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4화 (5/200)

3장: 억울한 다이너(2)

스악~

퍽!

“쿠엑!”

“미안한데 나도 시간이 없어서. 정 못 하겠으면 그냥 그렇게 허수아비처럼 서 있어. 타격 연습이라도 하지 뭐.”

“공자님, 진짜 이러실…… 헙!”

스아악~

챙!

“잘만 하네. 그러니까 고집 그만 부리고 자세 잡아.”

역시 에릭스 밑에서 험하게 굴러서 그런지 기본기가 제대로 잡혀 있는 다이너였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라 해도 두 번이나 호락호락 당해 주지는 않았다.

그의 검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내 검의 경로를 정확하게 막아섰다.

“장난 그만 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저 진심으로 화낼 겁니다.”

“아직도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역시 대충해서는 안 되나 보네. 그럼.”

우우웅~

여전히 의지를 보이지 않는 다이너.

해서 보여 줬다, 현재 상황이 결코 장난이 아님을.

검명이 바로 그 증거였다.

검에 마나를 실은 것이다.

다이너의 눈에도 훤히 보이도록.

“공자님!!!”

이에 기함하는 다이너.

그런 다이너를 무시한 채 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터엉!

그러나 이번에도 막혔다.

마나가 담긴 검격이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도 검에 마나를 실어야 했다.

이 말인즉슨 다이너도 검에 마나를 실었다는 의미.

다이너는 소드 유저였다.

아직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기에 오러를 발산하지는 못하지만, 체내의 마나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물론 이 대목에 중요한 것은 다이너가 소드 유저니 뭐니 하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이너의 실력을 알고 날린 일격이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다이너가 검에 마나를 실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었다.

좋든 싫든 내 검에 제대로 대응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선 넘으셨어요. 저도 더는 못 봐드립니다.”

다이너가 드디어 자세를 제대로 잡았다.

아직 지망생이라고는 하나 그 또한 엄연한 한 명의 검사.

본인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에 무방비로 몸을 내줄 성격은 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세요. 잘못하다가는 또 크게 다치십니다.”

낮게 깔린 다이너의 경고.

나름 위압감을 갖추고 있는 경고이기도 했다.

확신이라 해도 좋을 자신감에 기반한 경고였기 때문이다.

다이너의 태도는 신중하긴 하나 자신만만했다.

나에게 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품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나를 마나 폭주에 빠지게 만들었던 직전 대결에서 승자는 다이너이기도 했고 말이다.

지금 다이너가 취하고 있는 자세도 그러했다.

반격은 가하지 않겠다는 듯 오로지 방어 일변도의 자세.

방어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다이너는 몰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무력적인 측면에서는 특히나 더 그러하다는 것 역시도.

“그럼 간다.”

뭐, 상관없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니까.

모르면 배우면 되는 것이다.

단, 처맞음이라는 굉장히 아픈 대가를 지불하고서.

슈아악~

그렇게 같지만 전혀 다른 검격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어린 양을 향해서.

* * *

“대체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다이너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입은 벙끗조차 못 한 채로.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다인가요? 뭐라고 변명이라도 좀 해 보라고요.”

그를 추궁하는 상대 때문이었다.

상대의 정체는 바로 에일린.

그렇지 않아도 에일린 앞에서는 쭈구리가 되는 다이너였다.

다이너에게 에일린은 쥐약과도 같은 상성이랄까?

한데 그런 에일린이 다이너를 무섭게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평소보다 한층 더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 말도 안 할 거예요? 그럼 전 그냥 제가 들은 대로, 생각한 대로 여기면 되는 거죠?”

“아, 아닙니다. 오해이십니다, 아가씨.”

다만 이 상황만큼은 다이너도 억울했다.

에일린이 듣고 생각한 내용이 어떨지는 대강 짐작이 되지만, 그건 지극히 단편적인 내용에 불과했다.

진실은 완전히 달랐다.

“뭐가 오해라는 거죠?”

“그게 전부, 전부 다…….”

확 찌푸려지는 에일린의 표정.

다이너는 또다시 식겁했다.

그리고 자책했다.

방금 대답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아니었다.

아니, 많이 아니었다.

어떤 부분이 오해라는 것인지 묻는 말에 전부 다라니?

이건 다이너가 생각하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동시에 깊은 자괴감마저 느껴졌다.

왜 이리도 에일린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쓰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 특히 아버지나 라이오넬 같은 사람들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성격임에도 말이다.

다이너로서도 답답하기 그지없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에일린 앞에만 서면 조건반사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까.

“후우, 좋아요. 제가 하나씩 짚어 드릴 테니까 어떤 부분이 오해라는 건지 얘기해 봐요. 이 정도는 할 수 있죠?”

