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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46화 (246/250)

로엔의 마나뱅크 246화

*

우리는 어두운 통로를 통해 계속 나아갔다. 마법으로 기척을 지우고 땅을 밟을 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도 막았다.

중간 중간 몽뱃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지나갈 때에는 아예 범위 수면 마법을 걸어놓고 안전하게 지나갔다.

그러다가 드디어 마법이 꺼지는 지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몽뱃을 만나면 마법으로 숨을 수가 없으니 몰래 통과하기 어렵겠네요.”

“정말 마법을 못 쓰는가?”

“일단 걸어놓은 마법은 다 꺼졌어요. 이 지역 내에는 마나의 흐름이 극히 둔하네요. 쩝.”

그것뿐 아니라 가끔씩 급격한 마나파동이 일어나서 강풍과도 같은 느낌으로 지나가는데, 그때에도 모든 마법이 꺼진다.

이게 얼마나 강하냐하면 마리포즈가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다. 마리포즈의 육체에 쳐진 방어벽은 디스펠 매직 따위는 웃으면서 튕기는 수준인데, 지하세계의 마나풍은 그것을 뚫고 침투하는 것이다.

“억지로 마법을 걸고 다녀도 마나풍이 부는 순간 다 날아가 버리니, 그때 몽뱃에게 들킬 것 같네요.”

“렌 경에게도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건가? 이제부터는 싸우면서 가야겠군.”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닐세. 몽뱃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서 우리 드워프의 정예군으로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네.”

“확실히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가 불리해요. 가능한 한 본거지까지 들키지 않고 들어가는 게 좋아요.”

“그럼 어떻게 하지?”

“일단 여기서 자리를 잡고 마나풍에 대한 연구를 해 봐야겠어요. 동시에 몽뱃 몇 마리도 잡아다가 그들이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요.”

약간의 지능만 있어도 현혹마법이 걸린다. 그런데 현혹마법도 짐승 상대로 거는 게 있고, 인간상대로 거는 게 있다.

몽뱃은 인간을 상대로 거는 현혹마법에 걸리는데,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이들이 하나의 문명을 이룰 수 있는 종족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꽤 머리가 좋았을 수도 있다는 정보를 들은 이상 그들의 영혼을 조사해 봐야 한다. 영혼에는 과거의 기록이 모두 남아있어 그들이 왜 머리가 나빠졌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지역에 어느 정도 익숙해 질 때까지 움직이지 말도록 해요.”

마나의 흐름이 둔하다면 그에 맞춰서 마법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내 몸 안에 흐르는 마나가 외부의 흐름과 동조할 때까지 명상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캐씨의 도움으로 몽뱃의 순찰경로에 사각지대를 찾아서 그곳에 숨을 수 있었다. 거의 일주일동안 지하통로의 구석진 공간에 숨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는 마나풍이 부는 간격이 거의 일정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에 세 번 부는데, 이 시간이 거의 정확해서 이제는 마나풍이 부는 시간에만 멈춰서 숨고, 남은 시간에는 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몽뱃을 세 마리 잡아다가 마법적인 실험을 해 보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몽뱃의 머리가 똑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면 과거 원숭이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똑똑해지고 있군. 확실히 이놈들은 마족이든 에리뉼이든 연관이 있는 거야.”

“에리뉼일 가능성이 크네요. 원숭이들이 똑똑해질 수 있었던 것은 드래곤의 신전에서 살면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고위마족의 힘으로는 종족 전체를 발전시킬 수 없어요.”

“아마 마리의 말이 맞겠지. 몽뱃의 근거지에는 태고적 신이 남긴 흔적이 있을 거야. 에리뉼은 그것을 이용했을 것이고.”

신이 남긴 힘이 섀도우 플레인에 있는 빛의 구체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하에 또 다른 게 있을 줄은 몰랐다. 이 힘이 얼마나 큰지는 몰라도 드래곤의 신전급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몽뱃은 100년간 꾸준히 똑똑해지고 있는 중인 듯 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가 나타나 몽뱃 전체를 규합하여 근거지에서 계속 힘을 기르고 있는 것도 알았다.

“그놈들이 움직인다면 우리 드워프 일족은 큰 위험에 빠질 게 틀림없군.”

도린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사실 이건 정말 큰 문제다.

원숭이들은 아직 수가 많지 않아서 아예 전원 독살을 해 버렸다.

그러나 몽뱃은 독에도 강하고 수가 아주 많다. 한번 똑똑해진 이상 이들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대로라면 지하세계의 주도권은 드워프에서 몽뱃쪽으로 넘어갈 게 뻔하다.

드워프들의 문제라고 방치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몽뱃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도린과 킹 랄파오에게 약속을 했다.

적응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시 몽뱃의 근거지를 향해 나아갔고, 도중에 만나는 몽뱃의 무리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런데 몽뱃 중에 가끔 특이한 모양을 한 놈들이 눈에 띄였다.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놈들인데 덩치도 다른 몽뱃보다 세 배는 커 보였다.

“냥, 몽뱃의 상위종이다. 저놈들이 다른 몽뱃을 지휘하는데, 일반 몽뱃은 본능적으로 저놈들을 따른다. 죽으라고 해도 죽는 것 같더라.”

“이제는 정말로 들키면 수백 마리와 싸워야 하겠군.”

지휘자가 있으면 다들 움직임이 달라진다. 나는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도중에 통로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겠네요. 안 그러면 들키는 순간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만난 모든 몽뱃이 달려들 테니.”

