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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27화 (227/250)

로엔의 마나뱅크 227화

밖으로 튀어나간 후 외부에서 타락정령을 보니 꼴이 가관이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틈으로 액체가 줄줄 세고 있는데, 계속해서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지르지만 한번 빠져나간 액체는 곧 기화하듯 허공중에 녹아서 사라졌다.

“포트라, 보고 있냐?”

나는 일단 포트라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아까는 저놈이 나를 인식할까봐 말을 아꼈지만 이제는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보고 있다. 잘 하는 중이군. 역시 네놈은 내가 계약할만한 자격이 있다.”

“그건 됐고, 저대로 놔두면 소멸하는 건가? 아니면 남은 부분도 다 정리해야 하는지 얘기해줘.”

“지금 그만둬도 이제는 내가 처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네가 끝을 봐라. 그게 시험의 내용이었으니까.”

“그래,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야겠지. 그런데 이 공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저놈이 소멸하면 내가 천천히 정화를 할 거다. 안에 빨려 들어간 정령은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지만 공간에 쌓여있는 뒤틀린 기운은 되돌릴 수 있다.”

“알았어. 그럼 공간 쪽은 신경 끄고 저놈만 확실하게 정리하면 되는 거네. 따로 지원해줄 힘은 없어?”

“뭘 원하는데?”

“내 공격마법은 무엇이든 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아까처럼 상대의 덩치가 너무 크면 문제가 되거든. 저놈이 얼마나 남을지 모르지만 가능하면 좀 작게 줄여주던가 뭉쳐주던가 했으면 좋겠어.”

“그건 가능하다. 이 공간 자체를 눌러서 10분의 1 크기로 줄여주마.”

“역시 그게 가능하지? 후훗.”

예상대로다. 타락정령의 몸이 분해되어 힘이 약화된 지금 공간도 압축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포트라를 비롯한 대정령은 정령계에서는 신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공간자체가 축소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도 같이 축소된다. 마찬가지로 공간이 찌그러지면 안에 있는 물질이나 생명체도 같이 찌그러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나파동포는 마나뱅크라는 아공간으로부터 소환하는 힘이기 때문에 공간의 크기나 왜곡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공간을 찢어버릴 수도 있는 힘이다.

개미가 마나파동포를 쏴도 내가 쏘는 것과 같은 굵기로 나갈 것이다.

“자, 타락정령. 이제 끝장을 보자.”

나는 얼음 덩어리를 깨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나가자마자 마법을 사용했다.

“본신 카피.”

촤촤촤촤촤

순식간에 내가 다섯 명으로 늘어났다. 그것은 환상마법의 극치인 생명체 복사 마법이다. 환상의 실체화와 자동적인 움직임을 부여하는 데 가장 편리한 것은 바로 자기자신의 복제이기 때문에 생겨난 마법이다.

“흩어져서 알아서 공격해.”

내가 명령하자 내 복제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저마다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공격마법으로 솔직히 너무 단순해서 나 같지 않았지만 적이 그걸 단숨에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저들이 쏘는 공격마법은 모두 진짜다. 하급마법이기는 해도 충분한 살상력을 가진다.

“이놈! 네놈이 내 새로운 몸을 분열시키다니.”

타락정령의 일부가 뭉쳐지더니 아까의 의식체와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크기는 달랐다. 거의 일 킬로미터 정도의 크기다. 10분의 1로 줄었지만 아직 거대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공간 자체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절대적인 크기로 따지면 저놈은 지금 100미터 정도다. 마나파동포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아직 안 끝났다. 이제 끝을 내자.”

나는 냉정하게 외치며 마나파동포를 쐈다. 그러자 아까보다 열배쯤 굵어진 마나파동포가 펑 하고 타락정령의 머리를 정통으로 관통했다. 그리고 뒤이어 충격파가 얼굴 전체를 부숴버렸다.

“역시 충격파의 방향을 조종해서 파괴력을 강화시키면 효과가 좋군.”

이제는 충격파가 내 쪽으로는 오지 않고 정면 쪽으로만 방사형으로 퍼져나간다. 미스릴 우산을 펼 필요도 없다.

마나파동포로 약해진 부분을 충격파로 다시 파괴하는 것이니 효과가 발군이다.

“크으으으! 어떻게 이런 파괴력이.”

타락정령의 몸통에서 몇 개의 눈알이 생겨나며 몸 전체로 중얼거렸다. 파괴된 머리부분도 다시 생겨나려고 불쑥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타락정령은 아직 자신이 10분의 1 크기로 작아진 것을 모른다. 그냥 내 마나파동포가 열배로 커졌다고 느낄 뿐이다.

“계속 먹어라. 죽을 때까지 계속.”

펑, 펑, 펑, 펑

요컨대 재생보다 소멸이 빠르면 되는 거다. 마나파동포에 직격한 부분은 아예 소멸을 해버리니 두말할 필요도 없고, 충격파에 당해 분해되어 떨어져 나간 부분 역시 공간 속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타락정령은 어떻게든 자신의 형체를 유지하고 반격을 하려 했지만 나는 틈을 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몸 전체를 부수니 상대는 재생하기 바빠서 다른 짓을 할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마나파동포를 30방정도 쐈을까?

