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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자작가 차남의 회귀-0화 (1/200)

프롤로그

슈라우드 왕국 북부에 위치한 라인하트 영지.

그저 그런 자작령 중 하나에 불과했다.

굳이 특징을 찾자면 영지의 주인인 이드리스 라인하트 자작이 평판 좋은 영주라는 점, 영지가 농사보다는 광산업을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점 정도?

그러나 영지 자체로는 이게 다였다.

영주의 평판이 왕국 전체에 떨치는 것도, 그렇다고 광석 채굴량이 막대한 수준인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손에 쥐고 있으면 나쁠 건 없지만 굳이 사활을 걸고 노릴 만큼 탐스러운 영지는 아니라는 것이 라인하트 영지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였다.

차라리 영지보다 영지 이외의 것이 훨씬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영주의 동생인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왕국에 셋밖에 없는 소드마스터 중 하나라는 점이 바로 그것.

이 사실은 확실히 주목할 만했다.

그다지 눈여겨볼 이유가 없는 영지를 그래도 한 번씩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그렇다 하여 영지 자체의 절대적인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러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라이오넬 백작, 어쩌자고 여길 온 겁니까?”

“그럼, 가족들이 다 죽어 가는 마당에 오지 않을 사람이 있나?”

그런데 모든 것이 뒤집혔다.

그것이 나, 라이오넬 라인하트가 열 일 제쳐 두고 헐레벌떡 라인하트 영지로 달려온 이유였다.

“아무리 제국이라지만 왕국 내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건…….”

“우리가 이러는 걸 크리스토퍼 국왕이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럴 리가요. 그랬다면 하필 이 타이밍에 백작에게 변방 시찰 따위의 하찮은 임무가 떨어졌을 리 만무하지요.”

“…….”

로만 제국 황제의 심복인 카일 이반 백작.

그가 뱉어 내는 냉혹한 현실에 대해 나는 그 어떠한 반박도 가하지 못했다.

나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게 아니고야 남의 나라 남의 영지에 들어와 끔찍한 학살을 벌이고 있음에도 저리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있을 리 없을 터.

단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입 밖으로 꺼낸 부질없는 소망이었을 뿐이다.

“백작이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당신이 주군으로 모시는 국왕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는.”

역시나 입도 벙끗할 수 없었다.

이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정령석은 일개 영지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특히나 이번 정령석처럼 특별한 물건이라면 더더욱.”

정령석.

현재 내 등 뒤에서 사이한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이 귀물이 문제였다.

두 달 전, 평범하디평범한 영지에서 광산 채굴 도중 전략물자로 취급되는 이것이 발견됐다.

최대한 쉬쉬하려 했지만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영지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더구나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종류의 정령석이 나온 것이니만큼 그 온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발견 두 달 만에 이렇게 제국이 직접 손을 쓰게 만들 정도로.

“설령 그렇다 해도 이건, 이건 너무 …….”

“맞습니다. 치졸하지요, 일국의 국왕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래도 이렇게는 아니었다.

차라리 슈라우드 왕가가 정령석을 차지하려는 의도였다면 최소한의 이해라도 시도해 볼 여지가 있었다.

일국의 국왕으로서 비열한 수를 써서라도 국력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절박함으로 봐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크리스토퍼 국왕은 자신의 자리 연명에만 급급했다.

하여 처음부터 정령석을 취할 마음도 없었다.

이것을 제국에 내줌으로써 황제의 발가락을 핥을 의도뿐이었다.

애초에 황제의 지원 덕에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라는 점과 평상시의 치졸함을 고려하면 분명 그러할 터였다.

“그러게 평소 성격대로 하지 그랬습니까? 검에 미쳐 가족은 신경도 안 쓰고 결혼도 안 한 사람이 이번에는 어찌 그리 정이 넘친 것인지 원.”

카일 이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짐짓 안타깝다는 기색으로 말을 이어 갔다.

“맘 편히 임무 수행 중이었으면 이런 치졸한 짓거리도, 지금과 같은 비참한 꼴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요.”

그의 가장된 안타까움과 말마따나 현재 내 몰골은 비참했다.

입고 있는 갑옷은 이것이 갑옷인지 넝마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런 갑옷 사이로 비치는 맨몸에는 검상이 그득했다.

온몸을 덮고 있는, 결코 얕지 않은 수많은 검상들.

내 몸은 한마디로 만신창이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도 한 가지 존재했다.

수십 차례 검에 찔리고 베인 흔적이 그득함에도 피는 거의 흘리지 않고 있다는 것.

상처들이 마치 인두로 지지기라도 한 것처럼 빨갛게 익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직한 백작에게 호감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더는 지켜보기가 힘들군요. 차라리 빨리 끝내 주는 게 도리이겠지요.”

이것이 카일 이반의 작품은 아니었다.

그는 파지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문관이었다.

나를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었다.

카일 이반이 슬쩍 한발 물러나며 정면으로 드러난 인물.

“백작의 실력은 소문 이상이었소. 검술만으로는 제국 내에서도 백작을 당해 낼 실력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오. 내가 보증하지.”

그의 정체는 누힌 사리 백작.

로만 제국의 소드마스터이자 현재 나를 무릎 꿇린 장본인이었다.

“정말 아쉽구려, 시간만 허락했다면 정령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검의 경지를 나눠 봤을 것인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순수한 소드마스터인 나와 달리 불의 정령석을 섭취한 소드마스터였다.

그의 말마따나 순수한 검의 겨룸이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상대가 뿜어내는 화염을 끝내 감당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꼴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이 정령석을 국가 차원의 전략물자로 취급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만약 제국에서 태어나 황제 폐하를 주군으로 모셨다면 이런저런 제약 없이 마음껏 웅지를 펼쳤겠지요.”

