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217화
통운의 몸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힘을 모으는 것 같다.
“워터워킹.”
나는 물위를 걸을 수 있는 마법을 시전하고 비스듬히 달려 그의 옆쪽으로 위치를 이동했다. 늪지 위에서도 평지처럼 달릴 수 있기에 이곳의 싸움은 나에게 유리한 것이다.
그때 통운이 몸을 돌려 내 쪽을 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크왁!”
바지지지직
입으로 검은 뇌전을 뿜는군. 침이 묻어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순간적으로 워터워킹의 효과를 껐다. 그러자 내 몸은 늪에 쑤욱 하고 빠져 들어갔다. 통운이 뇌전의 브레스를 뿜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
원래 늪은 보통 물과는 달라서 흡입력이 아주 강하다. 진흙탕 속에 빠지면 발을 빼기가 무척 힘든 것과 같은 이치이다.
“프리무빙.”
나는 주변의 압력을 제거해주는 마법을 마법으로 늪 속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스스스스스
늪 속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 나는 통운의 바로 앞에서 솟구치듯이 위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용해 창을 찔러 넣었다.
“이크!”
통운은 급히 허리를 굽혀 피했다. 내 창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본능적으로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나의 무기는 창뿐이 아니다. 거인의 힘을 가진 나의 육체가 있다.
퍽
발로 통운의 허리를 치니 그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튕겨서 굴렀다. 그리고 그곳은 땅이 아니라 늪지대였다.
통운은 아차 하는 사이 하반신이 늪에 잠기자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달려서 그의 옆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통운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고, 나는 그대로 달려서 통운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통운은 고개를 완전히 180도 돌릴 수는 없는지 반대편으로 휙 하고 돌려서 나를 보려 했다.
그 짧은 순간을 나는 노렸다. 크리드 경하고 수련을 할 때 항상 당하던 패턴 중 하나로 이쪽의 움직임이 자유롭고 빠르면 상대의 발을 묶으며 주변을 빙빙 돔으로써 빈틈을 만드는 것이다.
늪지대에 하반신이 잠기는 순간 이 상황은 예견되어 있었다. 나는 빠르게 통운의 목 뒤쪽으로 창을 찔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통운이 늪 아래쪽으로 잠수를 해 버렸다. 그 역시 눈으로 보지 않아도 사방을 살필 수 있는 감각이 있나보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잠수한다고 너도 하면 안 되는 거야.
너 낚인 거거든.
“블러드 프리즈!”
쩌저저적
늪이 굳었다. 거의 바위덩어리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이곳에 대기하면서 나는 늪지 위에서 통운과 싸울 것을 예측하고는 늪에 마법을 걸어놓았다.
땅속에 강력한 상대를 봉인하는 방법은 예전부터 많이 쓰는 방법 중 하나로 통운은 스스로 봉인 당하러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그의 공격을 잠수해서 피한 것을 보고 그도 따라했지만, 그게 바로 내가 노린 바였다.
늪이 굳으며 보통 사람은 흔적도 남지 않고 찌그러져버릴 압력이 발생했다. 육체를 가진 존재라면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통운은 이미 반마족의 형태로 변했다. 땅속에 여전히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나는 그곳을 향해 삭풍의 창을 박아 넣었다. 제발 정수리 한 가운데에 박혀랏!
팍
꽈드드드등
“어억!”
이번에는 내가 조금 늦었다. 창이 통운의 몸에 닿기 전에 이미 다크썬더브레스가 튀어나와 봉인을 깨고 나를 덮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삭풍의 창이 뇌전의 기운을 갈라서 내 몸에는 거의 닿지 않았다.
파지지지
결계로브의 소매가 그을리면서 검게 변했다. 이 뇌전은 결계로브로도 손상을 시키는구나. 제대로 맞으면 안 되겠다.
통운의 능력은 단순하면서도 강했다. 다른 잡다한 능력이 없는 대신 뇌전의 기운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하지만 아직 통운은 늪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봉인을 깨고 땅이 갈라지기는 했지만 내가 누르는 힘에 더욱 아래쪽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대회전!”
콰르르르륵
늪이 요동을 쳤다. 지반이 풍차 돌아가듯이 연속해서 뒤집히며 마구 돌아갔고, 안에 갇힌 통운은 순식간에 몇 바퀴를 돌아서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나 역시 늪 속에 들어갔다.
통운을 공격하러 간 게 아니라 약간 거리를 두고 오히려 통운보다 더 깊게 빠져들었다.
상하 감각이 사라진 통운은 아마 나의 위치를 인식하고 그곳을 지표면 위쪽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늪속에서의 싸움은 처음이지만 옛날에 물속에서 싸운 적은 있는데, 그때에도 상대를 이렇게 속여서 스스로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만들었었다.
꽈드드등
다시 한 번 늪지대가 요동을 쳤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통운이 다시 뇌전브레스를 쏜 것이다.
가까스로 피했다. 눈으로 보고 쏜 게 아니라서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통운이 내 위치를 인식하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이쪽으로 오라고, 땅 위로 나가지 말고 여기서 나하고 놀자니까.
나는 속으로 어서 오라고 기원하듯 중얼거렸다.