드디어 타락정령의 몸 전체가 펑 하고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정말 인간 크기의 의식체만 남았다.

“흐으으, 내 몸이, 고위 영격체가 될 수 있는 내 새로운 몸이 이렇게 허무하게 부서져 버리다니.”

아직도 타락정령의 의식체는 자신이 파멸한 것을 믿기 어려운 듯 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의식체도 거의 투명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미 그는 죽었고, 그냥 잔류사념 같은 것만 남아서 생의 미련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포트라, 이걸로 된 거지? 이놈이 소멸하면서 발생하는 마기와 오염성분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후훗, 그정도는 쉽지.”

촤아아아아

거대한 돌개바람이 일어나며 포트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까지는 이 공간이 오염되어 있지만 타락정령이 소멸된 지금 포트라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역시 일단 시키고 볼 일이군. 설마 정말로 타락정령을 소멸시킬 줄이야.”

“쯔쯔, 내가 알면서 속아 넘어가 준건지는 알지? 지독한 놈하고 싸워줬으니까 이번 의식은 확실하게 협조해라.”

“그건 염려마라. 사실 네가 결계를 치는 것은 우리 대정령들도 찬성하는 부분이다. 결계를 치는 순간 네놈이 위험해지는 게 문제인데, 타락정령을 처리할 정도의 능력이면 고위마족의 현생체도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겠다.”

“아니, 그건 너무 믿지 말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좀 도와줘. 고위마족의 현생체는 확실히 조금 빡세거든.”

한 마리씩 나오면 몰라도 둘 이상이 같이 오면 인간적으로 힘들다. 어찌어찌 이겨도 이쪽에서 희생자가 날 가능성이 크니 이 기회에 대정령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

“대정령이 소환될만한 공간을 만들까? 그놈들과 싸울 때 포트라 네가 직접 나와서 도와주면 되잖아.”

“내가 체면이 있지 어떻게 직접 싸우겠냐? 이렇게 하자. 다른 대정령과 상의해서 네 지팡이에 박혀 있는 엘레멘탈 마정석을 열배로 강화시켜 주겠다. 그 정도의 정령력이면 파동만으로도 고위마족의 능력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으니 아마 싸울 만 할 거다.”

“오호, 이걸 열 배로? 콜, 그거 좋아. 아주 좋아.”

이런 횡재가 있다니. 현 상태로의 엘레멘탈 마정석만 해도 세상에 둘도 찾기 어려운 보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게 두 배나 세 배도 아닌 열 배로 강화되면 그건 정말 삭풍의 창보다 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포트라의 말대로 엘레멘탈 마정석의 힘을 개방하기만 해도 웬만한 마기는 밀려날 것이고, 또 내가 쓰는 마법 중 원소 계열의 공격마법은 위력이 열배로 뻥튀기 된다.

궁극의 공격마법인 마나파동포가 있지만 실제로 싸우다보면 이런 저런 효과가 있는 여러 가지 공격마법을 잘 섞어서 써야 하는데, 이게 다 강화된 상태로 나가면 고위마족이고 뭐고 절대로 질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이렇게 강화된 엘레멘탈 마정석은 싸움이 끝난 뒤에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힘을 유지한다는 게 좋다.

“너희들이 타락정령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구나. 나에게 이런 특혜를 베풀다니.”

“정령은 기본적으로 친구를 속이지 않는다. 받은 만큼은 주게 되어 있지.”

“말도 안 하고 강력한 존재와 싸움붙이는 건 속이는 게 아니란 말이지? 나도 명심했다가 다른 놈한테 써먹어야지.”

“그런 부분은 대충 잊어라. 아무튼 수고했다. 이제 물질계로 돌아가라.”

“잠깐, 가기 전에 네가 이 공간을 정화하는 것을 구경하고 싶어.”

“열 배로 강화된 엘레멘탈 마정석으로도 만족하지 못 하는 건가?”

“그냥 구경만 하는 거는 괜찮잖아. 이건 대가라기 보다는 내 호기심 때문이라고.”

“호기심이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법사의 호기심은 말릴 수가 없군.”

아싸, 구경을 허락 받았다.

사실 나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포트라가 공간을 정화하고 또 기존의 공간과의 격리를 풀어 하나로 합치는 과정을 한번 보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

이곳은 정령계 내부에 형성된 일종의 아공간인데, 신기하게도 사방에서 다른 일반 정령들을 끌어들이는 기능이 있다.

그걸 포트라는 고치겠다고 하는 것이니 마나를 운용하여 공간을 제어하는 또 다른 노하우가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의식을 집중해서 포트라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포트라는 거대한 돌개바람으로 변해 공간 내부에 쌓여있는 모든 부정한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허, 뿌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돌개바람이구나. 역시 대정령의 힘은 대단하네.”

신급은 신급이다. 포트라랑 정면으로 얼굴 붉힐 일이 없고, 여태까지 티격태격 거리면서도 친분을 유지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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