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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08화 (208/250)

로엔의 마나뱅크 208화

*

“토벌대가 온당. 수는 2천정도, 기사도 마법사도 여럿 있당.”

드디어 제대로 된 군대와 싸울 수 있게 되었군. 전력적으로 비교는 안 된다. 이쪽은 아직 30여 마리의 야수부대일 뿐이고 상대는 기사단과 마법병단을 포함한 정규군이니까.

공포를 일으키는 비스트 심볼도 쓰기 애매하다. 아마 저들은 미리 대응책을 마련해 왔을 것이다. 또 내 피를 너무 자주 뽑을 수는 없으니까 이제는 웬만하면 안 쓰려한다. 칼로 손목을 긋는 게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으니까.

“준비는 끝났지?”

“끝났당, 적들이 오는 길목에 그동안 흙먼지를 잔뜩 깔아놨으니 내가 돌개바람만 일으키면 아마 눈을 못 뜰 거당.”

“좋아. 그럼 우리도 이동해서 적을 맞이하도록 하지.”

토벌대가 왔을 때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싸울 장소를 우리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마을에 자리를 잡을 때부터 토벌대와 싸울 자리를 봐 두었다.

그리고 꾸준히 준비를 해 왔으니 그곳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난공불락의 요새가 세워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모리안과 야수들을 데리고 자리 잡은 전장은 양쪽으로 늪지대가 있는 곳으로 말하자면 정상적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지역이 좁은 길목처럼 되어 있었다.

우리 측은 소수이니 길목을 막고 많은 수의 적을 하나하나 처치는 게 기본 계획이다. 하지만 그것도 저쪽에 마법사들이 있으니 쉽지는 않을 터. 나는 다시 뿌우를 척후로 보내 마법사들의 수와 대략적인 수준을 가늠하게 했다.

그곳에서 하루 정도를 기다리자 드디어 토벌대가 나타났다.

크와아앙

쿵, 쿵, 쿵, 쿵

가장 앞에 선 광켈이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쾅쾅 치며 포효했다.

그 모습에 병사들은 움찔했지만 기사들은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

“적은 야수일 뿐이다. 화살을 쏴라.”

어쭈, 장거리 무기로 나오셨다?

“뿌우야, 가라.”

휘리리리링

돌개바람이 일어나자 그들이 밟고 있는 땅에서 흙먼지가 이상할 정도로 많이 날리기 시작했다. 흙먼지는 병사들의 눈에 들어가 심한 가려움을 일으켰고, 호흡기를 막아 재채기를 유발했다.

“우왁, 이게 뭐지?”

“으으, 눈을 뜰 수가 없어.”

“모리안, 벌레들을 풀어라.”

“옛, 야쿰님.”

위이이이잉

돌개바람이 지나간 곳에 모리안이 푼 날벌레들의 떼가 덮쳤다. 흙먼지에 섞여있는 벌레의 페로몬향이 병사들의 피부에 아주 적절히 묻어 있었기에 날벌레들은 그들의 피부에 내려앉아 입으로 깨물거나 침으로 쏘았다.

“아악!”

“이놈의 벌레들이!”

창칼로는 날벌레들을 잡지 못한다. 병사들뿐 아니라 기사들도 벌레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단지 마법사들은 잽싸게 자신들만 벌레접근금지 마법을 써서 스스로를 보호했다.

“안 되겠소. 적이 바람과 벌레를 다루니 더 이상 피해를 입기 전에 진군을 시킵시다. 난전 상황이 되면 바람도 벌레도 쓰지 못할 것이오.”

마법사 중 하나가 지휘관에게 말하는 게 들려왔다. 뿌우 녀석이 이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는 잘 캐치해서 보내준다.

곧 병사들에게 진군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선두의 몇몇이 늪에 빠져 허우적대니 지휘관들이 놀라서 급히 진군을 멈추고 병사들을 구출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크게 웃어주었다.

“크하하하하하, 이곳은 한 명이 백 명을 맞서 싸울 수 있는 곳이다. 너희들은 오늘 내 야수들의 저녁식사가 될 것이다.”

“흥, 늪지대라는 것을 알면 얼마든지 대처할 마법이 있지. 프로즌 필드!”

촤촤촤촤촤

땅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늪이라는 것은 맑고 깨끗한 물이 아니라 거의 진흙탕 같은 거라서 이렇게 얼어버리면 잘 깨어지지 않는다.

병사들은 바로 사기가 올라 함성을 지르며 얼어붙은 늪지대 위를 달려 우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다 예상 범위 안이지.

“얘들아, 깨라.”

크와왕

쿠오오오

광켈이 얼어붙은 늪지대 위로 올라가 바닥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쩌적하고 얼음에 금이 갔다. 렉스도 크게 점프해서 발에 힘을 주고 내려찍으니 퍽 하고 얼음에 구멍이 뚫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긴 금이 생겨났다.

“엇! 깨어지는 건가.”

병사들이 멈췄다. 불안하겠지. 늪지대 중앙 지점에서 쑥 빠져버리면 구할 방법이 없으니까.

“물러나라!”

상황판단이 빠른 지휘관이군. 계속 돌진시켰으면 수백 명이 동시에 빠졌을 거다.

