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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12화 (212/250)

로엔의 마나뱅크 212화

*

송신탑 점거는 요새보다 훨씬 쉬웠다. 일꾼들은 어차피 야수의 모습만 보고 도망가려다 잡혔고, 지키고 있던 소수의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스렉이 돌진을 하니 놀라서 공격마법과 화살을 쏘았지만 그런 게 통할 리 없다. 곧 그들은 스렉의 앞발질 몇 번에 쓰러졌고, 뒤이어 덮친 야수들에게 눌려 제압되었다.

“걔들은 죽이지 마. 현혹시켜서 당분간 계속 이곳을 지키고 있도록 할 거니까.”

“예.”

“정리되는 대로 다음 송신탑으로 가자고, 중요 재료는 잘 싸서 옮기고 나머지는 부수면 돼.”

작업은 금방 끝났다. 절반쯤 만들어진 송신탑이 깨끗하게 사라지고 마정석을 비롯한 주요 재료는 우리 손에 들어왔다.

나는 병사들에게 현혹마법을 걸은 후 다음 송신탑으로 향했다. 거리가 꽤 되었지만 역시 야수를 타고 이동을 하니 사람이 말로 달리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송신탑은 몰래 처리하기가 조금 힘든 것이 도시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래서 이걸 마지막으로 공략할까 하다가 그냥 이동거리를 단축시키는 쪽으로 결정했다.

여기서 우리가 송신탑을 노린다는 게 알려져도 왕국에 보고가 들어간 후 대응을 하기 전에 다음 송신탑으로 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알지?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서 곧바로 가는 거야. 시민들이 놀라서 혼란을 일으켜도 무시하라고.”

“야수들을 잘 통제해야겠네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으면 아무래도 놀라서 날뛸 수 있을 거예요.”

“서피는 날뛰는 놈을 막아.”

“샤아아아.”

“그럼 가자.”

우리는 도시의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에서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야수다! 야수군단이 쳐들어왔다.”

뎅, 뎅, 뎅, 뎅

오, 비상용 종도 있었네.

병사들은 우리가 도시를 공격하는 걸로 생각하나보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노리는 것은 시민의 생명이나 재산이 아니다.

시민들이 놀라서 도망가는 게 보인다. 비명소리가 난리도 아니다.

“모리안, 스렉과 함께 성문 앞으로 가서 나오는 병사들을 막아라.”

“옛.”

일반 병기로는 스렉에게 조금도 상처를 입힐 수가 없다. 성에서 나오는 병사가 몇 명이든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다.

조금 더 가니 드디어 공사현장에 도착했다. 미리 뿌우가 위치를 확인한 후이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한 수의 병사들이 진형을 짜고 지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는 거대한 바리스터까지 있다.

철문을 꿰뚫는 파워를 가진 공성병기 바리스터는 야수들도 버티기 어렵다.

“벼락소환!”

꽈드드등

내가 팔뚝을 그으며 마법을 쓰자 하늘에서 벼락이 쏟아졌다. 정말 피마법은 쓸 때마다 피를 내야 하니 싫다.

“막아랏!”

적의 지휘관이 외치자 마법사 셋이 동시에 주문을 시전해서 방어막을 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벼락은 방어막을 깼지만 바리스터는 부수지 못했다.

“오, 지휘관이 꽤 유능하네. 내가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대응을 했어.”

내가 감탄하자 소리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반응이 빠르네. 하지만 바리스터가 발사되면 애들이 다치니까 내가 막을게. 스네어.”

촤촤촤촤촤

땅에 사라고 있던 잡초가 갑자기 수십 배로 크게 자랐다. 그것들은 바리스터와 그것을 쏘려던 병사들을 휘어 감았다.

“이런, 수풀까지 조종을 할 수 있는 건가? 병사들, 검을 뽑아 수풀을 제거해라.”

적절한 판단이기는 한데 그걸로는 늦거든.

우리는 이미 거의 접근을 했다. 이제는 바리스터를 쏘기에는 늦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 바리스터 앞쪽 땅이 팍 하고 꺼졌다.

“웃, 함정이!”

이건 예상치 못했다.

“끓는 기름을 부어라!”

헛, 이봐. 그런 건 공성전 할 때 수성하는 쪽에서 쓰는 거라고. 이런 평야에서 함정을 파고 기름을 붓는 작전을 쓰다니, 반칙이잖아!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마치 며칠 전부터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철저한 준비를 한 것처럼 대응을 한다. 무엇보다 송신탑의 방어군이 이정도로 정예라는 게 놀랍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이 없다. 야수들에게 끓는 기름이 부어지면 그걸로도 치명적이고, 그 다음에는 보나마나 불을 붙일 테니 함정에 빠진 야수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막아야 한다.

“젠장, 황금보다 더 귀중한 내 피를 두 번씩이나 빼야 하다니.”

