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96화
“끼끼끼, 마법사가 창을 들고 덤비다니.”
그래, 그렇게 방심도 좀 해주면 아주 고맙지.
나는 후사가 크리드 경의 공격에 신경을 집중하면서 나의 공격은 귀찮다는 듯이 대충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것으로 막으려는 것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팍
“우꺅!”
삭풍의 창이 후사의 손바닥을 꿰뚫었다. 동시에 창의 힘이 후사의 영혼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보통 생물이라면 찔리는 순간 영혼이 파괴되지만 마족의 계약자라면 역시 손바닥을 찌른 정도로는 죽지 않나 보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린 후사를 크리드 경의 검격이 용서하지 않았다.
푹
크리드 경은 검을 거꾸로 잡고 온몸의 체중을 실은 채 후사의 발등을 찍었다. 아까의 폭발로 발등의 털이 탄 상황이다. 발등에는 근육도 거의 없다. 가죽도 얇고 고통을 느끼는 감각은 밀집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드 경은 그동안 단 한 번도 후사의 발등을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린 모양이다.
“우꺄까까까.”
“라이트닝 웹!”
파지지지직
미스틱 엑스의 마법이 터졌다. 뇌전의 그물이 후사의 얼굴을 덥고 그의 눈을 지졌다.
그 사이 우리는 열심히 후사의 털 빠진 빈틈을 노려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렉스와 서피가 후사의 양쪽 발목을 물어뜯으며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후사는 괴성을 지르며 발악을 했지만 렉스는 이때가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 몸으로 막았다. 후사의 공격을 받고 버티는 게 가능한 것은 렉스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렉스의 뒤로 피하며 계속해서 공격했다.
“꾸우우, 이럴 수가. 인간은 다 죽여야 하는데…….”
결국 후사는 신음성을 흘리며 쓰러졌다. 삭풍의 창으로 일곱 번이나 찌른 후였다.
“휴우, 겨우 잡았군. 처음에 함정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야수라서 멍청한데 반대로 육체적인 능력이 강하니 위험하네요.”
머리 쓰는 놈은 상대하기 어렵지만 후사 같은 육체파도 만만히 볼 건 아니다. 나는 원숭이라고 무시했던 것을 반성하며 후사의 심장에 삭풍의 창을 박아 넣었다.
츠츠츠츠츠츠
후사의 육체가 모래처럼 변해서 사라졌고 미리아는 거기에 대고 정화마법을 썼다.
“일단 마족의 후계자는 죽였는데, 우리가 원래 찾던 그 해적은 어떻게 된 걸까?”
“그러게. 그림녹은 마수화 되었을 거 같긴 한데, 샤키라는 놈은 아무래도 마수가 아니라 제정신인데 후사에게 협력을 하는 것 같았거든.”
“혹시 샤키라는 놈이 새로운 계약자가 되는 거 아닐까?”
“그건 아닐 거예요. 크리드 경.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 보아서 드래곤은 인간을 싫어하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일단 유적은 찾아야 할 거 같아요. 그 다음에는 유적에서 나가면서 샤키를 찾아보죠.”
“하긴, 그림녹과 샤키는 아직 유적 외곽에 있는 것 같으니 우선 중심부 탐색을 끝내는 게 좋겠군.”
정말 드래곤의 힘을 남긴 곳이 있다면 거기 가서 힘을 얻든 파괴하든 해야 한다.
“드래곤이 남겼다는 힘 말인데, 인간은 못 얻게 되어 있을까?”
미리아가 물었다.
“응, 내 생각도 그래. 인간을 싫어한다고 했으니 오히려 인간이 접근하면 방어장치가 발동할 가능성도 커.”
“그럼 우리가 얻기는 힘들겠네? 파괴 할 거야?”
“일단 조작을 해 보고. 안 되면 파괴해야지.”
“조작?”
“인간이 못 얻게 되어 있는 부분을 살짝 바꾸는 건데, 이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어.”
이 유적을 만든 드래곤이 9서클 마법사라면 나도 조작을 하기 어렵다. 아무튼 일단 찾아낸 후에 생각을 하기로 하고 우리는 탐사를 시작했다.
신전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몇 개의 환상과 비밀문을 발견해서 해제를 하니 지하에 있는 비밀의 공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군.”
문 밖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강력한 힘이다. 이 안이야말로 궁극마법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들어갈까?”
“그냥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어요. 우린 인간이니까요.”
궁극마법의 힘이 방어적으로 작용하면 버틸 재간이 없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일단 마나파동포를 한 방 쏘고 생각하죠. 우리의 목적은 파괴니까 문 밖에서 어느 정도 부수고 생각해 될 거예요.”
“오호, 그런 좋은 방법이!”
크리드 경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마나파동포는 움직이는 적을 상대로 쓰기 보다는 이렇게 고정된 물건을 파괴할 목적으로 쓸 때 최고의 효율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나 문 밖에서 안을 향해 마나파동포를 때려넣었다.
쾅
문에 구멍이 생긴 후 다시 충격파로 인해 통째로 날아갔다. 안쪽에서 강력한 반발작용이 일어나는 듯 했지만 마나파동포의 파괴력이 더 강했는지 곧 잠잠해졌다.
