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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95화 (195/250)

로엔의 마나뱅크 195화

7장 드래곤이 남긴 것

후사는 이미 회복이 끝난 듯 목소리에 힘이 가득 차 있었다.

“신전 내에서는 싸우는 게 아니다. 이리 나와라.”

“미안한데, 우린 상관없거든. 여기서 싸울 거 아니면 꺼져라.”

“우끽, 네놈들은 신전을 나오는 순간 죽는다.”

정말로 신전 내에서는 싸우지 않을 생각인 거네.

나는 피식 웃으면서 크리드 경에게 말했다.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생겼네요.”

“그래도 방심하면 저놈이 기습을 할 수 있으니 마음 편이 쉬기는 힘들 거야.”

“맞아요. 그럼 일단 저 밖에서 기다리는 놈과 싸울 건지 아니면 환상으로 속이고 다른 통로로 빠져나갈 건지부터 정하죠.”

“저놈의 텔레포트를 막을 수 있는지 확신이 없다고 했지?”

“이제는 못 막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느껴지네요. 이 유적 내에서 후사는 드래곤의 힘으로 텔레포트를 하는 거 같으니까요.”

“장소자체가 저놈한테 유리한 거군.”

“그래도 이게 신전이라면 후사가 쓰는 능력의 본질이 뭔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어요. 백마법의 귀환과 같은 원리일 테니, 신전 내에 있는 그의 방을 찾으면 될 거예요.”

“그럼 일단 속이고 그 방부터 찾자.”

“좋아요.”

마법을 모르는 원숭이는 환상에 넘어가기 쉽다.

내가 환상으로 우리가 신전 내에서 텐트를 치고 쉬는 모습을 만들어내자 후사는 불경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정말 우리와 싸우러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신전 내에서 싸우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나보다.

환상이 완벽하게 걸린 것을 보고 우리는 투명마법으로 모습을 감춘 채 조용히 반대편 통로로 빠져나갔다.

“후사가 경계마법에 걸리지 않고 입구에 나타난 것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통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왔다는 의미에요. 그러나 우리도 계속 나아가면 될 거예요.”

나는 또 다시 일정 거리마다 경계마법을 설치하며 나아갔다. 후사가 입구에서 얼마나 참을성 있게 기다릴지 모르겠지만 그놈이 근성 있는 원숭이라면 삼박사일이라도 죽치고 있을 테니 그 사이 차분하게 조사를 진행하면 된다.

신전의 기본 구조를 생각하며 내부를 조사하니 과연 신도들이 기도하는 방을 지나서 사제들의 숙소가 나왔다.

“후사가 드래곤의 힘을 받았다면 대사제인 셈이니 가장 안쪽 방일 거예요.”

“원숭이가 대사제인 신전이라니, 웃기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원숭이라서 다행이라고 봐야죠.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마법을 모르니 상대하기가 쉽네요. 텔레포트 능력만 없으면 벌써 처리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그 텔레포트 능력도 이걸로 끝이다.

우리는 대사제의 숙소로 들어갔다. 과연 그곳에는 커다란 곰가죽이 깔려있고 주변에 과일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딱 봐도 후사가 머무는 곳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구석에 귀환을 위한 마법진이 드래곤어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드래곤어를 분석하며 말했다.

“그럼 이곳에 함정을 파고 싸울 준비를 하죠.”

“마법진을 고칠 거야?”

“미리아, 네가 이제 내 수법을 꿰뚫어 보는구나. 하하하.”

드래곤어로 되었다고 해도 기본 원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마법진을 고쳐서 폭발함정의 기능을 추가했다. 누군가가 이 마법진을 밟으면 강렬한 폭발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귀환하는 순간 마법진과 함께 폭발해 버리는 거지. 후훗.”

이거면 후사는 거의 반쯤 죽을 거다. 정신을 못 차릴 때 우리가 잽싸게 이곳으로 달려와 뒤처리를 하는 게 이번 전투의 작전이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쪽 통로에서 그그긍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바위벽이 위로부터 내려와 통로 전체를 막았다.

“엇, 설마 후사가 눈치를 챈 건가?”

“우꺄까까까, 당연하지.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뭐라고? 그럼 우리가 원숭이의 연기에 속았단 말이냐?”

“인간들이 우리를 얼마나 무시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조금만 연기를 해도 그냥 믿어버리거든.”

“으, 실수했네. 젠장.”

원숭이에게 속은 게 이렇게 분하다니. 나도 아직 정신수양이 덜 됐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는 갇힌 건가? 여기 있는 네 과일이나 먹으면서 안에서 지내야 하는 거겠지?”

“그렇게 팔자 좋게 놔두지는 않는다. 너희들은 내 동족의 원수, 내 손으로 모두 찢어버릴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우끼끼, 내 신전에서 전투의 의식을 행한 후 그 안으로 들어갈 테니 기다려라.”

“아하, 제대로 전투준비를 한 후에 화끈하게 싸울 생각이군.”

“그렇다. 네놈들도 안에서 준비를 해라. 내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겨줄 테니.”

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미리아를 향해 씨익 웃은 후 귀환의 마법진으로 갔다.

“이거 폭발성을 가능한 한 증폭시켜야겠어. 미리아 너의 신성력도 주입을 하자.”

“응, 신성력과 마기를 반발시켜서 폭발력을 올리면 후사도 버티기 힘들 거야.”