콰직

드디어 얼어붙은 지역이 다 갈라져 버렸다. 모리안은 늪에 빠진 광켈에게 밧줄을 던져주었고, 놀라운 힘으로 광켈이 늪지대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당겨주었다.

렉스는 광켈보다 훨씬 커서 그런지 그냥 스스로 늪에서 빠져나왔다. 털에 진흙 같은 게 묻은 것이 조금 기분 나쁜 듯 나무에 몸을 몇 번 문질러서 털어내려 했지만 오히려 나무가 렉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 사이 토벌대의 지휘관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 모양이다.

지금도 뿌우가 일으키는 돌개바람과 벌레들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벌레들은 더욱 수가 많아져서 페로몬에 끌린 근처의 모든 벌레들이 다 달려드는 형국이다.

마법사들은 어떻게든 바람을 잠재우려고 마법을 썼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정령이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돌개바람을 잠재울 방법은 별로 없다.

자, 어떻게 할 거냐?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겠지?

여기서 군을 되돌린다면 지휘관은 문책을 면하기 어렵다. 병사들은 이미 질린 표정이지만 지휘관들은 제대로 패배한 상황도 아니니 절대로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마법사들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워터워크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정예만 먼저 보내서 싸울 모양인데? 마법사들은 뒤쪽에서 엄호용 공격마법을 쓰겠네.”

나는 모리안에게 말했다.

“기사의 수는 34명, 야수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곧 마법사들이 범위형 공격마법을 쓸 거 같아요.”

“쓰라지. 얼마나 강한 마법을 쓰는지 한 번 보자고.”

“파이어볼!”

“라이트닝 스피어!”

뭐야? 3서클 마법이잖아. 생각보다 마법사들의 수준이 별로다.

나는 피식 웃고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내 앞쪽에 다시 야수의 문양이 나타났다.

공포를 유발하는 문양과는 다른, 염소와도 같은 이상한 야수의 형상이다.

꾸오오오오옹

환상의 일종인 야수의 문양이지만 울부짖는 소리는 진짜다. 병사들은 소름이 돋는 듯 몸을 오싹했고, 날아오던 공격마법들이 방향을 바꾸어 문양을 표적으로 바꾸었다.

투투투퉁

반사다. 이놈들아.

내가 만들어 낸 것은 바로 6서클 이하의 공격마법을 튕겨내는 반사의 심볼이다.

미리 설치를 해 놓아서 시동어만으로 작동되는데, 수십 개의 마법을 동시에 튕겨낼 정도로 강력하다.

콰콰콰쾅, 파지지직

반사된 마법들이 늪지대 곳곳에 무작위로 떨어졌다. 마법을 쓴 자들에게 바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만약 병사들이 조금만 더 앞에 포진했더라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마법사들은 더 이상 공격마법을 쓰지 못했다. 또한 마법사들의 엄호마법이 없으니 기사들도 돌진을 감행하려 하지 않았다.

“오지 않는 건가? 그럼 이쪽에서 가겠다.”

나는 단호하게 외치고는 광켈을 돌진시켰다. 늪지대가 아닌 좁은 길목을 따라 쿵쿵 거리며 달려 나가는 흉켈의 모습은 광포함이라고 표현할 만 했다.

“막아랏! 저 고릴라를 죽여!”

쉽게 죽을 거 같으면 돌진 시키겠냐? 저정도 강화마법을 걸면 어린 애도 기사처럼 싸울 수 있겠다.

크왕

광켈이 앞을 막아선 기사 셋을 몸으로 밀어 쳐내니 기사들은 무게와 힘에서 상대가 안 되어 그대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튕긴 지역은 바로 늪지대. 다행히도 워터워킹 마법이 아직 유지되고 있어서 늪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지 땅쪽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러나 늪지대 밑에는 서피가 대기하고 있었다.

샤아아아아

“어억, 늪에 거대한 뱀이 있다!”

서피는 수분을 모아 몸을 거대화 시키는 능력으로 최대한 덩치를 불렸다.

서피의 꼬리치기 한 방에 기사 하나가 제대로 맞아 날아갔다. 아마 전신의 뼈가 무사하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이곳에서 모두 죽는다.”

나는 다시 외쳤다. 그리고는 광켈에 이어 렉스를 돌진시켰다.

“에잇, 후퇴한다. 이곳에서는 싸울 수 없다.”

드디어 지휘관이 퇴각을 결심했다. 여기서 더 버티면 도망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이 될 것 같겠지.

그러나 적이 물러설 때에는 뒤를 쳐 주는 게 예의다.

나는 모리안에세 손짓을 했고, 모리안은 즉시 모든 야수들을 이끌고 광켈과 렉스의 뒤를 따라 돌진했다.

이것으로 전투는 끝이다. 토벌대는 밀림을 벗어날 때까지 끊임없이 야수의 추적과 돌개바람의 흙먼지, 그리고 벌레에 시달릴 것이고 안전해진 다음에도 그들이 들이마신 흙먼지에 의해 오랫동안 풍토병에 시달릴 것이다.

“밀림 쪽으로는 오줌도 못 싸게 될 거다. 후훗.”

어쨌든 나는 수십의 야수들로 2천의 토벌대를 막아낸 셈이다. 이것으로 조금은 유명해 질 거다. 원주민과 왕국 양측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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