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90화 (190/250)

로엔의 마나뱅크 190화

*

“이상해요.”

“뭐가?”

“생물이 극단적으로 적어요. 새도 안 울고.”

“뭔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건가?”

“포위된 걸지도 몰라요.”

미리아의 말대로 아무래도 우리는 포위된 것 같다. 사방에서 살기가 일어나고 있다.

“뿌우야, 정찰 좀 해 봐라.”

“여긴 정령이 움직이기에 별로 좋은 환경이 못 된당. 참고해랑.”

뿌우가 변비 걸린 표정으로 나와 흐느적거리며 날아갔다. 정말 약 먹은 파리처럼 나는 걸 보니 거의 힘이 없나보다.

“마력은 풍부한데 정령한테는 역으로 작용하다니, 무슨 원리지?”

이거 요즘 내가 대마법사가 맞나 싶다. 척 보면 척 알아야 정상인데, 마치 초보 마법사가 마법진을 처음 보고 신기해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마법의 기본 원칙과 반대되는 구역이 많다니? 이것도 다 마족의 후계자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유적의 힘일까.

잠시 후, 뿌우가 돌아와 말했다.

“원숭이당. 근데 손톱이 조금 길당.”

“어느 정도 긴데?”

“십 센티 정도 된당, 나무에 팍팍 박히는 걸로 봐서 할퀴면 아프겠더랑.”

“위험한 놈들이군.”

그래도 우리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다. 우리 일행이 원숭이에게 당했다고 하면 이반 경이 웃겨서 수행을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 가다보니 앞에 사람의 잔해가 보였다.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데, 바닥에 피가 말라붙어 있다.

“이런, 우리는 괜찮지만 앞에 간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었나보군.”

이 지점이 원숭이들이 암묵적으로 습격을 가하는 장소인가보다. 우리가 멈춰서는 순간 사방에서 끼끼끼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단단한 과일덩어리가 날아왔다.

“방어막!”

타타타탕

우리 주변에 반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되면 과일이 튕겨나갔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손톱을 세우고 나무위로부터 떨어져 내렸다.

“대형 거미집!”

촤아악

우리 주변 나무에 수십 미터나 되는 거미줄로 된 망이 생겨났다. 사람도 걸리면 달라붙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마법의 거미줄이다.

원숭이들은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손톱으로 거미줄을 자르려고 시도하는 놈도 있었다. 그러나 칼로도 안 잘리는 거미줄이 손톱에 잘릴 리는 없다.

이걸로 끝인가? 저놈들을 죽여, 살려.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 위쪽으로부터 묘한 주문소리가 들려왔다.

“야미, 얌이.”

촤아아악

“엇! 마법해제?”

거미줄의 태반이 사라졌다. 특이한 마법체계지만 효과는 틀림없이 마법해제다.

정식적인 룬마법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마녀의 주술과 비슷하다.

나는 시선을 집중해서 주문이 들려온 곳을 보았다.

나무 꼭대기에 해골을 뒤집어 쓴 원숭이가 보였다. 크기는 일반 원숭이의 세 배는 되어서 인간보다 크다.

그리고 한 손에는 긴 철봉을 들고 있는데, 표면에 룬어가 새겨져 있는 것이 강력한 마법의 무구인 듯하다.

머리에 쓴 해골 역시 눈이 붉게 빛나고 있다.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

“이런 원숭이도 마법을 쓰는가.”

뭐 이런 정글이 다 있지? 나는 혀를 내두르며 사라진 거미줄 사이로 들어오는 원숭이들을 막기 위해 다시 거미줄을 쳤다.

촤악

동시에 미스틱 엑스가 내장된 공격마법 중 하나인 라이트닝 랜스를 그놈을 향해 던졌다.

촤아아아아

부딪치는 잔가지들을 모두 부수며 뇌전의 창이 일직선으로 해골 쓴 원숭이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원숭이는 들고 있던 철봉으로 뇌전의 창을 맞받아쳤다.

꽈드드등

창이 부서지며 굉음이 났지만 철봉은 멀쩡했다.

“끼끼끼, 마법사가 둘이나 있구나. 역시 해적들도 많이 불러 모으니 여러 가지 쓸 만한 놈들이 섞여온단 말이야.”

원숭이가 말도 한다.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그놈을 보았다.

“아, 이런, 저놈이 바로 마족의 계약자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놈의 몸 주변에 검은 마기가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다. 워낙 멀리 떨어져 있고 하늘 쪽이라 잘 못 본 거다.

무엇보다 원숭이가 마족과 계약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깜박 했다.

“우끼끼, 내가 계약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다니? 넌 보통 마법사가 아니구나.”

헛, 여기서 중얼거린 말을 들은 건가? 청력이 장난 아니다.

해골 쓴 원숭이는 몇 번 도약을 하더니 땅까지 내려왔다. 다른 원숭이들도 더 이상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나는 후사, 위대한 존재이다. 너의 인간족을 대신해서 세상을 다스릴 우리 일족의 왕이자 신이지.”

