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틱 왈츠 (외전)
달혜나
1. Hold
최초의 기억에는 언제나 흙냄새가 있었다.
빌어먹게 눈부신 하늘과 젖은 흙냄새, 그리고 너무 추워서 이가 딱딱 부딪치도록 떨리던 몸.
* * *
땀이 맺힌 이마에 옅은 갈색 머리가 들러붙었다. 험난한 산을 오르는 수습 사제는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는 신학자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수도원 생활을 하다가, 일손이 부족한 교당에 파견을 가는 길에 조난을 당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라 길이 닦이지 않은 산을 달리던 마차가 결국 기슭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마부를 고용할 돈조차 지원받지 못해서 그가 직접 마차를 몬 게 비극의 원인이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도통 어디인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밤을 맞았고, 말은 진즉 도망가 버린 지 오래였다.
그리고 사흘째, 아무리 헤매도 매번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
촤악, 젖은 흙에 미끄러진 그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이미 몇 번이나 진창에 발목이 잡힌 그의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엉망이었다.
흙바닥에 엎어진 몸을 일으킨 사제가 더러워진 코트를 털었다. 산이 워낙 험준하여 홀로 길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생존이 불확실한 상황이 되니 신께 기도드리던 입술은 굳게 다물렸고, 옆구리에 늘 보옥처럼 끼고 다니던 성서는 땔감이 되었다.
…이러다간 정말 산중에서 객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절망적인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저 멀리 빼곡한 나무 사이에 반짝이는 물비늘을 발견하고는 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허겁지겁 달려갔다.
호수다. 마른 목도 축이고, 땀도 좀 식히고 가면 좋을 것이다.
몇 번이고 또 미끄러질 뻔한 몸을 추스르며 호수로 겨우 다가가던 그의 걸음이 딱 멎었다.
거울처럼 하늘을 그대로 비추는 호숫가에, 누군가가 나신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런 곳에 웬 사람이……. 사제는 눈을 의심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무의식중에 목에 걸린 십자가를 손으로 꽉 쥐었다.
“이, 이 보오. …거기서 뭐 하시오?”
햇살 내려앉은 유백색 등이 고요했다. 그 살결이 너무도 고와서 얼핏 여인인가 싶었으나 큰 키와 특유의 골격 탓에 사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튀어나온 날갯죽지 가운데로 깔끔하게 떨어진 척추가 느리게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몸을 돌린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 사제가 순간 걸음을 멈췄다.
붉은 눈이 이지러졌다.
* * *
“아니, 그러니까, 이런 깊은 산중에 그런 몹쓸 놈들이 있단 말이오?”
나뭇가지로 불을 쑤시던 사제가 성서의 책장을 찢어 불 위에 던지며 말했다. 화르륵, 종이를 살라 먹은 모닥불에서 순간적으로 불티가 치솟았다.
“그래서 돈도 뺏기고 그걸로도 모자라 옷도 다 뺏겼다고?”
허, 참…, 사제는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몸 위에 그가 벗어 준 낡은 코트 한 장만 걸친 남자는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제는 이상하리만치 혼자서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오?”
“…….”
“나도 지금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뭔가 큰 도움은 못 드리오만, 일단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 이 산을 벗어나면…….”
남자가 느리게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응시했다. 한참을 혼자 떠들던 사제가 말을 멈췄다.
독특한 눈 색이 아까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이마를 살짝 가리고 있는 검은 머리칼 아래로, 수려한 얼굴이 모닥불에 반들반들 빛났다.
그가 한참이나 저를 빤히 보고 있으니 젊은 사제는 어쩐지 얼굴이 화끈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불을 너무 많이 지폈나…, 왜 이렇게 몸이 뜨겁지.
내내 닫혀 있던 남자의 입술이 열렸다.
“……그대.”
낮게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사제가 그와 시선을 맞췄다.
“이름이 뭐지?”
“내 이름 말이오?”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안 했군.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사제가 얼른 대답했다.
“섀넌. 섀넌 그리말디요.”
“아아….”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섀넌 그리말디….”
고개를 끄덕인 섀넌이 웃으며 물었다.
“그쪽 이름은 무엇이오?”
붉은 눈이 이지러졌다.
“…섀넌, 그리말디.”
섀넌이 웃으며 답했다.
* * *
카일이 낙담한 얼굴로 손안의 성냥갑을 돌돌 굴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제기랄, 난 뚱뚱한 늙은이였는데.”
“난 어떤 중년 부인.”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보탰다.
“난 내 이름 너어무 싫어. 촌스럽고 흔하잖아. 개나 소나 다 엘리자베스라니까.”
네 명의 불멸자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 중 실제 차를 마시는 이는 단 두 명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그저 다 식은 차를 앞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최초로 이름을 부여한 인간들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주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심산의 자연에서 처음부터 성인의 몸으로 깨어나는 그들은, 처음 마주친 인간을 잡아먹고 그 이름을 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며 그저 그들 스스로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행하는 일이었다.
“좀 젊고 멋들어진 사람이면 얼마나 좋아. 남자 이름을 가졌어도 엘리자베스보단 나았을 거야.”
문득 엘리자베스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턱을 괴고 윈터를 쳐다봤다.
섀넌이 앉아 있는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친 채, 그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윈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면 강아지는 불쌍하기도 하지. 센스 없는 후견인이 참 귀여운 이름을 지어 줬잖아.”
귀엽다는 게 말 그대로 귀엽다는 뜻인 건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건지 모호했다.
윈터가 의아한 얼굴로 웃었다.
“…제 이름이 귀여워요?”
“그러엄. 좀 멋있는 이름으로 지어 주지 그랬어.”
엘리자베스가 구두 끝으로 섀넌의 발을 툭 찼다. 천천히 차를 한 모금 삼킨 섀넌이 찻잔을 내려놨다.
윈터가 웃으며 섀넌을 바라봤다.
“전 제 이름 좋은데.”
“…….”
“섀넌이 지어 준 거라.”
달각, 달각, 카일이 성냥갑을 한 손으로 가볍게 던졌다 받으며 중얼거렸다.
“어련하시겠어.”
엘리자베스의 시선이 섀넌에게 향했다. 그는 주변에서 저를 두고 무슨 말을 하든 아까부터 목석처럼 가만히 앉아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우리 섀넌은 아까부터 왜 이렇게 말이 없을까.”
일자로 다물려 있던 입이 떨어졌다.
“……쓸데없는 얘기에 괜히 끼고 싶지 않아서.”
그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아래로 내려간 시야에 제 허벅지를 덮은 커다란 손이 보였다. 그 손끝이 허벅지 안쪽을 은근히 파고들어, 민감한 곳을 스쳤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시선을 들어 올린 섀넌이 여전히 턱을 괸 채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 엘리자베스와 눈을 마주했다.
“…슬슬 피곤해지려고 하는데. 언제까지 죽치고 앉아서 떠들 생각이야.”
“아아, 조금만 더 있다가.”
카일이 을씨년스러운 정원을 둘러보며 길게 몸을 늘어뜨렸다. 성냥갑을 달각거리던 그가 이미 몇 번이고 했던 질문을 재차 던졌다.
“섀넌, 정말 같이 안 갈 거야?”
“…한동안은,”
잠시 말을 멈춘 섀넌이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여기에 계속 머물 생각이야.”
“얼마나? 몇 달? 몇 년?”
그의 허벅지 안쪽을 느리게 훑은 손이 다시 떨어졌다.
“……글쎄.”
섀넌이 힐끗 윈터를 바라봤다.
“…꽤 오래.”
엘리자베스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머물고 있던 북부 별장이 금세 싫증 난 그들은 곧 동부의 대도시로 이주할 예정이었다.
처음엔 섀넌을 설득하다 잘되지 않으니 윈터를, 그리고 그마저도 넘어가지 않으니 작별 인사나 한다는 명목으로 한나절째 테이블에 눌러앉아 있었던 것이다.
“강아지야, 그러지 말고 적당히 있다가 우리한테 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도 몇 달 지나면 재미없다? 우리 섀넌이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 이런 시골구석에 단둘이 계에에속 있다간 바람나기 쉬,”
섀넌이 엘리자베스의 발을 툭 찼다.
“닥쳐.”
엘리자베스가 눈을 흘겼다.
“무슨 농담도 못 하게 해.”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얼른 꺼져. 벌써 몇 시간째야.”
“제발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갈 거거든? 매정한,”
카일의 손 위에서 돌던 성냥갑이 잔디 위로 툭 떨어졌다. 아까부터 달각거리는 소리가 내내 거슬렸던지라, 엘리자베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제 옆에 있는 카일을 돌아봤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정신 사납게 굴어.”
그녀가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였다. 성냥갑을 주워든 엘리자베스의 시선이 문득 맞은편에 앉은 섀넌의 다리로 향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섀넌의 허벅지 위에 윈터의 손이 얌전히 올라가 있었다. 섀넌의 손끝이 윈터의 손을 슬쩍 밀어냈다. 윈터가 그 손에 자연스레 제 손을 얽었다.
“…….”
묘한 얼굴로 느리게 몸을 세운 엘리자베스가 섀넌과 윈터를 번갈아 바라봤다. 태연한 얼굴로 찻잔을 입에 대고 있는 섀넌을 향해 카일은 계속 군소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이런 구식 저택에 뭐 재미있는 게 있다고 처박혀 있어? 예전에 백 년 가까이 이런 데서 살아 놓고 지겹지도 않아? 어차피 윈터도,”
“카일, 그만 가자.”
엘리자베스가 카일의 말을 잘랐다. 그녀가 방금 주워든 성냥갑을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다. 카일이 얼굴을 찌푸렸다.
“벌써?”
“벌써는 무슨 벌써야. 해가 지고 있잖아.”
엘리자베스가 그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그녀가 하는 쓸데없는 말 중 드물게 마음에 드는 말이라, 섀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쫓아내기 전에 먼저 말해 줘서 다행이야.”
“악.”
제 덜미를 거칠게 움켜 일으키는 엘리자베스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짧게 비명을 내뱉은 카일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더 죽치고 앉아 있었으면 섀넌을 설득해 같이 도시로 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내 앉아 있느라 구겨진 바짓단을 툭툭 털어 정리한 카일이 못마땅한 얼굴로 섀넌을 마주했다.
“뭐, 알아서 잘 살겠지만 그래도 안부 정도는, 아악.”
“했던 말을 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엘리자베스가 그의 귀를 잡아 제 쪽으로 확 당겼다. 카일의 목에 팔을 건 그녀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섀넌은 안 보낼 게 분명하니까, 강아지 너라도 편지 자주 해야 한다?”
“네.”
섀넌의 어깨를 감싼 윈터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엘리자베스가 거의 짐짝처럼 카일을 끌고 미련 없이 저택을 떠났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이 저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왔다 간 손님이었다.
윈터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섀넌을 꼭 안았다.
“……쟤넨 말이 너무 많아.”
섀넌이 못마땅한 얼굴로 그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래도 섀넌에겐 좋은 사람들이잖아요.”
윈터의 대꾸에 섀넌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구겨진 미간에 살포시 입을 맞춘 윈터가 웃었다.
“당신을 무조건 지지해 주니까.”
그의 말에 섀넌이 코웃음 쳤다.
“세상에 무조건이 어디 있어. 상호 간에 오가는 게 있어야 관계가 유지되는 거지.”
윈터는 모르겠지만, 까마득한 과거에는 자신 역시 카일이나 엘리자베스의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준 적이 많았다.
그들과 자신 사이의 유대감은, 단지 긴 세월 쌍방 간에 오고 간 무언가가 숱하게 쌓여 이루어진 것들일 뿐이다.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저를 위해 시라트로 달려오고, 다른 뱀파이어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해 주었을까.
물론 그 일은 단순한 도움이라기엔 너무도 큰일이라, 섀넌은 그만큼 그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었다.
섀넌이 문득 제 이마 위로 떨어지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윈터가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에 짧게 입을 맞춘 섀넌이 왜, 하고 물었다.
“내가 섀넌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나한테 질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고개를 기울여 섀넌의 입술을 가볍게 빨아들인 윈터가 작게 물었다.
섀넌이 짧게 웃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가 윈터의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헤집다가 꽉 움켰다.
“넌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돼.”
뜨거운 체온을 품은 입술이 지그시 눌렸다. 찬 바람에 식은 섀넌의 입술이 미지근하게 녹아들었다.
“…그걸로 이미 다 했어.”
땅거미 진 잔디 위로 냉랭한 바람이 불었다. 윈터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놓은 섀넌이 낮게 속삭였다.
“추워.”
