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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79화 (179/250)

로엔의 마나뱅크 179화

2장 신을 소환하는 법

신이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고 해도 우리는 신이 필요하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덜 떨어진 신이라고 해도 이곳 물질계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쓸 수 있으니 강제로라도 불러와야겠어.”

“신을 어떻게 불러와?”

“내가 생각해 봤는데, 신이라고 해도 이미 이곳을 떠난 이상 고위마족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원래 고위마족이라는 게 자신의 세계에서는 불멸자로 불리는 자들이잖아.”

“그래서?”

“마족을 강제소환하듯 신도 강제소환을 할 수 있을 거야. 암. 그가 날 보고 싶지 않아도 난 꼭 한 번 봐야겠어.”

“그러다 벌 받을지도 몰라.”

“쩝, 그게 조금 무섭긴 해.”

마족은 강제소환을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문제가 되어도 나는 괜찮다는 소리다.

그만큼 내 마족소환진에 걸린 안전장치는 훌륭하다.

그러나 일단 신이 이곳에 소환되면 그는 불멸자의 모든 권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물질계에서는 절대자인 만큼 기분 여하에 따라 내가 소멸될 지도 모른다.

안전장치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어떻게든 강제로 부르지 않고 찾아가려 했는데, 정말 우릴 버리고 떠났다는 게 밝혀진 지금 더 이상 참을 필요는 없다.

미리아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소환할 건데? 신과 관계된 무엇인가가 필요하잖아. 소환하려면.”

마족도 강제소환을 하려면 강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아론 경의 재를 모아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응, 원래는 성녀인 너를 매개체로 소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넌 신이 임명한 게 아니라 섀도우 플레인에 있는 빛의 구체가 힘을 준거래. 그러니 이번에는 빛의 구체를 매개체로 소환을 해 보게.”

“그게 가능해?”

“섀도우 플레인에 있는 이상 안 되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반 경이 협조를 하면 될 것도 같아. 어쨌거나 그의 육체는 이곳에 있으니까 말이야.”

웃기는 게 이반 경의 영혼이 빛의 구체로부터 힘을 받아들이는데 정작 힘이 쌓이는 것은 이반 경의 육체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순수한 신성력이 이반 경의 육체에 쌓이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이반 경은 다른 영역의 마법은 모두 잃게 되지만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백마법만큼은 그야말로 궁극의 경지를 깨달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빠르면 10년 안에 될 것도 같다.

“일단 미리아 네가 이반 경에게 꿈침투 능력을 써서 협조를 구해 봐. 그러면 내가 그의 육체를 이용해서 신을 강제소환 해 버릴 테니까.”

“알았어. 오늘 말해 볼게.”

“그럼 난 그사이 마족소환진을 손볼게. 기존의 마족을 소환할 때 필요한 안전장치 따위는 일단 따로 떼어 놓고, 소환력 자체만 극대화 시켜야지.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그가 어디에 있던 부를 수 있을 거야.”

괜히 안전장치를 걸어놨다가 소환된 신이 힘 한번 쓰면 그대로 파괴되는 수가 있다. 그러면 그 비싼 마법진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낭비를 할 수는 없다.

“그나저나 이놈의 신을 소환하면 어떻게 구슬려야 하지? 제발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빌기는 싫은데.”

내 마음속에 이미 신은 죽었다. 그는 고위마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별로 존경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일단 물질계에 소환되면 절대적인 힘을 쓸 수 있으니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게 표정관리쯤은 해 줘야겠지.

신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

“뿌우야, 잠깐 나와 봐.”

“뭐냥?”

“이야기는 들었으니까 대충 짐작하겠지만, 포트라한테 가서 신에 대한 정보 좀 달라고 해봐. 포트라는 아는 게 있을 거야.”

“알긴 알겠징. 근데 너한테 말을 안 해줄 거당. 불멸자에 대한 정보를 쓸데없이 필멸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당.”

“나도 알거든. 그런데 난 신을 소환할 거잖아. 그러니 내 계약자로써 포트라는 나에게 조언을 해 줄 의무가 있다고.”

“그건 그렇당. 다녀 온당.”

뿌우는 여전히 포트라에게 가는 게 무서운 지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정당한 심부름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성숙해졌구나. 뿌우. 넌 좋은 정령이 될 거다.

“그러고 보니 신의 이름이 뭐였지?”

그것조차 알 수 없다. 다른 고위마족은 저마다 이름이 있는데, 우리 물질계에 딱 하나 있는 신은 이름도 없는 것이다.

“아니다. 물질계를 버리고 떠났으니까 이름도 안 남긴 거구나.”

