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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81화 (181/250)

로엔의 마나뱅크 181화

“좋게 생각해야지. 일단 200년 후에 이반 경이 신이 된다고 하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그러나 너무나도 이성적인 나의 두뇌는 최면이고 뭐고 걸리지 않는다.

“이번 생애 내내 마족을 막아도 안 되잖아! 인간이 200년 동안 사는 건 무리라고!”

가능할 지도 모른다. 내가 전생에 암살당할 때가 150살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확실히 나이가 들면 점점 기력이 떨어져서 실전에서 뛰는 건 무리다.

“그럼 데빌 헌터의 조직을 강화해서 내가 없어도 마족의 계약자들을 처리할 정도까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니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한 가지 전제되는 것은 바로 내 인생은 마족과의 싸움에 바쳐져야 한다는 거다.

“아 놔, 나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10년 정도 더 싸우는 건 어떻게 참겠는데, 앞으로 200년을 어떻게 싸워!”

짜증이 제대로 난다.

그러나 일단 이반 경 앞에서 이렇게 투덜거릴 수는 없다. 그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200년간 수행해서 신이 되겠다고 하는 남자다.

나는 일단 이반 경에게 알았으니 그 사이 세계는 나한테 맞기고 수련에 전념하라고 격려한 후 다시 물질계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조용히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이반 경이 신이 되기 전에 다른 마족의 승자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신이 탄생하기 전에 이계의 신이 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크게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태로 볼 때, 마족의 후계자들 중 몇 명은 조금 바보 같은 구석이 있지만, 다른 몇 명은 충분히 물질계 전체를 집어삼킨 능력과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방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내 성격상 그냥 놔둘 수도 없고.

“어쨌든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해.”

아직 십대인데 벌써부터 관리직을 원하냐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조금이라도 빨리 시스템이 완성되는 거야.

하지만 과연 가능은 할까?

최소한 8서클 마법사가 둘은 필요하다. 그것도 그들이 싸우다 희생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크리드 경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기사도 육성해야 된다.

무엇보다 우리 쪽에서 배신자가 생길 수 있다. 우리 쪽 사람들 중에서 마족의 계약자가 나온다면 문제가 정말로 심각해질 수 있다.

“계약자고 뭐고, 마족이 들어오는 족족 때려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은데…….”

섀도우 플레인에 구멍이 계속 뚫리고 있는 상황인 게 제일 문제다.

신한테 그거 막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할 걸. 그런 게 가능하다면 말이지.

가만, 진짜 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네.

신이 있으면 고위 마족이 이 세계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떻게든 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마족이 물질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신이 없어도 마족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만 있다면 이미 들어온 신과 계약자만 처리하면 상황이 종료된다.

“뿌우야, 나와 봐라.”

“또 뭐냥!”

“오호, 불길한 예감을 느꼈나보군.”

“역시냥, 사장님한테 보내는 거구낭.”

“응, 지금 내가 질문할 존재는 포트라 정도밖에 없거든. 그러니 가서 섀도우 플레인에 결계를 칠 수 있는 방법이 혹시 없냐고 물어봐줘. 마족이 구멍 뚫고 들어오지 못할 결계를 말하는 거야.”

“알았당.”

뿌우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정령계로 갔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내 질문이 너무 애매했나? 섀도우 플레인 전체에 고위 마족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결계를 친다니, 그건 내가 신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대정령 포트라에게 질문까지 하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다. 뭔가 내가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한 후에 ‘그게 가능한 가?’ 하고 물어야 정상이다.

“쩝, 내가 너무 조금했나 보네. 200년이라는 말에 당황하긴 했었군.”

스스로 반성을 하는데 겨우 뿌우가 돌아왔다.

“니가 신이냥? 이라고 대답하란당.”

“역시 그거구나. 알았어. 미안.”

포트라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질문이 애매하니 대답을 못 들어도 하는 수 없다. 그래도 정식 계약을 해서 질문을 할 때 따로 힘을 소모하지 않으니 밑지는 건 없다. 단지 이런 질문을 계속하면 포트라한테 덜 떨어진 마법사 취급을 당할 수 있는 게 조금 자존심 상하긴 한다.

나는 더 이상 포트라에게 질문을 하려 하지 않고 일단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뿌우의 말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런 건 헬마니움 산에 가서 슬리퍼한테 물어보란당. 세계에서 유한자가 신의 영역에 대해 질문했을 때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슬리퍼밖에 없단당.”

“오옷! 포트라가 그렇게 친절하게 가르쳐 줬단 말이지?”

“사장님도 마족이 신이 되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랑.”

후훗, 그런 거였나? 나보고 알아서 막으라는 거군.

“염려 말라고 전해. 내가 헬마니움 산에 가서 방법을 알아낼 테니.”

“그 말은 안 전할 거당. 내가 아는 사장님은 무슨 염려 같은 걸 한 정령이 아니당.”

“네 말이 맞다. 포트라한테 무슨 걱정이 있겠냐.”