“그렇지. 무엇보다 신성력은 마기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니까.”

후사가 정정당당이라고 말했지만 신전 내에서 신관이 풀 강화를 하면 얼마나 강해지는 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 만큼 우리는 그가 들어오는 순간 확실하게 기습을 가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아예 대신관의 숙소 내부 전체에 삼중으로 폭발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입구 바깥쪽에 방어벽을 치고 뒤쪽에서 마나파동포를 쏠 준비를 했다.

폭발은 그놈이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역할이다. 일반적인 폭발로 후사를 죽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승부를 내는 것은 역시 마나파동포,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쏘면 틀림없이 명중할 수 있도록 후사가 피할 공간을 만들어두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이놈의 후사는 정말 몇 시간이 지나도 안 왔는데, 어쩌면 꼬박 하루 동안 축원을 통해 강화를 하나보다.

하지만 아무리 강화를 해도 마나파동포를 막아낼 수는 없다.

나는 표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저격수의 심정으로 긴장을 유지한 채 대기했다.

그리고 정말로 하루가 지났을 무렵, 슉 하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 안에 후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진이 붉게 가열되면서 큰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쾅

“우끽, 이게 뭐냐!”

불과 벼락, 그리고 산성과 초음파의 힘이 후사를 덮쳤다. 후사가 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보호하며 몸을 웅크리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나는 바로 마나파동포를 발동시켰다.

드드드드드

게이트가 열리니 마나가 요동을 친다. 하지만 폭발의 기운에 휩싸인 방안에서는 이걸 느낄 수 없으리라.

파앙

섬광이 일어나며 폭발의 화염마저도 꿰뚫는 광선과도 같은 힘이 방안으로 쏘아져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강력한 충격파가 화염의 불꽃을 싹 날려버리며 방안 전체에 퍼졌다.

나는 그 충격으로 뒤로 튕겨져 벽에 부딪쳤지만 바로 중심을 잡고 일어나 안쪽을 살폈다.

“이런!”

후사는 마나파동포에 맞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는데, 바로 위로 마나파동포가 지나간 듯 머리와 등의 털이 하나도 없었다.

“으그그, 그건 뭐냐?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다.”

후사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반신의 털도 거의 없고, 배 쪽도 태반이 탄 상태다. 폭발이 일어난 순간 마나파동포의 위협에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오히려 화염이 일어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결과다.

야수의 본능과 반사신경이 무섭긴 무섭구나.

눈에서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충격파에 당한 모양이다. 그러나 본체는 거의 손상이 없이 멀쩡했다. 가죽의 일부분이 찢어져있었지만 그것도 다시 재생되어 달라붙는 중이었다.

“이런, 재생력이 강하네요. 계속 공격해야 해요.”

나는 급히 외쳤다.

크리드 경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고, 렉스와 후사, 마리포즈도 뒤이어 들어갔다. 나와 미리아, 그리고 미스틱 엑스는 동시에 마법을 시전 했다.

“신성한 힘이여. 나의 동료에게 싸울 힘을 주세요.”

미리아의 축복이 가장 먼저 발동하고 뒤이어 나와 미스틱 엑스가 합동으로 펼친 행동둔화 마법이 후사에게 걸렸다.

그러나 후사는 크게 괴성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철봉을 붕붕 휘두르며 크리드 경과 맹렬히 싸우기 시작했다.

마리포즈가 후사의 철봉을 힘으로 막아 보려다가 대검이 부러지며 뒤로 튕겼다.

렉스 역시 덩치로 후사를 찍어 누르려다 오히려 후사의 발길질에 차여 밀렸다. 놀랍게도 후사의 힘이 렉스의 덩치를 쉽게 밀어낼 정도인 것이다.

그나마 충격파로 눈이 잘 안 보이는 듯 공격이 정묘하지는 못했다.

덕분에 크리드 경의 검이 후사의 가죽을 뚫고 몇 군데 큰 상처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치명상이 되지 못하는 듯 후사는 여전히 강하다.

“근육으로 내 검을 막는군. 강철보다 단단해.”

크리드 경이 외쳤다. 검이 가죽은 뚫어도 근육은 뚫지 못하는 것이다.

“으, 털과 가죽뿐 아니라 근육까지 방어의 기능이 있었군.”

적어도 육체적 능력만 치면 후사가 마족의 후계자 중 최고다.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몰아붙여요!”

내가 외치자 크리드 경은 후사에게 딱 달라붙어서 아주 위험한 전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몰아붙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후사는 죽음의 저주를 쓸 수 있다. 여유를 주면 안 되는 존재다.

나와 미스틱 엑스 역시 쉬지 않고 마법을 썼다.

각종 약화마법과 위협적인 공격마법을 번갈아 써서 후사가 대응하기 어렵게 했다. 미리아는 계속 강화마법으로 아군의 힘을 더했다.

하지만 후사 역시 싸우면 싸울수록 힘이 나는 듯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크리드 경에 의해 입은 상처 말고 다른 부분은 계속 재생을 했다.

이대로라면 불리하다.

체력적으로 인간은 야수보다 지속력이 약하기 때문에 싸움이 길어지면 후사는 상대적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나는 삭풍의 창을 소환해서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전한 곳에서 마법으로 서포트만 할 상황은 아니다.

승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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