“막으면 그것 때문에 우리의 존재가 들키지 않을까?”

“방어막을 치는 게 아니라 잠드는 필드를 치고, 발동시기를 일정하게 맞추면 될 거예요. 시한장치인 거죠.”

“그거 나쁘지 않군. 몰려들던 놈들이 다 잠들어버리면 확실히 뒤에서 공격당할 염려는 없을 거야.”

“사실 몽뱃은 큰 위협이 못 되요. 중요한 순간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할 뿐이죠. 그리고 그놈들이 모이면 에리뉼이 어떤 장난을 칠지 모르니까요.”

몽뱃이 정말 에리뉼을 신처럼 숭배하고 있다면 에리뉼은 그들의 영혼을 뽑아 공격마법에 응용할 수도 있다. 그건 정말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고, 어쩌면 마나파동포와 비슷한 수준일 가능성도 있다.

몽뱃이 없어도 에리뉼 자체만으로도 대책이 안 설 정도로 강하니 가능하면 위험요소는 줄일수록 좋다.

우리는 적당한 장소에 슬립 필드 마법진을 설치했다. 일회용이고, 일주일 뒤에 동시에 발동하도록 만들었는데, 효과는 확실할 거다.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면서 계속해서 나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확실히 지하에서 이동을 하다보니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되나보다.

그런데 이런 지하에서도 포트라를 소환할 수 있나? 대기의 정령이라 땅속에서는 못 나오는 거 아니겠지?

[나갈 수 있으니까 염려마라.]

[오, 포트라. 내 생각을 읽고 있었냐?]

[읽기는, 네가 보낸 거잖아. 평소에는 마인드 실드 쳐 놓고 있으면서 뭘 읽고 말고가 있어.]

[하하, 그렇지. 아무튼 너만 믿는다고, 만약 정말로 에리뉼과 맞닥뜨리면 너부터 소환할 테니까.]

[나를 너무 믿지는 마라. 그리고 자칫 잘못해서 에리뉼에게 내가 봉인 당하기라도 하면 세상은 정말 난리가 날 거다.]

[괜찮아. 그때는 나도 당했을 테니까 세상이 난리가 나던 말던.]

[지독한 놈, 제대로 해라. 네가 가는 곳 앞쪽에 확실히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데, 마족의 한계를 훨씬 초월했다.]

[역시 에리뉼이 있는 건가.]

[조심해라. 내 감각에 잡히는 걸로 보면 저쪽도 너희를 이미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크다.]

“아차!”

몽뱃이 문제가 아니지.

에리뉼이라면 주변에 접근하는 일정 이상의 힘을 감지 못할 리가 없다.

지금 우리는 지하세계에서 돌아다니는 어떤 존재들보다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포트라의 말대로 에리뉼이 우리의 접근을 눈치 챘을 것 같다.

나는 일단 논디텍션 마법으로 우리 전원의 기척을 지웠다. 눈으로 보는 것 이외에는 전혀 이쪽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마법이다.

그러나 이미 감지하고 있다면 논디텍션을 걸어도 늦은 셈이다.

촤아아아

“큿, 지독한 힘이군.”

“역시 눈치 채고 있었나.”

통로를 타고 안쪽으로부터 강력한 기세가 느껴졌다. 우리가 갑자기 기척을 지우자 상대는 자신의 힘으로 찾기 시작한 것이다.

“곧 몽뱃도 몰려 올 거예요. 어서 이 지점을 벗어나야 해요.”

“냥, 이쪽이다. 여기 샛길이 있다.”

캐씨가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 뛰었다. 급격한 경사가 이어진 좁은 통로였다.

“마리야, 날 안고 뛰어. 크리드 경, 도린을 부탁해요.”

“알았네.”

“예.”

파파파파팍

마리포즈와 크리드 경이 마음먹고 달리기 시작하면 정말 빠르다. 그들은 걷기도 힘든 좁고 어두운 통로를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캐씨는 갈레길이 나타날 때마다 잠시 살펴본 후에 한 곳을 택해 뛰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몽뱃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몇몇은 그대로 재우고 뛰었다.

한참을 그렇게 뛰자 드디어 캐씨가 멈췄다.

“냥, 이제 안전하다.”

“휴, 하지만 그놈이 우리의 접근을 알아차린 이상 기습이나 조사는 힘들겠는데.”

“어떻게 할 거지?”

“뛰면서 생각해 봤는데, 몰래 접근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요. 그냥 당당하게 에리뉼과 만나봐야 할 거 같아요.”

“그건 우리를 죽여 달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나?”

“아니요. 우리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요.”

외부에서라면 몰라도 에리뉼의 힘의 근원이 이곳 지하세계라면 싸울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막말로 이 일대의 지반을 완전히 붕괴시켜 몽뱃의 근거지를 통째로 붕괴시켜 버리면 에리뉼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거다.

이렇게 근거지 주변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 이상 에리뉼도 목 아래에 칼을 댄 것과 같은 상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위쪽에 사는 드워프 일족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지상에도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만나서 뭘 할 거지? 타협?”

“타협을 할 만한 상대는 아니고요. 아마 싸우게 되겠지요. 에리뉼은 자신의 파워를 잃지 않게 안전장치를 할 거고, 우리는 우리대로 에리뉼의 힘을 감소시킬 거고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일단 렌 경이 원하는 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나는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의지력을 퍼뜨려 에리뉼과 대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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