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2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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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양토스 밀림지대에는 세금을 면제받기 위해 개척민을 자처하고 들어간 자들과 야만인으로 사는 자들이 항상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마법사들이 개척을 도와주면 좋겠지만 예전부터 마법사들은 야만인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사실 정글지대는 마녀의 공간이고, 그들의 저주는 고상한 룬마법사들에게 있어 별로 가까이 하지 않고 싶은 영역이긴 하다.
전생의 나처럼 별종 마법사만이 호기심을 못 이기고 정글에 들어가 마녀와 만나고는 하는데, 대부분 마녀에게 유혹당하거나 저주를 받아 죽고, 극히 소수만이 마녀들에게 인정을 받아 피의마법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로엔의 경우에는 워낙 강하고 마법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몇 번 저주에 걸리는 사이 이치를 깨닫고 스스로 피의 마법을 터득했었다.
“이쯤이면 적당하겠군.”
우리는 적당히 안으로 들어가 관광 상품으로 파는 원주민 물품으로 처음 구상한 대로 분장을 했다.
“이제부터 나를 야쿰이라 불러, 알았지? 모리안.”
“알았어요. 그런데 경이라는 호칭도 바꿔야겠죠?”
“칸 야쿰, 호칭을 앞에 붙여. 넌 전사 모리안이고.”
“대추장을 의미하는 호칭이군요. 그렇게 할게요.”
“그럼 이제 진짜 원주민을 찾아야겠어. 개척민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원주민이면 딱 좋은데 말이야.”
“엣, 그럼 개척민을 학살 하시려고요?”
“아, 개척민 말고 노예 사냥꾼을 찾자. 그놈들 뒤를 쫒다가 원주민 영역에 들어섰을 때 일을 벌이는 거야.”
노예 사냥꾼은 원주민을 잡아다가 남방 왕국에 팔아먹는 자들이다. 그들은 원주민을 습격해 성인 남성을 죽이고 여성과 아이만 파는데, 이들 때문에 개척민들을 노예사냥꾼이라 오해해서 공격하는 원주민들도 많다.
물론 개척민들이 먹고 살기 힘드니까 노예사냥꾼을 겸하는 일이 꽤 있어서 오해라고 하기도 그렇다.
아무튼 톰양토스 밀림지대는 대륙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각종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 지금까지 이곳에서 마족의 계약자가 나타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우리는 점점 밀림 안으로 들어갔다. 서두르지 않고 근처 개척마을의 위치도 확인하고 독충지대나 늪, 그리고 먹을 수 있는 식수원들도 하나하나 찾아냈다.
그렇게 약 일주일 정도 탐색을 계속하니 드디어 개척마을 중 한군데에서 노예사냥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쯥, 개척지 일이 힘든 것은 알지만 저렇게 노예를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을 건데.”
“마녀들이 저주를 안 하나요?”
“하겠지. 노예사냥을 하는 마을은 얼마 못 가서 대부분 전염병으로 다 죽어버리는데, 그래도 하는 자들이 있단 말이야.”
사실 개척민이 밀림 안으로 들어오는 것부터가 마녀의 신경을 자극하는 행위이다.
내가 알기로 마녀들은 개척민들을 일종의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데, 마법사와의 정면충돌을 막기 위해 원주민 보호를 대의명분으로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규정을 깨고 원주민을 괴롭히는 개척민들을 상대로 마음껏 그들의 힘을 실험해보는 것이다.
“스렉, 저기 저 쥐 좀 잡아올래? 산 채로.”
컹
스렉은 나 같은 대형 마수가 쥐새끼나 잡아야 하냐는 듯 한 표정을 했지만 곧 훌쩍 한번 뛰어서 쥐를 잡아 눌렀다.
쥐는 스렉의 앞발에 눌리는 순간 공포로 기절을 했고, 모리안이 그것을 들고 왔다.
“역시 저주받은 쥐네. 이미 이 마을은 공격받고 있는 거야.”
“전염병을 퍼뜨리는 건가요?”
“그렇지. 그렇게 다 죽게 될 때쯤 마녀들이 나타나 살아남은 자들을 잡아가고 마을은 불태워 버릴 거야.”
“그럼 우린 어떻게 하나요?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지금 신분으로는 안 해야 할 일이잖아요.”
“습격을 해야지. 그래서 잡혀있는 원주민들을 구하고 이 마을을 나의 영역으로 선포한 후 노예를 부리는 왕국을 공격할 거야.”
그 전에 우선 밀림의 동물들을 조금 잡아 길들일 필요가 있다.
비스트킹을 자처하기로 했으니 부리는 야수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나는 투명마법을 걸고 마을 사람들 모르게 그들의 몸을 관찰했다.
아직 전염병이 제대로 돌지 않았고, 내 예상대로라면 2주 정도 후에 급속도로 병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2주 후에 오자고, 아마 그때쯤이면 마녀의 지시를 받은 원주민들도 정찰을 시작할 테니까.”
작전을 정리한 후, 나는 일행들과 함께 밀림 안쪽으로 들어갔다. 원주민들과 마녀의 이목을 피해서 밀림을 여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예전의 경험과 마법의 힘이 있으니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야수를 발견하면 사로잡아서 마법을 건 후 스렉을 앞세워 교육을 시켰다. 거대 마수인 스렉은 야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없었기에 복종 마법이 아주 잘 먹혔다. 아마 마법을 안 걸어도 그들은 스렉에게 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복종 마법이 제대로 걸린 야수들은 강화 마법을 걸고, 몸에 알록달록하게 칠을 했다. 야수들은 자신들의 몸에 뭐가 묻는 게 이상한지 자꾸 칠을 없애려고 핥거나 땅에 뒹굴며 흙에 문댔지만 스렉이 한 번 쿠왕 하고 짓자 감히 칠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이주일 동안 우리는 약 삼십여 마리의 야수를 잡을 수 있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좋은 것은 거대 거미를 두 마리 잡아 길들인 것이다.
