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244화
“몽뱃은 지하 공동 지역에 무리지어 사는 마물인데, 도구를 쓰네. 그들만의 언어도 있는 것 같은데 일종의 초음파라 우리들은 이해를 못 하지.”
도린은 심심한지 우리들에게 몽뱃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내가 원숭이도 계약을 했다고 하자 몽뱃을 떠올렸나요?”
“그놈들은 뭔가 숭배하는 것을 좋아해. 거대한 종유석이 있으면 사방에서 모아온 보석을 박아넣고 주변을 빙빙 돌며 주문을 외우지.”
“생각보다 똑똑한가 보군요.”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들이 숭배하면서 어떤 힘을 얻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 그리고 그게 싫증나면 또 다른 숭배물을 찾아 이동하거든. 이번에는 지하 호수를 숭배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다가 마족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건드렸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사실 몽뱃은 우리 드워프보다 먼저 땅속에 자리를 잡은 놈들이고 퇴치를 해도 아래쪽에서 계속 번식해서 퍼지니 상당히 골치 아프다고.”
무엇보다 몽뱃은 보석을 좋아한단다. 드워프보다 보석을 찾는 능력이 더 좋은데, 문제는 그걸 파내기 위해 지반을 긁어서 파내는 과정에 상당히 많은 지반 붕괴가 일어난다고 한다.
“한 번은 큰 공동 하나가 그대로 함몰된 적이 있었지. 몽뱃도 수백 마리는 죽어나갔겠지만 우리 드워프들도 몇 명이 피해를 봤거든. 그 뒤로는 몽뱃이 발견되면 무조건 제거하고 있네.”
도린의 말대로라면 몽뱃과 드워프들은 거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수준이다.
특히 몽뱃이 만약 우리 예상보다 생각하는 이성의 힘이 강하다면 드워프들에 대한 굉장한 원한이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몽뱃이 먼저 드워프를 적대시 한 게 아니다. 그들은 본능에 따라 보석을 캤고, 그 과정에서 드워프쪽에 피해가 나자 드워프가 몽뱃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조사를 해 봐야겠군요. 그쪽에 마족과의 관계가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면 일이 아주 골치 아플 수 있습니다. 그들을 찾아 제거하는 것도 그렇지만 만약 그놈들이 같이 죽자고 지반을 함몰시키기 시작하면 피해가 막대해질 겁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자네들을 안내하는 거네. 아무튼 킹 랄파오와 이야기를 해 보고 몽뱃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주게.”
드워프의 지도자가 킹 랄파오구나. 왕의 칭호를 가진 것을 보면 드워프들은 통일된 왕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엘프들은 몇 개의 부족이 공동연합체 형식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드워프들은 훨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일 가능성이 크다.
하긴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당하지도 않고, 정보도 거의 제한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
지하라는 궁극의 폐쇄공간에서 살아온 자들은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상식이 너무나도 다르니까.
어쨌든 당분간은 몽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나가자. 드워프들이 고민하는 부분을 안 것만 해도 큰 성과다.
나는 도린이 주는 정보를 마음속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며 암흑 속을 걸었다.
도린은 가장 앞에 서서 밧줄을 잡고 걸었고, 우리들 역시 밧줄을 잡고 도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가장 뒤에는 렉스와 마리포즈가 있었는데, 그 둘은 어둠속에서도 자유롭게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뒤쪽의 경계를 맡겼다.
사실 나와 크리드 경도 마법으로 어둠시야를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마법이 꺼지는 구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언제라도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마음의 준비를 했다.
크리드 경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마법이 꺼지는 구간 말이야. 거기서는 정령소환도 안 되는 건가? 나는 물의 정령력으로 주변 사물을 감지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건 저도 안 가봐서 모르겠어요. 정령만 소환되면 거의 불편할 건 없지만, 마법이 안 통하는 곳이라면 정령에게도 좋은 공간은 아닐 거예요.”
“그렇다면 그곳에서는 나도 원래 육체의 능력만으로 싸워야 한다는 거군.”
“모르겠어요. 하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가면 제가 어떻게든 원인을 분석해 보죠.”
마법 무효화 지대가 그런 식으로 영구히 지속된다는 것은 신급 기적이 아니면 말이 안 된다.
하급 마법만 무효화 된다던가, 아니면 주기적으로 한 번씩 마법이 꺼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것만 해도 굉장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직접 겪어보고 분석을 해 봐야 그곳의 힘의 크기와 원인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내 능력으로 생각할 때 충분히 대처법을 생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무리 지하미궁이라지만 마법을 쓸 수 있는 환경이라면 큰 위험은 없다. 단지 지반이 통째로 무너질 경우를 대비해서 하루에 한 번씩 긴급 순간이동용 마법진 설치를 해 놓았다.
지하에서 순간이동을 잘 못 하면 큰일이 날 수 있기에 좌표를 지정해 놓는 것은 거의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도 재료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지만 미리 준비를 해 왔기에 앞으로 한 달간은 계속 설치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마법진은 감지장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곳의 지반이 무너지면 바로 알 수 있다.
옆에서 구경하던 도린은 마법진으로부터 강력한 힘을 느낀다면서 나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마법진이 완성되면 다시 그 힘을 숨기는 마법을 걸어 주변에서 찾지 못하게 은폐를 시켜 놓고 길을 재촉했다.
7일 정도 미궁의 길을 따라 지하로 계속 들어가니 커다란 지하호수가 있는 거대공동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돌로 된 집들이 삼십여 채 정도 있었는데, 바로 드워프들의 마을이었다.
스톤그립,
지상과 가장 가까운 마을 중 하나로 과거에 여기까지 온 인간은 몇 명 있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일주일이나 들어와야 있다니, 드워프들은 도대체 얼마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있는 건가요?”
