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내기
“중심이 흩트려졌잖아.”
퍽!
“크윽!”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오늘도 난 어김없이 다이너와 대련을 펼치는 중이었다.
사실 양상으로 볼 때 대련보다는 대련을 빙자한 훈육에 가까웠지만.
찰진 타격음과 내장부터 타고 올라온 듯 깊숙한 신음까지.
다이너를 향한 넘치는 애정이 사랑의 매로 한껏 표출되는 그런 정겨운 훈육 말이다.
“누누이 강조했잖아, 라인하트 검법의 핵심은 무게 중심에 있다고. 그런데 상대는커녕 스스로의 중심조차 통제 못 하고 자꾸 흔들리면 어쩌자는 거야?”
“시정하겠습니다.”
“다시.”
흔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키는 다이너.
대련을 시작한 지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었다.
다이너의 체력이 저질이라?
아니, 오히려 동년배 수련생들보다 월등한 체력을 보유한 다이너였다.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기초 체력 면에서 훌륭한 다이너를 고작 30분 만에 탈진 상태에 이르게 할 만큼 나는 녀석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이너의 실력향상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남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겨울까지라고 해 봐야 기껏해야 석 달 정도?
이동 등 기타 소요 시간까지 계산하면 오롯이 수련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두 달 정도에 불과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훈련의 강도를 대폭 강화하는 수밖에.
“흐읍!”
“그럼 다시 간…… 음?”
그렇게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붙들고 자세를 잡은 다이너.
그런 그에게 다시 짓쳐 들려는 찰나였다.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 내일 마저 하자.”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짓쳐 들려던 발을 멈춰 세우고, 들어 올렸던 검 역시 늘어뜨렸다.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잊었어, 오늘 누가 오기로 했는지? 네가 나한테 말해 준 거잖아.”
“아…….”
자정이 넘은 시간의 연무장에 새로운 손님이 당도했기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에릭스 경?”
“그래, 조금 늦었구나. 영주님과의 회의가 생각보다 더 길어져서 말이지.”
손님은 바로 에릭스.
다이너를 통해 오늘의 방문을 미리 알린 그였다.
이에 나 역시 그의 당도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아니요, 딱 알맞게 오셨습니다. 다이너도 슬슬 휴식이 필요하던 타이밍이었거든요.”
“그래 보이는구나. 꼴을 보아하니 오늘도 한껏 구른 모양인데?”
“아버지께서 조금만 더 늦게 오셨어도 한 번 정도는 더 구를 수 있었습니다.”
말은 더 할 수 있었다 하면서도 바닥에 그대로 철푸덕 주저앉는 다이너.
에릭스의 등장과 함께 간신히 버티던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려 버린 것이다.
이로써 오늘 다이너는 아웃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온전히 나와 에릭스 만의 장이 마련될 수 있었다.
“다이너 녀석에게 전해 들었다. 폭주를 겪은 뒤로 마나 컨트롤 능력이 향상됐다고?”
“예, 운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검의 전개도 한결 부드러워졌고요.”
“하면 지금 네 경지는? 파악은 끝난 것이냐?”
“한 가지만 빼면 어느 정도 마무리됐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다이너의 실력 향상에만 매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부차적인 목적이었다.
대련의 제1 목표는 어디까지나 나의 현재 실력 파악.
그래야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수준의 힘을 쓰는 것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의 테스트 결과 파악된 내 실력은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괴리’.
정신과 육체의 괴리가 현재 내 상태의 핵심이었다.
정신력과 검에 대한 이해도 자체는 당연히 소드마스터의 그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 왕국에 셋밖에 없는 소드마스터로 공인을 받은 나였다.
그리고 당시 경험과 기억을 모두 가진 채로 회귀한 이상 정신력이 그때보다 낮아질 가능성은 없었다.
회귀라는 매우 특수한 경험까지 축적되며 오히려 더 향상됐다면 모를까.
반면 육체는 영락없는 16살의 그것이었다.
아직 제대로 영글지 못한 상태랄까?
이 시기의 나는 소드 유저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체내에 축적된 마나량 역시 육체의 경지에 맞춰져 있음이 당연했다.
즉, 정신은 전속력으로 뛰다 못해 하늘에서 노닐고 있지만, 육체는 여전히 걸음마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커다랗다 못해 심각하다고 해도 좋을 괴리 현상은 나에게 두 가지 숙제를 안겨 주었다.
