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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15화 (215/250)

로엔의 마나뱅크 215화

*

“그러니까 브룩은 마정석을 흡수하는 힘을 가졌었다는 말이군?”

“옛, 그래서 왕은, 아니 이전 왕은 송신탑을 부수고 마정석을 빼앗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전 왕의 말로는 최고급 마정석 20개면 불사에 가까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고요.”

지금 나와 대화하는 자는 거인족의 부관 역할을 했던 크투루라는 자다.

나는 크투루에게 왜 거인족이 송신탑을 노렸는가를 물었는데, 그들의 목적은 마정석이라고 한다.

그들은 남쪽으로 오면서 이미 두 개의 송신탑을 부수었는데, 첫 번째 것은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고, 두 번째를 부수었을 때 그들의 존재가 알려졌다고 한다.

그럼 송신탑은 모두 다섯 개가 부서진 건가? 이들 말고 또 송신탑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대륙 전체로 보면 상당한 손실이 있었을 것이다.

역시 대부분의 마도가문과 왕국들은 송신탑을 지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일반적인 군대의 방어체계로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나는 크투루를 물러나게 하고 소리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어쩌면 송신탑 때문에 숨어있던 마족의 계약자들이 상당히 많이 튀어나오겠는걸?”

최상급 마정석이라는 게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니 당연히 노리는 자가 나오겠지. 브룸의 경우처럼 마정석의 힘을 흡수하는 능력은 그다지 희귀한 게 아니다.

“나쁜 건 아니잖아. 한번 행적이 드러난 자들은 어떻게든 추적이 될 테니까, 나중에 야쿰이 다 때려잡을 수 있잖아.”

“그놈들은 바퀴벌레와 같아서 때려잡아도 계속 나온다고, 어떻게든 더 이상 불어나지 않게 막고 나서 처리를 해야 하는데, 송신탑이 완성 안 되면 장기적으로 힘들어.”

“그럼 어떻게 해?”

“왕국이나 마도가문들이 사활을 걸고 방어를 하도록 만들어야지. 그래서 내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고.”

차라리 잘 되었다. 다들 송신탑을 노리는 상황이니 내가 진행하는 계획이 더욱 탄력을 받을 거다.

“어서 가자고. 일단 밀림으로 돌아가서 우리들만의 송신탑을 만들어야 하니까.”

우리는 산길을 타고 서둘러서 귀환을 했다.

그 사이 통운은 밀림 밖으로 나와 진격을 하다가 왕국의 정규군이 맞서 싸우러 온다는 정보를 받고 움직임을 멈추었다고 한다.

“안 싸울 생각이군.”

“통운 말이야?”

“그놈은 필요 이상으로 몸을 사려. 자신이 앞에 나서서 싸우는 성격이 아니야. 남을 싸움붙이고 뒤에서 자기 잇속을 챙기는 스타일이니 지금처럼 왕국군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싶지는 않겠지.”

“하지만 지금 안 싸우면 비겁자 소리를 들을 텐데? 비겁자는 칸이 될 수 없다고.”

“어떻게든 우리가 점거하고 있는 요새쪽으로 왕국군을 보내려 할 거야. 어쩌면 아예 자기네가 요새쪽으로 올지도 모르겠네.”

“아항, 우리랑 왕국군을 싸움 붙이려는 거였구나. 그런데 우리는 요새를 비웠잖아. 거기 안 돌아갈 거지?”

“응, 통운이 쓰라고 하지 뭐. 요새가 빈 걸 알면 욕을 하면서도 더 물러나지는 않을걸. 내가 물러났다고 자기도 물러날 수는 없잖아. 하하하.”

내 예상대로 통운은 우리가 점거했던 요새 쪽으로 군을 돌렸다. 그리고 요새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정탐을 나갔던 뿌우는 통운이 화를 내니까 머리에서 세 개의 뿔이 돋아나고, 뇌전의 기운을 발산하더라고 알려주었다.

통운의 능력은 뇌전쪽이었군. 미리 대비를 해 놓아야겠다.

그후 통운은 자신의 군을 요새 안에 주둔시키고 왕국군을 상대로 싸울 준비를 하는 한편 우리 부락 쪽으로 사신을 보냈다고 한다.

“오호, 그럼 며칠 안으로 통운 쪽 사신이 오겠네?”

“내일쯤 도착할 거당. 이미 거의 다 왔당.”

“알았어.”

준비를 조금 해야겠군.

통운의 사자가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를 치겠다는 거지.

원래 왕국멸망을 걸고 내기를 한 이상 그 전에 우리와 싸우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통운은 왕국군과 정면으로 싸우기는 싫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상대적으로 훨씬 약한 우리와 싸워 세력을 통합하려 할 것이다.

명분은 있다.

요새를 급습해서 점거해놓고 그냥 비운 채 물러난 것은 왕국멸망을 핑계로 자신들을 엿 먹이려는 행위라고 주장할 것이다.

힘이 있으니 억지고 뭐고 내세우면 명분인 거다.

그러나 만만치 않을 걸?

나는 밖으로 나가 거인족들에게 명했다.