찬 손이 윈터의 귓바퀴를 훑고 귓불을 만지작거리다 목덜미를 감쌌다.
“따뜻한 욕조에서 안기고 싶어.”
섀넌의 몸이 번쩍 위로 들렸다. 그를 안아 든 윈터가 미지근한 입술을 덥석 깨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탁, 닫히는 문 사이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 * *
덜컹, 덜컹, 거센 북풍이 창을 뒤흔들었다. 두꺼운 커튼이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약하게 흔들렸다.
얼마 전 엘리자베스와 카일이 들렀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춥지는 않았는데, 날씨가 점점 궂어지더니 혹한이 몰려왔다.
섀넌은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위에 떨며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 있었다.
……러셀이 예전 고택의 외형을 구현해 내는 데 신경 쓰느라 미처 세세한 내구성엔 신경 쓰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강풍이 부는 날이면 외풍이 심하게 들이쳤다. 바람이 두드리는 대로 덜컹덜컹 흔들리는 창은 말할 것도 없고, 벽난로의 불이 금세 사그라들 정도로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외풍이 불어왔다.
윈터가 장작을 한 아름 안고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날씨에도 헐벗은 채 바지 한 장만 겨우 걸친 그를 섀넌은 조용히 눈으로 좇았다.
이 저택에 들어온 이래로 윈터가 옷을 제대로 챙겨 입은 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가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벽난로에 장작을 몇 개 던져 놓고는, 바람에 흔들려 걸쇠가 풀린 창을 꽉 닫고선 섀넌에게 다가갔다.
“많이 추워요?”
섀넌의 등 뒤로 따뜻한 체온이 감겼다. 섀넌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그의 품에 깊이 안겼다. 추위에 덜덜 떨리는 몸을 꽉 끌어안아 준 윈터가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섀넌이 춥다고 자꾸 안기니까.”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외풍만으로도 금세 차게 식은 그의 뺨을 제 체온으로 덥혀 주며, 윈터가 가볍게 웃었다. 이런 날이면 섀넌은 제게서 단 한 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에겐 미안하지만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수 공사를 해야겠어.”
따뜻한 가슴팍에 뺨을 비비며 눈을 감은 섀넌이 못마땅하게 중얼거렸다. 저택이 이 모양이니 날씨가 궂은 날엔 침대에서 윈터와 뒹구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좀 따뜻한 곳으로 갈까요?”
섀넌이 말없이 눈을 떴다. 지난 며칠간 윈터가 했던 말 중 가장 합리적이고 마음에 드는 제안이었다.
섹스할까요? 여기 빨아 줄까요? 그럼 좀 더워지지 않겠어요? 지난 며칠간 그의 제안에 휘말려 얼마나 많은 섹스를 했던가.
침대 위에서 끌어안고 있다가 은근슬쩍 시작된 애무에 넘어가 밤새 박히고, 뜨거운 욕조 안에서 마사지를 받다가 또 박히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앉아 꾸벅 졸고 있다가 온기에 달궈진 맨틀피스를 붙잡고 그에게 박혀야 했던 나날들…….
물론 그 순간에는 자신도 좋아서 즐긴 건 맞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어쩐지 약이 오른다. 다음 만월까지 체력을 아껴 두어야 하는데 매일 그의 꾐에 넘어가 속절없이 흔들리니 참으로 낭패가 아닌가.
“인부들이 내부 공사를 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 가 있어야겠어. …따뜻한 곳으로.”
“그래요.”
윈터가 섀넌의 이마와 뺨, 목덜미에 쪽, 쪽, 입을 맞췄다. 어깨를 스친 입술이 쇄골 근처에 닿고, 자연스레 섀넌의 위에 올라탄 윈터가 그의 가운을 벌렸다.
뜨거운 손이 농밀하게 훑고 지나간 가슴팍 위로 축축한 입술이 닿았다.
“…….”
이미 간밤에도 실컷 빨리고 깨물린 유두는 금세 연분홍빛으로 가라앉았지만, 그 감각만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는 명백한 성감대가 되어 버린 젖꼭지가 윈터의 입술 안에 뭉개지는 감촉에 섀넌이 허리를 뒤틀었다.
“…윈터.”
경고하듯 낮게 그를 불러 보았으나, 그의 입에선 대답 대신 살갗을 빨아들이는 질척한 소리만이 들렸다.
“…매번 이런 식으로 추위를 피하는 건…, 읏……, 좋지 않은 방법이야.”
제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손을 잡아 침대에 내리누른 윈터가 작게 말했다.
“끝까지는 안 할게요.”
“안 믿어.”
“이번엔 진짜.”
쪼는 듯한 입맞춤을 퍼부은 윈터가 눈을 접어 웃었다. 그에게 양 손목을 붙잡혀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섀넌이 어이없다는 듯 헛숨을 내뱉었다.
“또 하면 짐승이야.”
“섀넌 나 못 믿어요?”
살짝 세우고 있던 상체를 내린 윈터가 고개를 기울였다. 못 믿는다고 대답하려던 입이 그의 입술에 막혀 버린 섀넌은 제 몸을 뒤덮은 뜨거운 체온에 그저 눈을 감았다.
아랫배를 상냥하게 쓸어내린 손이 섀넌의 성기를 쥐었다. 뜨거운 손에 감긴 성기가 금세 단단하게 기립했다. 윈터의 입술 안으로 섀넌의 한숨 섞인 신음이 빨려 들어갔다.
추위 대신 자리 잡은 열기가 아랫배에 몽글몽글하게 뭉쳤다. 제 다리 사이로 내려가는 윈터의 머리칼을 헤집던 섀넌이 두꺼운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렸다.
불룩하게 솟아오른 이불이 꾸물꾸물 움직였다. 섀넌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탄식을 터뜨렸다.
“…아.”
한 손을 머리 위로 뻗어 침대 헤드를 짚은 섀넌이 아랫입술을 얕게 깨문 채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윈터는 자신이 느끼는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능숙하면서도 집요하게 제 쾌락을 끌어올렸다.
말캉한 혀의 미세한 융기가 예민한 귀두 끝을 문지르고 매끄러운 입술 안쪽의 점막이 기둥을 위아래로 훑었다.
“하아, …윈터, 읏…….”
이따금 스치는 뾰족한 치아에 섀넌은 몸을 움찔거리며 신음했다. 침대 헤드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아, …갈 것 같, 흐읏…….”
절정에 치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섀넌은 일부러 제 것을 더 쥐어짜듯 조이는 윈터의 입안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몇 차례에 걸친 사정이 끝나고, 그가 쏟아 낸 것을 꿀꺽 삼키느라 움찔거리는 목구멍에 자극을 받은 섀넌이 몸서리쳤다.
불룩하게 솟아 있던 이불이 크게 꿈틀거렸다. 정전기 때문에 부스스하게 뻗친 은백색 머리가 이불 밖으로 쏙 나왔다.
“…이제 안 춥죠?”
숨을 몰아쉬던 섀넌이 그의 머리칼을 쓸어 주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러면 결과적으로는 더 추워지는 거 몰라?”
“섀넌 몸 지금 엄청 뜨거워요.”
턱 끝과 뺨에 윈터의 입술이 닿았다.
“…안에 들어가고 싶을 만큼.”
“…….”
사정 직후의 나른함을 음미하며 입맞춤을 받고 있던 섀넌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그를 노려봤다. 짐승은 그저 말없이 눈을 휘며 웃기만 했다.
저택을 휩쓰는 혹한은 그 뒤로도 나흘이나 더 머물렀다.
* * *
날씨가 궂었던 서북부 하늘에 모처럼 구름이 걷혔다. 얼마 전 불던 강풍에 비하면 제법 너그러운 훈풍이 불어오고, 햇살도 따스했다.
창가에 선 채 이제 막 끓어오른 물을 찻잔에 따르던 섀넌이 정원의 어느 한 곳을 바라봤다. 쪼로록, 티 포트 끝에서 쏟아지던 물이 멈췄다.
“…….”
볕이 잘 드는 잔디 한복판에서 양쪽 앞발을 쭉 내밀며 기지개를 켜는 늑대의 눈이 나른하게 감겼다.
양쪽 귀가 뒤로 접히고, 우아한 은백색 능선을 이루며 위로 솟은 등 위로 풍성한 꼬리가 둥글게 말렸다가 다시 살랑 내려갔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윈터는 해가 나는 날에 저렇게 볕을 쬐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햇살 아래에 몸을 말리고 나면, 윈터에게서 보송보송한 햇볕 냄새가 났고 섀넌은 그 냄새가 무척 좋았다.
꽤 오랫동안 몸을 쭉 뻗은 채 볕을 쬐던 윈터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열렸다. 섀넌과 시선이 마주친 그의 귀가 쫑긋 섰다. 섀넌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기다려.”
섀넌이 그를 향해 짧게 말했다. 조금 전 기지개를 켤 땐 가장 높게 올라가 있던 엉덩이가 금세 바닥에 닿았다. 가지런히 앞발을 모으고 앉은 윈터를 보고 또 한 번 웃음을 흘린 섀넌이 읽고 있던 책과 차 트레이를 챙겨 아래로 내려갔다.
일부러 시간을 끌며 천천히 내려온 섀넌이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윈터를 향해 다가갔다. 그가 오자 몸을 일으킨 윈터가 그 주변을 느리게 맴돌며 섀넌의 다리에 제 몸을 스쳤다.
섀넌이 몸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잔디 위에 깔고 그 위에 풀썩 앉았다.
“이리 와.”
트레이를 내려놓은 그가 제 뒤쪽을 손으로 탁탁 쳤다. 모서리가 접혀 제대로 펼쳐지지 않은 담요 끝자락을 입으로 물어 대충 펼친 윈터가 그 위로 올라와 길게 드러누웠다.
섀넌이 그의 몸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그에게 맞춰 몸을 둥글게 만 윈터의 고개가 섀넌 쪽으로 향했다. 뜨거운 체온을 품은 몸이 섀넌의 등을 포근하게 감쌌다.
살랑, 살랑, 단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꼬리가 느리고 유연하게 움직였다. 섀넌은 제 팔을 툭툭 건드리다 쓸고 지나가는 회색 꼬리를 손으로 가볍게 잡아 쓸어내렸다.
두꺼운 러그가 깔린 데이베드에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데이베드는 숨을 쉬지 않고, 이렇게 꼬리를 치지 않으며, 무엇보다 체온이 없으니까.
섀넌은 흡족한 기분으로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펼쳤다. 볕 쬐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섀넌이 잔디 한복판에 앉아 책 읽는 걸 즐기게 된 건 순전히 윈터 때문이었다.
무릎을 세워 책을 기대어 둔 섀넌이 윈터의 정수리와 귀를 만지작거렸다. 정수리에 손이 닿으면 자연스레 윈터의 눈이 감긴다. 섀넌은 늑대의 속눈썹도 이렇게 예쁠 수 있다는 걸 윈터를 통해 처음 알았다.
뾰족한 귀는 섀넌의 손이 닿으면 처음엔 파닥파닥 곤두서다가 이내 그의 손 아래로 얌전히 접힌다. 제가 젖히면 젖히는 대로, 눕히면 눕히는 대로 귀를 맡긴 채 눈을 감고 있는 순종적인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고루한 활자들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숨 쉬는 윈터를 지켜보는 게 일분일초 흥미진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주 어릴 때 더 많이 지켜볼 것을 그랬다. 그땐 지금과는 달리 제 손바닥만큼 작아서, 더 보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다시 활자에 집중하려던 섀넌은 이내 책을 탁 덮고 윈터에게 완전히 몸을 기댄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눈꺼풀 위로 들러붙는 햇살이 퍽 좋았다.
숨을 쉬는 늑대의 몸이 고르게 오르내리며 섀넌의 고개도 같이 오르내렸다. 그 규칙적인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섀넌은 단잠에 빠졌다.
‘따뜻해.’
푹신한 털 담요에 몸을 잔뜩 욱여넣던 섀넌이 귓바퀴로 훅 끼치는 숨결에 눈을 떴다. 커다란 앞발이 섀넌의 어깨를 덮고 있었다.
어느새 해는 뉘엿하게 기울었다. 섀넌은 그제야 자신이 윈터에게 안겨 황량한 정원 한복판에서 깊이 잠들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털이 풍성한 가슴팍에 얼굴을 푹 파묻자 윈터가 살짝 고개를 내려 그의 뺨을 핥았다.
말캉한 혀끝이 뺨과 귀를 핥는 감촉에 눈살을 찌푸린 섀넌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힐끗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강한 바람이 잔디 위를 휩쓸었다.
맨 살갗이 뜨겁게 감겨 오자 섀넌이 헛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요.”