“지표면으로부터 대략 300킬로미터 정도까지라고 볼 수 있네. 그 아래쪽은 몽뱃이 있고.”
“거긴 굉장히 덥겠군요.”
“덥지. 나만 해도 그쪽까지는 들어가지 못한다네. 100킬로미터 정도가 한계고, 더 아래쪽은 우리 종족 중에 열에 대해 내성이 높은 자들만이 살고 있지. 그런데 또 어떤 지역은 굉장히 추워서 개발이 안 된 곳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네.”
도린은 그동안 꽤 친근해져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다.
드워프들은 이미 수천 년에 걸쳐서 지하를 계속 개발해 나가고 있는 셈인데, 그러면서 극한 환경에 몸이 적응한다고 한다. 독에 강한 자들이 생겨나고, 열에 강한 일족, 냉기에 강한 일족 등등도 있다는 것이다.
지하 50킬로미터 지점에 왕성이 있고, 대략 100킬로미터까지는 일반 드워프들이 살다고 한다. 그 아래쪽은 특이한 일족만이 들어가 계속 개발을 하는 중이고.
“그럼 이곳은 대략 어느 정도 깊이인가요?”
“30킬로미터 정도라네. 아직까지는 지하호수가 있지만 왕성 아래쪽은 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우리 드워프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물을 마시지 않지. 그것도 대부분 물이 아니라 맥주를 마시지만 말이야.”
아하, 그래서 지상에 나온 드워프들이 맥주를 드럼통으로 한 가득 마시는구나. 지하가 사막처럼 물이 부족한 곳이라는 것은 나도 지금 알았다.
“갈 길이 바쁘니 이곳 마을에서는 머물지 말고 그냥 가세. 술집에 들러 한 잔 하고 싶지만 자네들이 들어가면 다들 놀랄 테니까.”
“그렇게 하지요.”
우리는 도린 이외의 다른 드워프들과는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못했다. 마을 입구통로를 지키던 드워프들도 도린에게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을 뿐, 우리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한 것이다.
이곳에서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라는 느낌이 강해서 인사를 하면 손님으로 인정을 하는 셈이라 아예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그렇게 연약하지는 않지만 굳이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기에 그저 묵묵히 도린의 뒤를 따라서 어두운 지하통로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을 가자 드디어 왕성이 있는 지하공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공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곳이었는데, 천정이 보이지도 않았고 밤하늘의 별처럼 위쪽에서 반짝이는 발광체들이 수천 개나 있었다.
묘한 힘이 느껴지는 발광체들이었다. 지상에는 없는 물질이리라. 보석은 아닌 것 같고, 스스로 빛을 내는 물질인 듯 했다.
도린은 내가 주변을 유심히 살펴봐도 별 다른 주의를 주지 않고 그대로 앞장서서 걸었다.
붉은 돌로 된 거대한 성문을 통해 우리는 왕성 안으로 들어갔고, 안에 있는 경비병들은 도린이 드워프어로 왕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아무래도 왕이라고 해도 인간들과는 달리 그냥 친근한 존재라는 느낌? 권위주의적이지는 않았고 누구든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것 같았다.
킹 랄파오는 보통 드워프보다 두 배 정도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거인 드워프라는 느낌일까?
그리고 그가 앉은 의자 옆에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워해머가 놓여 있었는데 그걸 휘두르려면 킹 랄파오 정도의 몸집이어야만 가능할 것 같았다.
도린은 우선 킹 랄파오에게 우리가 마족과 싸우는 자들이라고 설명을 하고 지하에 이변을 감지해서 조사를 요청했는데, 자신의 생각에 몽뱃이 마족과 계약할 위험이 있는 것 같아서 안내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킹 랄파오는 잠시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워해머를 잡았다.
저 워해머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다른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자아를 가진 무기인 모양이다.
“현명한 프록티가 말하길 그대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군.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지.”
“워해머의 이름이 프록티인가요?”
“그렇다네. 왕은 바뀌어도 왕의 무기는 바뀌지 않는 법. 프록티는 우리 드워프 일족의 오랜 상담역이라네.”
“제가 프록티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습니까?”
“프록티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왕 뿐이지. 그건 허락할 수 없네.”
쳇, 내가 볼 때 프록티는 정말 오래된 자아이고 누구보다도 지하세계의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누가 저런 아티팩트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었는데 안 되는군.
“몽뱃을 조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들의 본거지까지 갈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아니라도 가능한 한 많은 몽뱃을 보고 싶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로군. 무엇보다 우리도 몽뱃의 근거지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네. 하지만 대략적으로 짐작 가는 장소는 있지.”
킹 랄파로는 도린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도린, 그대는 심층 지역으로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킹 랄파오.”
“이번에 들어가 볼 텐가?”
“기회가 있다면 가보고는 싶습니다만, 저는 열에 대한 내성이 없습니다.”
“갑옷을 한 벌 주겠네. 어차피 몽뱃의 본거지에 침투하려면 무장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들의 본거지는 그다지 덥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제가 이들을 안내하겠습니다. 지도를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이자들은 도린의 손님이니 주인 된 자로써 끝까지 책임을 지고 지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보호하도록 하게.”
이것으로 일단 몽뱃의 지역까지 갈 길은 열린 셈이다. 하지만 정말 몽뱃이 에리뉼과 연관이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다. 어차피 확인을 해 봐야 아는 문제이다.
어쨌든 킹 랄파오에게서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드워프들은 마족과 무관하다.
드워프들 역시 엘프처럼 서로 어느 정도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 그 점이 인간과 다른 부분인데, 일족 중 누군가가 마족과 계약을 했다면 왕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몽뱃, 과연 그들은 마물에 불과한 존재들인지 아니면 조금 미개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이성을 가진 종족인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