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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47화 (247/250)

로엔의 마나뱅크 247화

[에리뉼, 네가 여기 있다면 나와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다.]

대답은 곧 왔다. 아마 그도 나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곳을 알았지?]

대화를 시작한 이상 이곳의 위치는 곧 탐지된다. 하지만 그것은 양측이 똑같다. 내 능력으로도 에리뉼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모든 마족을 만나는 저주를 받았다. 그런 내가 위치를 찾지 못하는 곳은 지하세계밖에는 없지.]

[그런 저주라면 마족과의 계약인가? 과연, 패배하기 싫어하는 자가 있었군.]

[나는 결계를 쳤고, 이것으로 모든 마족은 패배자가 되었다. 이제 에리뉼 너만 처리하면 되는데 너는 다른 마족과 다르더군.]

[하하하, 나는 패하지 않는다. 나는 심지어 경기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너의 목적은 뭐지?]

알아도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에리뉼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이제 내 앞에서 선언을 할 것이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군.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대답을 해 주겠다. 나는 원래 이곳의 신이었고, 이제 다시 신이 될 것이다.]

[쉽지는 않을걸. 너는 몽뱃에게 받들어짐으로써 불멸자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이곳을 통째로 붕괴시키면 너는 힘의 근원을 잃게 되는 셈이지. 아무리 강해도 유한자는 유한자일 뿐, 사대 대정령의 동의가 없으면 신이 될 수 없다.]

[잘 아는군. 너 역시 신이 되려는 자인가?]

[아니, 제안은 받았지만 거절했다. 나는 유한자로 남아서 전생을 할 것이다.]

[하하하하, 전생자라. 대단하구나. 유한자로 남은 채 영원을 살아가겠다는 거냐?]

[전생자라고 해도 영원을 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유한한 삶을 살기 때문에 내 행동과 의지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다 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 네가 틀리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적어도 그대는 신이 될 자격을 갖춘 자니까. 그럼 이제 우리의 대화를 하자.]

[좋다.]

[나를 신으로 받든다면 난 너를 영원히 축복해 주겠다. 전생자로써 종말이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 주지.]

미안, 그거 해 줄 사람, 아니 신은 따로 있어.

이반 경이 신이 되면 스승인 나의 전생체를 돌봐주지 않겠어? 의리의 화신 같은 이반 경이 말이야.

[나는 너를 신으로 받들 생각이 없다. 이계의 마족들을 속여 물질계에 큰 혼란을 일으킨 이상 나에게는 싸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너는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설령 전생을 한다고 해도 저주는 계속될 것이고, 너의 모든 삶은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 되겠지.]

쩝, 이게 조금 걸리긴 하네. 만약 에리뉼이 정말로 신이 된다면 나를 저주할 가능성이 크다.

이반 경이 축복을 하고, 에리뉼이 저주를 하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삶이 드라마틱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겠지.

그거 싫다. 나는 평온하고 즐거운 삶을 원한다.

그래도 타협은 없다. 싸우기로 결심한 이상 싸울 뿐, 물질계에 두 명의 신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네가 신이 된다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나는 이곳을 붕괴시켜 너를 유한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아마 넌 절대 신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곳은 대륙 지반의 핵이 되는 지점이다. 만약 이곳이 붕괴되면 드워프들도 거의 전멸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겠지. 마족에 의한 피해? 그건 네가 일으킬 지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하하.]

[이곳의 대륙 지반의 핵이라고?]

[아득하게 먼 옛날, 드래곤이 세상을 다스릴 때의 일이다. 나는 신이 되었고, 드래곤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에게 도전했다.]

이건 내가 모르는 역사다. 전에 소환한 신도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드래곤이 떠났다고만 했다.

에리뉼의 기억이구나. 드래곤이 신에게 도전을 했었던 거야.

[그들은 강했지만 이미 불멸자가 된 나의 힘은 무한에 가까웠다. 결국 패한 그들은 나의 벌을 받게 되었지. 하지만 드래곤들은 벌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차라리 세상을 멸망시켜서 신인 나를 소멸시키려 했다.]

헐, 드래곤 이놈들이 자폭을 하려 했다는 거야? 아니지. 바다 한 가운데의 섬에 드래곤의 신전을 만들어 놓고 인간만 멸종시키려 한 거겠군. 자신들은 신전에 피신해 있고.