윈터가 팔 안으로 그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정원 한복판에 나신인 남자랑 끌어안고 누워 있으려니 그림이 퍽 이상하겠다 싶어서.”
“저는 아까부터 계속 벗고 있었는데요.”
몸을 돌려 섀넌의 위에 올라탄 윈터가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고 대답하려던 섀넌은 그저 그를 마주 안았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일 없는 곳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그저 그가 늑대라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윈터는 하늘이 훤히 뚫린 야외에서도 나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았다.
제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는 동안 윈터가 얼마나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지금의 그는 과거 케인타운에 함께 살 때보다 훨씬 자유로웠고 섀넌은 그게 보기 좋았다.
윈터를 선으로 비유하자면 직선이라기보다는 곡선이었고, 일정한 패턴도 규칙도 없이 무질서하게 휘도는 궤도였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오롯이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니 섀넌은 최근 그에 관해 몰랐던 사실들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었다.
“밖에 누가 오나 봐요.”
섀넌의 입술을 가볍게 빨아들이던 윈터가 낮게 속삭였다. 견고한 철문 근처로 마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주문해 두었던 것들이 이제야 도착하는 모양이지.”
며칠 전에 윈터와 시내에 나가 주문해 두었던 생필품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찻잎과 술, 담뱃잎, 새 매트리스를 채울 솜 외에도 여러 물건을 주문한 터라, 섀넌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를 따라 일어선 윈터가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벗어 둔 옷을 찾아오는 동안 섀넌이 잔디에 깔아 두었던 담요를 걷어 냈다.
* * *
인부들이 싣고 온 것들을 저택 안으로 옮긴 두 사람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러셀이 없으니 저택의 잡다한 관리는 물론이고 이런 물품을 정리하는 일 또한 두 사람의 몫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윈터가 다 하지만, 섀넌이라고 해서 한가한 건 아니었다.
“섀넌, 이것도 당신이 주문한 거 맞아요? 처음 보는 술이에요.”
“지난 축제 때 마셨던 무화과주. 향이 꽤 마음에 들었거든.”
술병을 선반 위에 내려놓은 윈터가 이번엔 상자 안에서 작은 놋쇠 잔을 들어 보였다.
“그건 그 술 전용 잔.”
윈터가 위쪽 진열장을 열어 술병과 잔을 차례로 정리했다. 섀넌이 한쪽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그가 하는 걸 지켜봤다.
술병은 라벨이 보이는 방향으로 나란히 두어야 하는데…….
저 잔은 왜 술과 같은 진열장에 두는 걸까.
그가 정리정돈에 재주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저걸 그대로 두기엔 제 눈에 너무도 거슬렸다.
“섀넌, …이게 뭐예요?”
윈터가 삐뚤빼뚤하게 세워 놓은 술병을 말없이 다시 돌려세우며 정리하던 섀넌이 무심결에 그를 바라봤다. 손에 검은 가죽 구속구를 든 윈터가 다른 한 손에 철제 입마개를 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음.”
술병을 마저 정리하고, 그 옆에 놓인 술잔을 다른 진열장에 옮겨 놓은 섀넌이 그의 손에서 가죽 구속구를 가져갔다. 구속구에서 이어진 가느다란 사슬이 잘그락 소리를 내며 섀넌의 손 아래로 늘어졌다.
“이건 여기에 둘 물건이 아니야.”
윈터가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입마개마저 빼앗아간 그가 나직이 말했다.
“…침실 물건이지.”
윈터가 여전히 영문 모르는 얼굴로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침실요?”
“그래.”
역시나 선반에 삐뚤빼뚤하게 놓인 찻잎 케이스를 각 맞춰 일렬로 정리한 섀넌이 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이제 침대 바꾸러 가자.”
* * *
부서진 침대가 분해되고, 그 자리에 새 마호가니 침대가 들어섰다.
네 개의 모서리에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이 세워진 침대는 커튼을 드리워 사용하는 것으로, 평소 섀넌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툭하면 프레임을 주저앉게 만드는 윈터 때문에 주문한 것이었다.
기둥을 비롯해 천장까지 짜인 틀이 있어 아무래도 일반 침대보다는 더 견고하기 때문이다.
단단한 목제 플랫폼 위에 면 솜을 가득 채운 매트리스를 올린 윈터가 깨끗한 시트를 촥 펼쳤다. 무릎 위에 올려 둔 구속구와 입마개를 만지작거리며, 섀넌은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상의를 벗고 있는 덕분에 움직일 때마다 결이 달라지는 등과 팔 근육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섀넌은 갈빗대처럼 굴곡이 선명한 활배근과 팔 뒤쪽에서 꿈틀거리는 삼두근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눈으로 좇았다.
미끄러지듯 몸 위를 핥던 시선은 윈터의 어깨와 가슴팍, 목덜미에 옅게 남은 흉터에서 한 번씩 툭툭 걸렸다. 한동안 섀넌은 저 흉터들을 옥에 티처럼 여겼지만, 지금은 도리어 흡족해했다.
윈터의 흉터는 한때 그가 필멸자였다는 걸 말해 주는 유일한 흔적이었고, 그건 곧 그가 제 아이라는 걸 말해 주는 표식이 되기도 했으므로.
“그런데 섀넌, 이렇게 해도 또 금방 부서지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바닥에서 잘 수는 없잖아.”
섀넌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침대를 바꾸는 게 귀찮을 것 같았으면 안 부서지게 요령껏 움직였어야지.”
“…….”
입술을 말아 문 윈터가 열심히 시트를 정돈하고는 침대 천장에 짙은 암적색 커튼을 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용히 귓바퀴만 붉힌 채 한참 말이 없던 윈터가 섀넌을 흘긋 쳐다보다가 개미처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침대는 저만 부수는 거 아니잖아요.”
헤드 보드를 저렇게 박살 내놓고 양심에 찔리지도 않으세요…? 그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웅얼거리고는 입술을 다시 말아 물었다.
섀넌이 황당한 얼굴로 짧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거야 뭐야.
“내가 누구 때문에 매번 침대 헤드를 부술까?”
“…그럼 전 누구 때문에 매번 침대 프레임을 부술까요?”
“…….”
하…, 말없이 헛숨을 내뱉은 섀넌이 제 눈치를 보며 느릿느릿 커튼을 달고 있는 윈터를 바라봤다. 머뭇거리면서도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꼴이 꼭 쥐콩만 했던 어릴 때를 보는 듯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일부러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섀넌이 팔짱을 끼며 지적했다.
“커튼을 다는 건지 넝마를 다는 건지 모르겠네. 주름 간격을 일정하게 해야지.”
듬성듬성 아무렇게나 커튼을 끼우던 윈터가 기껏 끼웠던 커튼을 다 빼내고는 다시 촘촘하게 끼우며 커튼 주름을 만졌다.
저 커다란 손으로 고작 커튼 링이나 붙들고 있는 게 우스웠으나, 섀넌은 차분한 표정을 일관하며 그가 성실히 고리를 끼우는 꼴을 지켜보았다.
“…이 정도면 괜찮아요?”
커튼을 다 설치한 윈터가 섀넌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섀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쥐고 있던 커튼 타이백을 건넸다.
그의 앞으로 다가온 윈터가 그것을 가져가며 시선을 맞췄다. 그가 타이백을 일부러 느리게 건네받으며 제 손바닥을 매만지는 걸 섀넌은 부러 모른 체했다.
실크를 가늘게 엮어 만든 타이백이 커튼에 감기고 기둥에 고정되었다. 그 끝에 달린 작은 금빛 테슬이 암적색 커튼에 길게 드리워졌다.
윈터가 커튼과 같은 색의 침구를 정돈하는 동안, 그를 매의 눈으로 관찰하던 섀넌이 다시 지적했다.
“베개는 왜 그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포개어 놓는 거지?”
“어차피 섀넌은 잘 때 제 팔을 베고 자니까요…?”
“그래도 평소엔 나란히 두어야지.”
“…….”
윈터가 알 듯 말 듯 묘한 웃음을 지은 채 베개를 나란히 정돈했다. 모서리가 접힌 이불도 탁탁 털어 펴고, 커튼을 고정한 타이백을 가지런한 모양새로 정돈하는 그를 보던 섀넌이 별안간 낮게 침음했다. 그 소리에 조금 놀랐는지, 윈터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턱을 매만지던 섀넌이 손끝으로 아랫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윈터가 침대를 살폈다. 어디 접히고 구겨지거나 비뚤어진 곳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그를 보며 섀넌이 가볍게 웃었다.
“침대 말고 너.”
“……저요?”
무릎으로 침대를 딛고 있던 윈터가 내려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마음에 안 드신다고요?”
윈터의 시선이 방금 정돈을 마친 침대로 옮겨 앉는 섀넌을 좇았다. 침대의 발치에 걸터앉아, 약간 비뚤어진 커튼 타이백을 바로잡은 섀넌이 말없이 태연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당혹감이 드러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린 윈터가 섀넌에게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섀넌은 저를 올려다보는 보랏빛 눈을 마주했다. 그의 허벅지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린 윈터가 낮게 말했다.
“…저는 섀넌처럼 똑똑하지 못해요.”
“음, …그래서?”
“마음에 안 드시는 건 말로 해 줘야 안단 말이에요.”
섀넌에게서 대답이 없자 윈터가 상체를 조금 세우며 그에게 더 가까이 고개를 내밀었다.
“제가 아무 데서나 막 벗고 다녀서 그래요? 아니면, 짐승의 몸을 하는 게 싫으신 거예요? …혹시 지난 만월에 너무 괴롭혀서? 툭하면 침대를 망가뜨려서 그래요…?”
침착함을 가장한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일렁였다. 섀넌은 좀 더 심한 말을 해서 아예 울려 버리고 싶은 걸 참고, 짐짓 자애로운 얼굴로 웃으며 그의 뺨을 감쌌다.
“다 틀렸어, 윈터. 네가 시도 때도 없이 벗고 다니는 건 마음에 들어. 보기에 좋거든.”
뺨을 쓸던 손이 목덜미로 내려갔다.
“네가 늑대인 것도 좋아. 귀여워서.”
윈터의 목으로 차가운 가죽이 감겼다.
“망가진 침대는 새로 사면 그만이지, 네가 싫어질 정도는 아니야.”
그의 목둘레에 맞게 구속구를 조인 섀넌이 버클을 완전히 채웠다.
“대신, …조금은,”
차르륵, 사슬이 아래로 툭 늘어지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참는 법을 배우는 것도 좋겠지.”
섀넌이 그에게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천천히 손을 올린 윈터가 목 언저리를 만졌다. 섀넌은 말없이 그런 그를 내려다봤다. 제 목을 휘감은 가죽 구속구를 매만지는 윈터의 표정이 아주 볼 만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윈터가 입을 열었다.
“…이거,”
그가 구속구와 연결된 사슬을 쥐고 있는 섀넌의 손을 살며시 덮었다.
“……이거 계속 잡고 계실 거죠?”
그의 손에 걸려 있던 윈터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섀넌의 양옆에 있는 침대 기둥이 불안한지, 그쪽을 흘긋 일별한 그가 물었다.
“묶어 두고 어디 가실 거 아니죠…?”
웃음을 꾹 참은 섀넌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왜. 내가 널 묶어 두고 다른 데 갈까 봐?”
“…….”
중요한 시험 문제를 내듯, 섀넌이 낮게 물었다.
“그럴 때 넌 나를 기다려야 할까, 이걸 끊고 날 쫓아와야 할까.”
섀넌에게 고정된 보라색 눈이 천천히 일렁였다. 그가 느리게 사슬을 감아쥐는 걸 보던 윈터가 나직이 말했다.
“…끊고 쫓아갈 거예요.”
“안 돼, 윈터.”
그 순간 섀넌이 그의 목줄을 확 잡아당겼다.
“읏.”
“내가 기다리라고 하면 넌 기다려야지.”
가느다란 사슬에 딸려가 고개를 치켜든 윈터가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섀넌이, 계속 안 오면…, 어떡해요.”
구속구가 너무 딱 맞게 감싸고 있어 목이 살짝 조이는 모양인지, 윈터의 얼굴이 옅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슬을 짧게 감아쥔 섀넌이 그와 시선을 얽으며 낮게 말했다.
“난 와. 반드시.”
윈터가 그의 허리를 안았다. 연결된 사슬이 움직이며 잘그락 소리를 냈다. 섀넌의 배에 얼굴을 파묻은 그가 고개를 들어 섀넌을 올려봤다.
“그래서 지금 가시려고요…?”