이름을 남기면 물질계에서 멀리 가지 못한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신의 이름을 부를 테니까. 아마 절대적인 권능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서 지워버린 것이리라.

“포트라가 신의 이름을 알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는 이것저것 중얼거리며 마법진을 손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미리아가 와서 말했다.

“양부가 육체만 소멸 안 시키면 마음대로 해도 된데. 그런데 이제 꿈침투 하지 말라더라. 이게 마족의 능력이라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데.”

“하긴, 거긴 지금 신성광으로 가득 차 있을 테니 마족의 능력으로 접근하면 자동적으로 반발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어쨌든 이반 경의 승낙은 받았다. 나는 동결시켜 놓았던 이반 경의 육체를 가져와서 마법진 가운데에 놓았다.

“사장님의 전언이당. 웬만하면 부르지 말라고 한당.”

“싫어. 부를 거니까 정보나 내 봐. 신의 이름도 알려주면 좋고.”

무리수일지도 모르지만 소환하기로 했으니 한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뿌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장님도 말리긴 하는데, 말려도 들은 놈은 아니라고 하더랑. 이름은 안 가르쳐 줬당. 단지 멈추기를 거부한 자 라고 부르면 된다더랑.”

“멈추기를 거부한 자라, 알았어. 그 밖에 정보는?”

“소환되어도 말을 안 하고 명상에 잠길 가능성이 크다더랑. 그때 괜히 재촉하거나 특히 사장님 이름을 빌려 협박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당.”

“오호, 포트라의 이름으로 협박하면 효과가 있다는 소리군.”

“허걱, 너는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당.”

“그거 말고 신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어?”

“헬마니움 산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면 대답을 해 줄 거랭. 한번 말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다른 말도 할 가능성이 높으니 시험해 보란당.”

“헬마니움 산? 그런 산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알았어. 일단 그걸 물어보고 효과가 없으면 포트라의 이름으로 다시 말을 걸어봐야지.”

“마음대로 해랑. 난 조용히 지팡이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테닝.”

뿌우는 정말 겁이 나는 듯 바로 지팡이 속에 들어갔다. 평소라면 조금씩 흘러나올 정령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야말로 숨을 죽이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마음을 안정시킨 후 조심스럽게 마족소환진을 가동시켰다.

우우우우웅

“여기 합당한 매개체로 그대와의 연결을 시도한다. 나의 부름을 받아들여 이곳으로 오라!”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면 좋은데, 이름 없이 그냥 소환을 하려니 마력도 정신력도 엄청나게 소모가 된다. 그래도 나는 참았다. 팔뚝의 핏줄이 울룩불룩하게 서고,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걸렸다. 이제 곧 신이 강제로 소환될 것이다.

우리를 버리고 떠난 신이여. 일단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츠츠츠츠츠

안개가 뭉친 그림자와도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아직 완전히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저쪽에서는 일단 의식의 일부만 보내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알아보려는 것 같다.

그래도 왔구나. 의외로 쉽네.

“누군가? 잊어지기를 원한 나를 기억해 부르는 자는?”

오옷! 침묵한다더니 먼저 말을 건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대가 버리고 떠난 물질계의 마법사다.”

신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안 된다. 그 순간 그는 힘을 얻고 절대적인 권능을 행사할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이세계에 존재하는 고위마족을 소환했다는 느낌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물질계는 주인이 없는 공간이 되어, 다른 세계의 고위마족들이 서로 소유권을 놓고 경쟁중이다. 돌아와서 이 사태를 해결하라.”

“그대가 말했듯이, 나는 이미 그곳을 버렸다. 그대의 말대로, 물질계는 주인 없는 공간이다. 내가 다른 자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미치겠네. 정말 이 신이 배를 째는구나.

나는 화를 참으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결할 방법이라도 말해 달라.”

“그건 간단하다. 외부의 신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너희는 새로운 신을 탄생시켜야 한다. 그대라면 가능하다. 받아들여라.”

“나는 신이 되기 싫다. 유한자로 남고 싶다.”

“그렇다면 외부의 신을 받아들여라. 자격이 있는 자가 책임을 회피했으니 운명의 수레바퀴는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다.”

쩝, 내가 말로 밀리다니. 생각해보니 신이 이 세계를 버리고 떠난 것이나 내가 신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나 그게 그거다.

사실 신이라는 게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탄생한 불멸자로써 자동적으로 세계의 관리자 같은 역할을 맡게 되는 거다.

4대 대정령이 모두 인정하는 세계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고정직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고 싶다. 신도 그러고 싶었던 모양이다. 쩝. 남 욕할 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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