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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11화 (211/250)

로엔의 마나뱅크 211화

*

회오리바람과 흙먼지 안개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야수군단의 모습은 왕국의 군대를 3일 동안 훌륭히 막아냈다.

나는 요새가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뿌우를 불러들이고 몸을 뺐다.

그때서야 왕국의 군대 지휘관들은 야수군단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난리를 쳤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가 됐고 우리는 요새 내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쪽도 나름 필사적인지 완성된 요새를 둘러싸고 포위망을 구축했다.

“항복하라! 이미 너희의 수가 많지 않음을 알고 있다.”

군대의 전령이 요새 문 앞에 와서 외쳤다. 우리가 내보낸 노동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은 듯 하다.

사실 이쪽은 야수가 백 마리도 안 되고, 반대로 저쪽은 일만이 넘는 수다. 수적 차이가 심하니 아무리 요새라고 해도 어떻게든 공략해서 함락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보다.

나는 피식 웃고는 전령에게 외쳤다.

“너희들 공성병기도 없으면서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다고 믿는 거냐? 어떻게 원주민인 나보다도 개념이 없지? 크하하하하.”

마지막은 최대한 악당처럼 웃어주었다.

전령은 더 이상 권고를 하지 않고 물러갔고, 곧 북이 울리며 포위한 병사들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리안, 스렉과 함께 역격할 준비를 해라.”

“옛.”

“소리네, 조각상 배치는 끝났어?”

“응, 각 성벽마다 열 개씩 세워놨어.”

저게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다. 영혼을 불러서 깃들게 하는 조각상이고, 이게 경계방어에는 정말 좋다.

휘리리링

벌써부터 영혼이 모여들어 조각상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들은 거의 의지가 없는 존재들이지만 근처로 다가오는 적들에게는 본능적인 적대감을 느끼게 되어 있다.

적의 병사들은 공성병기가 없기 때문에 갈고리만 가지고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성병 중간까지 올라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그들을 물어뜯었다. 바로 소리네의 조각상에 이끌린 영혼들이 병사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으악! 뭔가가 문다.”

“거긴 안 돼. 아아악!”

병사들은 견디지 못하고 고통에 발버둥 치다가 성벽에서 떨어졌다.

거기에 3일 동안 소리네가 키운 덩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앗, 덩굴이!”

“저리가, 에잇.”

병사들은 덩굴들 가지가 옷 속으로 파고들어 간지럼을 태우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지금 새삼 느끼는 거지만 소리네의 능력은 방어적인 부분에서 거의 최고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혼자서 대병력이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전혀 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두 발목에 감긴 덩굴뿌리로 그것들을 조종하면서 손으로는 아침에 준비한 과일을 먹고 있다.

같이 구경하던 뿌우도 말했다.

“내가 저놈들 막으려고 3일간 그렇게 힘을 썼는뎅, 소리네는 간식을 먹으면서도 막넹.”

“그러게, 내가 너 정령력 대느라 마나고갈 직전까지 갔었는데, 아무리 성벽이 있다고 해도 저렇게 쉽게 막을 수 있나.”

성벽 위에서 병사들이 올라올 경우 역격하려고 대기 중인 야수들이 하품을 한다.

구경하기 지친 나는 다시 바깥쪽을 향해 외쳤다.

“한 달이 지나도 너희들은 성벽위로 기어오르지 못할 거다. 이 요새는 우리 것이니 물러가서 제대로 된 공성병기라도 준비해 와라.”

대답이 없다. 마법이 걸린 목소리라 지휘부가 못 들었을 리는 없는데, 자존심 때문에 계속 공격을 하는 건가?

그럼 슬슬 자존심을 꺾어줘야겠군.

나는 성문 안쪽에 대기하고 있는 모리안에게 손짓을 했다.

“모리안, 가라.”

“옛!”

드드드드

성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야수 50마리를 동반한 모리안이 밖으로 튀어나가 병사들과 싸웠다. 거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모리안과 야수군단의 힘은 공성에 몰두하던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일격이탈, 모리안은 빠르게 성문 안으로 귀환했고, 성문을 다시 닫았다.

“이것으로 성문 쪽으로는 병사들이 잘 오지 않겠지.”

“성문 쪽뿐만 아니라 다들 공격을 멈췄당.”

“오호, 역시 한 번 당하면 정신을 차리는 건가?”

이쯤 되면 깨달았을 거다.

내 말대로 그들은 성벽을 오를 수 없고, 오히려 공성을 위해 진형이 깨어지면 야수군단의 역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격이 멈춘 후 반나절 정도 지나니 드디어 병사들이 후퇴를 시작했다. 일단 요새를 포기하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밀림의 원주민들을 막기 위해 요새를 지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밀림의 원주민들이 왕국을 공격하는 전초기지를 만들어 준 셈이 되었다.

속이 꽤 쓰리겠는걸?