사슬이 느슨하게 아래로 툭 내려갔다. 섀넌이 짧게 웃음을 흘리며 그의 목을 감싼 구속구를 조금 헐겁게 풀고는 천천히 다시 채웠다.
“내가 널 두고 가긴 어딜 가.”
* * *
“섀넌…….”
윈터가 우는 소리를 내는 걸 무시한 채 섀넌은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아 윈터의 모습을 감상했다. 검은 가죽끈으로 고정된 철제 입마개 너머로, 초조하게 깨물린 윈터의 입술이 보였다.
처음 입마개를 채웠을 때 윈터는 당연히 그것을 제 손으로 풀어내려 했고, 그 탓에 윈터의 손은 커튼 타이백에 묶여 등 뒤로 결박된 상태였다.
조금 전 윈터가 기껏 잘 정돈해 기둥에 고정해 두었던 네 개의 커튼 중 하나가 타이백을 잃고 풀어져, 바닥까지 단을 드리우고 있었다.
윈터가 작게 말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요.”
“…….”
“입마개만 풀어 주시면 안 돼요?”
“네가 멋대로 키스하려고 했잖아.”
“안 그럴게요. 허락 맡고 할게요.”
윈터가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세웠다. 섀넌이 침착하게 그의 어깨를 발로 눌러 앉혔다.
“너 하는 거 봐서.”
“네…?”
어깨에서 떨어진 그의 발끝이 윈터의 가슴 사이를 훑고 아래로 내려갔다.
“잘 참으면 풀어 줄게.”
“읏.”
섀넌이 발끝으로 윈터의 다리 사이를 꾹 눌렀다. 묵직하고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세우고 있었어?”
“…….”
“대답해야지.”
촥,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목울대 근처에서 연결된 사슬이 위로 당겨지자 강제로 턱이 들어 올려진 윈터가 눈을 찌푸렸다.
“아까, …입 맞춰 주셨을 때요.”
묶어 두고 어디 가지 말라고 우는 소릴 내더니, 아랫도리는 남몰래 흥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발칙하기는.”
“읏…….”
섀넌이 더 힘을 실어 그의 아랫도리를 꾹꾹 문질렀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사슬이 금세 느슨해졌다. 윈터가 바짝 몸을 기울이며 그의 발에 제 것을 비비고 있는 탓이었다.
발목과 정강이를 이어 무릎 위까지, 뜨거운 체온이 맞닿았다. 섀넌은 제 다리에 아래를 붙인 채 느리게 허리를 움직이는 윈터를 말없이 내려다봤다. 손이 묶여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제 다리를 끌어안고 개처럼 허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역시나, 윈터는 묶인 손이 답답한지 자꾸만 꿈틀거렸다. 섀넌은 그가 손목을 결박하고 있는 타이백을 은근슬쩍 끊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벗은 상체의 팔 근육이 울근불근 움직이는 게 눈에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끊지 마.”
“섀넌…….”
“잘 참아야 입마개를 풀어 주지.”
고개를 내린 섀넌이 그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미간을 스친 입술이 입마개가 걸쳐진 콧잔등에 닿았다. 그에게 더 닿고 싶어 고개를 내미는 윈터의 목줄을 아래로 당기며, 섀넌은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읏….”
바지 위로 그의 손이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자극이 되었는지, 윈터가 낮게 신음을 삼켰다.
찌푸려진 눈가에 입술을 그은 섀넌이 이내 떨어졌다. 풀어헤쳐진 바지 사이로 끝이 젖어 색이 짙어진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를 다 담지 못한 속옷 밖으로 묽은 체액을 흘리는 귀두 끝이 보였다.
“…이러다 곧 싸겠는데?”
발끝으로 그 속옷을 느리게 내리자 윈터가 억눌린 신음을 삼켰다. 아래로 내려가는 속옷 위로 굵은 핏줄이 불거진 성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
섀넌은 소리 없이 탄식했다.
마치 선물의 포장지를 벗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약간 축축하게 젖은 포장지는 물론, 그 안에 담긴 묵직한 내용물도 완벽히 제 취향에 딱 맞춰진 선물이었다.
윈터의 피부색보다 더 짙은 음경은 매끈하다기보다는 울근불근했고,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굵고 길었다. 그러나 그 끝을 감싸고 있는 귀두는 다른 곳보다 색이 조금 옅어 반질반질하고 한없이 부드러워 보였다.
매끄럽고 연한 살갗이 감싼 요도구에 맺힌 체액이 아래로 주르륵 흘러 섀넌의 발끝을 적셨다. 저 뭉툭한 선단이 내벽을 한껏 벌리고 제 배 속을 애무하듯 짓쳐들어올 거라 생각하니, 섀넌은 불현듯 아랫배에 짙은 소름이 내달렸다.
“흑…, 섀넌….”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감상하는 시간은 끝났다. 상체를 숙이며 섀넌의 다리에 몸을 밀착한 윈터의 얼굴이 그의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섀넌….”
입마개를 벗겨 내고 싶은지, 윈터가 섀넌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비다 입마개 끝으로 꾹 눌렀다. 섀넌이 목줄을 당겨 고개를 들게 했다.
“키스하고 싶어요….”
눈만 마주치면 부딪쳐 오던 입술이 지금은 철제 입마개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가 질근질근 깨물려 발갛게 부은 윈터의 입술을 바라봤다. 퍽 마음에 드는 광경이었다.
윈터가 진지하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돼요? 어떻게 하면 풀어 주실 거예요…?”
기실 손목을 묶은 끈은 너무 약했고, 그를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 중 그가 스스로 풀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제가 정한 규율 안에 기꺼이 본능을 욱여넣고 순종하는 윈터가 섀넌은 몹시 사랑스러웠다. 그런 속내와는 별개로, 일부러 길게 한숨을 내쉰 섀넌이 나직이 운을 뗐다.
“……다른 건 다 좋아, 윈터. 그런데,”
목줄을 더 위로 당겨 윈터와 시선을 맞춘 그가 말했다.
“…술병은 늘 라벨이 보이게.”
술병…? 라벨……? 뜬금없는 말에 당황했는지, 몇 초간 눈을 깜빡이던 윈터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격을 맞춰서 일렬로.”
섀넌이 발을 움직여 그의 성기를 위아래로 느리게 문질렀다.
“흐, 읏…….”
그가 흘려 대는 체액에 젖은 발등이 축축했다.
“라벨…, 라벨 보이게, 일렬로…….”
신음 사이로 드문드문 섀넌의 말을 따라 하는 윈터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위아래로 마찰하며 움직이는 성기가 섀넌의 발등을 세게 문질렀다. 섀넌은 굳이 제가 움직여 주지 않아도 알아서 성기를 비비는 윈터를 보며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진열장은 각각 용도가 다 있으니까,”
“아, 읏…….”
“네 멋대로 아무거나 채워 넣어선 안 돼.”
섀넌이 발끝으로 그의 귀두 끝을 꾹 눌렀다.
“아…!”
“알아들었어?”
고개를 푹 숙인 윈터가 섀넌의 무릎에 제 이마를 문지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앞으로는 잘 할, 아아…, 흑…….”
뜨겁고 묵직한 성기가 아플 정도로 섀넌의 발목을 거칠게 짓눌렀다. 손이 뒤로 묶인 채 섀넌의 다리에 제 상체를 기대고 있던 윈터의 등 근육이 바짝 수축했다.
“흐…, 읏…….”
섀넌의 발목과 정강이에 뜨거운 정액이 울컥 토해졌다. 금방 끝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섀넌은 일부러 눈살을 찌푸리며 낮게 말했다.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확 당겨지는 목줄에 고개가 들린 윈터의 눈가가 발갛게 젖어 있었다. 차가운 철제 입마개 사이로 뜨거운 숨이 훅 새어 나왔다.
“…키스, 하게 해 주시면 안 돼요?”
땀이 살짝 맺힌 이마에 은백색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들러붙었다.
“……키스만, 제발….”
세 번째 애원이었다.
“그럼 잘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섀넌이 피식 웃었다.
퍽이나 잘 참겠다. 발만 내어 줘도 싸는 주제에.
손과 목이 묶여 있는 와중에 그에게 제일 우선인 건 입마개인 모양이었다. 섀넌이 그의 입마개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웠던 금속은 윈터의 숨에 젖어 미지근하게 달궈져 있었다.
“풀어 주면 잘 참을 수 있어?”
윈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섀넌이 입마개를 고정한 가죽끈에 손을 대자 그가 안달 난 듯 상체를 세웠다.
안 돼. 섀넌이 손가락으로 입마개를 살짝 눌러 그를 밀어 냈다.
“내 발을 다 더럽혀 놓고 아무 조건도 없이 풀어 달라는 건 너무 뻔뻔한 요구잖아.”
다시 천천히 몸을 낮춘 윈터가 숨을 몰아쉬며 섀넌을 조용히 올려다봤다. 그가 말만 하면 당장 혀라도 깨물어 내어 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섀넌이 느슨하게 웃으며 한 손을 옆으로 뻗었다. 타이백을 잃은 커튼이 사락 풀리며 바닥에 단을 드리웠다.
실크를 가늘게 엮어 만든 끈은 윈터의 손을 결박하기엔 매우 얇지만, 다른 걸 결박하기엔 퍽 괜찮은 굵기라고 섀넌은 생각했다.
금빛 테슬이 작게 흔들리는 끈을 감아쥔 섀넌의 손을 보던 윈터가 그와 눈을 맞췄다. 섀넌이 그에게 상체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하나를 양보하면 다른 하나를 대신 내어 줘야지.”
귓바퀴에 고인 숨결이 흩어지기도 전에, 섀넌의 입술이 윈터의 귓불 아래를 타고 목덜미와 어깨를 스쳤다. 잘게 떨리는 단단한 어깨에 지그시 입술을 누른 섀넌이 잠시 뒤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를 보던 윈터의 시선이 제 아래로 내려갔다.
“…….”
귀두 바로 아래가 금테를 두른 것처럼 반짝였다. 너무 조이지 않으면서도 둘레에 딱 맞게 감긴 타이백이 리본 모양으로 예쁘게 묶여 있었다. 그 끝에 달린 테슬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렸다.
윈터가 눈을 일그러뜨렸다.
“섀넌….”
부름에 답하듯 눈가에 입을 맞춰 준 섀넌이 그의 뒤통수를 감싸며 입마개를 고정한 가죽끈을 풀었다. 탁, 버클이 풀리고 입마개가 떨어지기 무섭게 윈터의 입술이 섀넌의 턱 끝에 붙었다가 곧바로 입술을 덮었다.
섀넌이 덥석 깨물린 입술을 빼내며 그의 양 뺨을 감쌌다. 콧날을 부딪으며 그가 내쉬는 숨결을 음미한 섀넌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응?”
안달 난 듯 숨을 헐떡이는 윈터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 빨아들이며, 섀넌이 그 틈새로 혀를 밀어 넣었다. 상체를 세운 윈터가 고개를 기울여 더 깊게 입술을 맞물렸다.
젖은 호흡이 짓눌린 입술 새로 부서졌다. 치아가 부딪힐 만큼 조급하게 입술을 겹쳐 무는 윈터를 달래는 듯 부드러운 키스가 이어졌다.
섀넌의 다리 사이로 몸을 완전히 밀착한 그가 손목을 뒤틀며 신음했다. 손목을 결박한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음, 읏…, 섀넌…….”
“그러다 끊어지겠어.”
섀넌의 말에 행동을 멈춘 윈터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아파요….”
그가 땀에 젖은 이마를 섀넌의 배에 비비며 울먹였다.
“좆이 너무 아파요, 섀넌. 여기가…, 터질 것 같아요.”
섀넌이 그의 아래로 힐끗 시선을 내렸다.
“저런.”
사정 직후 살짝 줄어든 둘레에 맞춰 묶어 두었던 끈이 금세 팽팽하게 기둥을 조이고 있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붉게 달아오른 기둥을 휘감은 핏줄이 툭, 툭, 불거지는 게 보였다.
“네가 세우지 않으면 아플 일도 없을 텐데.”
“흐윽…….”
끝이 꽉 묶여 배출을 못 하는 아래 대신 위로 쏟아 내려는지, 윈터의 눈가가 금세 젖어 들었다.
“울지 마, 윈터. 그럼 이 상황이 더 길어질 뿐이니까.”
“안 울고…, 잘 참으면, 금방 풀어 주실 거예요…?”
“음, ……아마도.”
윈터가 젖은 숨을 들이켜며 섀넌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섀넌이 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지금 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술병을 나란히 놓지 않아서, 진열장에 라벨도 안 보이게 아무렇게나 둬서,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할까.
아니, 이제 그도 알 건 다 아는 어른이었다.
