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새로운 감각
“공자님, 대체 어디를 가려고 하시는 건데요?”
“말했잖아, 나들이 간다고.”
“영주님이나 아가씨도 아니고 공자님이 나들이를요? 지금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고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다이너, 네가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여기서 나 내팽개쳐 두고 돌아가기라도 하게?”
“아니, 그러겠다는 건 아니지만…….”
내 뒤를 따르며 연신 궁시렁대는 다이너.
본인 수련시간에 찾아와 다짜고짜 성 밖으로 끌고 나온 나를 향한 궁시렁거림이었다.
다이너는 성격이 꽤나 분명한 녀석이었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하지만, 강자에게는 제 할 말을 필요한 만큼은 하는 강강약강의 타입이랄까?
“정말로 나들이 가시는 것뿐이라면 굳이 절 끌고 나오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은데…….”
하여 지금도 제 나름의 불만을 혼잣말로 궁시렁대며 표출 중이었다.
내 귀에도 또렷이 인지될 만큼 충분히 커다란 목소리의 혼잣말로 말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 꼭 혼자 나들이하고 싶었어. 내 몸이 ‘정상’이기만 했다면.”
움찔.
“그런데 브란부르크가의 어떤 기사지망생 놈팡이가 날 혼자 바깥바람도 못 쐬는 허약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지 뭐야? 그러니까 다이너, 관대한 네가 이해 좀 해 주면 안 될까?”
하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역으로 다이너의 양심에 날카로운 비수를 쿡쿡 찔러 댈 뿐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갑니다, 간다고요.”
“진작에 그럴 것이지.”
나를 지나쳐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녀석.
양심의 가책을 제대로 느낀 모양이었다.
이렇듯 다이너 다루기는 일도 아니었다.
녀석의 불만 잠재우기는 식은 수프 먹기보다 쉬웠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진짜 일에 착수할 때였다.
아무리 회귀와 함께 내 감정이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해졌다지만, 징그러운 근육 돼지 녀석과 진심으로 나들이를 즐길 만큼 감상적인 인간이 되지는 않았다.
오늘의 나들이에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했다.
이를 위해 고개를 좌우로 돌려 가며 영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영지 내의 사람들, 영지민들에 대한 관찰이 오늘 나들이의 목적이었다.
회귀 직후부터 느껴지는 어떤 이질적인 감각 때문이었다.
아니, 이질적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
감각 자체는 이미 내 일부가 된 것처럼 자연스러웠으니까.
단지 이것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소드마스터로서의 경지와 경험이 가져다주는 감각은 결코 아니었다.
그랬다면 회귀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어야 할 터.
이것은 일신의 무력과 별 연관이 없는 듯했다.
무력보다는 인간의 감정, 혹은 그보다 좀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해 준달까?
그러나 이 역시 막연한 추측에 가까웠다.
혼자만의 사색으로는 답을 찾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단 밖으로 나온 것이다.
“흐음.”
하지만 아직 뚜렷하게 느껴지는 건 없었다.
살짝 간질간질하기는 한데 뭐라도 답을 내놓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이로 인해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고 말이다.
그때였다.
쨍그랑!
“야 이 도둑놈의 새끼야! 저놈 잡아라!!”
골목에서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다.
소란의 원인은 명료했다.
웬 얍삽해 보이는 어른 하나가 어린아이를 쫓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스레 도주 중인 아이에게로 시선이 갔다.
‘소매치기인가?’
이제 10대 초반쯤 됐을까?
입고 있는 낡고 해진 옷이나 그리 좋지 않은 발육 상태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순탄한 성장기를 겪고 있는 아이 같지는 않았다.
소매치기나 좀도둑으로 보이기 딱 십상이었다.
“음?”
내 감상평 역시 이 정도에서 그쳤을 것이다.
그 아이가 나와 다이너가 서 있는 쪽으로 점점 가까워지지만 않았다면.
그리하여 그 아이가 내 이목을 잡아끌지 않았다면 말이다.
“왜 그러세요, 공자님?”
“다이너, 저 녀석 잡아.”
“제가요?”
“그럼, 누구 때문에 허약해진 내가 할까? 어차피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그러니까 잔말 말고 잡기나 해. 절대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에휴, 그렇죠. 제가 잡아야겠죠.”
투덜대면서도 지시에 따라 곧장 행동에 나서는 다이너.
그가 순간적으로 손을 뻗었다.
와락.
“어어?”
버둥버둥.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치던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채 그대로 들어 올렸다.
더는 도망칠 수 없게 된 아이가 당황한 채 버둥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말이다.
“놔요, 이거 놔 달라고요!”
적잖이 쫑알대기는 해도 확실한 다이너의 실력, 하필이면 우리 쪽으로 도주 경로를 잡은 아이의 불운이 적절히 혼합된 결과물이었다.
다만 결과 판단은 아직 이를지도 몰랐다.