드드드득
땅이 움직였다. 통운이 나에게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를 꺼내 마나파동포의 시동어를 외웠다.
“게이트 오픈.”
땅속에서 마나파동포를 쓰는 게 바로 나의 필승전략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거의 패턴화 되어서 적이든 나든 지표면 아래로 들어오는 순간 승리가 느껴진다.
우우우우웅
늪이 끓어오르듯 흔들렸다. 나도 그렇지만 통운도 뭔가를 하려는 듯 했다.
아하, 이놈이 거리가 있어서 빗나갔다고 생각하고 내 바로 앞쪽까지 와서 뇌전브레스를 쏘려는 거였군. 확실히 땅속에서는 회피가 쉽지 않으니 거리가 가까우면 피할 수 없지.
물론 그건 양쪽이 모두 해당되는 소리고, 마나파동포와 뇌전브레스가 부딪치면 어떻게 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펑
끄아아아아악
거리가 가까우니 통운이 온몸으로 지르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우리 둘 사이의 흙덩이는 거의 소멸되어 빈 공간이 형성되었고, 뇌전의 브레스는 마나파동포에 휘말려 오히려 통운의 몸에 되돌아갔다.
통운은 몸통 한 가운데가 뻥 뚫리고, 충격파에 의해 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찢어지면서 자신이 쏜 뇌전의 브레스에 의해 서서히 가루가 되어갔다.
“봉인!”
촤촤촤촥
사방에서 늪이 밀려들어 가루가 된 통운의 육체를 한군데로 모았다. 그리고 그대로 바위처럼 굳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거대한 힘의 충돌의 흔적을 지우려는 듯 빠르게 빈 공간을 메웠다.
“미스릴 우산이 부서졌네.”
나는 지팡이로부터 미스릴 우산 부분을 떼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에 강력한 힘이라 쏘는 쪽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지만 미스릴 우산과 결계로브가 있으니 몸이 망가지는 것을 최대한 막아준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쉬다가 서서히 지표면 위로 올라갔다.
“앗! 야쿰이다.”
“그럼 아까의 비명은 칸 통운의 것?”
통운의 비명이 땅위 쪽까지 들렸나보구나. 그들은 하늘로 엄청난 힘이 쏘아져 나간 이후 잠잠해지자 승부가 났음을 직감했지만 누가 이겼는지 확신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우오오오, 칸 야쿰 만세!”
거인족들이 함성을 질렀다. 덩치가 거대하니 밀림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를 낸다.
그러자 곧 통운의 부하들도 눈치를 살살 보다가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칸 야쿰 만세!”
“위대한 승자, 칸 야쿰!”
이놈의 아부는 종족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똑같구나.
나는 씁쓸한 웃음을 살짝 짓고는 창을 든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어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함성이 더욱 커졌고, 통운의 부하들은 아예 무릎을 꿇고 나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대결이 승자가 부하들을 다 거두는 것이었으니 그들은 이제 나의 부하다.
밀림식으로 말하면 다 내 노예가 된 것이고, 그들의 가족과 기르는 가축까지도 모두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정리하고 돌아간다. 통운쪽 영역도 이제 내 것이니 그쪽에서 모아놓은 재산도 확인하라고.”
나는 모리안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코끼리 위에 올라탔다.
나와 야수군단, 그리고 거인족들이 앞에서 움직이고 통운의 부하들이 뒤쪽에서 졸졸 따라왔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원주민 병력을 얻어 부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칸 야쿰, 통운의 본거지 쪽에서 두 개의 최상급 마정석이 나왔습니다. 각 부락에서 바친 것까지 합치면 이제 모두 열두 개가 되었으니 마법의 탑도 열두 개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모리안이 보고를 했다.
“최상급 마정석은 모두 빼돌리고, 대신 하급 마정석을 끼워. 그리고 마찬가지로 하급마정석을 이용해서 추가로 30개를 더 만들자고.”
“예? 하급마정석으로 탑을 만들면 시동도 제대로 안 할 건데요.”
“어차피 형식적인 거잖아. 하급마정석이 아니라 그냥 돌을 끼워놓아도 마나뱅크는 찾을 수 있어.”
“그건 그렇지요. 호호.”
“모두 42개의 송신탑, 아니지 마법의 탑이라고 해야지. 암튼 그걸 만들면 그땐 문명인들이 바짝 긴장할 거야. 아마 전 대륙에서 막아야 한다고 들고 일어날걸.”
“그거야 당연하겠죠. 정말 우리가 마나뱅크를 먼저 찾아내면 그들은 끝장이니까요.”
“그렇지. 통운까지 제거했고, 내가 정식으로 칸에 취임했으니까 이제는 의심하기 어렵게 되었잖아. 그들이 안 움직일 수는 없을 거야.”
그들이란 10대마도가문을 말한다.
10대마도가문이 움직인다는 것은 제국을 비롯한 전 대륙의 왕국이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걸로 비로소 송신탑 문제에 왕국들이 적극, 그러니까 왕국의 운명을 걸고 협조하게 될 것 같다.
비온 뒤에 땅이 단단해지는 이치니까 틀림없을 거다.
내가 마무리만 잘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