“예,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에일린이 현명하고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봐 온 게 워낙 오래됐기 때문인지 에일린은 언제나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곤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녀는 다이너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을 내려 주었다.

“제가 오늘 성내에 도는 이상한 소문을 접했어요. 매일 밤마다 오빠와 다이너 경이 연무장에서 만남을 가진다는 소문이요. 사실인가요?”

“예,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연무장에서 검격음이 울려 퍼진다던데, 이거 지금 제가 생각하는 그 상황이 맞나요?”

“마, 맞을 겁니다, 아마도…….”

“맞을 거라고요? 오빠와 다이너 경이 대련을 벌이는 상황이? 오빠를 요절낼 뻔한 당사자가 몸도 성치 않은 오빠와 또다시 대련을 벌인다는 게?”

문제는 다이너가 대체로 그 빛을 거머쥐지 못한다는 것이었지만.

어째 이번에도 대체적인 그 경우에 속할 것으로 예상됐다.

안타깝게도 흐름이 그러했다.

“그럼 대체 어떤 부분이 오해라는 건가요? 다이너 경 입으로 모두 사실이고 맞다면서요? 그 말은 오해가 아니라는 뜻이잖아요.”

“아닙니다, 정말 오해이십니다. 정말로요.”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에일린에게 경우도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오해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풀어야 했다.

“일단 공자님께서는 멀쩡하십니다. 어디 결리는 곳 하나 없이 완전히 팔팔하신 상태입니다.”

“아~ 죽다 살아난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이 멀쩡하다?”

첫 번째 시도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사실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식이고 뭐고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진실이 그러하고 상황은 급박했으니까.

“거짓이 아닙니다. 실제로 밤마다 제가 공자님께 얻어터지…… 아니, 많이 배우고 있는 입장입니다. 공자님께서는 몸도 멀쩡하실 뿐만 아니라 실력도 일취월장하신 상태예요. 아가씨께서 오해하고 계시는 그런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너무나도 억울했다.

에일린 앞이라 차마 끝까지 내뱉지는 못하고 얼른 말을 돌렸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이너는 밤마다 얻어터지고 있었다.

쌩쌩해지다 못해 불가사의한 수준의 레벨 업을 한 라이오넬에게.

그냥 얻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연무장이 야외였다면, 그래서 하루쯤 비가 내렸다면,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속담이 입증될 수도 있을 만큼 아주 신명나게 얻어터지는 중이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라이오넬이 하필이면 갑옷으로 가려지는 부위들만 집중 공략하는 바람에 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이너의 속살은 울긋불긋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푸르댕댕하고 시꺼먼 피멍들 때문에.

그렇다고 에일린 앞에서 갑옷을 풀고 속살을 까발려 이 억울함을 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에일린이 믿어 줄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자존심상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건 너무 처연하고 쪽팔린 짓이었으니까.

“대체 그걸 변명이라고…….”

“변명이 아닙니다. 공자님께 한번 여쭤보시면 모든 오해가 풀리실 겁니다. 모든 진실을 아시게 될 거예요.”

그래도 다행히 아직 남은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라이오넬.

따지고 보면 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원흉은 라이오넬이었다.

아니, 따지고 볼 필요도 없었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명명백백했으니까.

이 명명백백함이 오로지 라이오넬과 다이너, 단 두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일 뿐.

어쨌든 라이오넬이라면 다이너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에게는 그럴 책임이 있었다.

“이미 다녀왔어요.”

“예?”

“이미 오빠에게 직접 가서 다 물어보고 왔다고요.”

“공자님께서 뭐라고……?”

“뭐라고 하긴 뭘 뭐라고 해요? 그냥 본인 몸은 멀쩡하다고만 하지. 주의하겠다고도 하고.”

“그게 다입니까?”

“그럼 더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다이너 경이 더 이해가 안 돼요. 환자들이 으레 자기 몸 괜찮다고 하는 건 우리 어머니 통해서 다이너 경도 익히 봐 왔잖아요. 해서 환자 가족들이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것도. 그런데도 알 만한 사람이 환자가 괜찮다고 하는 말만 믿고 넙죽 대련을 해요?”

하지만 그 방법이라는 건 썩은 동아줄이었다.

쥐자마자 툭 끊어져 버린, 삭을 대로 삭아 버린 그런 동아줄.

라이오넬은 자신의 책임을 외면했다.

진실에 대해 살짝 언급이야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오해를 풀기 위한 그 이상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주의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에일린의 잔소리를 회피하는 데 급급했을 뿐.

