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1화 (2/200)

1장: 회귀, 그리고 다짐

나를 감싸는 짙은 어둠과 함께 나는 끝을 맞이했다.

한마디로 죽은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이거 하나쯤은 예측 가능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살아생전 느끼던 감각들은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리라는 사실 말이다.

당연했다.

감각의 원천인 육신을 다루지 못하게 됐는데, 생전의 감각을 느낀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의 본질이라고 여겼다.

분명 그랬다.

간질간질.

‘으음?’

왼손등 부위에 웬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지기 전까지만 해도.

‘착각인가?’

만지작만지작.

착각이 아니었다.

감각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누군가 내 손등을 간지럽힌다기보다는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느낌이랄까?

덕분인지 왼손등을 시작으로 상실했다 여겼던 신체의 감각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왼손등에서 손목을 타고 팔뚝으로, 팔뚝에서 어깨를 타고 가슴과 목으로.

확장에 확장을 거듭했다.

이윽고 머리에 이르러 눈두덩이까지 자극했고

꿈벅꿈벅.

그 결과 아직 무겁고 불편하기 그지없으나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황에 다다랐다.

당연히 그에 따른 시야 확보도 가능해졌다.

덕분에 흐릿하긴 하지만 분명히 보게 됐다.

‘어어?’

불가능한 광경을.

죽음에 대한 상식대로라면 절대 믿지 못할 그런 광경.

흐릿한 시야가 대상을 잘못 포착한 것일까?

이런 의심부터 드는 광경이기도 했다.

확인해 보고자 억지로 눈을 깜빡여 보기만 수차례.

하지만 그럴수록, 시야가 또렷해지면 또렷해질수록 확실해졌다.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사실이.

그리고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 대상은 분명

“에일…… 에일린?”

내 여동생 에일린이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녀석의 모습보다 상당히 앳돼 보이기는 하나 어쨌든 내가 아는 그 에일린이 분명했다.

“오빠? 오빠, 정신이 들어?”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빼도 박도 못하게 확실해졌다.

외양만큼이나 어려지기는 했으나 청아한 목소리 또한 내가 아는 에일린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그래, 그런데……”

“괜찮은 거 맞는 거지?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그래, 에일린이잖아. 내 동생.”

“감사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해요.”

다만 정신이 좀 없었다.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도 모를 감사를 연신 표하는 에일린의 호들갑에.

“그런데……”

그 호들갑이 끝나 갈 때쯤, 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를 재차 이어 갔다.

“아, 내 정신 좀 봐. 다들 오빠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그마저도 가볍게 씹히고 말았지만.

에일린은 곧장 몸을 일으키더니 후다닥 뛰쳐나갔다.

이에 나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졌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몸 좀 추스른 뒤 현 상황에 대해 파악할 시간이 확보된 셈이니까.

사실 억지로 감각을 일깨운 것일 뿐, 아직 눈도 뻑뻑하고 목은 잠길 대로 잠겨 있었다.

일단은 감각의 정상화가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침체된 감각을 일깨우기 시작한 지 5분 정도 흘렀을까?

이제 좀 안정화됐다 싶을 때쯤이었다.

벌컥.

“라이, 너 괜찮은 거야? 형 얼굴 알아보겠어?”

“공자님, 저는요? 저도 알아보실 수 있죠? 그런 거죠?”

에일린이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나의 형이자 라인하트 영지의 영주인 이드리스부터 영지 기사단장이자 내 검술 스승이기도 한 에릭스 브란부르크 경, 에릭스 경의 아들이자 나와 동문수학 중인 다이너까지.

내 가족, 내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알아보지. 내가 어떻게 몰라보겠어?”

지극한 기쁨이란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일까?

모든 것의 끝에서 내 사람들을 보니 지금껏 느껴 보지 못했던 충만함과 안정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덕분에 계획했던 다음 행동을 이어 가는 데에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이들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고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충만했으니까.

“죽어서도 이렇게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이니까 힘이 나네. 요즘 저승은 이런 세심한 배려도 해 주나 봐? 아, 아니면 여기가 천국인가 하는 그곳인 건가?”

해서 깨어난 직후부터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을 건넸다.

