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241화
화르르르륵
뿌우가 진공상태를 만든 쪽으로부터 맹렬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허공중에 퍼져 또 작은 불기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들 기운이 완벽하게 불새에게 제어되지 않고 불기둥이 형성되기 전에 받은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의외로 대응하기 쉽겠는데!”
나쁘지 않다. 저쪽에 작은 불기둥은 이제 불새가 본모습으로 돌아와도 다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크리드 경, 저쪽 불기둥의 기운을 흡수해서 마나뱅크에 저장할 수 있나요?”
열기를 견딜 수만 있다면 저건 흡수가 된다. 그리고 마나뱅크에 처넣으면 그건 이쪽의 힘이 되는 것이다.
“한번 해 보지.”
크리드 경도 그것을 깨달은 듯 얼른 작은 불기둥 쪽으로 다가가 화염방어력을 최대로 하고 검을 근처로 가져다 댔다.
검을 이용해 힘을 흡수하는 것은 크리드 경이 도달한 경지 중 하나로 이전에는 없던 수법이다.
촤아아아아아
불기둥의 일부가 크리드 경의 검에 빨려 들어갔다.
크리드 경은 상당히 괴로운 듯 이를 악물고 참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행히도 몸이 불에 타지는 않았다. 화염의 기운을 빨아들여 마나로 바꾼 다음 마나뱅크로 집어넣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저쪽에서 다시 빨아들이려 한당.”
뿌우가 말했다.
“이쪽이 빠는 힘이 약한가?”
“아니당, 아직까지는 이쪽에 세당.”
“그럼 계속 빨아.”
“알았당.”
아직까지는 거대한 불기둥의 크기가 그다지 작아지지 않았지만 이쪽으로 빨려 들어온 힘이 적은 것은 아니다. 이대로라면 확실히 적을 약화시킬 수 있다. 더불어 크리드 경의 힘이 급격히 강해질 수도 있다.
“이놈들, 내 힘을 도둑질 해 가다니!”
퍼퍼펑
불기둥으로부터 작은 화염덩어리가 이쪽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그 정도는 내가 방어막으로 막을 수 있다.
“그래봐야 헛된 힘 낭비다. 불새.”
“꾸우우, 좋다. 네 부리로 너의 심장을 파먹어 주겠다.”
화르륵
드디어 불새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제 모습으로 돌아오니 확실히 아까보다는 조금 작게 보였다.
내 예상대로 작은 불기둥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불새는 그것을 다시 흡수하려는 듯 이쪽으로 날아오려 했다.
그러나 크리드 경이 불새의 머리를 노리고 계속 공격을 하니 그는 결국 날아오르지 못하고 땅에서 몇 번 폴짝폴짝 뛰었다.
지진으로 인해 약해진 지반은 불새의 거대한 덩치에 의한 무게로 인해 계속 갈라졌고, 불새의 발이 땅에 빠지니 중심을 잘 잡지 못했다.
역시 거대한 놈들과 싸울 때에는 지진을 한 번 걸어주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 사이 작은 불기둥은 원주인과의 힘의 링크가 완전히 끊어졌는지 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허공중에 퍼져버렸다. 이제는 다시 모이지 않으리라.
조금 아깝긴 하지만 적어도 불새가 회수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상관없다.
팍
크리드 경의 검이 불새의 눈을 긋고 지나갔다.
“꾸우우우! 네놈들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
“그냥 당해. 운석 소환!”
콰콰콰쾅
불붙은 바위 덩어리가 허공중에 나타나더니 불새의 몸통을 때렸다. 불기운은 불새에게 있어 별 것 아니지만 물리적인 타격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대표적인 9서클 공격마법이 아닌가.
내 목적은 불새가 중심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날아오르지만 않으면 성공인 거다.
공격은 크리드 경이 담당하고 있다. 불새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크리드 경은 착실하게 공격을 가했다.
그렇게 한참 싸우고 나니 드디어 크리드 경이 불새의 모든 날개를 잘라낼 수 있었다.
날개 달린 새는 새가 아니다. 불새는 급격히 생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결계를 치고 나니 마족들의 힘이 조금 더 약해진 것 같았다. 싸우는 도중에 엄한 힘을 쓰지는 못하는 듯하다. 결계로 인해 본신으로부터의 링크가 끊어졌기 때문인가?
남은 마족들을 정리하는 게 예상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꾸우우우, 네놈들을 저주한다.”
그 저주, 이미 꽤 많이 받았어. 그런데 이게 나에게 은근히 힘이 된다.
최초의 계약, 그러니까 웨어울프킹으로부터 심장보석을 받았을 때 나는 마족의 계약자들을 모두 찾아 처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파즈스와 싸울 때에도 고위마족을 소환해서 파괴하기로 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이건 일종의 계약이고, 그로인해 나는 마족을 부르는 운명이 되었다.
