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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30화 (230/250)

로엔의 마나뱅크 230화

“너희들 유한자들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힘이 있지.”

발데스는 음산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주문 같은데 마법은 아니고 무슨 선언문 같은 느낌이다.

위이이이잉

발데스의 몸속에서 작은 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작지만 모두 마기를 지니고 있었고, 순식간에 허공중에 모여서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런, 군집생명체! 발데스는 여러 영혼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군.”

“크크크크, 이 능력을 얻기 위해 나는 인간형의 육체를 포기했다. 곤충이야말로 최강의 생명체라는 것을 깨달았지.”

“군집생명체라면 벌이 낫지 않아? 왜 하필이면 파리인 거지.”

미리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는 파리가 싫은 모양이다.

“벌보다는 파리가 강하다. 벌의 독침도 강하긴 하지만 파리는 입에서 산성 액체를 낼 수 있지. 작아서 잘 모르는데, 내 파리들은 생명체를 녹여서 먹는 데 익숙하니 너희들은 뼈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발데스의 말이 맞다. 한번 쏘고 마는 독침보다는 산성을 띤 액체가 훨씬 무섭다.

나는 발데스라는 놈이 무척 머리가 좋고 독한 성격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강의 전사였다는 자가 자신의 형을 포기하고 곤충 중에서도 혐오 받는 파리의 형태로 불멸성을 얻다니.

그야말로 강해지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마법사로 치면 궁극의 매드 메이지 수준이다. 세상을 멸망시켜서라도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실행하는 성격이라고 봐야 한다.

“발데스 네놈은 틀림없이 악신일 것이야. 네놈 세계의 모든 생명체는 네놈을 원망하고 저주하겠지?”

“당연하다. 그들의 공포와 분노가 나의 힘의 원천이고, 그들의 육체는 내 아이들의 먹이다. 이미 내 세계의 생명체 중 태반은 내가 잡아먹었지. 남은 자들을 모두 먹기 전에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야 한다. 이곳을 지배하고, 이곳의 생명체 중 절반을 먹는 동안 나의 원래 세계는 회복을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쪽을 먹을 것이고.”

“으, 설마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해 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거였나.”

“크크크, 하나의 세계로는 나의 식욕에 멸망당하게 되니 어쩔 수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너무 발전만 하면 나중에는 종말이 기다리는 법이니 말이야.”

“됐거든. 발전에 의한 위기는 스스로 해결해야지 너처럼 악신이 조종을 하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건 오만이다. 인간은 한번 편해지면 절대 그것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고, 결국 계속해서 더 편한 것만 찾게 되는 법. 발전을 퇴화시켜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로 나의 역할이고, 인간들 스스로는 결코 조종할 수 없다.”

나는 반박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발데스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나는 이놈을 때려잡아서 에너지원으로 쓰기로 한 몸이니 적의 말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다.

내가 필요한 것은 바로 군집생명체인 저 파리 떼를 어떻게 상대할까 생각할 여유였다.

“미리아, 넝쿨을 서로 역어서 그물처럼 만들어. 굵은 줄기 말고 최대한 얇은 줄기들만 모아서 촘촘하게.”

“알았어.”

스스스스슥

벽으로부터 덩굴 줄기가 튀어나와서 내가 원한 대로 면적이 5미터 정도 되는 원형의 그물모양으로 짜여졌다.

“좋았어. 그걸 파리 떼가 있는 곳 근처로 보내.”

“평평한 그물로는 파리 떼를 가둘 수 없어.”

“알아. 가두려는 게 아니라 때려잡으려는 거야.”

“때릴 정도의 힘은 낼 수 없다고, 형태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아.”

“때리는 건 내가 할 테니 근처에 가져다 대기만 해.”

“응.”

덩굴 줄기가 늘어나면서 그물망이 파리군집체 바로 옆까지 이동했다.

나는 즉시 주문을 외웠다.

“포스 램!”

