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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14화 (214/250)

로엔의 마나뱅크 214화

힘도 부족하고 무투술의 기술도 달린다.

아무리 내가 틈틈이 창술을 연습했다고 해도 상대는 거인족의 왕이다.

원래 거인족은 가장 강한 자가 왕이 되고, 도전자가 있으면 일대일로 싸워서 물리침으로써 왕의 자리를 유지해야 된다.

대결에서 진 자는 바로 추방되기 때문에 도전하는 자도 신중해야 하지만 왕은 언제 도전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의 기량을 갈고 닦는다.

쾅, 쾅

“크읏, 크기에서 오는 질량의 차이가 장난 아닌데.”

나는 브롬의 공격을 흘려내기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몽둥이질은 피하면 되지만 옆으로 휘두르는 것은 창으로 맞받아 흘리려 했는데, 막을 때마다 전신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창을 통해 내 몸에 전해지는 힘은 결계로브로 해소하지 못한다. 그러니 차라리 그냥 맨몸으로 막는 게 덜 아픈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라도 브롬의 공격을 맞받아냈다. 그리고 거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밀렸다가 어느 순간 방어를 풀었다.

마치 힘이 다 해서 팔이 내려간 것처럼, 표정도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한쪽 무릎이 풀려 땅에 꿇어앉은 상태가 되었다.

“크하하하, 겨우 이거밖에 못 버티면서 나 브롬에게 덤비다니. 죽어랏!”

위잉, 퍽

브롬의 몽둥이는 내 등을 정통으로 때렸다. 그러나 나의 결계로브는 공간을 단절하여 모든 힘을 해소하는 힘이 있기에 아무리 강한 힘도 의미가 없다.

단지 충격에 의해 내 몸이 허공으로 튕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것 또한 내가 예상한 작전의 일부다.

“네가 죽어랏, 브롬!”

나는 몸이 뒤로 튕기는 중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브롬의 아랫배를 향해 삭풍의 창을 던졌다. 브롬은 내가 몽둥이에 얻어맞는 순간 피떡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지 큰 허점을 드러냈고, 그걸 놓칠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닌 것이다.

“크윽!”

삭풍의 창은 브롬의 배에 박히자 맹렬하게 진동하며 그의 내장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영혼을 파괴하기 시작하니 아무리 마족의 계약자라고 해도 견뎌내기가 쉽지 않은 듯 브롬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역시 브롬은 거인족의 왕답게 고통에 굴하지 않고 손으로 삭풍의 창을 잡고 빼내려 했다.

그건 곤란하지.

“소환, 삭풍의 창.”

이미 삭풍의 창은 나와 영혼의 계약이 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내 손에 되돌아온다. 나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창을 소환해서 두 손으로 잡고 다시 돌진을 했다.

“이놈!”

카카캉

브롬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것은 여전히 괴롭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낫다. 아랫배에 힘이 안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기운이 떨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브롬의 아랫배는 점점 아물고 있었다.

“재생능력이 탁월하군.”

나는 감탄해 하며 한손을 품속에 넣어 발데스 스팅을 꺼내 던졌다.

“크왓!”

발데스 스팅은 다시 브롬의 아랫배에 박혔다. 이번에는 칼자루까지 완전히 뱃속에 들어가 다시 뽑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은 한번 박히면 대상을 마비시켜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나 브롬은 워낙 덩치가 커서 그런지 완전히 마비가 되지 않았다. 입에서는 피를 계속 흘리면서도 괴성을 지르며 오히려 더 맹렬하게 나를 공격해 왔다.

“우워어어어!”

느낌이 싸 하다. 이놈이 아무래도 결투의 규칙을 깨고 능력을 쓸 것 같다.

나는 전신의 마력을 삭풍의 창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물질분해 기능이 있는 모래바람을 일으킬 수 있도록 준비해둔 상태로 싸움을 계속했다.

어느 순간 내 예상대로 브롬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하얀 얼음조각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얼어붙어 버려라, 자이언트 블리자드!”

“네놈이 졌다. 브롬, 삭풍의 권능!”

콰콰콰콰콰

쉬리리리리링

두 힘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서로 섞여서 더욱 강력하게 변했다.

“이런!”

서로 힘이 상쇄되어야지 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건데?

이건 예상외다.

나는 급히 옆으로 뛰었다. 워낙 강력한 힘이라 결계로브로 완전히 못 막아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정통으로 맞지만 안으면 어떻게든 될 거다.

“3중 방어막!”

촤촤촥

파파팡

방어막이 쳐지자마자 깨어졌다. 모래가 섞인 눈보라가 밀려온다. 그때 스렉이 컹 하고 짖으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내 앞을 막아서서 나를 감쌌다.

“스렉, 위험해!”

나는 당황해서 외쳤다. 솔직히 결계로브의 방어력이 있으니 그다지 죽을 염려는 없다. 그러나 스렉은 다르다. 마수 본래의 방어력보다 더 강한 힘에 공격당하면 상처도 입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렉은 자신의 꼬리에 얼굴을 파묻고 묵묵히 블리자드를 견뎌냈다.