반대로 마족이 나에게 저주를 걸어도 소용이 없다. 나는 계약에 의해 당당한 승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저주가 오히려 계약의 완성도를 높인다.
9서클이 되면서 이것을 더욱 명확하게 느끼게 되었는데, 불새의 의지력이 나에게 흘러들어오지만 그건 내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나의 주변을 돌며 오히려 나를 보호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어쨌든 불새를 죽였다. 이것으로 왕국 하나를 뒤덮을만한 대규모 화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작은 규모의 화제는 어떻게든 끌 수가 있지만 불새 같은 것이 저 안에서 활개치고 날아다닌다면 수습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 이제 구름을 처리합시다.”
요령은 알았다.
빨대다. 빨대로 구름을 빨아들여서 크리드 경이 조금씩 마나로 바꾸어서 마나뱅크에 저장을 하면 된다. 이번에는 나도 같이 흡수를 하고, 렉스도 빨아먹으라고 해야겠다.
이것으로 거대 에너지체로 변한 고위마족을 상대하는 기본방침이 어느 정도 정해진 셈이다. 지금은 찔끔찔끔 흡수를 하지만, 이번 전투가 끝나면 한 번에 확 빨아먹는 장치를 개발할 거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아공간을 만들면 될 거 같은데, 관련 법칙을 설정하고 개발하려면 시간은 조금 걸릴 것 같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렉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렉스에게 에어 워크 마법을 걸어주었다. 허공을 평지처럼 걸을 수 있는 마법으로 나는 것보다는 불편하지만 렉스 같은 4족 보행 생명체에게는 이게 적응하기 편하다.
렉스는 이미 몇 번 연습을 했었기 때문에 내가 마법을 걸자마자 신이 나서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때,
쿠르르르르릉
“엇, 저건 뭐지?”
구름 위에 또 다른 구름이 생겨나고 있다.
검은 구름, 그것은 허공중에 생긴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한 속도로 퍼지는 중이다.
“이런, 일단 멈춰요.”
나는 렉스의 목띠를 잡으며 크리드 경에게 외쳤다.
검은 구름으로부터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저건 뭐지? 상상을 초월한 힘이다.
지상에서는 아래쪽 구름에 가려 위에 새로 생겨나는 검은 구름이 안 보이리라, 대기가 울리는 소리도 번개가 치려는 징후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하늘에 떠 있다. 검은 구름이 명확하게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래쪽에 퍼진 구름의 중앙부분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 거대한 사람의 얼굴모양이 되었다.
“에리뉼! 어째서 나타난 것이냐?”
에리뉼이라고? 설마 저 검은 구름이 그자란 말인가.
“너희들은 실패했다. 이미 파이어버드는 소멸했으니 네 마력으로 뿌린 비는 초열지옥으로 승화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뭐라고? 파이어버드가 소멸하다니.”
“너희 둘은 서로 힘을 합쳐 단숨에 이 세계를 장악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힘을 주었지만 이제 하나가 소멸했으니 계약은 실패로 끝난다. 나는 나의 힘을 회수하겠다.”
“아, 안 돼. 지금 힘을 회수하면 내 몸을 유지할 수가 없다.”
“실패한 자는 소멸하는 게 운명이지. 너의 몸은 이제 나의 것이다.”
촤아아아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은 구름 중 일부가 아래쪽 구름에 닿았다. 그러자 아까 내가 한 것처럼 아래쪽 구름이 급격히 검은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검은 구름이 나온 공간의 구멍 속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아!”
구름이 비명을 지른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안 되는지 나름 급격하게 변화하려 하는데, 구름이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통으로 빨아먹네. 저거 소화하면 꽤 힘이 세 지겠는 걸.”
우리가 불새로부터 흡수한 힘은 원래의 100분의 1도 안 된다. 사실 불새가 냉정하게 대처했으면 힘의 소모를 각오하고 우리를 각개격파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에리뉼은 저 구름을 완전히 통으로 먹는 거다.
무엇보다 지금의 에리뉼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견적이 안 나올 정도로 강해 보인다.
우리는 멍 하니 에리뉼이 구름을 빨아먹는 것을 구경만 했다. 여러 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게 느껴졌다.
일단 우리도 저런 식으로 대규모로 흡수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앞으로 에리뉼을 관찰하며 계속 연구해야겠다.
“으, 귀찮긴 하지만 극복해야지.”
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쳐지려는 것을 두 손으로 뺨을 철썩 때리며 참았다.
에리뉼, 그래도 내 눈으로 실체를 보고, 그 힘의 크기도 느꼈다.
미지의 공포보다는 형체가 있는 쪽이 대응하기 쉬운 법.
어떻게든 수를 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