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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07화 (207/250)

로엔의 마나뱅크 207화

3장 문명과의 전쟁

바두리안의 영역은 꽤 넓은 편이었다. 이런 큰 부족이 근처에 있는데 노예사냥을 한 자들은 얼마나 개념이 없는 것인지 한숨이 다 나온다.

원래 밀림의 개척민들도 처음에는 꽤 환경이 괜찮고 살만한 곳에 정착을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왕국에서 계속 그들을 들여보내니 결국 이런 곳까지 오게 되었고, 이들은 먹고 살만한 게 별로 없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원주민들을 잡는 거겠지.

“어째서 온 거지?”

시스티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를 보는 게 별로 반갑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지금부터 문명인의 영역으로 가서 잡혀간 동족들을 구해올 것이다.”

“그래서?”

“돌아온 자들 중 돌아갈 곳이 없는 자들을 바두리안에서 받아주길 원한다. 내 영역은 야수는 살아도 사람은 살기 어려운 곳이니까.”

“아무런 대가없이 사람을 내어주겠다는 것이냐?”

“대가없이 무엇을 주는 것은 동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가는 시스티나가 정해라.”

“좋다. 사람 하나당 모피 2장이나 식량 한 꾸러미로 하겠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럼 곧 나는 떠나겠다.”

할 말은 이것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야쿰은 세력을 키우지 않는가? 지금 문명인들을 공격하면 그대는 얼마 못가 위기에 빠질 것이다.”

“싸움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위기다. 세력은 이기다보면 생기는 거지.”

나는 간단하게 말한 후 시스티나의 막사를 나왔다.

등 뒤로 시스티나의 묘한 주문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 전승을 기원하는 축원이로군.

내가 몸을 숨긴 채 세력을 모으려 하지 않고 광전사처럼 계속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 마음에 들었나? 성격 이상한 마녀다.

*

부락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야수들을 데리고 밀림의 경계선을 향해 떠났다.

지금쯤 쫓겨난 자들이 왕국의 수비병과 접촉했을 것이다. 정식으로 토벌대가 뜨거나 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한번 습격을 해주는 게 좋다.

경계선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척후로 보낸 뿌우가 돌아와서 말했다.

“영주의 성에 병사들이 집결해 있당. 개척민 마을을 공격한 야만인을 토벌한덴당.”

역시 그렇지.

마녀들이 저주로 티 안나게 개척민 마을을 부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저주로 인한 전염병인지, 그냥 밀림의 풍토병인지 구분이 안 가고, 누가 그랬는지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토벌대가 결성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공격을 하면 왕국측에서도 개척민에게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에 거의 무조건 토벌대가 뜬다.

“마법사는?”

“아직 안 왔당.”

“그럼 바로 싸워야겠군. 마법사까지 오면 귀찮으니까.”

나는 야수들에게 진격을 명했다. 목표는 영주의 성, 다른 곳을 신경쓰지 않고 그들과 바로 한판 붙어볼 참이다.

캬오오오오

고릴라인 광켈이 크게 흉성을 지르고는 가장 앞에서 달려 나갔다. 거대화 마법을 걸어서 거인만한 크기로 변한 광켈은 밀림에서도 평야에서도 가장 무서운 야수 중 하나이다.

영지민들이 우리를 보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코끼리 둠비에 타고 있었고, 내 앞으로는 모리안이 그레이트 액스를 들고 뛰는 중이다.

비록 수는 30여 마리밖에 안 되지만 내가 걸 수 있는 강화마법을 모두 다 걸어주었기에 해기 지기 전까지 그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무엇보다 마법이 깃든 무기가 아니면 그들의 가죽을 뚫지 못한다.

“이놈들! 감히 이곳까지 쳐들어오다니.”

성에 접근하자 성문이 열리고는 일단의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앞에 선 지휘관급의 기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용감한 기사다. 하지만 상대의 전력을 가늠하지 못하고 겨우 백여 명의 병사들로 우리를 막아선 것을 보면 영리하지는 않다.

나는 손목을 그어 피를 내서 마법을 사용했다.

“무한한 공포를 적에게 내리겠노라. 심볼 오브 비스트!”

우우우웅

공간이 진동하며 수십 마리의 야수가 뭉쳐진 키메라와도 같은 문양이 허공에 나타났다. 문양은 그것은 천천히 회전을 하면서 온갖 야수의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이 문양을 본 자는 극심한 공포에 빠지고, 울음소리를 들은 자는 삼일밤낮으로 악몽을 꾸게 된다.

사실 완벽한 피의 마법은 아니고, 룬마법을 살짝 가미한 것이지만 7서클 마법사 이상이 아니면 파악하기 힘들다.

“아아악!”

병사들 중 태반은 싸우기도 전에 공포에 빠져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광범위 공포마법은 적의 진열을 흐트러뜨리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야수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8서클수준의 공포마법까지 쓴 이상 영주군따위는 우리에게 상대도 안 되는 것이다.