난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여기서 내가 더 발악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천천히 들어 올려지고 있는 누힌 사리의 검을 저항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백작도, 그리고 셀레스티나 3황비도.”

카일의 첨언만 없었다면 말이다.

“!!!”

셀레스티나 3황비.

황비 이전의 신분은 비아트릭스 셀레스티나 슈라우드 1왕녀.

그녀의 이름이 여기서 나와서는 안 됐다.

“무슨 뜻이지?”

“백작에게 오늘의 습격을 누설한 이가 3황비 아닙니까?”

“무슨…….”

“애써 부정하려 들 필요 없어요. 3황비의 명석함은 제국 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으니까. 정략혼으로 팔려 온 입장임에도 양국의 비밀거래 정황을 포착하고, 백작에게 전달하기까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나도 모르게 동요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드러나서는 안 되는 왕녀마저 드러났기 때문이다.

뛰어남에도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어 제국에 팔려 가게 된 비운의 인물, 셀레스티나 왕녀.

나에게 라인하트 영지 습격 사실을 사전에 알려 준 이도 바로 왕녀였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3황비가 아무리 용 쓴다 한들 제국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겁니다. 그 출중한 능력이 제대로 된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쩔 작정이지?”

“능력이야 아깝지만 어쩌겠습니까? 반역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했으니 그에 맞는 처벌이 이루어질 겁니다.”

눈이 질끈 감겼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검 말고는 가족이고 뭐고 아무것도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아온 나였다.

그리고 그런 매정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 30여 년 전의 짧은 인연을 잊지 않고 도움을 준 왕녀였다.

그런 그녀까지 다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나 빌어먹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반전시킬 힘이 없었다.

“자, 이제 정말 마무리 지어야겠군요. 사힌 백작님 말씀대로 시간이 없으니까요.”

카일의 시선이 나를 넘어 내 뒤편으로 향했다.

제국의 목적은 처음부터 내 뒤에 있는 정령석이었다.

하니 이제 상황을 마무리 짓고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

실패는 눈곱만큼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눈빛이었다.

“그래, 인정하지. 내가 졌고, 모든 게 다 끝났다.”

그런 카일의 눈빛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든 비틀어 버리고 싶을 만큼.

그래서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말과 행동이 정반대군요. 쓸데없는 발악일 뿐입니다. 차라리 편히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시금 검을 움켜쥐는 내 모습에 카일이 조소를 흘렸다.

확실히 이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누힌 사리만으로도 내게는 벅찬 상태였다.

한데 설상가상, 이 자리에는 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힌 사리와 카일 말고도 제국의 익스퍼트급 실력자들과 마법사까지 함께였다.

나의 죽음은 무슨 수를 써도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었다.

우우웅~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힘을 끌어 올렸다.

단순히 오러블레이드만 피워 올리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내부의 마나까지 폭주시켰다.

이에 방향성을 상실한 마나가 내 몸속을 온통 할퀴고 찢으며 있는 대로 휘젓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120%의 확률로 폐인이 될 수밖에 없는 필사의 수.

하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죽은 몸이었다.

폐부를 찌르는 고통 따위 가볍게 무시한 채 폭주를 가속화할 뿐이었다.

내 검 위에 피어오른 오러블레이드 역시 폭발할 듯 불안정하게 끓어 올랐다.

이에 여유만만하던 누힌 사리 역시 경시하지 못하고 눈빛을 달리할 정도였다.

“자폭이라도 하려는 모양이군. 다들 주의하도록.”

하지만 그뿐이었다.

경시하지 않는다뿐이지 걱정하는 기색은 어디에도 비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만만한 태도로 마주하여 오러블레이드를 피워 올리는 그였다.

나를 무릎 꿇게 만든 화염이 가미된 바로 그 오러블레이드를.

“내 모든 것을 담은 마지막 일격이다. 어디 한번 받아 보도록.”

“얼마든지. 검사라면 응당 그래야지. 환영하는 바요.”

당연히 나 또한 알고 있었다.

내 생명을 불태우는 일격조차도 누힌 사리에게 향한다면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파앗!

그래서 비틀었다.

내 마지막 일격이 향하는 방향을.

“헛! 정령석!!”

바로 내 등 뒤,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인 정령석을 향해서.

“막아!!!”

제국 측도 곧장 내 의도를 알아챘다.

하여 누힌 사리의 오러블레이드가 곧바로 나에게로 뿌려졌다.

대기 중이던 다른 이들 역시 민첩하게 행동에 나섰다.

각자의 검과 마법을 지체 없이 날려 왔다.

슈아악~

콰직!

하나같이 무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냈을 뿐이지만.

“안 돼!!!”

누힌 사리의 오러블레이드를 비롯하여 각종 검과 마법들이 내 몸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 최후의 일격은 저들과 달리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냈으니까.

내 검격은 누힌 사리가 아닌 정령석으로 향했다.

만의 하나까지 대비하여 반으로 가르지 않고 아예 가루를 내 버리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결과는 내 의도대로였다.

정령석은 완전히 박살 났고, 이에 대해 제국 측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내내 미소 짓고 있던 카일이 악귀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장면은 아주 볼만했다.

비극으로 점철된 내 저승길에 유일한 위안이 되어 주는 느낌이랄까?

이런 끝이라면 어쩌면 쥐꼬리만큼은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화아악~

‘음?’

한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박살 난 정령석으로부터 형용 불가의 짙은 어둠이 폭사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뭐,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다만 그게 무엇이든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내 육신은 이미 고깃덩어리나 다름없었으니까.

그저 무겁게 감겨 오는 눈꺼풀에 저항하지 않고 이끄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폭사된 어둠이 넝마가 된 나를 휘감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나는 예정된 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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