나답지 않은 푸근한 미소도 패키지로 함께.

그만큼 내 마음은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

그런데 뭘까?

내 질문과 미소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이 어째 갑갑하고 무거운 침묵뿐인 이유는?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회귀했다.

내가 죽은 시점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인 16살로.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른다.

그저 죽기 직전 나를 감쌌던 짙은 어둠이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뿐.

하지만 뭐가 됐든 좋았다.

나에게 모든 것을 되돌리고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진 셈이니까.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작은 부작용도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모두에게 죽어서도 한자리에 모이니 좋다는 둥, 여기가 천국이냐는 둥 정신 나간 소리를 늘어놓은 것이 문제였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을 귀신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이것이 큰 문제로 번지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모두가 내 얼빠진 질문에 대해 대충 그러려니 하고 수긍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난 무리한 수련으로 마나가 폭주해 죽을 뻔하다 간신히 살아난 시점이었다.

열에 아홉은 죽거나 폐인이 된다는 마나 폭주로부터 무사히 살아 돌아왔는데, 이 정도 정신 착란쯤은 충분히 수긍 가능한 범위 내라는 것이다.

그 얼빠짐이 나의 상황 인식과 함께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기도 했고 말이다.

어찌 됐든 덕분에 난 쓸데없는 의심과 이에 대한 조잡한 변명은 피해 갈 수 있었다.

나름 골치 아프고 복잡해질 수 있는 상황을 부드럽게 넘겼다고나 할까?

그러나 한 가지, 이 부드러운 회피의 과정을 거친 뒤에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가족들의 염려와 걱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상해. 아무리 봐도 이상해졌어.”

본인이 내민 숟가락을 덥석 받아 물고는 우물거리는 나를 보며 에일린이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뭔가 석연치 않다는 눈초리 역시 숨기지 않았다.

“이상해? 뭐가?”

“지금도 봐. 오빠가 내 혼잣말에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잖아. 그 전에 내가 내미는 숟가락을 덥석 받아 물기까지 하고.”

“그게 왜? 나 먹으라고 내민 거 아니었어?”

“내민다고 받아먹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빠가?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 쪽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개연성과 합리성을 두둑이 갖춘 그런 염려였다.

에일린이 느끼기에 깨어난 뒤의 난 180도 달라졌을 테니까.

내가 에일린이 내민 숟가락을 덥석 무는 행동?

에일린의 기준으로 깨어나기 전, 내 기준으로는 회귀 전의 나에게서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에일린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그랬다.

그만큼 회귀 전의 난 무뚝뚝했다.

아니, 무뚝뚝한 것을 넘어 무심하고 매정했다.

어떤 한 가지에 완전히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란 바로 검.

내 모든 관심은 오로지 검에 쏠려있었다.

검만이 내 세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 이외의 모든 것들은 철저히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설령 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관심은커녕 되려 귀찮게 여겼다.

그래서 있는 대로 쳐 냈다.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 염려 따위는 내게 귀찮은 짐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렇듯 매정하기 짝이 없던 내가 에일린이 내미는 숟가락을 덥석 받아 무는 것으로도 모자라 에일린을 애정 듬뿍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에일린의 어색한 반응과 의심의 눈초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싫어? 그냥 전처럼 냉정하게 대해 줘?”

“아니, 뭘 또 그렇게 극단적으로 받아들여?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래서 싫냐는 내 물음에 급히 손사래 치는 에일린.

그런 녀석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귀여웠다.

도저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어어……?”

이에 휘둥그레지는 에일린의 두 눈은 덤이었다.

도대체 회귀 전의 나는 이 귀엽고 소중한 아이를 어째서 눈에 담지 못했던 것일까?

아버지를 닮아 평범 이상으로 쳐 주기 어려운 형이나 나와 달리, 어머니를 빼다 박아 착하고 귀여우며 예쁘장하기까지 한 이 아이를.

몬스터 토벌 중 돌아가신 아버지, 지병으로 작고하신 어머니를 대신해 가족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영지 안살림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착하고 똑부러지는 아이였다.

이제 겨우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말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난 이런 에일린을 철저히 외면했다.