하지만 나는 이 요새를 지킬 생각이 없다.

기습을 통해 힘들게 먹은 요새이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이라 지킬 가치는 충분하지만, 여기 있는다고 왕국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리안, 우리도 슬슬 이동 준비를 하자.”

“예.”

“소리네, 우리가 여길 떠나도 덩굴들이나 조각상의 영혼들이 알아서 요새를 지켜주는 거 맞지?”

“응,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영혼들이 조각상을 떠나지 않을 거야. 덩굴들이야 그냥 성벽에서 계속 사는 거고.”

“그렇다면 정식으로 대규모 토벌대가 오기 전까지는 안 들키겠네. 빨리 이동하자.”

어차피 우리는 소수다. 소수의 장점은 바로 기동성, 이동이 쉽고 보급이 별로 필요가 없으니 적진 한 가운데를 마음껏 돌아다녀도 큰 문제가 없다.

우리는 요새를 비워두고 떠났다.

하지만 우리가 요새를 점령한 사실은 밀림 안과 왕국 내에 널리 퍼졌고, 이것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나의 경쟁자인 통운은 내가 군대를 상대로 왕국이 요새를 빼앗은 게 큰 충격이었나 보다.

기껏해야 야수 백여 마리를 거느리는 소부족 수준의 병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이 넘은 군대와 싸워 요새를 빼앗은 셈이니 그들이 모르는 병력이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그렇다면 정말 왕국군과 싸워 이기고 수도를 함락시킬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해버린 통운은 내기에 질 수는 없다는 듯 드디어 전 병력을 이끌고 밀림 밖으로 나오기 위해 진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왕국측은 아예 국경 수비군 이외에 전군을 동원해서 요새를 다시 되찾기 위한 토벌대를 결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통운이 움직이자 그쪽과 먼저 싸워야할지 아니면 요새탈환을 우선할지 고민 중이라는 것이다.

“훗, 당연히 통운과 먼저 싸우겠지. 이쪽은 지키고 있을 뿐 움직이지 않고, 통운은 진격을 하는 상태이니.”

시간을 벌었다.

토벌대가 요새로 가서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이다.

“서두르자고, 혹시 저들이 우리 움직임을 눈치 채도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야 해.”

“야수를 타고 움직이니 기동성 하나는 최고네. 칸 야쿰 말대로 알아도 대응 못할 거 같은데?”

“나도 그렇다고 보긴 하는데,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잖아.”

솔직히 우리 움직임을 이해할 정도로 왕국에 눈치 빠른 놈이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기껏 손에 넣은 요새를 버리고 송신탑 하나 먹자고 왕국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과감한 수법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밀림에서 야수군단을 만들고 노예사냥꾼을 밀어내면서 세력을 만든 이유는 바로 송신탑을 하나 먹기 위함이다.

지금 각 왕국들은 마도가문으로부터 송신탑 건설과 보호를 의뢰받아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실 그들은 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에 마나뱅크가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다.

오히려 마나뱅크가 다시 활성화되면 마도가문의 힘이 다시 강해져서 왕국의 힘을 능가할까 걱정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인지 경비체계나 건설진행이 상당히 더딘 편이다.

이래서야 시간이 너무 걸린다.

가능한 한 송신탑 건설이 빨리 끝나고, 전 대륙을 하나로 묵는 마법의 의식을 거행해야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데, 그 전에 사단이 나면 이 일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꽤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 계획은 사단이 나기 전에 내가 일으키는 거다. 송신탑은 꼭 완성시켜야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대륙의 왕국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곧 도착할 것 같아요. 예상대로 방어병력이 거의 없네요.”

“평소에도 적었지만 지금 총동원령 때문에 대부분 토벌대에 차출되어 갔겠지.”

“그럼 도착하는 대로 바로 공격할까요?”

“그러자고, 그 정도 병력이면 거의 싸우지 않고 도망갈 가능성이 크니까 적을 추격하지는 말고 송신탑의 확보에 전념하도록 해.”

“예.”

지금 상황이 재미있는 게, 통운이 움직인 이상 송신탑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도 병력을 이쪽으로 돌릴 여유는 없을 것이다.

이곳 왕국에 있는 송신탑은 모두 세 개, 어쩌면 우리는 이번 싸움으로 송신탑 세 개를 모두 점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송신탑의 재료는 상당히 구하기 힘든 마법물질들이 많이 섞여 있고, 중앙에 코어가 되는 부분은 최상급의 마정석이 들어간다. 최상급 마정석은 어디서 구한다고 구해지는 게 아니라 마도가문에서도 엄중히 관리하는 것이니 이걸 빼앗기면 왕국 측에서는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될 거다.

돈으로 배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내가 세우는 어둠의 송신탑은 기존의 송신탑의 기능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정말 그게 완성되면 왕국이 멸망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제대로 된 마족의 계약자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왕국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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