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203화 (203/250)

로엔의 마나뱅크 203화

협정이 끝난 마도가문의 대표들은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정령술 강론과 수련법에 대한 책자를 받아 돌아갔다.

그 뒤 나는 마나뱅크를 개량해서 정령술로 게이트를 열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건 생각보다 단순한 작업이어서 금방 끝났다.

나는 우선 크리드 경에게 마나뱅크의 계좌를 만들어주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게이트를 열어 봐요.”

“으, 익숙하지 않은데, 일단 물의 정령을 소환해야 하는 거지?”

“익숙해지면 그냥 힘만 끌어다 열면 되는데, 지금은 일단 정식으로 소환을 해 봐요.”

“소환!”

촤아아아아

물의 정령은 예전보다 두 배쯤 커져 있었다. 그만큼 크리드 경이 정령술 수련을 열심히 했다는 뜻이리라.

“게이트 오픈. 웃!”

“마나뱅크와 연결 된 게 느껴지나요?”

“이런 느낌인 건가? 마법사들은 원래 이렇게 게이트를 연 상태로 싸웠던 거군.”

“맞아요. 그 안에서 비축된 마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니 마법을 마구 써도 전혀 지치지를 않는 거죠.”

“그럼 나는 정령력을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건가?”

“맞아요. 정확하게 말하면 게이트를 열면 정령이 마나를 공급받게 되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크리드 경이 정령력을 계속 받게 되는 셈이죠.”

“좋군. 이건 마나수련에도 도움이 되겠어.”

“쓰다보면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솔직히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뱅크는 너무 사기적으로 좋은 도구라서 그동안 기사들이 상대적으로 고생을 했었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겠네요.”

“하하하, 미스틱 엑스 경께서 곧 기존의 마나뱅크의 재건에 대한 연구도 착수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당분간 기사가 마법사의 상위의 존재가 되기는 힘들 거야.”

“그럴지도 모르죠. 무엇보다 정령과의 계약이나 마나뱅크 계좌 개설은 마도사급 마법사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결국 서로 상생 상조하는 관계가 되는 게 바람직 할 거예요.”

“나도 그렇게 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마법사들의 편협함이란, 아니, 렌 경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야. 기존의 마도가문 마법사들 이야기지.”

“차차 좋아지겠죠. 그렇지 않은 가문은 도태될 테니까요. 그럼 이제 수련을 하면서 마나뱅크에 마나를 비축해 보세요. 며칠 뒤에 다시 테스트를 해 봐야 하니 협조해 주시고요.”

“알았네. 내 적극 협조하지.”

크리드 경은 마나뱅크를 쓸 수 있다는 데에 큰 감동을 느꼈는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마나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몸 안에 남기는 마나 이외에는 모두 마나뱅크에 넣고, 그게 그대로 유지되니 마나를 모으는 속도 자체가 세 배쯤 빨라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렇네. 마법사보다 기사가 마나뱅크를 이용할 때 훨씬 효율이 좋은 거군.

원래는 아무래도 마법사쪽의 마나수련이 훨씬 효율이 좋은데, 마나뱅크를 이용하면 그게 거의 차이가 없어지니 상대적으로 기사에게 더 이득인 셈이다.

그나저나 상급 검법서가 거의 사라진 지금 기사용 마나뱅크를 만들어도 여기 접속할 수준의 기사가 많이 탄생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 크리드 경이 교육시키고 있던 자들 중 몇몇은 재능이 있어 보이긴 하던데.

그래도 우리 영지와 왕국은 크리드 경의 검법서를 토대로 마나수련이 가능한 새로운 검법서를 만들어 주었다.

크리드 경의 수고가 아주 컸는데, 오리지널에는 아무래도 뒤떨어지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새로운 정령기사를 기대할 만 하다.

하지만 이걸 다른 왕국에까지 다 퍼뜨릴 수는 없다. 그 정도로 내가 사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가만, 혹시 포트라가 검법서 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공간 주머니 속에 들어간 물건들은 모두 포트라가 관리한다. 그중 주인이 꺼내지 못하게 된 것은 아예 포트라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들 중 검법서가 있을지 모른다. 어차피 포트라는 금은보석에만 관심이 있을 뿐, 검법서는 그에게 있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니 달라고 해야겠네.

나는 즉시 뿌우를 불러서 포트라에게 검법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과연 포트라는 세 권의 검법서를 지니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지금은 사라진 전설의 검법서다.

“후훗, 역시 포트라의 창고에는 없는 게 없군.”

“근데 공짜는 아니란당. 동업자니까 반값세일은 해준다고 하시공.”

“으그, 정말 재물에 대한 욕심이 끝이 없군.”

“원래 바람의 정령은 재물 욕심이 많당.”

“재물 욕심만 많은 게 아니라 너를 보면 여자 욕심도 많아 보이던뎅.”

“그건 욕심이 아니라 본능이당. 괜히 바람의 정령이 아니당.”

