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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99화 (199/250)

로엔의 마나뱅크 199화

“이미 떠난 자가 무슨 미련이 남아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나는 탐욕의 제왕 그레진저, 내 것이었던 것을 포기하는 법은 없다.”

“아, 그러셔? 그런데 이 세상이 언제부터 네 것이었는데?”

“너희 인간들은 우리 드래곤의 은혜도 잊고 지식을 배우자 슬금슬금 기어 올라왔지. 분수도 모르는 놈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군. 너를 이곳에서 제거해야겠다. 소환자로써 도전을 하도록 하지.”

“크하하하, 미물에 불과한 네놈이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한다고? 받아들이겠다. 나의 조건은 너희들을 뼈와 살로 내 분신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나의 조건은 너를 소멸시킨 후 남아있는 힘은 내가 쓰는 것으로 하지.”

이건 정식 대결이다.

소환자가 소환된 대상에게 싸움을 거는 것인데, 상대가 받아들인 이상 이제는 뒤로 물러설 수 없다.

그리고 승자에게는 상이 있는 법,

그레진저가 이기면 우리의 시체를 모아 일종의 플래쉬 골렘을 만든 후 이용하겠다는 것이고 우리가 이기면 그레진저가 이 세계로 들어올 때 지니고 있는 힘을 그대로 받겠다는 거다.

파즈스가 삭풍의 창을 남겨준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된 것처럼 드래곤의 힘도 쓸 수 있다면 앞으로 다른 마족을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럼 시작하자!”

파캉

대결이 시작된 이상 소환의 마법진에 설치된 안전장치는 모두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레진저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확 펴며 마법진으로부터 튀어나왔는데, 확실히 크긴 컸다.

그러나 우리도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레진저가 몸을 펴는 사이 이미 사방에서 덩굴줄기가 뻗어 나와 그레진저의 몸을 칭칭 감았다.

덩굴줄기는 당겨도 끊어지지 않고 무한히 늘어나는 고무줄처럼 움직일수록 더욱 그의 몸을 감는 성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레진저의 힘은 강대하고, 덩굴에 감겨도 별로 움직임에 어려움이 없는 듯 했다.

크리드 경은 바로 갑옷의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른 후 천정에 거꾸로 달라붙어 달렸다. 역시 날면서 검법을 쓰는 것은 익숙지 않기 때문에 천정을 땅처럼 생각하고 그레진저의 머리를 직접 공격하려는 것이다.

캉, 캉, 캉

크리드 경의 공격이 그레진저의 머리에 세 번이나 적중했다.

그러나 검이 박히기는커녕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겼다.

“이놈의 머리는 강철골렘보다 단단하군.”

“깡통골렘과 드래곤본의 강도를 비교하다니, 무식하기 짝이 없구나.”

그레진저는 귀찮다는 듯이 크리드 경이 있던 자리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크리드 경은 가까스로 천정을 굴러 피했고, 천정은 쩌적 하고 금이 갔다.

그런데 그것이 신전에 대한 공격행위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갑자기 신전의 내부가 우우웅 하고 진동하더니 갈라진 금으로부터 검은 촉수와도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그레진저의 머리에 난 뿔을 휘어 감았다.

“크읏! 이건 에바큘의 촉수. 감히 에바큘이 나를 공격하다니.”

에바큘은 이 신전의 자아인 모양이다.

신전의 에너지원을 분석할 때 자주 나왔던 명칭인데, 이게 원래 드래곤은 절대 공격 못 하게 되어 있었지만 나는 드래곤과 인간이라는 단어를 바꿔 놓았기에 이제 신전은 드래곤에게 적대해고 인간은 절대 공격 안 한다.

그건 그렇고 저런 장치까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 신전의 벽이나 바닥, 천정을 부수면 안 되는 거구나.

에바큘의 촉수는 말하자면 머리카락 같은 느낌인데 대상의 생기를 빨아먹는 흡수능력이 있는 듯하다.