내 다시는 밀림의 마녀로 변신하지 않으리라.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팔뚝을 그었다.

“피의 안개.”

스스스스

붉은 안개가 급격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것을 마신 병사들은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제대로 서 있지를 못했다.

“이런, 사악한 마법을! 마법사들, 저걸 막을 수 없나?”

“우리가 아는 마법체계와는 다릅니다. 일단 해제마법을 써 보는데 전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해제를 포기하고 아군 병사들이 숨을 들이쉬지 않아도 되는 마법을 걸어달라.”

“그쪽이 빠르겠군요. 엔듀어 브레스.”

그렇지, 이런 상황에서는 숨참기 마법을 걸고 싸우는 게 적절한 대응이지.

나는 지휘관을 유심히 보았다.

꽤 젊은 기사였는데 지휘하는 폼은 수십 년 동안 전장에서 구른 백전노장처럼 느껴진다.

인재네. 이런 곳에 저 정도 인재가 있었나?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지금 나를 막으려면 크리드 경 정도는 와야 한다.

야수들은 이미 바리스터를 넘었고, 함정에 빠진 애들도 기어나왔다. 다만 아래쪽에 창날이 박혀 있어서 몇몇은 큰 상처를 입었는데 소리네가 얼른 가서 치료를 해 주었다.

“서피야, 저 지휘관을 사로잡아라. 다른 야수들이 덮치지 못하게 해.”

“샤아아아.”

서피가 튀어나갔다. 지휘관이 검을 휘두르며 서피와 싸우려 했지만 쟤가 기사 한 명이 어찌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검 솜씨가 꽤 괜찮다. 지휘능력도 그렇고 검솜씨도 그렇고, 정말 쓸만하다.

무엇보다 어떻게 우리가 올 줄 알고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적 지휘관을 잡은 시점에서 병사들은 도망을 가기 시작했고, 송신탑은 우리 손에 넘어왔다.

“서둘러서 재료 챙기고, 성에서 적의 본대 오기 전에 이동하자고.”

“알았어.”

모리안이 스렉과 함께 성쪽으로 갔기 때문에 이번 작업은 소리네가 했다. 나 역시 거인의 힘을 이용해 무거운 재료를 야수들에게 실었다.

“야만인들! 설마 송신탑의 마정석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냐?”

지휘관이 외쳤다.

“나는 칸 야쿰이다. 네 이름은 뭐지?”

“크로지다. 항복할 생각은 없으니 죽여라.”

“죽이기 위해 잡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올 줄 알고 함정까지 파 놨지?”

“너희들이 올 줄 알았다면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최근에 도적들이 송신탑의 마법재료를 노린다는 정보가 있었다.”

“도둑들이 마도가문에서 만드는 송신탑을 노린다고? 그게 말이 되나?”

“마법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적단들이 있다.”

“그랬군.”

그런 놈들이 있다니 이상하다.

마법사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것은 같은 마법사들 뿐인데, 그것도 고위 마법사의 추적은 거의 피하기 어렵다.

설마 고위 마법사가 도적단을 만든 건가?

어쨌든 도적들도 송신탑을 노린다면 이유가 있을 터이다. 나처럼 마정석을 노리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이건 따로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작업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는 야수들을 이끌고 그 자리를 떴다. 곧 모리안이 스렉과 함께 돌아와 합류를 했는데, 성에 있는 병사들도 이미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서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성의 병사들까지 대기를 하고 있었다면 도적단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거네. 혹시 모르니 다음 송신탑까지 서두르자.”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적어도 세 개의 마정석은 모아야 내가 하려는 일을 할 수 있는데, 도적단이 남은 하나의 송신탑을 공격해서 마정석을 빼내갔다면 나는 다른 곳을 하나 더 공격해야 하는 것이다.

그건 꽤 힘들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이미 우리가 송신탑을 노린다는 게 왕궁측에 알려졌으니 방비를 할 것이다.

기습이 아니면 서로 간에 피해가 커지니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는 밤잠도 자지 않고 강행군을 했고, 이틀만에 마지막 송신탑이 있는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가 역시였다.

우리보다 앞서서 도적단들이 송신탑을 약탈해 간 것이다.

“젠장, 힘들게 됐네.”

“도적단을 추적하는 게 어떨까요? 그들이 떠난 지 얼마 안 된 거 같아요.”

“응, 일단 그렇게 해 보자고. 우리에게는 야수의 후각이 있으니 지금이라면 놓치지 않고 따라붙을 수 있을 거야.”

마법사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도적단이니 지금 행적을 놓치면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스렉에게 도적단을 쫓으라고 명했다.

옛날보다 훨씬 후각이 발달한 스렉은 킁킁 대며 주변의 냄새를 맡고는 곧 동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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