성문을 부수기 위한 마법의 충격파가 덩굴의 그물망을 때렸다. 그러자 그 힘으로 그물망이 튕겨 파리군집체를 때렸고, 파리들은 그 힘에 찌그러져 덩굴 사이사이에 끼어 버렸다. 신성력을 머금은 덩굴이라 파리들이 맥을 못 추고 부서지는 게 재미있다.

“역시 파리는 파리채로 때려잡는 게 제맛이지. 그물망 계속 만들어.”

“아항, 저렇게 잡으면 편하구나. 알았어.”

내가 보기에 저 파리 떼는 불에도 강할 것이고 오직 물리력과 신성력에만 조금 약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확실하게 때려잡는 게 제일이고, 군집체의 특성 상 일단 하나로 뭉쳐야 무서운 힘을 발휘하나 파리채로 계속 때려잡으면 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건 이쪽의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 적어도 파리를 소환하는 것보다 덩굴로 파리채를 만들어서 포스램으로 때리는 게 훨씬 힘의 소모가 적은 것이다.

내가 자꾸 파리 떼를 때려잡자 발데스는 기분이 나빠진 듯 했다.

“크크, 네놈이 제법 잔머리를 쓰는구나. 그럼 이건 어떠냐?”

스스스스슥

발데스가 흘린 산성피로부터 구더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얼음 밑에 깔려있던 이놈은 정말 군집생명체 소환이 특기인가?

양다리로 쓰는 공격도 크리드 경을 상대할 만큼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구질구질한 소환술이 무섭다.

츠측, 츠츠츠츠

구더기들이 얼음을 먹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법적인 것들을 흡수하는 것 같다.

“아 놔, 확실히 여러 개의 영혼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는 건 사기야.”

나는 발데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여럿이서 발데스와 싸우는 것처럼, 그도 여러 존재를 소환해서 오히려 수로 우리를 압도하려 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마족과 마족의 계약자들을 몇이나 처치한 것을 알고는 그것이 가능하려면 강력한 한방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발데스는 소환술 계열로 많은 준비를 한 것이다. 내가 필살기를 써도 한방에 전세가 역전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은 안전한 장소에서 서서히 우리를 말려죽일 계획인 것이다.

그나저나 구더기는 어떻게 처리한다?

마법을 먹는 능력이 있으니 골치가 아프네.

에잇, 날려버리자.

“뿌우 소환! 저놈들 한 구석으로 좀 몰아줘.”

“뿌우!”

촤라라라라라라

돌개바람이 구더기들을 빨아올려 벽 한 구석에 팽개쳤다. 덩치가 작은 놈들은 역시 강풍으로 털어버리는 게 최고다.

그것을 본 미리아가 아주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구더기 싫었는데 다행이다.”

“구더기 소환하는 것보다는 뿌우를 소환하는 게 힘이 덜 들지. 발데스, 또 뭐를 소환할 거냐?”

덩치 작은 놈들을 떼로 소환하면 기사인 크리드 경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파리든 구더기든 마법사인 내가 처리를 해야 한다.

나는 내 몫을 했고, 발데스의 의도를 하나씩 차단하는 중이다.

발데스는 눈알의 절반 정도를 이용해 나를 노려보았다. 상당히 기분이 나빠진 듯 눈빛으로부터 강력한 저주의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각종 방어마법으로 몸을 둘둘 말고 있기에 저주가 내 몸에 침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저주의 힘을 저주흡수해골에 보내니 해골이 점점 커져갔다.

“발데스, 네놈이 준비한 것보다 내가 준비한 게 더 많은 것 같구나. 더 이상 쓸 힘이 없다면 곧 너의 최후가 다가올 것이다.”

“크크크크, 웃기지 마라. 나의 힘은 무한하고 진정한 공격은 지금부터다.”

그래, 좀 쓰라고, 제대로 된 진짜 힘을 써야 내가 대응책을 세우지.

