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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33화 (233/250)

로엔의 마나뱅크 233화

3장 숨겨진 음모

발데스는 크리드 경의 표정과 자세를 보고 기분이 좋아진 듯 웃었다.

“크흐흐, 이 몸으로 돌아오니 예전의 생각이 나는군. 피가 끓고 투지가 치솟는 전사로써의 삶이 말이야.”

강함만을 추구한 발데스도 전사 때의 기억이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두 손을 머리위로 들어 올려 특이한 전투자세를 취했다.

카캉, 카카캉

크리드 경의 검격을 양 손의 세 갈레 창으로 내려찍듯이 막아내는 방식은 정말 나도 보지 못한 검형으로 키가 큰 사람이라면 몰라도 크리드 경보다 작은 키의 발데스가 그런 검형을 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발데스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동작만으로 크리드 경의 화려한 검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발데스의 긴 팔은 힘이 있었고, 속도를 동반한 변화를 가능케 했다.

“어때? 크리드 경이 이길 것 같아?”

미리아가 물었다. 그녀는 검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기에 그나마 무기술에도 익숙한 나에게 승부의 행방을 묻는 것이다.

“좋지는 않아. 지금은 호각인데 크리드 경의 체력소모가 더 심한 것 같아.”

발데스의 움직임은 아주 제한적이라 체력의 소모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튼튼한 성벽과도 같지만 방어에만 치중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공격을 공격으로 막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날카롭게 크리드 경과 대치했다.

“도울 방법이 없을까?”

“일대 일의 싸움이잖아. 이건 도울 수 없어.”

나는 크리드 경을 믿는다. 마법사로써, 특히 전투의 지휘자로써 막연히 누군가를 믿는 게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내지는 않지만 때로는 믿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발데스의 성격에서 이중성을 읽었다.

발데스는 전사였을 때 상당히 고지식한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독이 되어 많은 것을 잃고, 비겁해도 교활해도 강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대결을 하면 예전 그의 성격이 튀어나오게 된다.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절대로 완전히 변하지 않고 큰 사건이나 충격에 의해 바뀌어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대로 남아있는 법이니까.

나는 묵묵히 크리드 경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한 자루의 검으로 두 개의 세 갈레 단창과 싸우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셋으로 갈라진 창의 틈에 검이 끼이면 부러져 버릴 수가 있다. 웨폰 브레이커의 성격이 강한 무기다.

발데스의 긴 팔은 상당한 근육질이고, 손목힘만으로도 단숨에 검을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움직임은 아주 단순했고,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듯 했다.

반면 크리드 경은 화려하면서도 다채로운 공격을 했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한 듯 눈에 보이는 급소뿐 아니라 팔과 다리 등 공격이 성공해도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도 노렸다. 그러니까 발데스의 머리를 잘랐다고 해서 꼭 죽으리란 법은 없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생명체니까.

심장이 가슴 왼쪽에 달렸다고도 볼 수 없고, 갑자기 입에서 초음파를 뿜어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배꼽 속에서 또 하나의 손이 튀어나와 날카로운 손톱으로 적을 기습 공격하는 마족도 있다고 했다.

크리드 경의 동작은 이런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만큼 체력소모가 심했다. 그러니까 적은 우리가 인간임을 알고, 인간의 약점도 모두 파악한 상태지만 우리는 적의 신체구조를 모르니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압!”

카캉

“오!”

크리드 경이 갑자기 검을 두 손으로 쥐고 크게 기합성을 지르며 휘둘러 발데스의 무기 중 하나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자 세 갈레의 가시 중 하나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아하, 무기를 먼저 훼손시키기로 했군.”

적의 급소를 모르면 일단 무장해제를 시키면 된다. 크리드 경의 검격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자를 수 있고, 적을 노리는 게 아니라 적의 무기를 노려서 잔가지를 치려는 것이다.

“큿, 아다만티움을 자를 수 있다니, 놀랍군.”

발데스는 의외라는 듯이 훼손된 무기를 든 손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러자 온전한 무기는 여전히 위쪽에서, 두 갈레가 된 무기는 거의 땅에 닿을 듯이 아래쪽에서 움직였다.

슈슈슉

땅 쪽의 무기가 단검처럼 날카롭게 크리드 경의 배를 노렸다. 팔이 기니 확실히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마치 위와 아래에서 협공을 하는 듯 한 모습이다.

그러나 크리드 경은 물러서지 않고 검을 크게 회전시키며 일격에 두 개의 무기를 모두 튕겨냈다.

직선보다 빠른 곡선이란 저런 것인가!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내가 비록 마법으로 궁극의 경지에 올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의식을 거행하려 하고 있고, 크리드 경은 검 한 자루를 잘 다루는 기사에 불과하지만 그걸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드 경의 경지는 나도 함부로 평가하기 어렵고, 언젠가는 나와 대등한 수준까지 오를지도 모른다.

파팍

다시 두 개의 가시가 잘려나갔다. 이제 발데스의 무기 중 하나는 꼬챙이처럼 변했고, 다른 하나만 양 갈레의 모양일 뿐이다.

발데스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만만치 않구나. 좋다. 끝장을 보자.”