이것이 아이에게 불운이 될지 행운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헥헥, 아이고 감사합니다, 기사님.”
이내 아이를 쫓던 어른도 도착했다.
그러고는 아이를 잡아챈 다이너에게 연신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이제 안심했다는 듯 환한 웃음도 함께.
그렇게 짧은 인사 뒤에는 곧바로 아이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거지 고아 도둑놈의 새끼야. 그렇게 싹수 노란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니 이렇게 천벌을 받는 거다, 알겠냐?”
“이거 놓으라니까요! 난 도둑놈 아니란 말이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남의 빵이랑 치즈를 훔치면 그게 도둑이지, 별게 도둑이냐?”
“거짓말하지 마요. 내가 언제 훔쳤다고? 난 훔친 적 없어.”
“얼씨구? 그럼 네놈이 꼭 끌어안고 있는 그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냐? 네가 내 빵집에서 들고 튄 거잖아. 이렇게 증거가 확실한데 어디서 발뺌을 해?”
어른, 정황상 빵집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의 말대로였다.
아이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 상황에서조차 제 품의 빵과 치즈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이건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태세로.
“일단 내려놔, 다이너.”
“예? 내려놓으면 이대로 도망칠 텐데요?”
“괜찮을 거야. 여기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멍청해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렇지, 꼬마야?”
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아이가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에 나 역시 아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끄덕끄덕.
잠시 후,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칠 생각 없다는 듯 버둥거리던 몸에서도 힘을 쭉 뺀 채였다.
그러자 다이너도 아이를 내려놓았고, 아이는 약속대로 도망칠 기색 없이 그대로 자리에 섰다.
드디어 제대로 된 대화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동시에 진상규명의 장이기도 했다.
“꼬맹이, 너 이름이?”
“매튜요, 매튜입니다.”
“그래, 매튜. 어떻게 된 건지 똑바로 얘기해 봐. 그 빵하고 치즈, 정말 네가 훔친 거 아니야?”
“아이고, 공자님. 저런 도둑놈 새끼 말을 들으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 고결한 공자님 귀만 더럽힐 뿐입니다.”
매튜가 내 질문에 대해 입을 열려던 찰나, 빵집 주인이 끼어들어서는 그것을 가로챘다.
“너는 이름이 뭐지?”
“예? 아, 저는 호나르두라고 합니다.”
해서 빵집 주인, 호나르두에게도 마찬가지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럼 호나르두.”
“예, 공자님.”
“방금 내가 너에게 질문을 던졌던가? 난 분명 매튜에게 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 저는 그게 아니라, 그저 공자님께서 허튼소리를 듣게 되시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단 그 의도는 180도 달랐다.
매튜에게 던진 질문은 답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면, 호나르두에게 던진 그것은 입을 다물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즉각적으로 먹혀들었다.
말끝을 흐리던 호나르두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이내 입을 다문 것이다.
그렇게 내 시선은 다시금 매튜를 향했고, 아이의 입으로 답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절대! 절대 훔친 거 아니에요. 제가 일한 일당만큼 가지고 나온 거예요.”
“일당? 네가 빵집에서 일했다는 건가?”
“네, 일주일 동안 일했고, 오늘이 주급 받는 날이었어요. 원래 받기로 한 주급은 일당 7쿠퍼씩 총 49쿠퍼였고요.”
“그런데?”
“근데 오늘 저한테 40쿠퍼만 주더니 꺼지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리 따져도 들은 척도 안 하길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나머지 9쿠퍼만큼 빵하고 치즈로 가지고 나왔고요. 그랬더니 저더러 도둑이라고…….”
이로써 대강의 사정은 파악됐다.
매튜의 주장대로라면 이 사건은 도둑질이 아니라 임금 체불 문제로 다뤄져야 했다.
물론 이 역시 아직은 매튜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봐야 했지만.
빵집 주인인 호나르두가 곧장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전 일당으로 7쿠퍼를 주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거짓말! 분명 나랑 약속했잖아!”
“내가 언제? 증거 있어?”
증거 있냐는 반문에 매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일꾼으로 고용되며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그 외의 증거를 남겨 두는 것은 확실히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아이는 그러고 싶다 해도 따라 줄 어른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차라리 고용을 안 해 버리고 말 테니까.
“그럼 얼마를 주기로 한 거지?”
이대로는 제대로 된 해결이 어려웠다.
일방적으로 호나르두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컸다.
이 사회의 관습이 그러했다.
“일당으로 6쿠퍼를 주기로 했습니다.”
“6쿠퍼?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셈이 이상하군. 주급으로는 42쿠퍼가 지급됐어야 한다. 나머지 2쿠퍼는 어디로 간 건가?”
“예, 그건 저놈이 일을 하도 엉망으로 해서 생긴 손해를 차감한 겁니다.”
호나르두는 진짜 억울한 건 본인이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호소를 이어 갔다.