첫째는 이 격차를 좁히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숙제인지라 길게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기도 했다.
다만 이 숙제의 해결에는 적잖은 물리적 시간이 필요했기에 당장 해결은 불가능했다.
어떤 기연이라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두 번째 숙제의 해결에 집중할 때였다.
“한 가지?”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합니다. 아시다시피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것은 내 한계에 대한 명확한 설정.
검사에게 있어 본인의 한계를 아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것의 인지 여부에 따라 목숨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검사의 경지를 소드 비기너, 소드 유저, 소드 익스퍼트, 소드마스터 등으로 구분하고, 그 안에서도 상중하로 나누어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해 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에게는 이 기준에 따른 구분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나만의 한계 설정이 시급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실력자와의 대결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다.
마침 적합한 실력자가 우리 영지에, 그것도 지금 내 눈앞에 떡하니 존재했고 말이다.
“그 부분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너도 내심 기다렸던 모양이고.”
다이너가 놓아 둔 수련용 철검을 집어 드는 에릭스.
현재 내 문제에 있어 에릭스만큼 완벽한 해결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에릭스에게 적합하다는 표현은 부적절할지도 몰랐다.
오히려 과하다고 해야 할까?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자는 그런 존재였다.
아무리 소드마스터의 경험을 가졌다 한들 정신과 육체의 괴리 하에서는 감히 쉬이 넘볼 수 없는 그런 존재.
어찌 보면 에릭스라는 인물은 나뿐만 아니라 라인하트 영지에도 과분한 존재였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는 왕국 내 어디를 가든 최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확실한 징표였다.
슈라우드 왕국 전체를 뒤져 봐도 상급 이상의 실력자는 채 20명을 넘기지 못했다.
그마저도 상당수가 근위기사단이나 대귀족 휘하에 속해 있었기에 이런 지방 촌구석에서는 그 가치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 전대 영주인 할아버지로부터 라인하트 검법의 정수를 사사받았다는 점, 선대 영주인 아버지와 둘도 없이 절친한 관계였다는 점, 현 영주인 이드리스를 비롯하여 우리 형제들의 아버지나 다름없다는 점, 에릭스 개인이 신의를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성격이라는 점 등 얽히고설킨 관계의 고리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절대 붙잡아 둘 수 없는 그런 인물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런 뛰어난 실력자가 운 좋게도 나와 매우 가까운 관계였고, 이렇듯 검까지 쥐고 대련 의지를 활활 불태워 주고 있었다.
“그럼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등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집어삼키기만 하면 될 뿐.
“그런데 에릭스 경, 단순히 대련만 하는 건 아무래도 밋밋하지 않을까요?”
“음?”
“이 대련, 제게는 정말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절대 대충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 볼 작정입니다.”
단, 그냥 삼키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입맛에 딱 맞도록 약간의 조미료를 첨가하고자 했다.
“해서?”
“소정의 대가를 걸어 보는 건 어떨까요? 승리했을 때의 대가 같은 것 말입니다.”
다만 이 맞춤이 오로지 내 입맛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 가족, 내 사람들 모두의 입맛,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첨가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조미료라고 할 수 있었다.
“승리의 대가라…… 나에게 이겨 볼 생각이로구나.”
“주제넘을 수도 있지만, 한번 시도해 볼까 합니다.”
“흐음, 원하는 대가는?”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승리에의 내 의지를 에릭스는 호기로 여기는 듯했다.
그의 시선에 흥미가 깃드는 것이 보였다.
“에릭스 경께 작은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무리한 것은 결코 아니에요. 추후 무리하다 싶으면 거절하셔도 무방합니다.”
“그게 뭔지는 미리 밝히지 않겠다?”
“지나친 설레발은 독이 될 뿐이니까요. 혹여 에릭스 경도 제게 바라는 바가 있으시거든 이번 기회에 묵혀 두었다가 쓰셔도 좋고요.”
“딱히 없을 듯하다만, 좋다. 승부는 승부이니 최대한 공정해야겠지. 어디 한번 해 보자꾸나.”
결국 성사됐다.
내기가 걸린 나와 에릭스의 대결이.
이로써 내 계획을 성사시키는 데에 있어 커다란 장애물 하나를 넘은 셈이었다.
물론 그 뒤에 한층 더 거대한 산이 하나 놓여 있기는 했지만.