진짜 소중한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멍청하고 미련하며 바보천치 같은 짓거리였다.

그렇기에 이 회귀가 나에게는 천운이었다.

인생을 잘못 살았던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 안에서 진짜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됐으니까.

하여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전생에는 오직 나를 위해 살았다.

그 결과 무엇하나 지켜 내지 못했다.

심지어 그리 끔찍이 여기던 나 자신조차도.

그러니 이번 생은 내가 아닌 내 가족, 내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이다.

이들을 지키는 데에 내 모든 것을 걸 작정이었다.

“이상해. 진짜 이상해.”

제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에 어색한 듯 흠칫하면서도 끝내 피하지 않는 에일린.

그런 녀석의 부드러운 머릿결과 수줍은 반응이 기꺼워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나 스스로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내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회귀 직전 감쌌던 어둠이 성격을 바꿔 놓기라도 한 것인가?

에일린에게 애정을 표하는 데에 그 어떤 거리낌도 느끼지 못하는 나였다.

똑똑똑.

그렇게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 관계의 기쁨을 만끽하던 도중, 새로운 방문객이 나를 찾아왔다.

“공자님, 다이너입니다.”

“들어와.”

다이너였다.

다이너 역시 나의 바운더리 안에 확고히 자리하고 있는 내 사람.

해서 지체 않고 안으로 불러들였다.

“저기 그, 공자님, 몸 상태는 좀 어떠신지……?”

한데 내 앞에 선 녀석의 태도가 영 부실했다.

우물쭈물하며 차마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피식.

그 모습에 나는 또 절로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이너 녀석에게도 이렇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근육 돼지 기사지망생 녀석이 귀여울 리 있겠는가?

오히려 징그럽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내 눈도 똑바로 못 보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살짝 귀엽게 느껴졌다.

녀석이 저러는 이유를 알고 있기에 더 그러했다.

내가 현재 침대에 환자 꼴로 누워 있는 데에는 다이너의 지분이 상당했다.

녀석과 대련 중 마나 폭주 상태에 빠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원인은 내가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무리한 것에 있다지만, 과정이 어떠하든 녀석이 일조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 점에 대해 나는 눈곱만큼도 앙심을 품지 않았다.

사고 이후 나의 마나 컨트롤 능력이 대폭 향상됐고, 훗날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데 밑바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다만 이 자리에 있는 다른 한 명은 그렇지 못한 듯했다.

“지금 다이너 경이 오빠한테 괜찮냐고 물은 건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이너 경이?”

“아가씨, 그게 아니라 저는 그저…….”

“양심이 있기는 한 건가요? 오빠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이 대체 누군데요?”

에일린의 쌀쌀맞은 추궁, 이에 속절없이 쩔쩔매기만 하는 다이너.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나서서 중재해야 할 만한 광경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다이너는 에일린에게 항상 쩔쩔매 왔으니까.

터질 듯 우람한 근육에 어울리지 않게 본인보다 연약한 존재들 앞에서는 영 힘을 못 쓰는 다이너였다.

대표적으로 동물, 여자 등이 다이너에게 그런 존재였다.

특히나 그 존재가 에일린이라면 더더욱.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로서는 나만 아는 미래에서 역시 쭉 그러할 예정이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음? 잠깐만.’

그렇게 흐뭇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불현듯 이번에도 나만 아는 어떤 미래 하나가 떠올랐다.

‘귀여워? 고마워?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흐뭇하던 기분을 단숨에 내동댕이쳐 버리고도 남은 그런 미래가.

다이너가 귀엽다?

아니, 절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비치는 녀석의 모습은 형용할 수 없이 징그러웠다.

그리고 고맙다?

고맙기는커녕 천하의 후레자식으로 보였다.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없었으니까.

‘근육만 가득 찬 녀석이 어딜 감히! 안 되지, 안 되고말고!’

마음속에서 다이너에 대한 앞으로의 내 태도 역시 빠르게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회귀 전처럼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매정하게 굴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대한 관심을 줄 것이다.

아주 지대하다 못해 지독한, 에일린을 비롯하여 여타 내 사람들에게 향하는 그것과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그런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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