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89화 (189/250)

로엔의 마나뱅크 189화

5장 유적의 진실

내가 마법사라도 배를 몰 수 있는 건 아니다. 해왕호를 실제로 조종하는 자는 파독이라는 해적인데 아직 나이가 많지 않지만 선원들 사이에 조타 실력만큼은 최고로 인정받는 모양이다.

파독이라는 이름도 본명이 아니라 ‘파도를 읽는 자’라는 의미의 별명인데 지금은 이게 그냥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참에 조타에 대해 배우려고 틈만 나면 파독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생각해보니 전생에는 마법만 연구하느라 그토록 오래 살면서 딱 필요한 것 이외에는 배우려 하지 않았다. 무투술도 건강을 위해 배운 셈이고, 악기 연주나 조타술처럼 실생활과는 무관한 것은 모르는 것이다.

이번 생에는 여러 가지를 모두 배워보자. 마법에는 살짝 눈을 떼고, 주로 취미생활에 주력하면서 배울 수 있는 잡다한 것들을 하는 게 좋겠다.

그게 의외로 마법의 응용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나를 깊게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응용하려면 넓고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결심해도 정작 생활하다보면 매사를 마법관 연관시키는 습성이 있다. 결국 나는 뼛속까지 마법사인 것이고, 조타술을 배워도 머릿속으로는 이걸 어떻게 술식으로 바꿔서 내가 자아를 만들 때 주입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유적까지는 보름 정도 더 가야 된다는 거죠?”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파독에게 말을 걸었다. 지도를 보면 우리 배는 해류를 따라 나아가고 있는데, 가능하면 다른 배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살짝 돌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유적이 그려진 지도를 보면 유적은 커다란 섬이고,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정도 있다.

파독은 그걸 보고 가장 정박이 어려운 남쪽 해안으로 진입하자고 했다. 암초가 많고 파도도 심해서 해안까지 접근하려면 보통 조타술로는 안 되니 상대적으로 그곳으로 진입하는 자들은 많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림녹은 어느 쪽으로 진입했는지 알 수 없겠죠?”

“가 봐야 알 겁니다. 하지만 제 예상이 맞는다면 그림녹도 남쪽으로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거기 조타수가 한 실력 하거든요.”

“좋네요. 가능한 한 빨리 그림녹과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바다에서 적을 안 만나서 좋네요. 사실 해상전은 경험이 적어서 곤란해 하고 있던 참이거든요.”

“하하, 해왕호에 승선한 선원들은 모두 꽤 실력이 좋은 편이니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 배는 빠르기 때문에 적이 수가 많거나 한 척이 아니면 언제든지 도망갈 수도 있고요.”

나는 해양마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파독은 같은 해적을 이야기하네.

나쁘지 않다. 파독이 해양마물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 아직 이 바다는 평화롭다는 거니까.

나는 잡담을 그만두고 다시 파독에게 조타술에 대해 배웠다. 저녁 무렵에는 잠시 직접 배를 몰아보기도 했는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뿐이지만 미묘하게 흔들리는 배의 움직임이 조금 더 잘 느껴졌다.

“잘 하시네요. 조금 더 배우면 제가 식사를 하는 동안 맡겨도 되겠는데요?”

아부하네. 하긴 해적이 마법사와 친할 기회는 많지 않지.

그래도 말만이라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긴 좋다. 나는 매일 새벽마다 나와서 조타술을 배우기로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

파독이 이야기한 대로 거의 보름 만에 우리는 유적이 있는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확실히 큰 섬으로 이런 섬이 아직까지 정식 지도에 실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파독은 긴장을 유지하며 암초지대를 조심스럽게 통과했고, 드디어 우리는 넓지는 않지만 모래사장이 있는 곳에 배를 댈 수 있었다.

이미 몇 척의 배가 해안에 정박해 있었는데, 상당한 수의 해적들이 자신들의 배를 지키고 있었다. 아예 집을 지어 놓고 있는 자들도 보였다.

파독은 한 바퀴 슥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림녹의 배는 없네요.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간 모양이에요.”

“저들은 우리와 싸우려 하지 않을까요?”

“가능한 한 정박한 배끼리는 싸우지 않아요. 배가 멈춘 상태에서 싸우는 것은 해적답지 못한 일이니까요. 술집과 바다위에서만 싸워야 진정한 해적이라는 말이 있죠.”

“그렇군요.”

“하지만 도적은 있을 수 있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배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 부분은 이미 들은 바가 있다. 유적에 진입하는 것은 우리 일행뿐, 해적들은 해안에 남아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좋아요. 그럼 준비되는 대로 유적 안으로 진입할 테니, 약속대로 한 달간은 기다려줘요.”

“물론입니다. 준비는 충분히 해 왔으니 우리는 한 달 동안 여기서 저 친구들과 친목을 쌓도록 하죠.”

파독이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리자 그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배를 보호할 수 있게 간이 방책을 쳤다.

그 사이 우리는 해변 안쪽으로 들어가 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는데, 그곳부터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무성했다.

“이건 정글이네요. 땅보다 나무뿌리를 밟고 다녀야겠네요.”

미리아가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자라서 뿌리와 뿌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숲의 힘을 쓸 수 있을까?”

“아니, 고립된 섬의 나무라서 곤란해. 하지만 나무는 나무니까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거야.”