“하아, 사실 저딴 놈한테 40쿠퍼나 준 것도 사정을 많이 봐준 겁니다. 저놈 때문에 손님이 줄어든 것만 생각하면 오히려 제가 돈을 받아도 모자랍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웃기지 마. 내가 호객행위 하는 일주일 동안 손님은 분명히 더 늘었어. 이건 주변 다른 가게 아저씨들한테도 확인받을 수 있는 거라고.”
“흥, 그건 내 빵이 맛있어서 그런 거지. 네가 그 더러운 꼴로 나대지만 않았어도 분명 더 늘었을 거다.”
“실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이 근방에서 제일 맛없는 빵집이라는 거, 온 영지민이 다 알아.”
“뭐야? 이 거지 고아 새끼가 불쌍해서 일 좀 시켜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뭐? 감히……!”
“그만. 그만하면 됐다. 이제 결론짓도록 하지.”
이미 결론은 났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빵집 주인인 호나르두가 나쁜 놈이라는 게.
물론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봤을 때는 매튜가 거짓을 일삼는 중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호나르두의 반복되는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튜는 고아로 추정됐으니까.
어쩌면 매튜가 영악한 짓거리를 벌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호나르두, 너는 지금 즉시 매튜에게 미지급된 임금 9쿠퍼를 지급하도록.”
하지만 나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매튜가 옳았다.
그래서 이 확신에 걸맞은 판단을 내렸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호나르두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음습한 기운이.
오늘 내가 나들이를 나왔던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바로 그것이.
상황이 이러하니 도저히 확신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됩니다! 저놈은 도둑인데 제가 왜 돈을 더 줘야 한단 말입니까?”
당연히 호나르두는 반박했다.
하지만 번복은 없었다.
“내가 그렇게 판단했으니까. 잔말 말고 당장 지급하도록.”
음습한 기운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번복할 수 있단 말인가?
답은 확고히 정해져 있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건 말이 안 돼요!”
“역으로 물어야겠군. 지금 네가 하는 짓거리, 이건 적법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연히 저 새끼를 처벌하는 게…….”
“귀족인 나, 라이오넬 라인하트의 판단이다. 라인하트 영지 주인의 친동생이 내린 판단. 그런 것에 감히 일개 평민 따위가 토를 단다? 이걸 법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할지가 더 명확하지 않나?”
“그건…….”
“그럼에도 아량을 베풀어 마지막 기회를 주마. 지금이라도 이 아이에게 9쿠퍼를 주고 조용히 물러날지, 아니면 이대로 질질 끌려 영주성으로 갈지는 네가 선택하도록.”
“…….”
부들부들.
너무나도 억울해 보이는 호나르두의 표정.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부르르 떨며 제 입술을 짓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눈 깜박할 사이에 도출됐다.
사실 선택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호나르두에게는 주어진 선택지 자체가 없었으니까.
감히 일개 평민 따위가 영주 친동생의 판결에 끝까지 반기를 든다?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다.
“……알겠습니다.”
결국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매튜에게 돈을 건네는 호나르두.
눈으로는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미친 듯이 퍼붓고 있으나, 차마 그것을 입 밖으로 뱉어 내지는 못하는 그였다.
지금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력한 뒷모습만을 남긴 채 매튜 앞에서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이 마무리됐다.
분명 큰일은 아니었다.
다만 원칙적으로 따지고 보면 결코 바람직한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한 영지민들에게 불안감을 심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매튜가 진짜 도둑이라면?
호나르두가 억울하게 당한 것임에도 나로 인해 입조차 벙끗 못한 거라면?
어떤 영지민은 이에 대해 불만과 불안감을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됐어. 별것도 아닌 일이야.”
그러나 눈곱만큼도 걱정하지 않았다.
영지 내에서 절대 권력자인 귀족이기 때문에?
물론 이 요인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는 호나르두에 대한 영지민들의 태도가 더 크게 작용했다.
방금 상황을 목격한 영지민 중 호나르두에게 동정·연민 따위의 긍정적 감정을 품고 있는 이는 전무했다.
호나르두를 향하는 그들의 감정은 부정적인 것 일색이었다.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일관되게 부정적 성격의 감정들이 내 감각에 포착됐다.
다들 평소 호나르두에게 곱지 않을 마음을 품고 있었고, 그것이 이번 해프닝을 통해 일거에 표출된 것으로 보였다.
“그보다 매튜.”
“예, 공자님.”
“나랑 같이 가자.”
“예? 그게 무슨……?”
하지만 영지민들의 부정적 감정 역시 이차적인 요인에 불과했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눈앞의 꼬맹이.
새로운 감각이 쉼 없이 내 본능을 자극 중이었다.
이 아이는 특별하다고.
어디가 어떻게 특별한지는 불분명하지만, 특별한 것만은 확실하다고.
그러니 붙잡으라고.
매튜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매튜 이외의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널 내 사람으로 거두고 싶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