나는 발데스가 상식 이상의 힘을 쓰기를 원한다. 그것을 막아내든 피하든 해야 비로소 발데스의 허점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섣불리 눈에 보이는 허점을 공격해 들어갔다가 그것이 함정이라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발데스 역시 사실은 우리가 숨겨놓은 한 수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먼저 힘을 쓰지 않고 자꾸 소환술 같은 것으로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는 것이다.

“죽어랏, 아이 빔!”

촤앙

콰콰콰콰콰콰콰쾅

발데스의 눈알로부터 수십 가닥의 빛의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무작위적으로 사방으로 발사되어 강력한 파괴의 힘을 발휘했다.

“이런 무식한!”

나는 급히 미리아의 앞쪽에 삼중의 방어막을 쳤다. 나 역시 광선이 줄기에 맞았지만 이미 걸어놓은 방어마법이 그것을 굴절시켰다. 하지만 미리아 앞에 친 3중의 방어막은 굴절의 힘이 없어서 그대로 깨어졌다.

다행히도 상쇄되는 수준이지만 수십 가닥의 빛줄기 중 하나가 이정도의 파괴력이라면 상당히 골치 아프다.

“다시 받아랏!”

촤앙, 콰콰콰콰콰쾅

“아 놔, 연발로 발사가 되는 거였어?”

나는 급한 김에 미리아를 껴안고 바닥에 뒹굴었다.

상황을 보니 렉스는 아예 몸으로 막아내서 버텼고, 크리드 경은 본능적으로 피했다. 서피는 몇 대 맞아서 몸이 조금 너덜너덜 해졌지만 다시 재생을 하는 중이다.

“계속 받아랏!”

촤앙, 콰콰콰콰쾅

압도적인 힘이다. 발데스 녀석이 우리를 힘으로 밀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두 앞발로는 크리드 경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크리드 경은 빛의 줄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가 많이 흐트러졌다. 이대로라면 크리드 경이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발데스는 다른 자들을 힘으로 견제하면서 우선적으로 크리드 경을 처리하려 하는 것이다.

“네 마음대로 하게 놔두진 않는다. 미러 소환!”

눈알로 빔을 발사하는 놈에게는 반사가 최고다.

나는 발데스의 눈 바로 앞쪽에 여섯 개의 거울을 만들어냈다. 마법의 거울이고, 모든 마법과 에너지를 튕겨내는 성질이 있다. 물론 한번 튕겨내면 거울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깨어지지만 강력한 반사능력은 8서클 마법으로써 충분한 힘이라 할 수 있다.

콰콰콰콰쾅

발데스의 눈알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자신이 쏜 빔에 맞은 것이다.

“크와아악!”

눈깔이 터지니 아프지? 그 사이 발데스의 파괴광선에 몸이 반토막이 난 저주흡수해골이 두 팔로 기어가서 발데스의 배에 시미터를 쑤셔 넣었다. 아까 크리드 경이 낸 상처를 다시 후빈 것이다.

동시에 크리드 경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전력으로 발데스의 앞발 마디를 때렸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마디가 끊어지는 게 보였다.

“이놈!”

발데스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전신이 터지듯 흩어졌다. 그것은 엄청나게 많은 파리의 떼였다.

“젠장, 육체 자체가 모두 군집생명체였군.”

파리떼로 변한 발데스의 육체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다시 합쳐졌다. 조금 전까지 입었던 상처가 모두 사라진 모습이었다.

회심의 일격으로 상대의 앞발을 끊어 낸 크리드 경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괜찮아요. 저거 겉만 복구한 거고, 입은 상처는 내부에 숨긴 거니 계속 공격하면 결국 소멸하게 되어 있어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지. 그러니까 발데스란 놈은 약점이 없는 몸을 가진 것이다. 몸 전체를 소멸시킬 때까지 계속 싸울 수 있는 셈인데, 반대로 우리는 급소를 공격당하면 죽고, 또 일행 중 누군가 당하면 그만큼 전력이 약화된다.

상대하기 까다롭다.

마나파동포로도 저놈을 일격에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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