그레진저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촉수를 떼어내려 했지만 에바큘의 촉수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드래곤이 발버둥을 치면서 다시 천정을 몇 번 때리자 그곳으로부터도 또 촉수가 튀어 나왔다. 정말로 전체 벽 속에 저게 가득 차 있나보다.

“미리아, 촉수를 강화해 줘.”

“알았어.”

촉수는 사악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신성력까지 띠고 있었는데, 이게 알고 보면 신전이고 그 당시 드래곤은 거의 절대신성을 얻기 직전의 존재였다고 보여진다.

파츠츠츠츠

미리아로부터 강력한 신성력이 흘러나와 덩굴을 타고 에바큘의 촉수에게로 전달되었다. 덩굴은 촉수와 서로 얽히며 서로를 강화시켜나갔고, 촉수는 그런 덩굴을 동료로 인식한 듯 기존에 그레진저를 감고 있던 덩굴을 타고 어느덧 그레진저의 전신을 꽁꽁 묶어버렸다.

“이놈! 감히 주인을 배반하다니, 소멸시켜 버리겠다.”

미안, 그거 자아는 이미 파괴 되서 본능만 남았거든.

그레진저가 천정에 대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과 함께 대전 안의 공기를 세차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왔다! 저건 틀림없이 브레스다.

나는 즉시 바닥으로 내려와 클로킹 기능을 활성화 시켰다. 이것으로 잠시나마 그레진저는 내가 일으키는 기운을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미스릴 우산을 펴고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드드드드드드

주변이 떨렸다.

노리는 것은 그레진저의 몸통 한 가운데, 심장이 있는 부위다.

크리드 경도 얼른 바닥에 내려섰다.

이건 정말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 그레진저는 우리가 아닌 천정의 에바큘의 촉수를 향해 브레스를 쏘려고 하고 있다.

우리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그렇게 방심해 주는 적이 참 고맙고 좋더라.

“마나파동포, 발사.”

“에바큘, 뿌리까지 타 버려라.”

화르르르륵

마나파동포와 브레스는 거의 동시에 발사되었다.

그레진저의 화염 브레스는 정말 대단해서 천정 전체를 불로 덮었다. 촉수는 물론이고 미리아가 쳐 놓은 덩굴까지 한순간에 재가 되었고, 갈라진 틈새로 열기가 파고들어 정말로 에바큘의 촉수는 뿌리까지 타 버린 모양인지 더 이상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발사한 마나파동포가 그레진저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레진저의 가슴에 구멍이 나고, 곧이어 충격파로 구멍 주변부분이 크기 찢어져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가 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처음부터 필살기 써서 미안, 방심할 때 쏴야 먹히는 거라서 어쩔 수 없었어.

“크리드 경, 그레진저의 머리를 노려요. 전 저 구멍을 계속 확장할 테니까.”

심장이 터졌을 텐데 그레진저는 비명만 크게 지를 뿐 죽을 거 같지 않다.

하긴, 마족들 중에는 심장이 두 개씩 있는 놈도 많지.

절대신성을 가진 자들이 육체를 만들 때 심장은 꼭 두 개씩 넣더라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저 구멍으로 인해 그레진저가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고, 그건 저걸 계속 후벼 파면 저놈은 비명을 지르느라 브레스를 못 뿜을 거라는 점이다.

“라이트닝 랜스!”

파지지직

“쿠오오오오!”

이제는 말이 아닌 마수의 괴성을 지르네. 이성이 사라지고 흉성만 남는 건가?

쾅, 쾅, 쾅

그레진저는 정말 괴로운 듯 머리로는 천정을 부수고 발로는 바닥을 밟아 다졌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격은 미리 세워놓은 동상의 벽이 다 막아준다.

브레스도 한 방 정도는 막을 거라고 기대하는 동상의 벽에는 이 신전의 에너지를 거의 대부분 집중시켜 놓았다.