섹스를 즐기는 방식은 여러 형태가 있고, 아마 자신이 단순한 유희 거리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윈터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알고 있다면, 참으로 영악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윈터는 아주 흡족할 정도로 제 놀이에 장단을 맞춰 주고 있는 셈이니까.
훌쩍, 울음을 삼킨 윈터가 섀넌의 가슴팍에서 고개를 뗐다. 젖은 은백색 속눈썹이 느리게 위아래로 깜빡였다.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언제까지 참으면 되는 건데요…?”
애써 침착하게 가라앉힌 듯한 목소리였다. 섀넌이 천천히 목줄을 아래로 당겼다.
“내가 쌀 때까지.”
그가 당기는 대로 고분고분 상체를 숙인 윈터의 눈높이에 섀넌의 고간이 정확히 닿았다. 눈을 들어 섀넌을 올려다본 윈터가 말없이 그의 바지 버클을 입으로 물었다.
섀넌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처박은 채 한참 애쓰던 윈터가 웅얼웅얼 물었다.
“손, 풀어 주시면 안 돼요…?”
“안 돼. 넌 늑대잖아.”
“…….”
“입으로 뭐든 다 잘해야지.”
사슬을 짧게 감아쥔 섀넌이 제 바지를 벗기려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는 은백색 머리통을 느슨히 내려다봤다. 옷 위로 성기를 꾹 물기도 하고, 이 끝으로 버클을 긁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바지 다 젖겠네.”
“이거……, 잘 안 풀려요.”
고개를 든 윈터의 입술이 마찰로 붉게 부어 있었다.
섀넌이 말없이 눈썹만 까딱였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물론 자신 또한 입으로 남의 바지를 벗겨 본 경험은 없어서 잘은 모른다. 그래도 섀넌은 늑대가 앞발보다 입을 더 많이 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뭐든 입으로 씹고 뜯는 늑대족이라면 이 정도는 쉽게 풀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섀넌이 제 등 뒤에 손을 짚으며 느슨히 몸을 기댔다. 그가 일부러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날 새겠어.”
달칵, 금속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섀넌의 말끝에 달라붙었다. 눈을 살짝 들어 섀넌을 쳐다본 윈터가 입으로 문 바지춤을 풀어헤쳤다. 얇은 속옷 안으로 뜨거운 숨이 훅 끼쳤다.
섀넌의 아랫배를 이 끝으로 살살 긁어 속옷을 문 윈터가 천천히 그것을 당겨 아래로 내렸다. 그가 바지를 벗기느라 헤매는 동안 살짝 가라앉았던 섀넌의 성기가 마침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완전히 기립하지 않은 성기에 입술을 문지르며, 윈터는 이따금 눈을 찌푸렸다. 아마도 애써 가라앉혔던 아래가 다시 발기하며 꽉 조인 탓에 아픈 모양이었다.
“후, 으…….”
어떻게든 제 아래를 다시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면서도, 윈터는 섀넌의 성기를 애무하며 동시에 달아오르길 반복했다. 복잡한 번뇌가 드나드는 그 얼굴을 섀넌은 위에서 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으로 잡지 못하니 빠는 것도 어색했다. 기둥을 입술로 비비며 서툴게 혀로 핥던 윈터가 겨우 귀두 끝을 머금었다. 따뜻한 점막이 예민한 살갗을 부드럽게 조였다.
귀두 끝 갈라진 틈이 몇 번이고 그의 혀끝에 쓸릴 때마다, 섀넌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긴 탄식을 내뱉었다.
사슬을 감아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윈터의 머리칼을 움킨 섀넌이 허리를 살짝 들어 그의 안에 깊숙이 성기를 처박았다.
“읏, 읍…….”
갑작스러운 침입 탓에 반사적으로 구토가 일었는지, 그의 목 안쪽이 꿈틀거리며 귀두 끝을 바짝 당기고 조였다.
“하아…….”
평소였다면 양손으로 허벅지 안쪽을 농밀하게 쓰다듬으며 음낭과 회음까지 애무해 주었겠지만, 손이 묶인 지금의 윈터는 그저 입으로 열심히 그의 것을 빨아들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섀넌은 그게 아쉬워 윈터의 머리채를 움킨 채 천천히 허리를 쳐올렸다. 고개를 기울인 그가 윈터의 아래를 힐끗 확인했다.
허공으로 바짝 고개를 쳐든 성기가 터질 듯 통통하게 부어 있었다. 피가 몰려 새빨개진 귀두 끝, 작게 벌름거리는 요도구는 체액을 마음껏 토해 내지 못해 조금씩 애처롭게 내뱉고 있었다.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체액 위에 흐트러진 테슬이 까딱까딱 움직였다.
“아아…, 윈터, 읏…….”
별안간 성기를 감싼 입안이 확 조여들었다. 빨아들이는 압력에 살짝 여유를 놓칠 뻔한 섀넌이 숨을 가다듬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꽉 조이다 못해 퉁퉁 부어오른 아래를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은 모양인지, 윈터는 최선을 다해 섀넌을 절정으로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혓바닥으로 기둥을 살살 쓸던 윈터가 섀넌의 반응을 확인하듯 그를 올려다봤다.
섀넌이 옅게 쓴웃음을 지으며 목줄을 당겼다. 느리게 당겨 오는 만큼, 그의 성기가 윈터의 입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윈터의 눈가가 애처롭게 일그러졌다. 섀넌은 어느새 동공이 붉게 확장된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너무 빠르게 절정에 닿지 않게 페이스를 조절했다.
뜨겁게 젖은 점막을 마음대로 짓치다 천천히 유영하듯 미끄러뜨리고, 가끔 그의 목 깊숙한 곳을 건드려 일부러 구역질을 유도했다.
“힘들어?”
목줄을 당기며 천천히 성기를 찔러넣던 섀넌이 낮게 묻자 윈터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다시 성기를 느리게 빼내며, 섀넌이 느슨하게 웃었다.
“…난 힘든데.”
그의 입술에 귀두 끝만 살짝 걸친 섀넌이 눈을 가늘게 접었다.
“네가 너무 잘 빨아서.”
“흡…….”
“밤새 물려 놓고 싶거든.”
밤새 물려 놓겠다는 건 제 좆 역시도 밤새 묶여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 윈터가 이번에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섀넌이 그의 입술에서 귀두를 완전히 빼냈다. 타액인지 쿠퍼액인지 모를 액체가 번들거리는 선단을 그의 입술에 문지르자, 윈터가 숨을 헐떡이며 애원했다.
“얼른, 싸주세요…, 섀넌…….”
그가 혀를 내어 제 입술에 아무렇게나 문질러지는 귀두를 열심히 핥았다.
“다 삼킬게요, 잘할게요…….”
“정말? 다 삼킬 수 있어?”
이제 윈터의 아래는 거의 한계에 다다른 듯 그 검붉은 기둥을 허공에 애달프게 끄떡이고 있었다. 그가 만약 필멸자의 몸이었다면 괴사가 걱정되어 금방 풀어 주었을 것이다.
“흑……, 아파…, 싸고 싶어요, 섀넌, 아파요…….”
섀넌이 한 거라곤 목줄을 당겼다 놓으며 그의 입안을 헤집고, 머리채를 움키고 목구멍 깊숙이 성기를 처박은 것뿐인데도 윈터는 마치 자신이 애무를 받은 것처럼 혼자 절정 근처에 올라 있었다.
섀넌이 소리 없이 쓴웃음을 흘렸다.
……이렇게나 잘 느끼는 남자가 내 연인이라니.
대체 어디서 이런 게 제 손으로 떨어졌을까.
영영 가둬 두고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섀넌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입속에 다시 제 것을 밀어 넣었다. 입천장을 세게 문지를 때마다 윈터가 내는 소리가 귀두의 표피를 타고 옅게 전해졌다. 꼭 그의 신음을 제 성기로 어루만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아…, 소리 없이 한숨을 길게 내쉰 섀넌이 그의 머리통을 지그시 눌렀다.
“조금만, 하아……, 조금만 더.”
윈터가 그의 것을 세게 빨아들였다. 고개를 뒤로 젖힌 섀넌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하아……, 더 세게, 읏…, 좋아.”
사슬이 감긴 흰 손이 커튼 자락을 움켰다. 있는 힘껏 빨아들이는 힘에 이끌린 섀넌이 참았던 절정을 터뜨렸다.
윈터의 입 안이 질척하게 젖어 들었다. 꿀꺽, 쏟아지는 정액을 삼키는 점막이 꿈틀거렸다. 목을 감싸고 있는 가죽 구속구 때문에 움직이는 목울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제가 쏟아 내는 것을 삼키는 동시에 다 쥐어 짜내려는 듯 목을 조이는 힘에 섀넌은 한 번 더 전율했다. 한참이나 그의 입 안에 제 성기를 담근 채 문지르던 섀넌이 천천히 뒤로 빼냈다.
별안간 얼굴을 일그러뜨린 윈터의 고개가 아래로 푹 떨어졌다.
“미안해요, 섀넌…….”
갑작스러운 사과에 섀넌이 그의 다리 사이를 내려다봤다.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진 타이백 위로 흰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못 참았어요…….”
윈터가 섀넌의 아랫배에 이마를 푹 기댔다. 섀넌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여 시야에 가려졌던 윈터의 성기를 다시 살폈다.
색이 짙다 못해 거의 암적색처럼 보이는 성기는 아까보다 더 부피를 키운 채 바짝 약 오른 뱀처럼 머리를 세우고 있었다. 선단에 맺힌 흰 정액이 그 색과 대비되어 매우 자극적으로 눈에 들어찼다.
게다가 그 성기의 형태가….
“보지 마세요….”
윈터가 그의 다리 사이로 몸을 붙이며 시야를 가렸다.
“…….”
섀넌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가, 느긋하게 감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저 좆으로 지금껏 잘만 제 아래를 쑤셔 놓고는, 눈으로 본다고 무슨 큰일이라도 나나.
“…재미없네.”
잘그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윈터가 불안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섀넌이 그런 그와 시선을 맞춘 채, 손에 감아쥐고 있던 사슬을 천천히 풀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멋대로 움직일 거면 목줄이 다 무슨 소용이지.”
그가 느리게 목줄을 잡아당겼다.
* * *
울멍울멍 흔들리는 눈이 섀넌의 움직임을 좇았다. 침대 헤드 보드에 등을 댄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윈터의 얼굴에 두려움과 불안감이 서렸다.
섀넌이 그 옆 기둥에 천천히 사슬을 감았다. 사슬이 풀리지 않게 잘 고정한 그가 윈터와 눈을 맞추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그가 혹시라도 갑자기 사라질까 봐 무서웠는지, 윈터가 급히 상체를 세우는 동시에 기둥에 연결된 사슬이 팽팽하게 촥 당겨졌다.
더는 섀넌에게 닿지 못한 채 주저앉은 윈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딱 좋은 길이감에 만족한 섀넌이 옅게 웃음을 흘리며 나직이 말했다.
“어디 안 가니까 걱정하지 마.”
그가 다가오자 이번엔 윈터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탁, 침대 헤드 보드에 등을 부딪친 윈터의 가슴팍 위로 섀넌의 손이 얹어졌다.
“그냥 좀 놀자는 거지. 네가 무서워할 만한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윈터.”
그가 잔뜩 경직되어 단단하게 올라붙은 허벅지 위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윈터가 상체를 세우며 주춤했으나 섀넌이 다시 꾹 눌러 앉혔다.
“읏…, 섀넌.”
손끝이 요도구에 슬쩍 닿자 윈터의 숨이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점성이 강한 체액이 섀넌의 손가락에 실처럼 엉겨 붙었다.
인간의 형태를 한참 벗어난 성기의 낯선 윤곽을 그리듯, 섀넌이 귀두 끝부터 뿌리까지 섬세하게 어루만졌다.
손에 쥔 성기가 꿈틀 움직이며 섀넌의 손을 적셨다. 미끌한 체액을 검붉은 기둥에 덧바르며, 섀넌은 그의 물건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시선이 제 성기에 닿아 있는 게 괴로운 듯 윈터에게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짐승의 성기를 이렇게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숱하게 몸을 섞었지만, 윈터의 물건이 이런 형태를 할 때는 늘 제 몸 안에 들어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흐윽…….”
고개를 푹 떨군 윈터의 속눈썹 끝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가 수치심에 울든 말든 섀넌은 흔치 않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 심산이었다.
실핏줄이 휘감긴 기둥을 감싼 얇은 표피가 섀넌의 손에 쓸리며 가늘게 주름졌다. 인간의 성기와 달리 요철이 아주 깊은 요도구에서 농도 짙은 정액이 울컥 쏟아졌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런 걸로 내 안을 그렇게 쑤셔 댄 거야?”