에릭스라는 태산 말이다.
“치기에 응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단순한 치기에 불과하다면 내 기분이 상당히 불쾌해질지도 모른다. 하니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지금부터 네가 증명하거라. 네 실력으로.”
자세를 잡으며 가볍게 경고를 던지는 에릭스.
하지만 그 안에 실린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한다면 에릭스는 진심으로 불쾌해할 터.
그는 절대 빈말을 내뱉지 않으며, 한번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는 사내였다.
물론 그렇다 하여 내가 겁을 집어먹을 리 또한 만무했다.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 있었고, 그 자신감을 마주 들어 올린 검에 듬뿍 실었다.
“오거라.”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부터는 검이 곧 입이고, 주고받는 검격이 바로 대화였다.
파앗!
카앙~!
나의 선공으로 시작된 대련은 첫 충돌부터 묵직했다.
시작부터 내 검은 물론이고 에릭스의 검에도 마나가 실려 있었다.
물론 에릭스 입장에서는 이것도 많이 접어 준 상태였다.
에릭스 정도 실력이라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오러를 뿜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단은 마나만을 싣는 선에서 그친 것이다.
하나 나로서는 이조차도 결코 가벼이 여기지 못했다.
무거웠다.
내가 수직으로 내리긋고 에릭스는 이를 수평으로 올려 쳐 막은 것임에도 오히려 내가 뒤로 밀려날 것 같았다.
그만큼 묵직했다.
확실히 중검(重劍)에 기반을 둔 라인하트 검법의 현 최고수다운 검격이랄까?
기본적인 힘, 마나량의 차이는 분명했다.
현재의 나로서는 단순한 검격으로 에릭스와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끼릭.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살짝,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살짝 검을 비틀었다.
까가각.
“……!!!”
결과는 놀라웠다.
그 약간의 움직임으로 인해 힘의 작용 양상이 역으로 뒤집힌 것이다.
내 검이 에릭스의 그것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이에 흠칫한 에릭스가 먼저 검을 떼고 물러날 정도로.
깨달음의 차이였다.
전체적인 수준을 놓고 보면 에릭스가 나보다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격차.
그러나 검법, 특히 라인하트 검법 자체에 대한 이해도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나는 명색이 검으로 일가를 이뤄 본 경험의 소유자였다.
당연히 이해의 정도는 에릭스보다 나의 그것이 월등히 깊었다.
다이너에게 강조했다시피 라인하트 검법의 핵심은 무게중심이었다.
당연히 소드마스터의 경계 역시 이 무게중심을 다루는 수준의 차이로 구분되었다.
소드 비기너를 시작으로 소드 유저를 거쳐 소드 익스퍼트까지는 스스로의 무게중심을 느끼고 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라인하트 검법의 마스터라면 자신의 무게중심을 완벽하게 다루는 것이 필수 조건.
나아가 이 완성을 기반으로 검을 맞댄 상대의 무게중심까지 느끼며 일정 부분 자신의 의지대로 비틀 수 있어야 했다.
즉, 무게중심을 다루는 범위의 차이가 경계의 기준인 것이다.
오러니, 오러블레이드니 하는 것들은 이 깨달음의 과정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고 말이다.
카앙, 카앙~!
이후의 격돌 양상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달려들고 에릭스가 물러나는 구도.
이어지는 몇 차례의 충돌에서도 이와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
자연히 에릭스의 눈빛에 실린 이채도 점점 더 짙어져 갔다.
한데 그 이채가 정점에 달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콰앙!!
맞받아치는 에릭스의 검에 실린 마나 농도가 급속도로 짙어졌다.
이에 짓쳐들어가던 나 역시 주춤하고 살짝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초적인 마나량 차이는 현재로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만약 내 마나량이 에릭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그의 중심을 흩트리기 위해 직접 검을 비틀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마나로 간섭하면 간단했을 테니까.
하지만 압도적인 격차로 인해 그것이 불가능했고, 궁여지책으로 물리적인 수를 동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압도적인 양의 차이로 밀어붙일 때는 일단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안하구나. 승부를 받아들이기는 했다만 내심 널 깔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우우웅~
마나의 농도가 짙어지는 수준을 넘어섰다.
짙어지다 못해 아예 검을 뚫고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죄의 의미에서 지금부터는 제대로 하마.”
오러였다.
에릭스가 오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