨다 한들 오러는 오러였다.
오러가 가하는 충격은 굉장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길어야 열 합 정도였다.
그 이상은 검이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 버릴 터.
“그렇다 해도…….”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에릭스에게는 상당한 충격인 듯했다.
얼굴에 연신 의문부호를 띄우는 에릭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괴현상일 테니까.
“아니다. 대련 중에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구나. 직접 검을 섞다 보면 뭔가 잡히는 게 있겠지. 다시 가마.”
물론 에릭스답게 혼란의 시간을 길게 가져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구해질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이럴수록 입을 닫고 검을 섞는 것이 훨씬 빠른 길임은 자명한 사실.
이에 아는 바를 곧장 실천에 옮기는 에릭스였다.
그리하여 잠시 중단됐던 검의 대화가 재개됐다.
콰강! 콰가각~!
중단 후 재개됐다 하여 양상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내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만 펼쳐질 뿐.
덕분에 현재 내가 지닌 실력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지금 증명되고 있다시피 익스퍼트 상급에게는 심히 역부족이었다.
중급에게도 쉽지 않았다.
단기전으로 끝낸다면 모르되, 승부가 길어진다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됐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하급에게는 할 만했다.
내가 오러를 발산하지 않는다 해도 편법을 활용해 충분히 승부를 가져올 수준은 되는 것이다.
이로써 나의 한계 파악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이 달성됐다.
남은 기간 어느 정도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계산 역시 끝마쳤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오늘 대련 그 자체에 집중할 차례였다.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 이 대련은 승패의 대가가 걸린 엄연한 승부였다.
심지어 내 제안으로 성사된 내기.
하면 이렇게 속절없이 밀리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오러의 강력함?
처음부터 예상하고 승부에 임했다.
따라서 오러의 위력은 변명거리가 될 수 없었다.
승리를 노리고 시작한 대결이었다.
그렇다면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지사.
고오오~
카강!
때마침 알맞은 여건도 조성되어 가는 참이었다.
에릭스가 오러의 농도를 낮춘 것이다.
하급에서 중급 사이쯤?
당연하게도 상급의 그것에 비해 위력 역시 대폭 경감된 상태였다.
에릭스는 이 대결을 길게 끌어가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그럴 만했다.
내가 선보인 검의 활용법은 결코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의 깨달음에 기반한 것이니만큼 에릭스가 지금 당장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떻게든 대결을 길게 끌고 가려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내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서.
이것이 내게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에릭스에게는 배려이자 탐구의 일환이겠으나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방심이었다.
에릭스는 내 한계를 지레짐작하고 벌써 본인의 승리를 확정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틈을 제대로 찔러 주는 것이 인지상정.
비겁하다?
이미 정의했다시피 이건 단순한 연습 대련이 아닌 엄연한 승부였다.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수단을 쓰는 것이 아닌 한 최선을 다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당연했다.
무엇보다 내 사람들의 미래가 걸린 승부이기도 했다.
다소 기회주의적인 측면이 있다 할지라도 일단은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카가강!
검격을 견디지 못하고 이번에도 뒤로 밀려난 참이었다.
에릭스가 다시금 짓쳐 들기 위해 살짝 무릎을 굽히는 찰나의 순간.
파앗!
지금까지 반복되던 장면과 다른 그림이 연출됐다.
내가 몸을 던진 것이다.
오러가 등장하기 전의 상황처럼, 내가 먼저 에릭스를 향해.
우우웅~
짓쳐 듦과 동시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당장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체내의 마나를 있는 대로 긁어모았다.
그리고 가공했다.
순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마나 역시 검을 뚫고 밖으로 뿜어져 나갈 수 있도록.
구우우웅~!
그랬다.
나 역시 오러를 발현한 것이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억지로 뽑아낸 것이기는 했다.
또 그런 만큼 일회용에 불과했으며,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완전히 탈진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쿠과가가각!!
“……!!!”
그러나 경위가 어찌 됐든 오러는 오러였다.
당연히 그 위력 또한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검을 맞댄 에릭스가 눈을 부릅 치켜뜰 정도로.
이것이 바로 내가 승리를 위해 숨겨 둔 비장의 한 수였다.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끝끝내 숨겨 두었던 오러를 에릭스가 방심한 최적의 타이밍에 최후의 노림수로 꺼내 든 것이다.