남은 여운마저 제 손으로 다 쥐어짜고, 마지막 한 방울이 요도구에 맺힐 때까지 한참이나 성기를 어루만지던 섀넌이 낮게 물었다.
울음 섞인 숨을 들이켜는 어깨가 위로 들썩였다. 고개를 기울여 윈터의 턱을 쥔 섀넌이 그와 시선을 맞췄다.
“…예뻐, 윈터.”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이 일그러졌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섀넌이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야. 너무 예뻐서 종일 물고 빨아도 부족할 정도로.”
내리감는 눈꺼풀 아래로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예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섀넌이 젖은 눈꺼풀 위로 입술을 내리눌렀다.
“속눈썹도 예쁘고, 눈도 예쁘고, 머리카락도 예쁘고.”
쪽, 쪽, 말 사이 사이로 살갗을 부딪는 젖은 소리가 울렸다.
“가슴도 예쁘고 손도 예쁘고…….”
눈물이 고인 입술 틈새를 혀로 핥으며 계속해서 예쁘다고 속삭여 줄 때마다 울먹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후으…….”
질척한 성기를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며, 섀넌이 속삭였다.
“내 앞에서만 질질 흘리는 좆도 얼마나 예쁜지.”
젖은 입술이 윈터의 목덜미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근육이 단단하게 뭉친 가슴 위를 지분거리던 입술이 유두를 스치자 윈터가 몸을 뒤틀었다.
“흣…….”
혀를 내어 짙은 색의 돌기를 핥자 펄쩍 뛴 상체가 뒤로 물러났다. 턱, 단단한 마호가니 헤드에 두꺼운 등이 또 한 번 부딪쳤다.
“그러다 침대 또 망가지겠어.”
섀넌이 짧게 웃으며 커다란 가슴을 양손으로 꽉 움켰다.
“읏, 섀넌…, 섀넌, ……손 풀어 주세요….”
“아직 안 돼.”
“아, 흣….”
굴곡진 아랫배에 바짝 올라붙은 성기가 섀넌의 셔츠 단추에 쓸릴 때마다 윈터가 몸서리치며 신음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섀넌은 그의 커다란 가슴을 손에 움킨 채 유두를 빨아들이고 희롱하는 데 몰두했다.
“샤…, 거기 그만……, 흐윽.”
“너는 툭하면 빨잖아.”
이 끝으로 연한 갈색 돌기를 살짝 짓이긴 섀넌이 혀로 그 주위를 둥글게 핥았다. 윈터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숨을 헐떡였다.
“네가 밤새도록 이렇게 빨고 나면,”
“흣…!”
“아침에 여기가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알아? 몇 시간 정도는 옷만 스쳐도 아릿하단 말이야.”
“흐읏……, 잘못, 잘못했….”
두꺼운 근육이 감싸고 있는 가슴을 손으로 한껏 모아 쥔 섀넌이 혀끝으로 유륜과 돌기를 희롱했다. 츕, 추웁, 일부러 더 질척한 소리를 낸 섀넌이 그의 유두를 세게 빨아들였다.
윈터가 발갛게 물든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제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유두를 손끝으로 짓누르며, 섀넌은 그런 그를 핥듯이 응시했다.
두꺼운 몸을 감싼 근육은 깎아 놓은 바위처럼 투박한 동시에 정교하고 섬세했다. 손이 뒤로 결박된 채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따라 우아하게 갈라진 근육이 툭툭 불거졌다.
등에 짓눌린 손이 아플 법도 한데, 그 얇은 타이백을 아직도 끊지 않고 얌전히 버티는 게 기특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마음껏 그의 몸을 탐하겠는가.
“하아…, 섀넌, 그만, …그ㅁ, 흣…….”
섀넌은 제가 만족할 만큼 그의 몸을 여기저기 빨았다. 근육의 결을 따라 흐른 땀이 입술에 뭉개지고, 단단한 가슴골 사이에 묻은 코끝으로 짙은 체취가 스몄다. 그의 입술이 머물렀던 자리마다 검붉은 멍울이 올라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래로 미끄러지듯 스친 입술이 장골의 굴곡을 타고 사타구니에 고였다.
섀넌은 아무렇지 않게 짐승의 성기에 혀를 대었다.
“아…, 윽…….”
상체를 바짝 수그린 윈터가 신음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둥글게 휜 등 뒤로 결박된 손이 꿈틀거렸다.
크기 때문에 입에 담지 못하는 관계로, 섀넌은 혀를 내어 그의 기둥을 핥고 일부러 쪽 소리가 나도록 요란하게 귀두 끝에 입을 맞췄다. 뾰족하게 혀끝을 세워 맑은 체액을 토해 내는 요도구를 문지를 때마다, 바짝 경직되는 윈터의 몸이 보기 좋았다.
자극에 한껏 예민해진 붉은 선단은 마치 사정하는 것처럼 섀넌의 혀에 끈적한 체액을 질질 흘려 대고 있었다. 샤, 잠깐만요, 제발…, 잠깐만……. 머리 위에서 더 가팔라진 신음과 함께 다급한 말이 더듬더듬 떨어졌다.
관성적으로 그의 성기를 쥐고 흔들던 섀넌이 문득 애무를 멈추고 상체를 세웠다.
윈터의 성기는 보통 때와 다르게 뿌리 부분이 매우 두꺼웠다. 이상하게도 손바닥 아래에서 그것이 점점 팽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섀넌은 그게 뭔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늘 제 내장을 붙들고 틈새를 꽉 틀어막은 다음, 아랫배가 더부룩해질 정도로 많은 양의 정액을 쏟아 내던…….
“하, 으…, 안 돼……, 보지 마세요, 섀넌…, 보지 마세요….”
땀에 젖은 뜨거운 이마가 섀넌의 어깨에 툭 떨어졌다. 섀넌은 말없이 그의 뒤통수를 감싸며 귓바퀴에 입술을 붙였다.
섀넌의 손 안에서 노팅이 시작된 윈터의 성기는 걷잡을 수 없이 팽팽하게 부풀었다.
“흐윽…….”
섀넌의 손목을 적시다 못해 팔 안쪽까지 뜨거운 정액이 쏘아졌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발발 떨리는 신음을 흘리는 윈터의 뺨을 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섀넌은 그가 오랜 사정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흥건한 양만큼이나 짙은 풋내가 침대 위에 진동했다. 수치심에 곧 죽어 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절정에 달해 있는 윈터의 온몸은 신열이 들끓는 듯 뜨거웠다.
“……아깝게.”
섀넌이 나직이 말하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다 질질 흘려 버렸네.”
“흑…….”
눈물에 젖어 엉망인 뺨과 눈가에도 가볍게 쪼는 듯한 입맞춤을 얹은 섀넌이 손끝으로 그의 눈꺼풀을 훑었다. 노팅은 만월이 아니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윈터가 나름 절제하려고 늘 애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넣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러는 건, 정말 드물고 특별한 일이라고 섀넌은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
“목줄? 아니면 여기 빨아 주는 거?”
“…….”
“아예 사지를 다 묶어 두면 좋아서 자지러지겠는데.”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윈터를 보며, 그가 짓궂은 얼굴로 유두를 세게 비틀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윈터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괴로운 듯 몸을 뒤틀었다.
그의 어깨를 밀어 뒤로 주저앉게 한 섀넌이 스스로 바지를 벗고 그 위로 올라탔다. 그가 불편하지 않게 얼른 자세를 고쳐 양쪽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은 윈터가 무릎을 살짝 세워 섀넌의 뒤를 받쳤다.
한 손으로 윈터의 무릎을 짚은 섀넌이 상체를 세워 그의 성기를 제 아래에 맞췄다. 윈터가 조급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이제 손 풀어 주시면 안 돼요…?”
너무 울어서 발갛게 충혈된 눈이 섀넌을 향했다.
“…바로 넣으면, 찢어진단 말이에요.”
“그럼 부피를 좀 줄여 봐.”
윈터의 무릎에 등을 기댄 채, 이미 질척하게 젖어 있는 기둥에 제 엉덩이골을 문지르며 미끄러뜨린 섀넌이 뭉툭한 선단으로 제 구멍을 꾹 눌렀다. 읏…, 윈터가 신음을 억누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섀넌이 심호흡하며 천천히 몸을 아래로 내렸다. 윈터의 무릎을 짚은 손끝이 희게 질렸다. 어떻게든 제 말을 들어보려 애쓰는 것인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와중에도 윈터의 성기는 시시각각 경련하며 꿈틀거렸다.
“샤, …잠깐, 시간 좀 주세요, 이대로는, 윽…….”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꾸역꾸역 배 속으로 밀고 들어가는 성기는 여전히 짐승의 형태였다.
“하아…….”
반절 정도 들어갔을 때쯤 섀넌이 다시 허리를 세우며 그의 것을 살짝 빼냈다. 부피가 커서 한 번에 넣기는 힘든 탓에, 몇 번 위아래로 움직이며 빡빡한 내벽에 길을 낸 그가 다시 느리게 앉았다.
“읏….”
“제가, 도와드리면 안 돼요…?”
“하아……, 안 돼, 기다려 봐.”
그저 한 번 삼키는 것만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윈터가 평소보다 더 많이 젖어 있다는 것이었다. 부피가 큰 귀두가 꽉 다물린 틈새를 벌리는 동시에 끊임없이 쿠퍼액을 토해 내며 내벽을 적시고 있었다.
윈터의 어깨를 짚은 채 숨을 멈춘 섀넌이 조금씩 그의 것을 삼키다 마침내 뿌리 끝까지 머금었다. 손 아래에서 바짝 수축하며 곤두선 근육이 느껴졌다.
“아….”
섀넌이 낮게 신음하며 그의 콧잔등에 입술을 눌렀다. 미간을 잔뜩 구긴 윈터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참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허리를 움직이면 바로 쌀 것 같은 표정으로.
“눈 떠.”
꽉 닫혀 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눈물에 젖어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눈은 피처럼 새빨갰다. 확장된 동공을 감싸고 있는 청회색 테두리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숨 쉬어도 돼.”
하아…, 섀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에게서 뜨거운 호흡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섀넌은 자신 또한 숨을 거의 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긴 호흡을 소리 없이 내뱉은 섀넌이 아주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저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만으로도, 행동에는 많은 제약이 생긴다. 윈터는 그를 끌어안지도, 스스로 허리를 쳐올리지도 못한 채 섀넌이 움직이는 대로 속절없이 쾌락에 흔들렸다.
열심히 흐느끼며 애무를 받은 것은 윈터 쪽인데, 섀넌은 이상하리만치 별다른 통증 없이 그의 것을 받아들인 게 신기했다. 평소보다 둘레가 더 커진 성기의 그 낯선 형태를 생각하면 더더욱 놀랄 일이었다.
물론 약간 찢어지기도 하고, 굴곡에 툭툭 걸리는 둔통이 일었지만 아랫배를 묵직하게 채운 열기가 그 모든 고통을 상쇄했다. 아마도 오늘의 유희가 자신을 꽤 흥분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아…, 좋아…….”
윈터의 무릎에 몸을 지탱한 채 섀넌이 느긋하게 허리를 돌렸다. 그는 윈터가 늘 집요하게 괴롭혔던 지점을 스스로 찌르고 문지르며 온몸을 적시는 쾌감에 몰두했다.
섀넌이 허리를 들어 올렸다가 콱 주저앉았다. 귀두 끝까지 주르륵 빠져나갔던 성기가 구멍 안으로 빠르게 감춰지고, 다시 쑥 빠져나갔다가 바짝 조이며 삼켜지길 반복했다.
“하아…, 하아…….”
“샤…, 나도 당신 만지고 싶어요…….”
툭, 투둑, 등 뒤에서 묶인 가느다란 실크 타이백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지금, 너무 좋으니까….”
섀넌이 그를 달래듯 눈가에 입을 맞추며 허리를 흔들었다. 선명한 굴곡이 있는 윈터의 아랫배에 제 성기를 비비면서, 동시에 뒤를 자극하는 쾌락에 눈앞이 하얘졌다.
“윽….”
윈터가 허리를 확 쳐올렸다. 순간 균형을 잃은 섀넌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윈터가 제게 엎어지는 섀넌의 몸을 양팔로 안으며 받아 냈다. 그의 손목에 걸쳐져 있던 끊어진 타이백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아…, 섀넌…….”
섀넌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둔부를 움킨 윈터가 그를 깊게 주저앉혔다. 아아…, 땀에 젖은 어깨 위로 섀넌의 신음이 쏟아졌다.