내가 원하는 삶도 포트라처럼 마음 편하게 자기 할 일 하면서 지내는 거였는데, 엄하게 마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바쁘고 위험한 생활을 하게 된 거다.

“그럼 다른 마족하고 엮이기 전에 빨리 헬마니움 산에 가야겠군.”

내 인생이 운명적으로 마족이란 마족이 모두 얽히게 되어 있는 걸 안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괜히 또 다른 마족의 계약자가 나타나면 그놈 잡는데 시간이 걸릴 거고, 그 사이 다른 마족이 이 세계에 들어오면 그만큼 일이 늘어나는 거다.

그런데 헬마니움 산에는 누굴 데려가지?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는 혼자 가기로 했다.

혼자라고 해도 크리드 경과 같은 사람을 안 데려가는 것일 뿐, 마리포즈와 렉스, 서피는 같이 간다. 그 위에 새로운 멤버로 이번에 만든 미스틱엑스도 참여시켜야 한다. 뿌우는 기본적으로 내 지팡이 속에 사니, 원래의 멤버에서 이반 경과 크리드 경, 미리아가 빠졌을 뿐이다.

사실 인간은 나 혼자인데, 남이 보기에는 훌륭한 파티가 되는 셈이다.

계획이 서면 행동은 바로 해야 한다. 나는 방에서 나와 실비아 공주와 케이티를 불러 내가 미스틱엑스와 비밀리에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이번 여행이 잘 되면 마족과의 싸움에 크게 좋은 영향을 줄 거야.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슬슬 정리할 때가 된 거지.”

“그것 참 다행이네요. 저도 렌 경이 더 이상 싸움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실비아 공주, 많이 불안했던 모양이구나.

내가 영지를 떠날 때마다 말수가 굉장히 적어지고 밤낮으로 일만 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동안 내 앞에서는 내색을 안 하다가 내가 먼저 지긋지긋하다고 하니 실비아 공주도 속마음을 살짝 드러낸 것이다.

“염려 마, 이제는 나도 꽤 강해져서 어떤 상황에서도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

“믿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미스틱엑스 경도 같이 가잖아요.”

그 미스틱엑스는 사실 별 능력이 없지. 나는 굳이 설명을 해주려 하지 않고 마리포즈에게 여행준비를 시켰다.

다음날 아침,

“내가 같이 가고 싶지만, 미스틱엑스 경이 렌 경만 동반하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군.”

크리드 경이 마중 나와서 말했다. 그는 여전히 투지가 넘쳐흘러서 목숨을 걸고 싸움으로써 자신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즐긴다.

“이번에는 마족의 계약자와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에요. 싸움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그런가? 하하하. 그럼 난 영지에 머물면서 실비아 공주나 가르쳐야겠군.”

“다른 기사들도 신경 좀 써 주세요. 다들 크리드 경을 흠모하고 있잖아요.”

“알았네. 가끔 한 번씩 봐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어차피 나도 이 영지에 뼈를 묻게 될 테니까 기사단이 강해지면 그만큼 나도 편해질 테지. 신경 쓰지 말게.”

오호, 크리드 경이 미스틱게이트에서 평생 살기로 마음을 굳혔구나. 다행이다. 데빌 헌터로써 계약을 했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그를 이곳에 잡아두기도 조금 그랬는데, 만약 그가 몇 년 뒤에 자신이 태어난 왕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말리기가 애매했을 거다.

그런데 정작 크리드 경은 고향에 큰 미련이 없는 듯 했다. 고향에 있을 때 마법사들에게 알게 모르게 견제를 많이 당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계속 강해지고 있는데다가 미스틱게이트 자체가 무척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의 마법사들은 기사들에 대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카탈라난 부대 훈련을 하면서 지원한 마법사들에게 기사와 마법사는 서로 대등한 존재고, 상생하는 관계라는 정신교육을 철저히 시키기 때문이다.

마나뱅크가 사라진 지금 마법사들은 예전처럼 강하지 않다.

단지 각 마도가문의 수장들은 예전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켜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리를 하고 있다.

이에 왕국의 기사들은 점점 마법사들에 대해 불만이 쌓이고 있는데, 예전처럼 힘의 차이가 확 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사단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 영지는 나를 비롯해 영지의 수뇌부들이 기사들에게 호의적이고 쓸 데 없는 권위의식 같은 게 없다.

현재 콘돌스핀 가문의 수장인 파우스 스승님도 그렇고, 이반 경도 마법사답지 않게 털털한 성격이라 그런지 영지의 마법사들 대부분이 그야말로 우리 마을의 친절한 마법사 같은 느낌이다.

잘 되었네. 크리드 경이 정식으로 영지에 자리를 잡으면 그의 명성을 이용해 기사단도 더 강화해야지.

대륙에서 기사와 마법사와의 연계가 가장 훌륭한 영지가 될 거야. 물론 수준도 최고가 될 거고.

출발 전에 좋은 소식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이번 일은 잘 될 거 같다.

나는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헬마니움 산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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