[그때 그들이 부수려고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대륙 전체가 뒤집혀 버릴만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곳. 나는 그것을 알고 분노했고, 가장 강력한 저주를 내렸다. 바로 그들의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드래곤이 아닌 다른 하급의 생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 알을 모두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

[설마 몽뱃이 드래곤의 후손들이라는 거냐?]

[그렇다. 드래곤은 자신들의 후손이 변질된 것에 분노하면서도 슬퍼했다. 그들은 후손에 대한 애정이 아주 강하다. 이곳을 붕괴시키면 몽뱃이 전멸한다는 것을 알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벌을 받아들였다.]

[양쪽 다 지독하군. 결국 드래곤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저주를 받은 것인가.]

이래서 에리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군.

몽뱃은 드래곤의 후손이지만 새로운 종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을 창조한 존재는 바로 신이다. 당연스럽게 몽뱃은 자신들의 창조주를 본능적으로 숭배했고, 에리뉼은 그것을 힘의 근원으로 탄생했다.

저주로 인해 탄생한 종족이 자신들을 벌준 자를 섬기게 된 것이다.

[그들이 하려던 짓을 생각하면 그것도 가볍다. 그리고 이제 너에게 새로운 선택권이 생겼지. 드래곤이 하려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자격이라고 할까? 하하하.]

[…….]

[인간은 드래곤보다 동족과 후손에 대한 애정이 약하지. 네가 나를 유한자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인간들을 희생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상의 인간들이 이루어 놓은 문명은 파괴될 것이고, 인류는 극소수만이 살아남아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의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할 말 없게 만드네. 사실은 정말 수틀리면 이곳을 붕괴하려는 생각이 조금 있었는데 말이야.

일행들과 드워프들을 지상으로 피신시킨 후, 나 혼자 지반을 붕괴시켰을 때의 피해를 계산해 보니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차피 나는 전생자이니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에리뉼의 말처럼 이곳이 대륙 지반의 핵이라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에리뉼에게 말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겠다. 너 역시 이곳에서 큰 힘은 쓰지 못하겠군? 지반이 붕괴될 정도의 힘은 말이야.]

[잘 아는군. 머리 좋은 자여.]

[너와 내가 전력으로 싸우면 거의 확실히 이곳은 붕괴된다. 그렇지?]

[부인하지 않겠다.]

[그럼 난 너와의 싸움을 피해 몽뱃들만 전멸시킬 수 있을 거야. 몽뱃이 전멸하면 너의 불멸성을 깨어지잖아.]

[하하하, 그 정도까지 되면 내가 이곳을 붕괴시키겠지. 태고의 혼란으로 되돌아가 새롭게 나를 추종할 자들을 만드는 게 좋을 수도 있으니까.]

이야기가 평행선으로 가는 듯 한 느낌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 힘을 쓰지 못한다.

양쪽이 세계 멸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라, 한쪽이 소멸할 위기에 빠지면 다 같이 죽자고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결판은 다른 방법으로 내야 하는 거군.]

[어떻게 결판을 낼 거지? 나의 영역으로 들어온 자는 그대다. 수많은 고위마족을 물리치고, 나에게까지 위협의 손길을 뻗어온 그대의 용기와 지혜에 경의를 표하고 싶구나.]

[일단 내가 그곳으로 가겠다. 너의 본체를 봐야 해답이 나올 것 같으니 몽뱃이 쓸 데 없이 나를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해라.]

[마음대로 해라. 나도 그대를 보고 싶구나. 하지만 그대는 혼자 와야 한다. 나의 모습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는 보이지 않겠다.]

[알았다.]

일차적인 대화는 끝났다.

나는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나 혼자 몽뱃의 근거지에 들어갈 테니 여기서 기다려요.”

“우리가 같이 가면 안 되는 건가?”

“아마 안 될 거예요. 에리뉼이 인정한 사람은 저뿐이니까요.”

“으음, 어쩔 수 없는 건가.”

“저도 안 되나요?”

“마리야, 이번에는 너도 안 돼. 그곳에는 나만 가야 하거든.”

“냥,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사역마는 마법사의 일부라 할 수 있으니 상관없을 거다.”