“너희들, 모두 본모습으로 돌아가라. 앞으로 밀림 안에서는 작아질 필요가 없다. 우리 영역이 넓지는 않지만 당분간 너희들이 잡아먹을 먹이는 있으니 마음껏 먹도록 해라.”

“옛!”

거인족의 최대 고민은 바로 먹는 것이다. 워낙에 많이 먹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자들이 식욕을 채우려고 하면 그 일대는 쑥대밭이 된다.

거인족이 자신들의 본거지를 나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산속 깊은 곳에서 숨어살면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영역이라면 이놈들이 3개월 정도는 먹고 살 수 있다. 그 후에는 먹을 것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주하던가 해야 하겠지만 그전에 다른 방법을 간구하면 된다.

쿵, 쿵, 쿵

나무들 위로 거인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발걸음을 걸을 때마다 땅이 울리기도 한다.

“저 녀석들 덕분에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겠군. 후훗.”

나는 느긋하게 앉아서 통운의 사자를 기다렸다.

*

“야쿰 추장은 어째서 왕국군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비겁하게 숨은 것이오? 진지하게 내기에 임하지 않고 약삭빠르게 굴면 칸 통운께서는 그대를 전사라 인정하지 않을 것이오.”

통운의 사자는 들어오면서 거인들을 봤기에 약간 겁을 먹은 듯 했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한 대사를 큰 목소리로 읊었다. 연기력은 하급이지만 목청 하나는 좋아서 지나가던 거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보았다.

“비겁? 지금 나를 비겁자라 했나?”

나는 웃어주었다. 거인족들은 비겁자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왕이 비겁자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쿵, 쿵, 쿵

가장 가까이 있던 거인이 성난 얼굴로 다가왔다. 단숨에 통운의 사자를 밟아죽일 기세였다.

나는 손을 들어 거인을 저지하고 말했다.

“나는 애초부터 통운을 전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자가 먼저 사자를 보냈기에 내가 할 일을 말해주었고, 기회를 한 번 주었을 뿐이지. 나는 곧 왕국을 멸망시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울 힘을 얻는다. 그 전에 통운이 왕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면 내 비로소 그자를 전사이자 내 경쟁자로써 인정해 주겠다.”

“뭐라고!”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통운은 동족 몇 명 모은 걸로 큰 힘을 얻은 것처럼 의시대고, 그러면서도 겁이 많아 밀림의 동족들을 통합하여 전쟁터로 내몰려고 하지. 나는 왕국을 멸망시키고 잡혀간 동족들을 해방시킨 후 밀림 안의 평화를 이룩할 것이다. 싸우는 것은 나의 부하들이면 된다. 나와 내 부하들의 힘만으로 전 대륙과 싸울 생각이다.”

“…….”

“통운에게 전해라. 내가 버린 요새를 이용해 왕국군과 싸워 이기라고. 만약 싸움을 포기하고 밀림 안으로 들어오면 나와 내 부하 손에 너희들은 모두 죽게 될 거다.”

통운의 사자는 질린 표정으로 물러났다.

애초에 야수 몇 마리 데리고 있는 게 다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수많은 거인들을 보고 이게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밀림에 있는 원주민들을 싸움에 동원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뭔가 생각하는 눈치다.

이제 나는 통운이 어떻게 나오나 구경이나 하면 된다. 그리고 그 사이 애초에 하려던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각 부족에게 전해라. 문명인들이 만들려던 마법의 탑을 우리가 밀림 안에 만들기로 한다. 각 부족들은 이 일에 협력을 해야 할 것이고, 거부한다면 칸 야쿰의 이름으로 벌할 것이다.”

나는 사자를 보냈다. 그러자 며칠 후, 다른 부족들이 사람을 보내왔다.

“야쿰 추장께서는 어째서 문명인의 마법탑을 우리 영역에 세우려는 겁니까?”

“문명인들이 왜 마법탑을 세우려는지 아나?”

“그들의 일을 어찌 저희가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마나뱅크라는 게 있다. 그건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마나뱅크는 문명인의 마법사들에게 절대적인 힘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 동족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문명인들은 자신들의 과욕이 화를 불러 마나뱅크를 잃어버렸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세우는 마법탑이 바로 마나뱅크를 다시 되찾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찾을 수 있다면 우리도 찾을 수 있다. 나 칸 야쿰의 능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마법탑을 세운다면, 밀림에 사는 동족의 의지를 모두 모을 수만 있다면 마나뱅크는 우리 동족의 것이 된다.”

“그게 정말입니까?”

“장담할 수 있다.”

“부족의 수장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각 부족의 사자들은 내 말에 넘어갔다. 그들도 마나뱅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고, 그동안 혈마법이 룬마법에 기를 펴지 못한 게 바로 마나뱅크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부족의 수장은 대부분 마녀이거나 샤먼인데, 그들이 마나뱅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데 협조를 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이것으로 나는 사실 상 칸이 된 거다. 각 부족들은 내 부하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가 마법의 탑, 그러니까 송신탑을 세우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자, 이제 통운을 처리하고 이 정보가 문명인에게 전해지기만 기다리면 되겠군.”

계획이 무르익어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곧 수확의 시기가 올 거다. 나는 느긋하게 시간의 흐름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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