끼긱.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차피 에릭스 역시 오러를 뿜어내고 있던 상황.
여기서 끝이라면 에릭스를 일순 당황스럽게 만들지언정 승부의 향방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더 동원했다.
이번에도 무게중심이었다.
오러를 이용하여 에릭스의 무게중심 비틀기.
마나는 오러를 뚫지 못하지만 같은 오러라면 가능했다.
그렇게 에릭스의 검으로 스며든 나의 오러가 중심을 흔들었고,
사르륵~
챙강~!
기어코 에릭스의 손과 검을 분리시켜 놓고야 말았다.
에릭스로 하여금 검을 손에서 놓치도록 만든 것이다.
“이게…….”
“허억, 허억, 제 승리…… 승리입니다.”
나의 승리였다.
검의 무게조차 버거워 부르르 떨리는 팔, 고르지 못한 숨을 연신 헐떡거리며 뱉어 내는 불안정한 호흡까지.
사실 상태만 봐서는 내가 패배자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나의 승리.
검사가 검을 손에서 놓친 이상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에릭스의 깊은 침묵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약속 지켜…… 주세요.”
대가까지 빼놓지 않고 챙기는 완벽한 마무리.
그렇게 다시 한번 만끽했다.
나의 승리였다.
* * *
“네 말은 이번 겨울 바르코스 요새 파병에 너를 포함시켜 달라는 거지?”
끄덕끄덕.
이드리스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침상에서 일어난 지 이제 한 달도 안 지난 녀석이 겨울에 굶주린 몬스터들과 싸우러 가겠다? 그걸 네 형인 나한테 허락해 달라는 거고?”
“맞아, 형.”
그리고 이에 대한 이드리스의 반응은 심히 좋지 못했다.
“라이, 너 제정신이야? 네가 거길 어디라고 가겠다는 건데? 네 나이가 이제 고작 16살이야.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목숨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험악한 곳에 제 발로 가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듣는 척이라도 해 주지!”
예상한 반응이기도 했다.
나이 어린 동생이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가겠다는데 기함하지 않을 형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몬스터와의 전투 중에 돌아가신 전례까지 있는 곳이었다.
펄쩍 뛰는 것이 당연했다.
“말이 안 될 건 없지, 형.”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갈 작정이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당장 이번에 참가하기로 한 다이너만 해도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을 뿐이야.”
“다이너는 우리 영지 최연소 기사 작위 획득이 기대되는 검의 수재니까 그런 것이고. 너랑은 경우가 달라.”
“그런 이유라면 형이 내 바르코스행을 더더욱 반대해서는 안 돼. 내가 다이너보다 검술 실력 면에서 더 뛰어나거든.”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다이너한테 깨져서 사경을 헤맨 지 채 한 달도 안 됐어. 그런데 네가 다이너보다 더 뛰어나?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해, 이 녀석아.”
황당해하는 이드리스.
내가 쓰러졌던 이유를 영주성 식구 중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제3자의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 내려 하는 이드리스였다.
“경도 한마디 해 주세요. 이 녀석이 아무래도 몬스터 웨이브를 장난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자꾸 헛소리를 늘어놓네요.”
하지만 그의 선택은 옳지 못했다.
정확히는 제3자의 선택 자체가 잘못됐다.
“헛소리가 아닙니다, 영주님. 라이의 말이 맞습니다. 라이가 다이너 녀석보다 월등히 강합니다.”
“에릭스 경?”
하필이면 그 3자가 에릭스였던 것이다.
오늘 새벽 나와의 내기에서 패배한 바로 그 에릭스 말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라이도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습니다. 나이가 다소 어린 편이기는 하지만 라이의 실력이라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릭스의 보증이었다.
이드리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지대했다.
“또 이번 기회에 제가 책임지고 라이에게 기사의 길을 가르쳐 볼까 합니다. 그러니 영주님, 허락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에, 에릭스 경……?”
얼빠진 듯한 이드리스의 표정이 그 증거였다.
이쯤 되면 이드리스 설득 작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와의 약속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이행 중인 에릭스.
그런 에릭스를 보고 있자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올라왔다.
역시나 승리의 대가란 달콤하고 짜릿하기 그지없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