끄응, 끙

모래가 털 사이로 파고들어 몸에 박힌 듯 꽤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내는 스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몸을 풀지 않았다.

“이제 됐어, 스렉.”

끄응

툭 부르르르르

스렉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몸을 털었다. 몸에 피가 배어서 나온다. 역시 삭풍의 모래에 피부손상이 되었구나.

“멍청하기는, 난 괜찮다니까.”

나는 스렉의 품에서 벗어나며 브롬의 상태를 확인했다. 덩치가 크면 역시 움직임이 재빠르지는 못한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해서 그런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본인이 쏜 블리자드 브레스는 그렇다고 해도 물질분해 능력이 있는 모래를 그대로 뒤집어 쓴 듯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다.

“그그그극!”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모래가 입속에도 들어가서 혀를 부숴버렸는지 없다.

나는 브롬에게 다가가지 않고 삭풍의 창을 들어 던졌다.

슈욱, 퍽

“끄아아아악!”

창은 목에 그대로 박혔고, 브롬은 단말마 비명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미안, 내가 너무 강했지?

그동안 쌓아온 게 있어서 이제는 마족의 계약자 정도는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거든. 무엇보다 결계로브가 있으니 단순한 물리력으로는 나한테 피해를 줄 수 없어.

소리네는 브롬이 쓰러지자 다가가서 정화를 하려 했지만 내가 눈짓으로 막았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나 자신이 마족의 계약자라 칭하고 있기에 정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신 나는 브롬의 시체 주변에 마법진을 그리고 그의 마기를 봉인했다. 나중에 와서 정화를 하든 마기를 뽑아 쓰든 할 것이다.

남은 것은 백 명의 거인들.

“보았느냐? 나는 브롬과 정식으로 대결을 해서 이겼다. 또 다른 도전자가 있으면 나서라.”

“없습니다. 브롬은 힘이 부족하자 규칙을 어기고 능력을 썼으니 왕의 자격이 없다 할 것입니다. 이제는 칸 야쿰이 우리 거인족의 왕입니다.”

“거인이 아닌 자는 왕이 될 수 없다. 너희들은 당분간 내 부하로 브롬이 내기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 그 후에야 원래 살던 계곡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충실히 따르면 가능하면 살려서 보낼 것이고, 아니면 모두 죽는다. 알겠나?”

“예, 해방시켜 주시는 날까지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다. 거인족들은 단순해서 맹약과 규칙을 지키는 편이니 당분간은 편하겠네.

중간에 조금 헤프닝이 있었지만 전화위복이 되었다.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밀림의 본거지로 향했다.

이제는 거인족까지 동반한 명실 공히 마족의 계약자다운 전력을 얻었으니 통운과의 일전을 제대로 치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칸 야쿰.”

“왜? 말해. 소리네.”

“야쿰은 왕국 사람들의 희생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네? 보통 좋은 사람은 그런 거 신경 쓰잖아. 혹시 마음속에 앙금이 남거나 하지는 않는 거지?”

“훗, 걱정해 주는 거냐? 염려 마. 사실 난 나쁜 놈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염세주의자라고 할까? 전생에 너무 오래 살면서 왕국들 간의 이권다툼과 알력싸움을 봐 왔더니, 인간에 대해 실망을 조금 했다고 할까? 선악의 개념이 사라져 버렸거든.”

“그런 건가?”

“밀림의 노예들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러나 난 그걸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고 그냥 놔두었지. 노예로 잡혀가는 원주민들이 선이라고 할 수 없고, 노예를 잡아다 쓰는 왕국 사람들도 악이라고 규정짓기에는 뭐 했어. 적어도 제 3자인 내 입장에서는 말이지.”

“…….”

“나는 지금 밀림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어. 그러니 지금 나에게 있어 왕국이 악이고 동족이 선이야. 그렇게 행동할 뿐이야.”

“그런 건가.”

“하지만 이게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활동하는데, 그 때문에 생기는 타인의 피해는 별로 고려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세상을 다스리려 하지 않고 그냥 청춘을 즐기다가 나중에는 은거해서 조용히 살 생각이었던 건데, 이놈의 마족들이 나를 귀찮게 하네.”

“풋, 마족 사태가 끝나면 은거할 거야?”

“응, 거의 그렇게 될 거야. 안 그러면 세상의 마법사들이 무슨 수를 써서든 접근해서 내 마법을 배우든 훔치든 하려고 귀찮게 할 거니까.”

나는 창밖을 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애초에 미스틱 엑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든 이유도 그런 이목의 집중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미스틱 엑스뿐 아니라 나도 대륙의 마법사들이 모두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 되었으니 적어도 행적을 감추고 필요할 때만 나타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직은 끝을 생각하지 말자.

갈 길이 멀고, 이 세계 전체에 마족이 들어오지 못하게 결계를 치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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