미리아는 나무에 손을 대고 주문 같은 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축복이구나. 일단 축복부터 하고 시작하면 나무도 호의적이 되나보네.

잠시 후, 미리아는 나무에 이마를 대고 감응을 시도했다. 숲의 나무가 아니라서 그다지 영리하지는 않아도 오래 된 나무에 신성력을 주입하면 어느 정도 영성을 얻게 된다고 했다.

“그래, 사람들이 많이 와서 나무를 해치고 있다는 거지? 숲이 화낼 만 하네. 안쪽에는 뭐가 있니? 옛날 사람들의 돌들? 그곳까지 가는 길을 열어줄래?”

스스스슥

정말로 나뭇가지가 움직이더니 우리가 지나갈만한 공간이 생겼다. 숲 한가운데에 길이 열리다니, 엘프의 숲도 아닌데 이게 가능한 건가?

“여기 나무들은 꽤 똑똑해요. 섬 전체에 상당히 강한 마력이 흐르고 있어서 그 영향을 받았나봐요.”

“섬 전체에 흐르는 강한 마력이라니. 유적 자체는 진짜인가보네. 그것도 꽤 강력한 힘을 보유한 유적일지도.”

“렌 경의 말을 유적이 아직 살아있다는 건가?”

크리드 경이 끼어들었다. 유적이 살아있다는 표현은 마법적인 장치가 아직 가동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몰라도 반영구적인 힘의 근원이 있나 봐요. 이 정글의 모습으로 보건데 수천 년은 넘은 유적 같은데, 보물이 아니라 유적 자체가 큰 가치가 있겠네요.”

“엑스 경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크리드 경은 고개를 돌리고 우리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고 있는 미스틱 엑스 경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왜 자꾸 미스틱 엑스 경에게 말을 거는 거야. 그는 대화를 싫어한다고. 그래도 꾸준히 틈만 나면 말을 거는 걸 보면 미스틱 엑스와 친분을 쌓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약간의 존경심을 표하기도 하고 말이야.

“렌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굵은 목소리. 그러나 강한 힘이 느껴진다.

“자, 그럼 길이 열렸으니 앞으로 나가 봐요.”

여기서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 미리아가 열어 준 나무 사이의 길을 따라 나아갔다.

조금 가니 다시 길이 막혀 있었지만 미리아가 또 나무와 대화를 하니 다시 앞에 길이 열린다.

“미리아, 너 축복 계속해도 돼? 정작 필요한 순간에 지쳐서 힘을 못 쓰면 안 된다.”

“괜찮아. 약하게 걸고 있거든. 조금만 신성력을 주입시켜 줘도 나무가 축척하고 있는 힘이 워낙 많아서 효과가 좋아.”

“흠, 그런 건가?”

말하자면 여긴 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엘프의 숲 같은 건가 보다. 그나저나 마력을 축척하는 도구로 살아있는 나무가 의외로 쓸 만 하네. 돌아가면 정식으로 연구를 해 봐야겠다. 숲에 나무를 이용한 마법진 설치는 엘프의 전매특허 같은 거지만 내가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따라쟁이라고 욕먹어도 상관없다. 원래 마법식에는 주인이 없는 법, 다 서로 모방하고 연구해서 더 나은 방법을 만들어 내면서 발전하는 법이다.

*

우리는 비교적 쉽게 밀림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평지를 이동하는 속도의 3분의 1도 안 나온다. 그리고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니 수풀에 가려서 아예 하늘이 안 보여서 낮과 밤이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어두운 것은 빛의 구슬을 들고 다니면 되지만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으니 조금 괴롭다.

그래도 우리는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하여 식사시간과 취침시간을 지키며 나아갔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가니 드디어 공터가 하나 나타났고, 그곳에는 이미 선점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일주일 만에 보는 사람이라고 할까? 경계심보다 반가움이 먼저 일어났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들의 눈이 이상하다.

“이런, 이미 좀비화 되었군.”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닌데, 뇌가 파괴되어 회복불능이 된 상태로 손발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그그그.”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다가왔다. 언데드는 언제나 생명체를 찾아 자신들의 동료로 만들려는 습성이 있다.

“미리아, 처리해 줘.”

“알았어. 정화!”

파앗

“꺄아아아아!”

미리아의 손에서 섬광이 일어나자 좀비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언데드도 역시 저주의 일종이라 그게 풀리는 순간 원래의 시체로 돌아간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체 꿈틀대며 완전한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을 동정할 여유는 없다. 나는 그들이 모여 있었던 곳을 조사했다.

“보급품이네. 그러니까 여기까지 온 자들이 이들을 남겨두고 앞으로 나간거야.”

“그런데 왜 언데드가 된 거야?”

“그걸 지금부터 밝혀내야지.”

좋지 않다. 해적들도 바보는 아니니 안쪽으로 진입을 하면서 이렇게 거점을 만들어 놓은 건데, 그 거점이 당해 버리면 앞에 간 자들은 돌아올 곳이 없다.

누군가 안에 들어간 해적들을 싹 제거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저쪽으로 해적들이 간 모양이니 뒤를 따라가 보자. 만약 따라잡을 수 있으면 이 상황을 알리고 유적을 떠나라고 말해주는 게 좋겠어.”

우리는 공터 반대편에 나무가 베어진 곳을 따라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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