나는 계속해서 라이트닝 랜스를 쏘았다.

단순무식한 게 때로는 최고의 효율이라고, 강력한 관통력과 전격의 힘을 같이 발휘하는 라이트닝 랜스야말로 거대 괴수의 몸에 구멍을 파고 내부를 파괴하기에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촤악

크리드 경도 한 건 했다. 그레진저가 버둥거리는 사이 머리를 노리는 척 하다가 목을 타고 내려와 날개 한쪽을 찢어버린 것이다.

“뼈만 아니면 가죽은 찢을 수 있군.”

“잘 했어요. 서피야, 저 찢어진 날개에 달라붙어.”

샤아아아아

지금까지 내 뒤에 웅크리고 몸을 사리던 서피였지만 그레진저의 빈틈이 보이니 내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날아가고 있었다.

찢어진 날개 부분이 다시 붙지 않도록 몸으로 파고 든 서피는 갈라진 곳으로부터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굉장한 고밀도 마기다. 이거만 제대로 흡수하면 내 원래의 힘보다 서너 배는 더 강해질 것이다.”

서피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그거 잠깐 빨았다고 벌써 기운이 확 세졌나보다.

그걸 들은 렉스가 그르르 하고 내 눈치를 본다. 렉스도 마기를 빨고 싶은 모양이다.

“알았어. 삭풍의 창 소환.”

나는 지팡이를 제단 위에 꽂아둔 채 삭풍의 창을 두 손으로 잡고 그대로 땅에 내려선 그레진저의 발목으로 돌진했다.

“크앗! 이것은 고위 마족의 병기!”

삭풍의 창은 그레진저의 가죽을 뚫었을 뿐 아니라 그의 복사뼈까지 깨 버렸다. 적어도 파괴력만큼은 크리드 경보다 이 창이 훨씬 강하다는 것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한번 찌르고는 즉시 뒤로 물러나서 제단 위로 돌아가며 외쳤다.

“렉스야, 물어!”

크왕

렉스는 그 거대한 덩치로 훌쩍 날아서 그레진저의 발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정확하게 내가 찌른 곳에 이빨을 박고 마기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그레진저는 정말 화가 난 듯 갑자기 크게 괴성을 지른 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의 등 쪽에 나 있던 비늘들이 투투투툭 하고 일어나더니 안쪽으로부터 새로운 날개 두 개가 튀어 나왔다. 그것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시커멓고 광택이 전혀 없어 마치 그림자가 튀어 나온 듯한 느낌의 날개였다.

“저건 뭐지?”

드래곤에 대한 기록에 그들이 날개를 네 개나 가졌다는 정보는 없다. 저건 드래곤 본래의 능력이 아니라는 소리다. 설마 이계로 가서 새로운 능력을 얻은 건가?

“내가 네 개의 날개를 펴게 만들다니, 네놈들은 나의 저주로 인해 영원토록 고통 받을 것이다.”

목소리까지 바뀌었다. 묘한 울림이 느껴진다.

이게 뭔지는 경험해 봐서 아는데, 절대신성을 지닌 존재가 유한자의 정신을 파괴시키기 위해 목소리에 힘을 실어 보내는 거다.

나는 급하게 정신을 보호하는 마법을 써서 나와 내 일행들에게 걸었다.

“원래부터 가졌던 드래곤의 힘만으로는 안 되겠나 보지? 하지만 이렇게 이세계에서 절대신성을 발현하면 나중에 소멸될 때 손실이 장난 아닐걸?”

“내가 소멸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놈이 정말 성격이 더럽구나.

보통 무한자는 자신의 절대신성에 타격이 갈만한 행동은 절대로 안 하는데, 그레진저는 지금 만에 하나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일을 벌였다.

좋아. 그 힘까지 다 내가 먹어주지.

적은 강대하지만 나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나는 한 손에는 삭풍의 창을, 다른 손에는 뿌우가 숨어있는 마법의 지팡이창을 들고 그레진저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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