그의 뒤통수를 감싼 윈터가 귓가에 입술을 붙인 채 속삭였다.
“미안해요…….”
“하, 읏…….”
“…지금은 도저히,”
“아…!”
별안간 짧게 터져 나온 비명의 주인은 섀넌이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히고 침대에 풀썩 누운 섀넌이 제 다리 사이로 허리를 치고 들어오는 윈터를 바라봤다.
섀넌의 머리 옆으로 느슨하게 늘어진 사슬이 차르륵 소리를 냈다. 그의 손목을 침대에 내리누른 윈터의 눈이 위험하게 일렁였다.
좁은 내벽을 사정없이 치고 들어오는 귀두 끝이 내장을 후벼 파듯 길을 내고 짓찧었다.
“아흑…!”
배 속을 치미는 타격감에 놀란 섀넌이 발끝으로 시트를 밀어내며 뒤로 물러났다. 상체를 세운 윈터가 그의 양쪽 허벅지를 감싸며 주욱 잡아당겼다.
“아아……!”
섀넌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윈터의 목까지 연결된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눈살을 찌푸린 윈터가 한 손으로 제 목줄을 풀어 버렸다.
“…처음이니까 좀 봐주세요.”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 옆으로 주인을 잃은 가죽 구속구가 툭 떨어졌다.
“다음에는, 더 잘 참아 볼게요.”
“흐읏……!”
“오늘은……, 오늘은 더 이상 안 돼.”
윈터의 고개가 섀넌의 목덜미로 푹 떨어졌다.
“더는 못 참아요.”
굵고 뜨거운 성기가 더 깊은 곳으로 요동치며 파고들었다. 내벽을 더 벌리려는 듯 허리를 뭉근하게 돌리며 치고 들어온 기둥이 무질서한 곡선을 그리며 다시 물러나길 반복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얼굴 위로 쏟아지는 숨 위로 두서없는 사과가 이어졌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통제 불능의 열기가 배 속을 헤집고 온몸을 뜨겁게 옥죄었다.
배 속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찌걱찌걱, 꽉 맞물린 틈새로 새어 나온 맑은 물이 시트를 적시고 제 엉덩이 아래까지 축축해졌을 즈음, 섀넌은 윈터가 제 안에 쏟아 내고 있는 게 평소의 사정액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으…, 섀넌…, 흐윽…….”
묵직한 몸이 돌처럼 단단하게 수축하며 부들부들 떨렸다. 섀넌을 끌어안은 양팔이 그를 으스러뜨릴 듯 옥죄었다.
“샤…, 미안해요……, 계속, …나와서,”
목덜미에 울음소리가 맺혔다.
“멈출 수가 없어요…….”
섀넌의 아래는 완전히 흥건해졌다.
눈을 질끈 감은 섀넌이 그의 귓바퀴에 입술을 붙였다. 제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섀넌은 규칙을 깨 버린 것을 혼내는 대신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이대로 윈터의 성기를 제 안에서 다 녹이고 싶었다. 정말로 마음만 먹으면 녹일 수 있을 것 같은, 지나치게 단맛이 나는 성기가 물로 흥건해진 배 속을 치고 올라올 때마다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성기 끝으로 열기가 쏠렸다. 마치 그 안이 기포로 들끓고 있는 느낌이었다. 코르크를 밀고 터져 나오는 샴페인처럼, 섀넌은 마침내 가파르게 오르내리던 절정을 터뜨렸다.
“아….”
참았던 사정액이 윈터의 가슴팍까지 몇 차례나 튀어 올랐다. 윈터가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마치 관이 연결된 것처럼 섀넌의 성기 끝에서 정액이 쏘아져 나왔다.
“아, 으응…….”
“하아…, 안고 싶었어요, 섀넌…, 만지고 싶어서 진짜,”
섀넌이 느끼는 지점을 정확히 찌르고 들어온 성기가 내벽을 멋대로 헤집었다.
“죽는 줄 알았어요…….”
목덜미로 뜨거운 숨이 쏟아지고, 이내 날카로운 이가 섀넌의 빗장뼈 위를 긁어 내렸다. 윈터가 그의 셔츠를 잡아 뜯어내듯 벗겨 냈다.
유륜이 덥석 깨물렸다. 사과를 베어 물 듯 섀넌의 가슴을 크게 베어 문 윈터가 그 상태로 허리만 빠르게 쳐올렸다. 흠뻑 젖은 시트에 섀넌의 볼기가 사정없이 짓눌리고 비벼졌다.
“아, 앗, 윈터, 잠…, 천천, 흐읏…….”
사정 직후 몰아치는 자극을 견디지 못한 섀넌이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 애썼다. 고개를 든 윈터의 입술이 붉게 번들거렸다. 제 가슴팍을 밀어내는 흰 손을 붙든 윈터가 섀넌의 머리 위로 양 손목을 결박했다.
천천히 그의 안을 드나들며, 윈터가 한 손으로 시트에 널브러진 구속구를 집었다. 섀넌은 머리 위로 짓눌린 손목에 미지근한 가죽이 감기는 감촉을 느끼며 눈을 일그러뜨렸다.
“너무 조이지 않죠?”
“…….”
“저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달칵, 핀 버튼이 채워지며 날 선 쇳소리가 울렸다.
“……자꾸 밀어내시니까.”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섀넌이 손을 살짝 내려 헐겁게 감긴 가죽 구속구를 바라봤다.
……제 연인은 순종적이되 통제는 불가하다.
그리고 배움이 무척 빠른 남자였다.
* * *
섀넌이 작게 신음하며 몸을 살짝 움직였다.
따뜻한 점막에 둘러싸여 있던 성기가 밖으로 주르륵 빠져나오는 감각에, 윈터가 조용히 눈을 떴다.
제 품 안에서 꼼지락 움직이며 밤새 품고 있던 성기를 마저 빼내는 등을 내려다보던 윈터가 다시 그를 품으로 끌어왔다. 순간 움츠러들었던 흰 어깨가 느슨하게 내려가고, 낮은 물음이 들려왔다.
“…일어났어?”
“허전해요.”
“뭐가.”
윈터가 손을 내려 섀넌의 허벅지 안쪽을 쓸었다. 구멍 틈새로 흐른 정액이 미끌미끌하게 만져졌다. 제가 밤새 섀넌의 안에 싸질러 놓은 정액은 미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빼시면 너무 허전하단 말이에요.”
하, 품 안에서 헛웃음이 들렸다.
“허전해도 내가 허전해야지. 네가 허전할 게 뭐가 있어.”
섀넌이 몸을 돌려 그와 시선을 맞췄다. 윈터는 아름다운 연인의 면면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밤새 제가 물고 빨았던 입술은 언제 부어올랐었냐는 듯 정갈하게 윤을 냈고, 몇 번이고 깨물었던 유륜 주위는 깨끗했다.
흔적이 남으면 좋을 텐데…….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윈터가 손끝으로 그의 유륜을 쓸었다. 섀넌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파요?”
“그럴 리가.”
“어제 그러셨잖아요. 내가 밤새 빨아 주면 아침에 여기가 예민해진다고.”
엄지 끝으로 작은 유두를 살살 굴리며, 윈터가 물었다.
“정말 그래요?”
“……조금.”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돌린 섀넌이 윈터의 가슴팍에 이마를 붙이며 작게 대답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놓는 얼굴이 야했다.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윈터는 섀넌의 입술 새로 작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가 살짝 가팔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세게 유두를 누르면 어깨가 미세하게 움츠러들고 눈이 감긴다. 아마도 아침부터 성감대를 자극당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햇살이 내려앉은 유백색 피부와 부스스하게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가늘게 뻗은 목선, 내리감은 눈꺼풀 아래로 길게 늘어진 속눈썹은 그의 인상을 연약하다 못해 애처로워 보이게 했다.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윈터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꼭 눌렀다. 습관처럼 입을 벌리며 제 입맞춤에 응해 주는 작은 입술이 귀여웠다. 고개를 기울인 윈터가 그 입술 틈새로 혀를 밀어 넣으며,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맞붙었다. 윈터는 제 몸에 깔려 시트 아래로 푹 잠겨 드는 작은 몸을 더 깊이 끌어안았다.
“응…, 읏, 윈터.”
조금만 더 하고 싶은데…….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평소보다 조금 높아진 체온과 딱딱하게 기립한 성기의 감촉이 좋았다. 그러나 몇 번 비비고 나면 도리어 섀넌은 고개를 뒤채며 자신을 밀어낸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잖아.”
그는 자신보다 현명하고 이성적이다. 당신의 안에 내 몸을 욱여넣은 채로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그 누구보다 밀접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고 하면 섀넌은 아마 웃을 것이다.
윈터가 순순히 상체를 세우자, 섀넌이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머리맡에 널브러져 있던 가죽 구속구를 집어 든 섀넌이 그것을 바닥으로 툭 던졌다. 딸려간 사슬이 차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간밤에 섀넌은 제 양 손목이 결박된 것을 얼마 참지 못하고 구속구를 끊어 버렸다. 덕분에 윈터는 섀넌의 인내심이 때로는 자신보다 더 부족할 수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윈터가 그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일단 씻을까요?”
이불을 목 끝까지 두른 섀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욕조 채워 두고 다시 올게요. 윈터가 가볍게 입을 맞추며 속삭이고는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켰다.
섀넌의 시선이 곧바로 윈터의 몸에 들러붙었다. 어깨와 팔을 타고 내려간 시선이 가슴과 배를 훑고 장골근 아래로 주루룩 미끄러졌다.
“…오늘도 예쁘네.”
웃음이 걸린 목소리였다. 얼굴에 뜨끈한 열이 오른 윈터가 입을 가렸다.
“……저 또 귀 빨개졌어요?”
“응.”
섀넌이 푸스스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는 간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트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홀린 듯 빤히 보던 윈터가 얼른 몸을 돌렸다.
……바지를 챙겨 입어야겠다.
* * *
“그건 여기.”
내벽 공사를 새로 하기 전에 벽면을 장식한 소품과 진열장을 정리하던 섀넌이 윈터의 손에 들린 대리석 조각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인부들이 실수로 깨뜨리면 골치 아프니까 최대한 정리하고 가는 게 좋아.”
그들이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섀넌과 윈터는 다른 도시에 머물 예정이었다.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소요되는 일이라, 두 사람은 아침부터 종일 저택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윈터는 제가 내려놓은 물건을 때때로 섀넌이 다시 반듯하게 돌려놓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름 줄을 맞춰 정리한다고는 하는데, 그의 눈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섀넌의 세계는 매우 질서정연했다. 정갈하고 고요했으며 차갑고 규칙적이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예기치 못한 변수가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윈터는 그게 모두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지난 밤처럼 말이다.
섀넌은 제가 스스로 손목을 풀고 그를 안았을 때 더욱 흥분하며 아래를 조였다. 게다가 자신이 그의 손목을 결박했을 때 얼마 못 가 구속구를 끊어 버리며, 스스로 정해 둔 규칙을 깨지 않았던가.
자신을 통제할 때의 얼굴이든, 제 밑에 깔려 신음할 때의 얼굴이든,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찬란했다.
그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존재다. 제게는 너무도 과분한 연인이었다.
“얼굴 뚫어지겠어.”
윈터가 방금 내려놓은 대리석 장식을 반듯하게 돌린 섀넌이 바닥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안아 들며 말했다. 그제야 제가 너무 섀넌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는 걸 인지한 윈터가 얼른 그의 손에서 상자를 가져갔다.
“…음.”
들고 있던 상자를 빼앗기자 섀넌의 얼굴이 약간 난처하게 구겨졌다.
“왜요?”
“그건 내가 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윈터가 상자를 내려다봤다. 불룩한 무언가가 검은 천에 덮여 있었다. 한 손으로 그것을 젖히자, 박제된 늑대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괜히 민망해진 섀넌이 변명하듯 손을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러셀이 쓸데없는 것까지 구현해 놓았지 뭐야.”
아마 비어 있는 제 수많은 저택 중 하나에서 가져온 것일 터다. 그 저택들은 앞으로 윈터와 자신이 언젠가 머물게 될지도 모르는 곳인데, 조만간 러셀을 시켜 박제 장식을 모조리 치우게 해야겠다.
“이리 줘.”
“괜찮아요.”
윈터가 웃으며 상자를 안았다. 섀넌이 못마땅한 듯 침음하며 그와 창고를 나왔다.
지하 계단을 오르며 윈터가 가볍게 물었다.
“다른 저택에도 이런 박제가 많아요?”
“음, ……그렇지.”
“되게 귀여웠겠다.”
