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92화
6장 잊혀진 역사
쿠오오오오오
죽은 원숭이들의 마기를 흡수하며 후사는 더욱 커졌다. 이제는 신장이 10미터도 더 되는 것 같다.
“저거 그냥 놔둬도 될까?”
크리드 경이 한숨을 내쉬며 나한테 물었다.
“지금은 놔둘 수밖에 없어요. 힘이 폭주하고 있으니까요.”
“하긴, 강해진 직후에는 힘이 넘쳐나겠지. 그럼 시간을 끌면 조금 약해지려나?”
“아마도요. 그러나 아주 오래 지나면 흡수한 마기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할 테니, 그 전에 치는 게 좋겠어요.”
나는 대충 계산을 해 보고는 다시 말했다.
“반나절 정도면 저놈의 힘이 제일 불안정한 시기가 올 테니 그때까지 조금 피해있죠.”
“그게 좋겠군.”
흥분해서 날뛰는 놈은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힘의 흡수가 끝나면 안정기가 오기 전에 탈력현상이 오기 때문에 그때가 딱 싸우기 좋은 때인 것이다.
“안티 디텍션.”
파싯
우리 일행의 존재감이 흐려졌다. 혹시 저놈이 탐지 능력이 있을지 모르니 미리미리 감지 방어 마법을 건 것이다.
우리는 후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움직이지 않고 숨어서 기다렸다. 그러자 곧 후사는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 하고 외치면서 다른 출구로 나갔다.
“저거 뒤따라가죠.”
“위험하지 않을까? 들킬 것 같은데.”
“저놈이 우리를 놓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가는 곳이라면 아마 이 유적 안을 모두 살필 수 있는 곳이거나 유적에서 헤매다보면 무조건 거처가야 하는 지점일 거예요. 어느 쪽이든 위험을 감수하고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그렇군. 그럼 어서 가지.”
“잠깐만요. 서피야. 네가 먼저 가. 저놈이 몸이 빠르니 너 아니면 따라가기 힘들 거 같다.”
“샤아, 알았다.”
서피는 즉시 허공에 떠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원래 미행은 뿌우가 해야 제격인데, 지금 뿌우는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소환해도 되지만 솔직히 여긴 정말로 정령억제가 심하다. 불러봤자 뿌우만 고생하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테니 꼭 필요한 상황에만 불러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서피를 따라 조금 떨어져서 후사를 미행했다. 후사는 이미 흥분해서 광폭화 된 상태라 누가 뒤를 쫒는지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듯 했다.
그러나 이동 속도는 무지하게 빨라서 우리는 결국 렉스의 등에 타고 이동을 했다.
렉스는 거대한 몸집을 지녔으면서도 거의 소리가 없이 달릴 수 있어서 좋다. 모습은 투명마법으로 숨긴 상태이기 때문에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들킬 염려는 거의 없다고 본다.
후사는 한참을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면서 가끔 복도에 놓여있는 해골들을 확인했다. 내가 다시 살펴보니 해골들에게는 감지장치가 있었다.
“훗, 유적이 넓다고 그래도 요소요소에 감지장치를 놔두었었군.”
그런데 감지장치에 걸려도 후사에게 바로 신호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면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후사는 저주받은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과 이것은 별개인가보다.
만약 마법사가 그 정도 저주 아이템을 만들 수준이면 원거리 감지 신호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 수준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해골에 담겨있는 마법을 해제하고, 대신 다른 마법을 걸기로 했다.
감지가 아닌 환상의 마법. 바로 우리가 방금 지나간 것처럼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걸 이용하면 후사 저놈을 구석에 몰아놓고 싸울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유리한 장소로 유인을 해서 싸울 수 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 후사와 싸우면 제일 곤란한 게, 저놈은 유적의 지리와 시설에 대해 잘 아는 만큼 불리하면 도망을 갈 거라는 거다. 그리고 치명적인 함정을 발동시킬 수도 있다.
크리드 경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오호 하고 감탄성을 내면서 말했다.
“그럼 가능한 한 좁은 곳에서 싸웠으면 좋겠군. 덩치 큰 마수와 싸울 때에는 오히려 좋은 곳이 유리하더라고.”
그건 크리드 경이 아무리 좁은 데에서도 거대 마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지 보통 병사는 넓은 곳에서 싸워야 한다. 역시 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좋은 지점을 찾으면 그곳에 우리가 함정을 만들고 대기하도록 하죠.”
얼마 후, 우리는 후사가 원숭이들이 살던 지점 주변을 돌아다니며 해골을 확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오기 전에 준비를 끝내야 한다.
나는 막다른 골목과도 같은 지점을 찾아서 벽과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조금 급하게 그려서 그다지 강력하고 세밀한 마법진을 설치하지는 못했지만 한 시간 만에 바닥과 양쪽 벽 모두에 마법진을 그린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수준이다.
“크왓! 이놈들. 여기 있었구나.”
“오, 드디어 발견했나 봐요.”
후사의 외침소리가 들리더니 그놈이 급속도로 가까워져 오는 게 느껴졌다. 환상을 걸어놓은 해골을 본 모양이다.
거기서 여기까지는 거의 외길이니 곧 도착을 할 것이다.
“준비하죠.”
나는 구석에 가서 섰다. 크리드 경과 마리포즈가 앞을 막았고, 그 뒤로는 렉스가 미리아를 보호하는 형태로 버티고 섰다. 서피는 천정에 딱 붙어 있고, 미스틱 엑스는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중앙에 섰다.