“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

캐씨의 말이 맞다. 마법사 혼자 누군가를 만날 때 사역마만큼은 데리고 들어갈 수가 있다. 사역마는 마법사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서 절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잠시 인과율을 계산해 보고 캐씨가 그것을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구나. 혼자보다는 둘이 훨씬 좋다.

어차피 에리뉼과 치고 박고 싸우는 게 불가능 해진 지금, 그를 만나면 뭔가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의지를 관철시켜야 한다. 그때 나에게 작은 조력자가 있다면 훨씬 든든할 것이다.

나는 캐씨를 한 손으로 들고 통로를 따라 몽뱃의 근거지를 행해 나아갔다.

도중에 꽤 많은 몽뱃과 마주쳤지만 그들은 나를 보고도 공격하려 하지 않고 조용히 한쪽 구석으로 비켜서서 허리를 숙이며 절 비슷한 것을 했다.

에리뉼의 초대를 받고 들어가는 나를 위대한 존재로 여기는 듯 했다.

드디어 그들의 근거지로 들어서니 드워프의 왕궁이 있던 곳만큼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옮겨도 충분할 정도의 공간에는 작은 땅굴이 수도 없이 파여 있고, 그 안에는 몽뱃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마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한참을 걸어 근거지의 중앙으로 나아가니 두께가 100미터는 넘어 보이는 종유기둥이 보였다. 정말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 한 느낌의 기둥인데, 이게 잘 보면 하나의 거대한 석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석상은 살아있었다.

“드디어 만났군. 마족 사냥꾼의 핵심인 렌 경.”

“나를 아는군. 음모의 주체자 에리뉼.”

“그대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수백 년은 더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던 게임을 빨리 끝내고, 내가 다스려야 할 자들의 고난을 줄여주었으니 전 인류의 영웅이라고 할 만 하다.”

“적어도 난 인간들이 너에게 다스려 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너와 내가 싸우면 인류에 있어 해가 될 뿐, 어떤 이익도 없는데.”

“에리뉼, 너의 본체가 생물이 아니라 사물인 종유기둥인 이상 나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막을 것이 없으니 막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대륙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나의 몸은 생물이 아니라고 가볍게 취급당할 게 아니다. 하지만 그대의 말대로 나에게는 생물의 육체가 필요하다. 신의 화신체로 삼을 새로운 육체, 그것을 위해 그대를 여기까지 부른 것이다.”

“호, 나를 너의 새로운 육체를 삼겠다고? 내 영혼을 파괴하겠다는 건가?”

“파괴는 하지 않겠다. 너를 이 종유기둥의 관리자로 삼도록 하지. 너는 네 바람대로 영원히 대륙을 떠받치며 사람들을 지킬 것이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신이 되겠지.”

“그것도 나쁜 소리는 아니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내가 신이 되었을 거다.”

“그건 이미 흘러간 과거의 선택지다. 이제 너에게는 새로운 선택지만 남았다. 종유기둥이 되어라. 렌.”

“선택은 두 개 이상의 결과물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지. 나는 종유기둥이 되지 않고, 에리뉼 너의 자아를 동결시킬 것이다.”

“재미있군. 불멸자인 나의 자아를 영원히 봉인하겠다고?”

“나에게 있어 너는 이미 불멸자가 아니다.”

“확실히 너는 나를 멸할 수 있는 자다. 재미있겠군. 누구의 영혼이 더 강한가로 승부가 날 거다.”

젠장, 사실 좀 많이 불리하긴 하다. 저놈이 나를 어떻게 하려면 스스로의 불멸성을 잠시나마 포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 육체 속에 자신의 영혼을 집어넣을 수 있으니까.

그게 유일한 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불멸성이 깨진 에리뉼이라고 해도 나보다 영혼의 힘이 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에리뉼도 승부수를 던지는 거고.

이기면 전부를 따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기둥의 신상을 본 이상 승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리하지만 싸워야 한다. 저쪽이 불멸성을 깨면서까지 승부를 걸어온 이상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냥, 너무 염려마라. 나도 있다.”

갑자기 캐씨가 앞발로 내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역마가 영혼의 싸움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약간의 위안을 얻으며 그대로 에리뉼과의 영적 접촉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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