거미들은 크기가 거의 2미터나 됐는데, 이들은 스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뒤에 가만히 서 있는 미스틱 엑스의 기운에 매료되었는데, 미스틱 엑스의 몸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무엇인가가 거미를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미스틱 엑스, 너 이제 보니 곤충에게 인기가 많구나.”
“그게 아니고 내가 작은 음파를 흘리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작은 곤충은 음파 때문에 접근을 못하는데, 큰 곤충은 오히려 끌리는 것 같습니다.”
“아하, 밤에 모기가 없는 이유가 너 때문이었어? 말을 하지. 고맙다.”
미스틱 엑스는 정말 말이 없이 우리 뒤를 따라오면서 그냥 필요한 행동을 알아서 하곤 했다. 내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지만 그가 먼저 질문을 하는 경우는 여행을 떠난 이후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칸 야쿰, 질문이 있습니다.”
쩝, 무슨 말을 하자마자 질문을 하냐.
“뭔데?”
“다들 가명을 쓰는데, 나는 본명을 써야 합니까?”
“아, 그건 아니고, 넌 이번에 조금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할 거 같아서 그동안 생각을 좀 했어.”
“무슨 존재입니까?”
“살아있는 동상.”
“동상?”
“응, 인간인데 동상처럼 안 움직이는 건데, 원주민들은 너를 일종의 신상처럼 여기고 절을 할 거야. 그러니까 넌 금칠을 하고 그냥 앉아 있으면 돼.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말이지.”
“별로 기분 좋은 역할은 아니군요.”
“미안, 그렇게 조금도 안 움직이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너하고 마리포즈뿐이잖아. 아무래도 원주민들을 현혹시키려면 신상 정도는 있어야 할 거 같거든.”
“알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몸을 안 움직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니 때가 되면 말씀해 주십시오.”
“말 나온 김에 지금 하자. 저 코끼리 위에 앉아 있으면 마리포즈가 금칠을 해 줄 거야. 거대거미 둘이 너를 호위하는 역할이고.”
“…….”
미스틱 엑스는 말없이 코끼리 위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정말 숨도 안 쉬는지 가슴기복도 전혀 없어지고 눈꺼풀도 움직이지 않았다.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신상이 되어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을 보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하하.
준비가 끝나고, 우리는 개척민의 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마을로 접근을 하니 앞쪽에 원주민들이 숨어서 정탐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가 그들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들도 우리를 발견하고는 스렉을 비롯해 거대한 야수들의 무리에 놀라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거친 원주민어로 외쳤다.
“너희는 누구냐?”
“저, 저희는 붉은 강 아래에 사는 바두리안 일족입니다.”
“나는 야쿰, 죄악에 물든 문명인들을 벌하러 왔다.”
“이곳은 이미 바두리안의 저주를 받아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야쿰님과 신수들이 저주에 옮을까 두렵습니다.”
“하, 나는 저주에 걸리지 않는다. 내 가족들도 마찬가지지. 비켜라! 저주와 같이 미적지근한 방법으로는 저들에게 공포를 심어줄 수 없다.”
나는 당당하게 외치고는 스렉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스렉은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크게 울부짖었고, 다른 야수들도 모두 스렉을 따라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쿠오오오오오오
뿌우우우우
우우우우우
“가라! 마을 놈들을 쓸어버려라. 저주에 걸린 자들은 물지 말고, 한쪽으로 몰아놓은 후 안 걸린 자들은 모두 죽여라.”
전염병이 돌았는데 저주에 안 걸린 자들이 어디 있겠어. 발병을 안 했어도 안에는 병체가 있겠지.
내 야수들은 명을 충실히 받들어 공포에 떠는 마을 주민들을 모두 한가운데로 몰아붙였다. 과연 그들 중 대부분은 얼굴에 병색이 완연해서 전신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리고 은폐되어 있는 감옥 속에서 나온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로 병에 걸려 있었는데, 원래 그들은 마녀가 나중에 와서 치료를 해줄 테지만 지금은 내가 그냥 치료를 할 거다.
나는 내 팔뚝을 그어 피를 내고, 혈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피의 정화! 모든 저주는 이것으로 사라지게 되지.”
촤아아아아
피안개가 병든 원주민들의 몸속에 흘러 들어가자 그들은 곧 기운이 나는 듯 일어나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바두리안의 원주민들은 놀라서 외쳤다.
“남자가 마녀의 마법을! 우리 바두리안의 저주를 저렇게 쉽게 풀다니.”
신기하지? 자고로 혈마법은 여자만 쓰는 거라고 배웠을 테니 말이야. 남자는 전사를 하고 여자는 마녀를 하는 게 밀림의 규칙이거든. 그런데 우리는 남자인 내가 마법을 쓰고 여자인 모리안이 전사를 하거든.
그때 개척민들 중 몇 명이 절을 하며 외쳤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우리도 치료를 해 주십시오.”
나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외쳤다.
“동족이 아닌 적에게 자비는 없다. 모리안, 이놈들을 모두 마을 밖으로 내쫓아라. 그들이 저주 걸린 채로 그들의 왕국에 돌아가게끔 하는 거다. 크하하하, 아마 내 생각에 그들은 자신들의 동족들에게도 부인 받을 것이다. 어쩌면 동족들의 창에 찔려 불에 태워질 테지.”
나의 잔인한 선언에 개척민들은 벌벌 떨었다. 애초에 노예사냥을 시작한 시점에서 이 마을의 운명은 정해진 것.
이것으로 나의 악명은 밀림의 안과 밖에 모두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