윈터의 말에 섀넌이 눈을 일그러뜨리며 걸음을 멈췄다. 생각지도 못한 말인 데다 몹시 괴상한 말이었다. 윈터가 짧게 웃으며 얼른 말을 보탰다.
“박제 말고요, 당신이요.”
섀넌의 얼굴이 더욱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러셀이 그러는데, 예전에 늑대 박제하는 걸 좋아하셨다면서요.”
“…철없던 시절 얘기야.”
“그 시절의 섀넌을 못 봐서 아쉬워요.”
윈터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만약 그때 우리가 만났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섀넌이 나도 박제했을까요?”
“……그랬겠지.”
만약 과거의 자신이 윈터를 만났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손에 넣어 박제했으리라.
머리뿐 아니라 전신 모두.
“당신과 함께 있는 거라면 그것도 좋았을 것 같아요.”
윈터가 속없이 웃었다.
……바보같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진 섀넌이 그의 턱을 잡아 고개를 돌리게 했다.
“날 만지지도 못하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건데도 좋아?”
“…….”
“내가 다른 사람과 침대에서 뒹구는 걸 벽에 걸려서 꼼짝 못 하고 지켜보는 게?”
윈터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아뇨.”
“잠깐 묶이는 것도 못 견뎌 했던 주제에.”
섀넌이 가볍게 웃으며 그의 턱을 놨다.
늑대 박제가 담긴 상자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섀넌의 허리로 뜨거운 손이 감겼다. 벽으로 그를 부드럽게 밀어붙인 윈터가 깊게 입술을 겹쳤다.
순간적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던 하얀 손이 얌전히 어깨를 타고 올라와 목에 감겼다. 맞물려 있던 살갗이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지금이 좋아요.”
“…….”
“이렇게 만질 수 있고, 안을 수 있는 지금이 훨씬.”
아랫입술이 아프지 않게 깨물렸다가 놓여났다. 입가와 뺨, 콧잔등과 눈가에 차례로 입술이 찍혔다. 마지막으로 닿은 이마에서 떨어진 입술 새로 뜨거운 숨이 흩어졌다.
뒤로 물러나는 윈터의 목으로 흰 손이 감겼다. 커다란 몸이 섀넌에게 확 끌려갔다.
어둑한 지하에 질척한 소리가 깔렸다.
* * *
저택을 떠나기 전에 인부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도개교를 내리던 섀넌이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했다. 우편함이 없어 아무렇게나 던져진 편지였다.
이곳으로 편지를 보낼 사람은 카일과 엘리자베스, 아니면 러셀뿐이었으므로, 섀넌이 성가신 얼굴로 그것을 주워 들었다.
“러셀한테서 온 건가 봐요.”
등 뒤로 다가와 섀넌의 허리를 안은 윈터가 어깨너머로 편지를 들여다봤다. 내용을 보지 않아도 편지에 배어 있는 냄새가 출처를 말해 주고 있었다.
섀넌이 귀찮은 눈으로 편지를 열어 대충 훑었다. 예상대로 딱히 궁금하지 않은 얘기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이곳의 대우가 무척 좋다는 둥, 연구할 게 많아서 5년으론 부족할 것 같다는 둥, 더럽게 추워서 감기약을 달고 산다는 둥…….
문득 섀넌의 시선이 어느 한 구절에서 멈췄다.
갈리나가 뒤늦게 각인 상대를 찾아 다음 달에 혼례를 치른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도 왕의 혼례는 큰 행사라, 성내가 굉장히 어수선해졌다는 말이 그 아래로 이어졌다.
섀넌이 석연치 않은 얼굴로 편지를 접어 근처에 있던 화로에 던져 넣었다. 꼭 태울 필요 없는 편지였음에도 습관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요?”
윈터가 그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섀넌이 여전히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 *
‘늑대들은 각인 후 평생 제 반려와만 짝짓기를 하며, 이는 본능에 새겨지는 절대적인 이끌림이다.’
섀넌은 언젠가 늑대족 관련 서적에서 읽었던 구절을 머릿속으로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각인 전에야 늑대들도 자유로운 연애를 하지만, 각인 후엔 오직 한 사람에게만 모든 본능이 향한다고 했다.
……윈터는 제게 각인이 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각인 상대를 만나지 못한 걸까.
그가 윈터를 골똘히 응시했다. 윈터는 큰 자루를 열어 찻잎을 보여 주는 노파의 얘길 들으며 손으로 그 잎을 만져 보고 있었다.
윈터가 두 손으로 찻잎을 가득 담아 섀넌 앞에 내밀었다.
“섀넌, 이건 어때요? 지난번에 마셨던 그 차랑 향이 비슷하죠?”
“너 나한테 아직 각인 안 했지.”
“…….”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이 여과 없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던 윈터가 옆에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노파를 향해 고개를 돌려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이걸로 주세요.”
노파가 찻잎을 포장하러 간 사이, 윈터가 작게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갈리나가 각인을 했다잖아.”
“…그런데요?”
“넌 왜 나한테 각인 안 해?”
한참이나 입술만 달싹이며 대답할 말을 찾던 윈터가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네요.”
노파에게서 찻잎 상자를 건네받은 윈터가 상점 밖으로 섀넌을 데리고 나갔다.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삯 마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윈터가 그를 품에 안았다.
“섀넌, 그거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에요.”
그가 섀넌의 뺨을 감싸며 웃음을 흘렸다.
“계속 그 생각만 하고 계셨어요?”
“웃음이 나와?”
“평생 각인 안 하는 늑대도 있어요. 제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할머니에게 각인하지 못했대요.”
“그건 드문 케이스겠지.”
“…근데 전 이제 완전한 늑대족도 아니잖아요.”
“노팅도 하고 발정기도 있으면 각인도 할 수 있다는 거잖아.”
섀넌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각인할 수 있다는 건, 그리고 아직 그 누구에게도 각인하지 않았다는 건,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엄한 사람과 반려로 맺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각인이 제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윈터는 아니라지만 언제 어떻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일 아닌가.
“……대체 왜 지금까지 나한테 각인이 안 된 거지?”
그게 아무리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라지만, 어쩐지 윈터가 제게 아직도 각인을 안 했다는 사실이 섀넌은 조금 꺼림칙했다.
“…섀넌은 늑대가 아니잖아요.”
윈터의 대답에 섀넌은 더욱더 심각해졌다. 어느 날 웬 늑대족이 나타나서 그를 채가면 어쩌지. 물론 그렇게 되면 윈터나 그 개새끼나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지만…….
“각인은 쌍방이라, 서로한테 영향을 미쳐요. 서로가 서로에게 속박되는 거예요. 근데 섀넌은 나한테 각인을 못 하니까, 아마…….”
“…….”
“저도 평생 각인할 일 없을 것 같은데.”
윈터는 각인에 대해 정말로 별생각이 없었다. 막연히 가능성 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섀넌의 말이 몹시 뜬금없고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각인하지 않았어도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제 세상엔 섀넌이 전부였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없다. 늑대들의 각인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몰라도 제겐 굳이 필요치 않은 본능이었다.
꼭 그따위 본능이 아니어도 자신은 변함없이 섀넌을 사랑할 것이다.
“나 말고 다른 늑대족과 각인되면 그땐 어떻게 할 건데.”
못마땅한 얼굴로 저를 노려보는 섀넌과 시선을 마주한 윈터가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절 죽여 주세요.”
섀넌이 한숨을 내쉬며 마차 벽에 몸을 기댔다.
“…그건 당연한 거고.”
윈터가 웃음을 흘리며 그를 제 쪽으로 당겨왔다.
“그럴 일 절대 없어요, 섀넌.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몸에는 섀넌이 목숨을 걸고 나눠 준 피가 흐른다.
인간 사회에서 늑대족을 마주칠 확률도 낮을뿐더러, 불멸자가 된 자신에게 각인 본능이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불안하면 맹약이라도 맺을까요?”
섀넌이 고개를 휙 돌려 윈터를 쳐다봤다. 그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걸로 옭아맬 만큼 윈터에게 믿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각인이든 맹약이든, 그딴 구속력 없이도 자신들은 언제까지고 변함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다만 각인이라는 아주 작은 변수의 가능성을 남겨 두는 게 조금 짜증 났을 뿐이었다.
“……됐어.”
그러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현재를 망치고 싶지는 않아서, 섀넌은 금세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본래 이런 고민을 오래 끄는 성격이 아니었다.
각인 그까짓 거…….
“어차피 넌 죽을 때까지 내 거니까.”
* * *
별장은 매우 협소했다.
별장이라기보다는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었다. 윈터가 알고 있는 섀넌의 취향과는 매우 거리가 있어 보였다.
테라스에 있는 데이베드는 오랜 시간 밖에 방치되어 있었던 터라, 묵은 먼지를 쓸고 그 위에 깨끗한 쿠션을 깔고 나서야 앉을 수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에 알싸한 냄새가 섞였다. 장작을 여러 겹 쌓아 높이 타오르는 모닥불 위로 잿빛 연기가 치솟았다가 이내 허공으로 흩어졌다.
“리버펠에 있던 별장보다 더 작아요.”
“…나도 몇 번 안 와본 곳이야.”
늑대 박제가 없을 만한 곳을 생각하다 보니 여기였다. 정작 윈터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섀넌은 그에게 옛날 박제 장식을 보이는 게 꺼려졌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어. 공사하는 동안 잠깐 머물기엔 그럭저럭 괜찮을걸. 근처에 민가도 없고.”
“괜찮은 게 아니라 너무 좋은데요.”
윈터가 제 다리 사이에 웅크리고 앉은 섀넌을 깊이 끌어안으며 웃었다.
“별도 더 잘 보이고. 조용하고.”
“대신 여름엔 엄청 시끄러워.”
“리버펠보다 더?”
“거기랑 비슷하지. 벌레 우는 소리 때문에 잠도 못 잘걸.”
섀넌이 윈터와 자신을 감싼 담요를 더 깊게 여미며 말했다.
“리버펠에 있을 때도 여름이 되면 넌 늘 잠을 설쳤으니까.”
“그래요?”
그가 손을 뒤로 뻗어 윈터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기억 안 나? 매일 베개 들고 내 침대로 꾸물꾸물 기어올라 왔잖아. 잠이 안 온다면서.”
윈터가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가 밤바람에 흐트러진 섀넌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그건 그냥 섀넌이랑 같이 자는 게 좋았던 거예요.”
“난 안 잤어.”
그가 의아한 얼굴로 섀넌을 바라봤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느낀 섀넌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말했다.
“그냥…, 밤새 네 얼굴을 들여다봤지.”
“밤새?”
섀넌이 장작 하나를 집어 앞에 있는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무슨 꿈을 꾸는지 알고 싶었거든. 눈꺼풀이 쉴새 없이 움직이니까,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을까 궁금했어.”
누군가의 머릿속을 그토록 궁금해한 건 처음이었지…. 낮은 목소리가 꿈을 헤매듯 느리게 흘러나왔다.
“…….”
검은 허공에 불티가 확 치솟았다. 새롭게 던져진 장작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며, 섀넌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가 계속…, 더 자라지 않고 이렇게 예쁜 모습에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던 것 같아.”
윈터에게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제 몸을 더 깊이 당겨 안는 체온이 느껴질 뿐이었다.
“근데 아침에 무슨 꿈을 꿨냐고 물어봐도 잘 기억을 못 하는 거야. 그래서 좀 아쉬웠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였다. 윈터는 말없이 섀넌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였다. 섀넌이 제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만큼, 자신 또한 분명히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코끝을 톡 두드리던 손, 제게 고개를 돌리며 찻잔을 내려놓는 얼굴, 침대 위에 작은 옷가지들을 늘어놓고 하나하나 펼쳐 제 몸에 대어볼 때의 표정, 제 뺨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손, 너른 품속, 그 품에서 풍기는 달콤한 체취…….
그리고 러셀이 가끔 섀넌 몰래 제게 사탕을 쥐여 줬던 일이나, 자신이 그걸 모아 섀넌에게 선물하는 바람에 러셀이 크게 혼났던 기억도.
머리 위에 펼쳐진 별만큼이나 많은 기억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앞으로도 숱한 나날을 함께 하고, 그 기억을 공유할 것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자신들에겐 각인이자 맹약이었고, 가끔 오르내림이 있을지언정 그 마음은 언제까지고 불변하리라고 윈터는 확신했다.
물끄러미 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는지, 섀넌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윈터는 쪼는 듯 가벼운 키스를 여러 번 퍼부었다.
싸르륵, 싸르륵, 불티를 토해 내며 장작 타들어 가는 소리 사이로 섀넌의 웃음이 짙게 섞여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