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98화 (198/250)

로엔의 마나뱅크 198화

8장 봉인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에너지원이 되는 단에 새겨져 있는 인간배척부분 중 인간을 지우고 드래곤이라는 정보를 넣는 데에는 꽤 많은 걸림돌이 있었지만 시간을 들이면 못 할 일은 없다.

그 사이 포트라는 저주받은 유물의 30%를 먹는 조건으로 나머지 물품의 저주를 풀어서 보내왔다. 원래는 절반을 먹어야 하는데 케이니 양을 봐서 봐 주는 거라는 등 헛소리를 했지만 그건 넘어가자.

어쨌든 중요한 것은 크리드 경이 날개달린 갑옷을 입게 되었다는 거다.

“오오! 정말로 날 수 있군.”

크리드 경은 넓은 대전 안을 파닥거리며 나는 연습을 했다.

천정이 꽤 높은 이곳에 드래곤이라는 거대 마족을 소환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을 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뿌우가 들어서 띄울 수는 없는 것이다.

크리드 경은 가끔 방향을 못 바꿔서 벽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역시 마스터급 기사답게 급하면 발로 벽을 차면서 중심을 되찾고, 추락을 해도 무사히 바닥에 착지를 했다.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창공을 나는 건 자제해야겠군. 아무리 나라도 하늘에서 떨어지면 답이 없으니.”

처음 싸울 곳이 실내라서 다행이라는 듯 크리드 경은 말했다.

그 사이 미리아는 항상 지니고 다니는 씨앗 중 몇 개를 대전 구석구석에 심은 후 물을 주며 축복을 걸었다.

그것은 일종의 덩굴형 식물이었는데, 한 달 만에 쑥쑥 자라서 벽과 천정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것을 내가 단의 에너지원에 접촉하게 만들어서 뿌리부분은 단을 감싸고 꾸준히 힘을 받아가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여차하면 덩굴이 살아서 움직이기도 했는데, 그 힘이 장난 아닌 게 렉스도 제대로 얽히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다.

“덩굴을 이용한 결계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응, 이거 장로가 꼭 필요할 때만 쓰라고 준 선물이야. 나중에 싸울 때에는 저쪽 구석에서 덩굴 속에 들어가 있으려고.”

미리아는 일시적으로 덩굴과 동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럼으로써 덩굴 전체에 신성력을 씌워 강화를 하고, 움직임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바뀔 거라는데, 이 부분은 엘프 고유의 능력이기 때문에 나도 잘 모른다.

과거 드루이드와 싸울 때 나무와 동화된 상대가 있었는데 그것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마리포즈는 에너지원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삭풍의 창을 들고 싸운다.

뿌우와 연계를 해서 크리드 경과 함께 하늘을 날며 싸우는 연습을 해야 했다.

여차하면 날면서 마법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원래 되니까 크게 문제는 없다.

마지막으로 미스틱 엑스는 에너지원 위에 앉아 공격마법을 쏘기로 했다.

드래곤에게는 마법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강력한 8서클 마법을 계속 난사하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통하지 않으면 더 좋다. 적이 미스틱 엑스의 공격을 무시할 정도로 강하면 그때에 진짜가 나갈 것이다.

미스틱 엑스는 나 대신 마나뱅크의 게이트를 열 수 있다.

한 마디로 마나파동포를 그가 쏠 수 있는 것이다!

미스틱 엑스의 자아인 마나뱅크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양의 마나를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는 것에 꽤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거의 감정을 죽이고 있었던 그가 어떤 일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대신해서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것으로 이번 전투의 기본 작전이 성립되었다.

나와 크리드 경이 하늘을 날면서 드래곤의 시선을 위로 향하게끔 유지하고, 미리아도 덩굴을 이용해 주로 천정에서 공격을 할 것이다.

서피도 마찬가지, 허공을 날면서 드래곤의 날개를 휘감으려 노력할 것이고, 유일하게 렉스만이 땅에서 몸으로 드래곤의 꼬리공격을 몸으로 받아 다른 멤버들을 보호한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 미스틱 엑스가 마나파동포로 드래곤의 아랫배에 구멍을 내는 것이 우리의 작전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브레스라, 드래곤의 가장 강력한 권능인 브레스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렌은 드래곤 브레스를 본 적이 있어?”

“없어. 봤을 리가 없잖아.”

전생에도 드래곤과 싸워 보지는 못했다.

이 세계에 남아있는 드래곤은 대부분 사람들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한때에는 호기심으로 찾으러 다녔고, 실제로 만나보기까지는 했다. 그래도 싸운 경험은 없다.

그래도 기록이 있긴 있어서 대충 상상이 간다.

“고위마족이 될 정도의 놈이니 크기도 최고 등급인 고룡일 거고, 거의 이 대전 반 만한 크기에 브레스를 뿜으면 피하기는 어렵겠는걸.”

덩굴이 브레스를 막을 수는 없을 거다. 아니, 어떤 방어막도 정면에서 브레스를 막기는 어렵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럼 역시 또 지하에 공간을 만들어서 귀환마법을 쓰는 게 나을까?”

“이반 경이 없으니 그것도 힘들어. 그리고 신전은 바닥에 결계가 쳐져 있어서 지하로는 순간이동이 안 되고.”