그 사이 광켈이 지휘관 기사를 덮쳤다. 그 큰 덩치로 몇 미터나 뛰어올라 말과 사람을 한꺼번에 깔아뭉개는 모습은 야수의 광포함을 그리듯이 보여주는 듯 했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성 안으로 들어간다. 가자!”

도망치는 병사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적의 진형을 부수며 돌파를 했다. 성 안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게 보인다.

“영주관을 부숴라!”

크오오오오

파괴!

둠비가 영주관의 벽을 머리로 들이받으니 벽이 그대로 뚫렸다. 거대화, 흉폭화 된 야수들의 힘은 성벽도 부술 정도라 내부의 건물은 그야말로 헛간 허물 듯 순식간에 폭삭 내려앉게 만들었다.

이미 영주군이 산산이 흩어져 도망가 버린 후라 우리를 막는 자들은 없었고, 영주 또한 이미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부수다보니 원주민 노예들을 몇 명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외쳤다.

“다른 노예들은 어디 있느냐?”

“우리는 항상 여기 갇힌 채 일만 해서 잘 모릅니다.”

“모리안과 함께 다른 귀족들의 집을 수색해서 동족들을 구해라. 너희들을 모두 구하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나지 않으리라.”

“감사합니다.”

노예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다가 내가 그들을 구하겠다고 선언하자 감복해서 절을 했다. 그리고 모리안과 함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성 안의 건물들 중 태반을 부수었을 무렵, 모리안은 50여명의 원주민 노예들과 함께 돌아왔다. 뿌우가 각 건물들 사이로 날아다니며 일일이 찾아보았는데 더 이상은 없다고 했다.

“좋아, 우선은 이정도로 하지. 하지만 다른 곳에 잡힌 동족들을 모두 돌려받기 전까지는 계속 습격을 할 테다.”

나는 큰 소리로 외친 후 야수들과 함께 밀림으로 돌아왔다.

같이 온 자들에게 확인을 하니 돌아갈 곳이 없는 자가 11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부족 전체를 학살하고 노예사냥을 하는 대규모 사냥꾼들이 있는 모양이다.

“피스카.”

“옛!”

피스카는 내가 야수들을 이끌고 문명인의 성을 공격하는 것을 뒤에서 보았다. 그의 눈에 무한한 존경심이 엿보인다. 나를 무슨 신처럼 보는 것이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바두리안 부족에 가서 11명이라고 전해라. 나는 며칠 쉰 뒤에 저들의 공격을 맞이해 싸울 것이다.”

“옛, 바로 달려가서 전하겠습니다.”

피스카는 빠르게 달려 나갔다.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들의 승리를 바두리안 부족에 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미 그의 영혼은 바두리안이 아닌 야쿰 부족의 일원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나는 야수들에게 비축해 둔 식량을 주고 휴식을 시켰다. 밥만 따박따박 주면 말을 잘 듣는 게 야수들이다. 현혹마법에 걸린 채 나의 강함을 인식해서 그런지 배신하거나 현혹상태를 벗어날 생각도 안 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렉의 존재가 그들의 복종심을 한층 더하니 이대로라면 조금 더 야수의 수를 늘려도 될 것 같다.

나는 모피가 깔린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뒤쪽에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미스틱 엑스는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마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쪽이 공격을 했으니 저쪽에서 토벌대가 오겠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내 명성을 단기간에 쌓아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한번쯤 다른 마족의 계약자와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자가 나를 보고 가짜라는 것을 눈치 챌까? 확률은 반반 정도일 거라고 본다.

눈치 채면 그 자리에서 제거해야 하고,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을 끌어도 된다.

어쨌든 밀림에서 두 명의 마족의 계약자가 나타난 셈이니 당분간 전 대륙의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될 터이고, 내가 송신탑을 공격하여 점거하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내가 만드는 송신탑을 내가 공격해서 점거한다. 하하.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아이러니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하다.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졸음이 왔다.

나는 편하게 누워서 잠을 청했고, 곧 꿈속에서 미리아를 만났다.

“렌, 너 여기서 뭐 하는 중이야?”

“윽, 여기가 어딘지 아는 거야?”

“남쪽 밀림지대잖아. 한 달 동안 연락도 없기에 내가 점을 좀 쳤어.”

“에고, 이제는 어딜 가도 너를 따돌릴 수가 없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 계획을 미리아에게 대충 설명했다.

“쳇, 나도 끼워주지.”

“이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나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서 너까지 이런 일을 시키기는 싫거든.”

“난 별로 상관없다고, 그리고 난 마녀의 피가 흘러서 그곳에서 꽤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이야.”

“그래도.”

“가고 싶다고. 안 돼?”

“에효, 알았어. 와라.”

“응, 그럼 보름 내로 갈게. 기다려. 후훗.”

쩝, 오면 좋긴 한데, 나쁜 짓을 할 때에는 미리아가 모르게 하고 싶었단 말이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잠에서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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