“알았어. 영지에 있는 보물로 대가를 지불할 테니 검법서 달라고 해.”

“먼저 넣으란당.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온 재물의 양을 보고 검법서를 하나씩 내 줄 거라고 하셨당.”

“크으, 선불이라 이거냐. 알았다.”

나는 창고로 가서 부피가 작은 보석 위주로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뿌우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검법서를 꺼내 주었다.

“계속 넣으면 다음 거도 꺼내 준당.”

이렇게 해서 결국 창고에 있는 보석들 중 태반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세 권의 검법서를 다 얻을 수 있었다.

보석들이 아깝긴 하지만 검법서의 가치는 그 열배 이상이다.

이거 한 권을 손에 넣은 왕국은 향후 수십 년간 주변 왕국에 비해 힘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자, 이걸 어디에 보낸다?”

표면적으로 소문이 나게 하면 안 된다. 못 받은 왕국이 거센 항의를 할 것이 뻔 하니 아무도 모르게 전달해야 한다.

그러니까 받은 왕국도 우리가 줬다는 것을 모르는 게 좋다. 안 그러면 어떻게든 비밀이 새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 검법서를 구해 다른 왕국에 주려고 하냐고?

그건 바로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내가 전 세계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당분간 국가간에 큰 전쟁이 없어야 한다.

원래 인간은 싸우는 존재다. 지금은 마족의 계약자들 사태 때문에 다들 몸을 사리고 있지만 그래도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난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정복 야욕이 그다지 크지 않는 왕국들의 힘을 키워서 한시적이나마 평화를 얻으려 한다. 적어도 의식이 끝날 때까지는 대륙이 평화로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덴판 제국은 안 되지. 거긴 이미 너무 강해. 남쪽으로는 모로시아 왕국이 좋겠네. 여왕이 다스리고 건국이념부터가 먼저 남을 치지 않는다고 되어 있으니까.”

나는 신중하게 세 왕국을 골랐다. 그리고 그들 왕국에게 이 검법서를 전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

몇 달이 지났다.

모로시아 왕국의 여검사 랑케디아는 죽어가는 마법사 한 명을 발견했고, 그 자를 구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마법사는 회생하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그런데 그 마법사는 죽기 직전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내 랑케디아에게 주었고, 놀랍게도 그것은 검법서였다. 모든 기사들이 꿈에도 그리는 상급검법서!

랑케디아는 그것을 들고 왕국으로 갔다. 혼자 몰래 수련하고 싶은 욕망을 참고 왕국의 미래를 위해 왕에게 그것을 바쳤다.

그 결과 랑케디아는 백작 작위를 얻고 근위기사의 직위와 함께 상급검법서를 수련할 자격도 받았다.

모든 것은 렌이 분석한 대로다. 랑케디아가 국가에 충성심이 깊어서 검법서를 혼자 독점하지 않을 거라고 예측한 게 정확하게 맞았다.

다른 두 왕국에도 우연을 가장한 검법서 전달이 있었다.

아직 그들 왕국에서는 대외비로 쉬쉬 하면서 몇몇 선택받은 기사들에게만 수련을 하게 했지만 렌은 그걸 그냥 놔두지 않았다.

어느 날 데빌 베인의 이름으로 왕국을 찾은 사자는 미스틱 엑스의 서신을 보냈다.

거기에는 왕국이 상급 검법서를 얻은 것을 축하하는 내용과 함께 검법서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이 새어나가기 전에 모든 왕국들을 설득해서 전쟁방지 조약을 맺어야 하니 협조해 달라고 했다.

전쟁방지 조약이란 검법서를 얻은 왕국이 대가를 받고 주변 왕국에 검법서의 복사본을 배포하는 대신 복사본을 받은 왕국들은 다른 왕국들로부터의 침략을 막는데 힘을 보태기로 약속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검법서를 얻은 왕국과 국격을 접한 다른 왕국도 검법서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연합이 되어 힘을 행사하고, 데빌 베인도 그들이 침략을 받지 않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각 왕국들은 데빌 베인이 어떻게 자신들이 검법서를 얻은 것을 알았는지 의아해 했지만 세계 최고의 마법사인 미스틱 엑스의 눈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굳이 따지지는 않았다.

“인근 왕국에 검법서를 나누어 주는 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전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니 어쩔 수 없군요. 우리 모로시아 왕실에서는 데빌 베인의 전쟁방지 조약에 적극 협조하겠어요.”

여왕의 결단이 있은 후, 다른 두 왕국도 결국 승낙을 했다.

그렇게 상급검법은 세 왕국을 중심으로 부활을 했고, 렌이 있는 곳까지 모두 네 곳에서 검법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다른 왕국들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약해질까 봐 발을 동동 구르며 상급검법서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지만 그게 갑자기 찾는다고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것으로 토대는 완성 되었다.

렌은 기사들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다음 단계의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송신탑의 건설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