“그럼 어떻게 해?”

“공간왜곡으로 어떻게 될 사이즈도 아니니 아예 못 쓰게 하는 게 제일 좋은데 말이야.”

결계 로브로도 브레스는 막기 힘들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브레스에 담긴 정령력이 너무 강해서 공간 자체를 붕괴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했다. 단순한 화염이 아니라는 소리다.

한 마디로 드래곤의 브레스는 궁극마법급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마나파동포와 비슷한 수준이다.

대신 브레스 역시 갑자기 확 쏘는 게 아니라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힘을 모아야 하는 거다. 마나파동포와 다른 점은 이게 화염방사의 형태로 나가기 때문에 범위도 아주 넓고 피하기가 어려운 점, 그 대신 마나파동포처럼 무조건 다 소멸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가만, 브레스도 시간이 걸리고, 마나파동포도 시간이 걸리면 그놈이 브레스를 쏘려는 순간 이쪽도 마나파동포를 쏘면 같이 죽을 수는 있는 건가?”

“시간이 비슷하게 걸릴까?”

“아무래도 마나파동포가 더 걸릴 거 같긴 한데, 대신 그놈은 덩치가 커서 이 안이라면 피하기 힘들걸.”

타이밍이 맞아도 이건 안 된다. 내가 지금 드래곤하고 같이 죽자고 이 짓을 하는 건 아니니까.

“피하기 힘들면 소환하자마자 쏘는 건 어때?”

“정식으로 싸움을 하기 전에는 일종의 환상만 먼저 보내기 때문에 힘들어. 오히려 마나파동포에 대한 정보만 주고 끝날 확률이 높아.”

“그런데 유적의 힘은 어떻게 쓸 거야?”

“일단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우리의 힘을 숨기는 클로킹 기능만 활성화 시켰어. 마나파동포를 사용해도 저놈이 미리 눈치 채지 못하게 말이야.”

“그것뿐이라면 그냥 다른 곳에서 싸우는 게 낫지 않아? 내가 귀환의 마법을 익혀서 지하피난처 만들고.”

“공격적인 기능도 꽤 있어. 일단 8서클 마법을 난사할 수 있고, 서피도 최대한 힘을 쓸 수 있으니까. 덕분에 렉스의 목걸이에 담긴 힘을 모두 방어모드로 바꿔서 몸빵으로 쓸 수 있는 거니까.”

“우웅, 그렇구나.”

내가 계속 고민하자 크리드 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뭐가 그리 복잡하게 사전 계획을 짜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드래곤 정도 되는 존재를 상대하는 데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그건 정말 자살행위임에 틀림없다.

브레스, 브레스.

“어쩔 수 없다. 방어벽을 설치하자.”

“방어벽?”

“응, 신전의 동상들을 모아 벽처럼 만들고, 강화를 하면 한번 정도는 브레스를 막을 수 있을 거야.”

에너지원의 에너지도 방어벽에 집중시키면 확실히 막을 수 있다.

나는 동상들을 옮기고 그것들에게 일일이 마법적인 처리를 했다.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이제 드래곤을 소환해서 두 번 다시 이 세계로 오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추방해 주는 일만 남은 것이다.

우리는 일단 꼬박 하루를 푹 쉬었다. 모두가 최상의 컨디션임을 확인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소환마법진을 가동시켰다.

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소환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하자 대전 전체가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해졌다.

마법진의 크기부터가 드래곤의 거대함을 상상하게 했다.

꽈드드드득

공간이 묘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 그림자와도 같은 형체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계속 부풀어서 마법진 위쪽에 형성된 빛의 커튼 내부를 가득 메웠다.

“엇, 생각보다 크네.”

최대한 크게 마법진을 설치했는데, 그래도 안 되네.

그그극

정말로 마법진이 형성한 소환의 공간이 깨어질 듯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 거의 형태가 완성된 드래곤은 작은 우리에 들어간 맹수처럼 웅크린 모습이다.

“이렇게 작은 마법진으로 나를 소환하려는 자는 누구냐!”

작지 않아. 그냥 네가 조금 줄여서 나오면 안 되는 거냐.

원래 배려심 있는 마족은 마법진 크기에 맞춰서 형상을 조절한다. 그러나 저 무식한 드래곤은 원래 크기로 나오려는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외쳤다.

“나다! 드래곤.”

“내 이름도 모르면서 소환을 하다니, 그렇군. 내 신전의 힘을 이용했구나.”

“그렇다.”

“너는 인간인가?”

“잘 아는군. 네놈과 계약한 후사는 이미 제거했다.”

“큿, 그 멍청한 놈이 말을 안 듣고 행동을 시작했나보군. 앞으로 50년을 더 기다리라고 했는데.”

50년이라, 하긴 그 정도면 다른 마족의 후계자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세상이 황폐해 졌을 거다. 그리고 후사의 원숭이들도 이곳의 마력을 잔뜩 빨아먹고 똑똑해 졌을 거고.

“멍청한 놈과 계약한 너도 멍청한 드래곤이라고 봐야겠지.”

“도발을 하려는 건가? 헛고생 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해라.”

으, 이놈이 후사와는 다르게 이성적이네. 계약자와 이렇게 다른 마족이 있다니 조금 의외다.

조심해야지.

나는 말투를 바꿔서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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