파파파파팍

단숨에 다섯 번의 찌르기라니!

이건 가속 마법을 걸어도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크리드 경은 발데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발데스는 크리드 경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계속해서 양손으로 찌르기를 해댔다.

파파파파파팍

여섯 번!

이건 무서운 무기술이다. 첫 공격을 피하면 둘째 공격은 더욱 피하기 어려운 공격법은 그야말로 최상위에 속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크리드 경은 결국 다시 한 걸음을 물러났고, 발데스는 여전히 따라붙으며 더욱 강렬한 공격을 가했다.

이제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디를 몇 번 찌르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크리드 경이 검을 앞으로 세우며 마주 찔러 들어갔다.

파팍

“아무리 빨리 찔러도 결국 내 몸에 박히는 것은 두 개 뿐.”

크리드 경의 한쪽 팔과 다리에는 발데스의 무기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발데스의 가슴 한복판에는 크리드 경의 박혔다.

“네 찌르기는 밖에서 안으로 조여드는 식이더군. 많이 찌르면 찌를수록 중심에서 벗어난 틈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런가. 내 최고의 공격술에 그런 틈이 있었다니, 재미있군. 하지만 아직 너는 이기지 않았다.”

“어림없다!”

발데스는 손목힘으로 무기를 비틀어 크리드 경의 팔다리를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크리드 경은 두 손으로 잡은 검을 위로 치켜들어 발데스의 몸을 두 동강으로 잘라냈다.

촤아아악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발데스도 원래는 피가 붉었구나.

동시에 크리드 경은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자신의 팔다리에 박힌 발데스의 무기를 쳐서 빼냈다. 상처가 컸지만 아직 두 다리로 서 있을 수는 있는 모양이다.

“크으, 지독하구나. 좋다. 내가 진 것을 인정하지.”

발데스는 두 무기를 땅에 버렸다. 그리고는 갈라진 몸이 다시 붙으며 몸을 돌려 나를 보았다.

“네놈의 승리다. 렌. 정말로 너의 기사가 나를 검으로 이겼구나.”

“그대도 훌륭한 전사였소. 발데스.”

“패자에게 영광과 명예는 필요 없다. 약속대로 나의 육체는 마음대로 써라. 그리고 한 가지 더 가르쳐 주지.”

“정보를 주겠다고?”

역시 발데스는 전사의 혼을 가진 놈이었군. 우훗. 파리로써 싸우다 졌으면 이렇게 순순히 육체를 넘기고 정보까지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육체를 소멸시키며 최후의 저주를 걸지도 모르는 독한 성격이다.

“나는 이 세계에 거의 처음으로 게임에 참가한 존재다. 알고 있겠지?”

“그렇지. 엘시아와 계약을 했을 정도니까.”

“나에게 이곳을 가르쳐 준 자가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자는 이 게임에 참가를 안 했더군.”

“뭐라고?”

음모의 냄새가 난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의 뉘앙스로 보면 게임이 시작되도록 선동한 자가 정작 자신은 게임에 참가를 안 하고 뒤로 딴 짓을 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다른 대부분의 마족들은 이 게임을 주선한 게 나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고, 나는 이 부분에 있어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파리인 너의 성격으로 볼 때 뒷조사를 했을 텐데.”

“했다.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 재미있는 사실이 바로 정보겠군.”

“그렇다. 에리뉼, 나에게 이곳의 존재를 가르쳐 준 자의 이름이다.”

에리뉼이라, 적어 놔야지. 고위마족의 이름은 묘한 힘이 있어서 단순히 기억만 했다가는 언제 까먹을지 모른다.

일단 이름을 알았으니 나도 조사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발데스가 이야기 해 주는 것은 다 들어야지. 지금 그의 이야기는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거짓말을 할 상황은 아니다.

“에리뉼은 고위마족이기는 해도 어디에서 왔는지가 불분명했다. 자신의 세계가 없는 방랑하는 존재라 할 수 있었지.”

“뭐라고?”

이모탈, 그러니까 불멸자는 본인이 불멸성을 얻은 근거지가 존재하고, 그곳에서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다. 예외는 있을 수 없는데 자신의 세계가 없는 불멸자라니?

어떻게 그런 자가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하나의 추측을 했다. 신이 없는 세계와, 자신의 세계가 없는 불멸자는 틀림없이 연관이 있을 거라고.”

“젠장, 설마 에리뉼이 이 세계를 버린 신이라는 건가?”

“정확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거의 확실하다. 에리뉼과 만난 것은 단 두 번, 하지만 이곳 물질계에서 만났을 때의 에리뉼은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이계에서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벗어난 듯 했다. 나는 그래서 그가 경기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었고, 어떻게든 그의 계약자를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지.”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았어. 남은 것은 내가 그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거군.”

그래서 발데스의 예측이 맞는다면 이건 정말 최악의 상태다.

설마 신이 자신의 세계에 수많은 이계의 불멸자들을 불러들여 새로운 주인을 상으로 건 게임을 시작하다니. 이건 결코 좋은 의도일 수 없다.

신은 이 세계를 버린 게 아니다. 이 세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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