“저기, 정말 인간대신 원숭이가 세상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너는 똑똑해도 다른 원숭이는 아니잖아. 아마 엘프도 드워프도 가만있지 않을 걸.

“우리는 점점 똑똑해질 거다. 내 피를 먹인 놈들은 말도 한다. 피가 더 필요하다. 맛있는 피를 먹어야 내 피가 늘어난다.”

“혹시 맛있는 피가 나 같은 마법사의 피인 거냐?”

“마법사 맛있다. 다른 놈처럼 마물로 변화 안 시켜도 바로 마실 수 있어서 편하다.”

아하, 그러니까 이놈이 다른 사람을 마물로 변하게 하는 것은 피를 빨아먹기 위함이군. 마물은 핏속에 마력이 담겨 있으니 그걸 먹고 자신의 마력을 불리는 거야.

마력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 그걸 피라고 생각하는 거고.

애초에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쩐지 바다에서 해양괴물을 하나도 안 만나더라니. 그걸 조종해서 바다를 장악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식량으로 삼은 거였다.

“어떤 무식한 마족이 너하고 계약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는 안 될 거야. 우리는 너를 잡으러 왔거든.”

“나는 잡히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강하다. 우끼끼!”

촤아아악

사방에 쳐져 있던 거미줄이 찢어져 떨어졌다.

후사라는 원숭이가 지른 고함에는 초음파가 섞여 있다. 우리는 방어막 덕분에 무사했지만 거미줄은 단숨에 가닥가닥으로 끊어져 버린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거기 걸려있던 원숭이들은 초음파에 영향을 안 받는 듯 멀쩡했다. 오히려 초음파를 뒤집어쓰자 더욱 기운이 나는 듯 같이 끼끼끼 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웃, 이 소리는 위험하군.”

크리드 경이 먼저 알아채고 얼른 귀를 막았다. 확실히 마력을 담은 울음소리가 수백이나 겹쳐지니 뇌가 견디기 어렵다.

이 원숭이들도 후사의 영향으로 반쯤 마물화 된 모양이다.

후사가 언제부터 마족과 계약을 했는지 모르지만 결코 최근의 일은 아닌 듯 했다. 이 정도 수하들을 모두 마기로 변화시키려면 최소 수십 년은 걸렸으리라.

아무도 모르는 섬의 유적 안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강력한 원숭이 마물 집단이 탄생해 성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희들에게 당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강하지. 라이트닝 샤워!”

빠지지지지지직

수십 가닥이나 되는 뇌전의 채찍이 다가오는 원숭이들을 때려서 꺼멓게 태웠다. 고위 마법의 힘은 군대를 상대할 수도 있으니 무방비로 달려드는 이 정도의 야수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끼끼, 네놈들이 내 부하를 삼십이나 죽이다니!”

삼십? 오십은 태운 거 같은데. 아하, 절반은 아직 안 죽었네. 확실히 반 마물화 돼서 마법에 대한 저항력도 있나보다.

후사는 화를 내면서도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법이 만만치 않음을 보고 경계하는 듯 훌쩍 뛰어올라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 위에는 아직 200마리가 넘는 원숭이가 있다.

“시간은 많다. 너희들은 어차피 이곳에서 나갈 수 없으니 노예들을 충분히 모은 후 천천히 요리해 주마.”

“노예라, 인간들을 잡아 부릴 생각인가보군.”

마물화 시킨 인간들을 단숨에 모두 먹을 수는 없을 테니 적당히 부려먹다가 한 명씩 잡아먹을 거다.

그나저나 저놈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네.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것은 쉬운데, 나무 사이로 떼를 지어 도망가는 놈들을 잡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몇 마리는 공격해서 떨어뜨렸지만 결국 후사는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할까?”

크리드 경이 물었다.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듯 했다. 원숭이들이 나무 위에서 싸움을 걸어오면 그와 같이 검을 쓰는 사람들은 대응하기가 쉽지는 않다.

크리드 경이야 최고의 실력자니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겠지만 후사가 나무 위 높은 곳에서 안 내려오면 그가 공격할 방법은 거의 없는 것이다.

“저놈이 어떻게 마족과 계약을 했는지가 궁금해요. 지능이 없는 존재는 소환마법진이 있어도 구동을 못 하고, 우연히 구동을 해도 계약을 이행할 수 없거든요.”

“그러게. 저놈하고 계약한 마족을 만나면 조롱이라도 좀 해줘야겠군. 원숭이 마족이라고 말이야.”

“헛, 어쩌면 정말 수신 계열의 마족일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런 마족도 있을 수 있나?”

“예, 기록에 보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아무튼 확실한 것은 아니니 유적 안으로 들어가 봐요. 여기가 저놈들의 본거지라면 유적 안에 뭔가가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자고.”

적어도 유적 안에는 나무가 없을 것이고, 천정도 있을 테니 땅에서 싸울 수 있다.

크리드 경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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