“실망이에요, 다이너 경. 그래도 경우를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이렇게 발뺌만 하실 줄은 몰랐네요.”

남겨진 오해는 다이너의 몫이었다.

오롯이 그 혼자 감당해야 할 그의 몫.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에릭스 경께 따질 거예요. 그렇게 알고 계세요.”

그렇게 한바탕 쏘아붙이고는 휑하니 떠나 버리는 에일린.

“아…….”

그런 에일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이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깊은 탄식을 쏟아 낼 뿐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함축된 깊고도 깊은 탄식을.

* * *

“에일린이 다녀갔다. 어쩌자고 아직 몸도 성치 않은 라이와 대련을 한 것이냐?”

잠시 뒤, 다이너는 에릭스의 부름으로 단장 집무실에 들어섰다.

부름의 이유야 빤했다.

에일린이 미리 진한 예고까지 해 주고 간 일이었으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특히 더 주의했어야지. 네가…… 음?”

철컥철컥.

절그렁.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무슨 일인지 예상까지 하고 온 상황임에도 다이너는 곧장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행동을 보였다.

갑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뭐 하는 거냐는 데도?”

“오해를 푸는 중입니다, 아버지.”

“오해를 풀어? 그런데 왜 옷까지 벗어 재끼는…….”

갑옷에 이어 상의까지 탈의를 마친 다이너.

덕분에 에릭스의 눈에도 훤히 비치게 됐다.

다이너의 울긋불긋한 몸이.

“피해자는 공자님이 아니라 접니다, 아버지.”

에릭스 앞에서도 쩔쩔맬 이유는 없었다.

그는 에일린이 아니었으니까.

또, 비록 엄한 아버지이기는 하나 막무가내라거나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기사로서의 원칙을 많이 중요시할 뿐.

그렇기에 굳이 빙빙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해서 시간 낭비 없이 곧바로 증거를 들이민 다이너였다.

“신명나게도 굴렀구나.”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아들의 몸을 두 눈으로 목도한 아버지.

그럼에도 에릭스의 반응은 담백하기 그지없었다.

아들이 얻어터진 일을 어디 옆집 똥개가 새끼라도 친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그였다.

“예,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터졌습니다.”

다이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도 이따위 상처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련에 매진했다는 증거이자 훈장이라면 모를까.

사실 아버지인 에릭스에게는 수련 중에 이보다 더 심하게 얻어터진 경우도 수두룩했다.

“라이에게 말이냐? 라이의 실력이 너를 일방적으로 두들길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안다만?”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깨어난 이후로 말도 안 되게 달라지셨어요.”

중요한 것은 라이오넬의 실력이었다.

다이너가 직접 경험한 바, 그리고 이 상처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라이오넬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실제로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폭주 덕분인지 마나에 대한 컨트롤 능력이 대폭 향상됐다고요.”

지난 일주일간의 대련에서 다이너는 말 그대로 손도 써 보지 못했다.

라이오넬의 일 검조차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한 것이다.

그와 검을 맞댔다 하면 일방적으로 굴러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그 결과 수련용 철검에 무던히도 얻어맞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분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뻤다.

심하게 나가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다이너의 실력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으니까.

라이오넬과의 대련은 아버지나 다른 기사들의 그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뭐랄까, 다이너에게 부족한 부분을 딱딱 집어 준다고 해야 할까?

왕도나 제국에서 성행한다는 수십 골드짜리 족집게 강의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되려 다이너가 라이오넬과의 대련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스스로의 성장이 눈에 보이는 시간이었으니까.

“라이가 익스퍼트에 오른 것이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실력으로는 경지가 가늠이 안 돼서요. 공자님께서도 본인의 경지에 대해 정리하시는 중이라고 하고요.”

“그렇단 말이지.”

“예, 그러니까 공자님 몸 상태일랑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보다도 더 팔팔하시니까.”

다이너의 확신에 에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가 순식간에 풀린 것이다.

확실히 검사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 보니 에일린의 경우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쉬웠다.

“알겠다. 매일 밤 자정이라고 했지, 너와 라이가 약속한 시간이?”

“예. 직접 보시려고요?”

“그래, 그래야겠다.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일은 아닌 듯싶으니.”

이로써 오해로 인한 작은 해프닝이 종결되었다.

라이오넬과 에릭스의 연무장 대면을 예고하는 방향으로.

“하면 아버지, 에일린 아가씨께 모든 게 오해였다고 설명 좀 부탁…….”

“크흠, 영주님과 이번 겨울 일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시간이 다 됐군. 그럼 이따 자정에 보자꾸나.”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에일린, 그런 에일린과 다이너 사이의 오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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