우리는 깨어져서 날아간 문 사이로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드래곤의 동상이 있고, 몸통 부분에 마나파동포가 꿰뚫고 지나간 구멍이 보였다. 강력한 힘은 그 동상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아가 있는 동상 같았다.
“그냥 들어갔으면 드래곤 골렘하고 싸울 뻔 했네요.”
“저거 죽은 걸까?”
“아니요. 단지 지금 마나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버려서 잠시 기능이 멈춘 걸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
저놈이 제정신을 차리면 어떻게 나올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래는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가야 움직이겠지만 이미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자아가 융통성을 발휘해서 반격태세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죠. 한 번 찔러서 안 죽으면 죽을 때까지 찔러라.”
나는 다시 미스릴 우산을 펴고 마나파동포 발사 준비를 했다. 마나파동포의 무서운 점은 궁극마법에 상당하는 파괴력을 몇 번이고 계속 쓸 수 있다는 거다.
도대체 마나뱅크에 들어가 있는 마나의 총량이 얼마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아무리 마나파동포가 마나를 많이 방출한다고 해도 그야말로 세상을 다 부술 때까지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쾅, 쾅, 쾅
세 번을 때려 넣었다. 마나파동포 자체의 파괴력은 절대적이지만 그에 따란 충격파 역시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결국 드래곤의 동상은 전체적으로 금이 가더니 충격파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마지막으로 꺄아아아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검은 영혼과도 같은 것이 허공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자아가 소멸한 것이다.
“힘이 사라졌네.”
미리아가 민감하게 느끼고 말했다. 그렇다. 이 유적은 이제 거의 죽은 것이다.
“저놈이 중추였군. 이제 들어가요.”
나는 다음부터 이런 방어 시스템을 만들 때 문 밖에서 공격받지 않는 위치에 자아를 심어야지. 마나파동포 같은 공격마법이 나한테만 있으란 법은 없으니까.
새로운 결심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대전 안의 벽에 수많은 드래곤어가 새겨져 있었고, 아까 있었던 드래곤이 동상은 아래쪽에 돌로 된 단만 남아 있었다. 그 외에는 훵 하니 비어 있었는데 군데군데 돌가루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 충격파로 인해 다른 자잘한 것들은 모두 가루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흠, 이 단의 마력은 살아있네.”
“엇, 정말. 벽에 새겨진 문양에서도 힘이 느껴져.”
“기다려 봐. 분석해 볼게.”
나는 시간을 들여 우선 벽에 새겨진 드래곤어를 세심하게 살피며 해독했다.
그것은 신전 내부의 힘을 보내는 내용으로 드래곤을 찬양하고 그들의 귀환을 기원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을 만든 존재가 드래곤이니 그들은 떠나기 전부터 언젠가는 이 세계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인간이 신이 된 후, 자신들이 신이 될 수 있는 세계로 떠난 거네. 그 다음에는 다시 돌아와서 이곳도 지배하려고 하는 거고.”
“그래, 예전의 주인이었던 자들이 이제는 침략자가 된 거지.”
“그럼 혹시 신이 떠난 것도 드래곤의 음모에 의한 건가?”
“몰라, 적어도 신이 그런 음모에 순순히 당했을 거 같지는 않고, 사연이 있겠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어떤 식으로든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보다 이번 마족 사태가 이놈의 드래곤들 때문에 일어난 것일 수도 있겠군.”
“크리드 경의 말씀에 일리가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에요.”
“정리를 하자면, 신이 떠나고, 주인이 없는 세계를 드래곤들이 다른 마족들에게 알려서 게임을 시작했다는 거야?”
“응, 그런 셈이지.”
“예전에 발데스라는 마족이 처음 발견했다고 들었는데?”
“발데스가 드래곤이던가, 아니면 드래곤이 흘린 정보를 받아 이곳을 찾은 걸 거야.”
어느 쪽이든 드래곤이 쳐 죽일 놈들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들은 주인 없는 세계의 새로운 주인을 뽑는 신들의 경기를 주최하고, 우승자가 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인간을 몰살시키고 원숭이를 이용해서 말이다.
나는 속으로 두고 보자고 이를 갈면서 마지막으로 동상이 있던 단을 분석했다.
단은 유적의 힘을 유지시키는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아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이건 살릴 수 있겠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게 웬 횡재인지 모르겠다. 유적 외곽은 몰라도 내부이자 핵심지역인 신전 안의 마력은 복구가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렇게 약화된 상태에서라면 인간에 대한 방어장치를 조작해서 무효화 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자, 이제 이거 살리고, 드래곤에 대한 방어장치로 변환시키죠. 그 다음에 후사와 계약한 드래곤을 소환하는 겁니다. 자기가 만든 유적이니 소환이 되겠죠? 그럼 자기가 만든 유적의 힘으로 그놈을 마구마구 때려서 소멸시켜 버립시다.”
후후훗, 인과응보, 사필귀정!
드래곤 이놈. 너 오늘 한 번 제대로 당해 봐라.
나는 필살의 의지로 열심히 유적의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