바닥의 마법진은 바로 나와 미스틱 엑스의 마법을 연동시키는 것이다. 둘이 합동마법을 쓰기도 편하고, 서로 마법을 순간적으로 교환할 수도 있다.
“이놈들!”
드디어 후사가 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거대화 된 상태였다.
그러나 기세로 볼 때에는 이미 마기의 방출이 꽤 진행되어서 상당히 힘이 빠진 것 같다. 단지 본인은 흥분해서 아직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렉스! 물어!”
크왕
투명했던 렉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후사에게 달려들었다. 둘의 크기는 거의 비슷했고, 힘도 대충 견줄 만한 것 같다.
기습을 당한 후사는 놀라면서 급히 손으로 렉스의 입을 막았다.
렉스는 뒷다리로 버티고 서서 앞다리로는 후사의 몸을 껴안듯이 잡고 눌렀다. 입으로는 단숨에 후사의 머리를 물려고 했지만 손에 막혀서 실패했다.
하지만 후사도 한손으로 렉스의 입을 막느라 나머지 한손만으로 렉스의 몸통을 잡아야 했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 자세라 겨우 버티고 있을 뿐 렉스를 뿌리치지는 못했다.
촤캉
“크와앙!”
후사의 손톱이 길어졌다.
그 때문에 렉스의 입 주변에 꽤 큰 상처가 났다. 하지만 몸속에 찔러 넣으려 했던 손톱은 털에 막혀 가죽에 닿지 못했다.
이미 목띠의 방어마법진이 활성화 되어 털이 빛나고 있었고, 저 상태에서는 물리적인 공격과 마법공격 양쪽 다 거의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끼이이, 무슨 털이 이리 질기지?”
후사는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갑자기 뒤로 누워서 일부로 깔리며 뒷발톱으로 렉스의 배를 긁었다.
그러나 역시 그 공격도 렉스의 털을 뚫지는 못했다.
그 사이 크리드 경과 마리포즈가 후사를 지나쳐 그가 들어온 통로를 막았다.
“잘 했다. 렉스. 이제 우리에게 맡겨라.”
크리드 경이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최초의 일이 격을 렉스가 맞으면서 후사를 붙잡아 포위를 하는 게 이번 작전의 시작이다.
후사라는 놈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정확하게는 알 수 없기에 자칫 필살기라도 맞으면 아무리 렉스라고 해도 위험할 수가 있다.
이번에도 털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입가에 상처가 났는데 이게 눈이나 입속이었으면 위험할 뻔 했다. 웬만한 상처는 치료가 되지만 내상이 심하면 아무래도 고생을 하게 된다. 특히 눈은 치료가 되어도 시력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
거대 마수와 거대 마수는 서로 상처를 주며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렉스를 그렇게 싸우게 할 수는 없다.
렉스는 크리드 경이 달려들자 뒤로 훌쩍 뛰어서 다시 미리아의 앞쪽에 착지했다.
후사는 렉스를 붙잡으려 했지만 크리드 경의 검격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그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대검을 붕붕 휘두르는 마리포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위협대상이다. 특히 마리포즈는 몸이 망가져도 복귀가 되기 때문에 웬만한 위험은 신경도 쓰지 않고 같이 죽자는 식으로 덤벼들었다.
크리드 경은 그것을 알기에 마리포즈의 움직임에 맞추어 그녀를 일종의 방패처럼 이용했다.
“캬오오, 이놈들, 보통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네 수하들을 싹 쓸었지. 이제 너만 잡으면 대충 정리가 되는 거라고.”
“나는 정리되지 않는다! 꾸오오오!”
내 도발 한 번에 후사가 숨겨진 힘을 발휘했다. 발톱뿐 아니라 이빨도 길게 늘어나 깨무는 공격을 하는데, 입을 벌리면 이상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것은 술향기?”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가 결계로브의 힘으로 차단되었다. 그것은 정말 독한 술의 향기였고, 독이나 저주가 아니었다.
“크읏, 지독하군. 럼주를 한 병 통째로 마신 기분이야.”
크리드 경도 냄새를 조금 맡았는지 살짝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물의 정령에 빙의된 몸. 바로 몸에 스며든 알콜 성분을 배출해 버렸다.
오히려 뒤쪽에 있던 미리아가 어지러운지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렌, 나 취했어. 잘게.”
미리아는 술에 약하다. 그리고 취하면 자는 습관이 있다.
“까오오, 하나 보냈다. 원숭이 술이 얼마나 맛있고 독한 지 오늘 제대로 맛 봐라.”
“네 입냄새와 섞여 나오는 술 향기는 별로 맡고 싶지 않거든.”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문을 시전 했다.
“돌풍!”
촤아아아아아
강력한 바람이 내 손으로부터 일어나 술향기를 통로 바깥으로 빼냈다. 마법의 돌풍은 자동적으로 십여 분 정도 계속 불 테니 적어도 그 사이에는 저놈의 술향기를 맡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미 잠든 미리아는 깨어나지 않는다.
차라리 독이었다면 해독할 수 있는데 술은 마법으로 해독이 안 되는 것이다.
상관없겠지. 미리아가 정말 필요한 것은 후사를 잡은 후 정화할 때이니까 그때 깨우자.
나는 다시 주문을 시전 했다. 이번에는 미스틱 엑스와 함께 하는 합동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