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 미들급 선수 천재승. 키 186cm, 몸무게 80kg. 공식 경기 40전 35승 4패 1무, 미들급 그랑프리 우승과 챔피언, 미들급 챔피언 타이틀과 방어 3회의 타이틀. 일명 ‘미친개’. 그런데 그 천재승이 져줘야 하는 비공식 스파링에 왔다. 회당 파이트머니로 억 단위를 받을 국내 정상급 선수가 어째서? 원영은 재승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 남자… 알면 알수록 호구 같다. 친척에게 버는 돈을 상납하고, 체육관 관장은 재승을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재승에게 눈길이 가는데…. *** “근데, 돈 관리를 관장이 해주나 봐요?” “관장님이 세금이나 그런 거 잘 아니까. …내가 숫자에는 좀 약해서.” 원영은 재승의 대답에 의문을 느끼며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세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멀쩡히 돈을 받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 인간이 아무리 멍청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원영은 뒤늦게 자신이 재승을 너무 띄엄띄엄 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용달 안 하고 어디서 삼백을 벌겠어. 부수입도 많고……. 관장님한테 잘해야지.” 재승은 중얼거리듯 마지막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조용하고 좁은 방에 마주 앉아 있는지라 그 말은 원영의 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 게다가 그 이후 이어지는 질문이 아주 가관이었다. “넌 대표도 하고 선수도 하니까 매달 천만 원도 넘게 버나?” 재승이 출전한 파이트머니를 월급으로 나누면, ‘적게 쳐도’ 월에 천만 원은 훌쩍 넘었다. 아무리 악덕 회사라고 치더라도 선수에게 그 정도는 쥐여주었을 터다. 애가 저렇게 천만 원에 집착하는데, 천만 원 정도는 그냥 주지 않고. 재승의 관장은 개새끼였다. 그것도 아주 악랄하고 악독한 개새끼. 재승이 방금 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능력 있는 호구를 문 운 좋은 관장의 성공 스토리였다. *** 재승을 보기 위해 보름하고도 하루를 더 기다린 원영이었다. 어제는 관장을 대동하지 않은 그를 놓친 게 너무 분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지만, 막상 오늘 재승을 보고 있자니 하루 가지고 뭘 그렇게 안달복달했나 싶기도 했다. 어차피 이렇게 만나게 될 운명인데. 그렇게 자기가 왜 행복한지도 모르고 헛생각을 하던 원영은 어느 순간 박수를 멈춘 채 멍하니 굳어 버렸다. 무대 위의 재승이 옷을 벗기 시작한 탓이다. 꿀꺽, 원영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재승은 양손을 교차해 입고 있던 반소매 셔츠를 훌러덩 벗고, 고무줄 바지를 늘여 아무렇게나 아래로 내렸다. 그러다 한쪽 바짓단이 발에 걸려 안 벗겨지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바지를 잡아당기고는 일어났다. 재승의 발은 당연히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맨발이었다. 그 언젠가는 습관처럼 신발을 신지 않는 그의 모습에 원시 부족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으나, 지금 원영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요정? 원영은 재승과 닮은 요사스럽고 아름답고 예쁜데 신발을 신지 않는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떠올린 것 중에서는 역시 천재승이 최고라는 생각도 했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떠올린 것은 예쁘기만 한데 천재승은 섹시하기도 해서. “177.8파운드!” 사회자가 재승의 몸무게를 소리쳤다. 체중계 위의 재승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로 전에 원영이 취했었던 자세를 취해 보였다. 햇볕에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 위로 하얀 조명이 비쳤다. 빛을 받고 반짝거리는 피부는 꼭 코팅을 입힌 밀크초콜릿 같았다. 꿀꺽, 원영이 저도 모르게 다시 목울대를 움직였다. 원영의 양 볼이 유독 발그레하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