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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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오 강은 대륙의 오대 강 중 하나로 하류 지역은 바다처럼 넓지만 우리가 간 곳은 상류 쪽을 지나 근원이 되는 물줄기 중 하나였다.
깊은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니 과연 셰이든이 심어놓은 마법의 징표가 보였다.
“여기서 북쪽으로 게이트를 열면 신의 문이 나온다는 거군요.”
이반 경이 마법의 징표를 해석해서 말했다.
“그건 일단 여기에 게이트를 만들어보면 알게 되겠죠.”
일단 들어가 보고, 위치가 맞으면 마나파동포를 쓰고 아니면 셰이든에게 다시 작업을 해 달라고 하면 된다.
조금만 방향이 틀려도 빗나가기 때문에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즉시 마법의 징표 위에 섀도우 플레인으로 들어가는 게이트 마법진을 설치했다. 동시에 미리 준비해 간 유체이탈용 침대를 설치하고 주변에 방해되지 않게 결계도 쳤다.
그 사이 미리아는 다시 숲의 힘을 끌어다 쓰기 위해 주변의 수풀들에게 축복을 걸어 주었고, 곧 수풀들은 신성한 기운을 띠며 쑥쑥 자라서 무성한 숲을 이루었다.
이렇게 준비를 하는 데만 3일이 걸렸고, 그 사이에 마리포즈와 크리드 경은 틈틈이 주변을 탐색하며 다른 위험요소가 있나 보았다.
“다 됐어요. 바로 진입을 해 볼게요.”
시간이 급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마음이 급했다.
신의 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찌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법진이 가동되고, 마나의 파동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니 숲의 새들이 놀라 날아가는 게 보인다.
나는 침대에 누워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의식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과 함께 영혼이 육체를 이탈해 섀도우 플레인으로 들어갔다.
“정확하네요.”
나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셰이든에게 말했다. 셰이든은 신의 문 바로 앞에서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10서클 파괴마법이라는 것을 보여다오. 그걸 보기 위해 난 너에게 협조한 거니까.”
“보여드리죠. 그럼 잠시 물질계로 오세요.”
위치가 정확함을 확인했으니 이제 마나파동포를 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셰이든과 함께 물질계로 돌아왔고, 모두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게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신을 만나면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
미리아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신에게 사인이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말은 해 볼게.”
“헤헷, 고마워.”
졸지에 신에게 사인해달라고 조르게 생겼네. 사실 미리아는 성녀이기 때문에 신이 일종의 스폰서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런데 신이 사라진 세상에 성녀가 태어날 수 있나? 그것도 마족과의 계약에 의해 말이지.
이 부분도 풀기 어려운 의문인데, 나중에 따로 연구를 해 봐야겠다. 혹시 성녀가 신의 권능에 의해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면 힘의 근원이 무엇인가 밝혀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엄한 곳에서 힘을 끌어다 쓰고 있으면 미리아의 미래가 불투명해 질 수 있으니까.
나는 일단 마나파동포를 쏘기 전에 신을 만나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솔직히 아직 신을 만날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 만났을 때에 할 말을 미리 정리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수가 있다.
우리가 준비하는 사이 셰이든은 반투명한 그림자와 같은 모습으로 구석에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셰이든에게 마나파동포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기에 따로 준비한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마치 마법진으로 인해 마나파동포가 구현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현혹마법진이다.
“그럼 시작합니다.”
드드드드드
대기가 울린다. 그리고 마법진이 점점 빛나기 시작해서 나의 모습이 완전히 빛의 커튼으로 둘러싸였다.
미스릴 실드가 쳐지고, 드디어 마나뱅크가 열리면서 거대한 힘이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쾅
섀도우 플레인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마나파동포가 발사되었다. 그것은 훌륭하게도 예측대로 소멸하지 않고 게이트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발생한 충격파에 의해 우리 모두 사방으로 튕겨졌고, 나는 뒤쪽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렉스가 몸으로 받아줘서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성공인가?”
“어서 섀도우 플레인으로 들어가 봐.”
“알았어.”
셰이든은 이미 섀도우 플레인으로 들어갔다. 정말로 신의 문이 뚫렸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는 것이다.
나와 이반 경 역시 몸을 추스르자마자 침대로 들어가 뚜껑을 닫고 유체이탈을 했다. 렉스도 마찬가지. 오랜만에 영체가 되었다.
그리고 섀도우 플레인에 들어가니 과연 신의 문이 사라져 있었다.
“야호! 성공이다.”
“대단하군요. 섀도우 플레인에서 파괴마법의 힘이 작용하다니. 이것이 10서클의 힘이란 것이군요.”
이반 경도 새삼 놀라운 듯 사라진 신의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크르릉, 놀랍다.”
렉스 역시 놀람을 표현했다.
미리아도 궁금해 하다가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듣고는 어서 신의 문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재촉을 했다.
나는 일단 셰이든을 보았다.
“어때? 같이 들어가 볼래?”
이번 일의 일등공신은 셰이든이다. 그라면 우리와 함께 신의 문 안을 탐색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혹시라도 정말로 신이 저 안에 있다면 셰이든이 셰이드의 몸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셰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저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은 나에게 그다지 좋지 못하다. 저게 강해지면 내 몸이 버티지 못하고 소멸할 수도 있으니 나는 그냥 여기 있겠다. 다녀와라.”
“알았어. 그럼 우리가 대신 물어봐 줄게. 새로운 육체를 얻어 인간으로 몸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지 말이야.”
“크크크, 굳이 인간이 되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재탄생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럼 부탁한다.”
우리는 셰이든을 뒤로 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신의 문 안쪽은 마치 통로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섀도우 플레인의 공간은 사방이 뻥 뚫린 황야와도 같았는데, 이곳은 주변에 신성력을 느낄 수 있는 묘한 통로형 결계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이 과연 섀도우 플레인이 맞는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쩌면 이미 다른 플레인으로 들어온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침식 현상도 여전히 있고, 공간 자체의 이동방법도 섀도우 플레인과 같다.
나는 의식을 집중하여 주변 환경이 변하는 가를 계속 관찰하며 이동했다.
그렇게 몇 분을 가니 앞쪽에 환한 빛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영혼이 환하게 느껴지는 어떤 힘이다.
“고위의 신성력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이군요.”
말하자면 10서클의 신성력이다. 섀도우 플레인에서 존재할 수 있는 힘의 크기는 이 정도라는 소리구나.
눈앞에 존재하는 빛의 구체를 보며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신의 문과 통로는 모두 이 구체가 만들어 낸 것이다.
10서클의 힘이 유지가 될 수 있다니. 마법진도 없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진짜 신이어야만 할 거다.
하지만 그곳에 신은 없었다. 그냥 신의 힘이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내가 살펴보는 것을 감지라도 하듯 빛의 구체로부터 묘한 문양이 나타났다.
읽을 수 있다! 기존에 쓰는 문자가 아니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인데도 읽을 수 있다.
“최초의 문자로군. 신이 쓰는 언어야.”
영혼 레벨에서 각인되어 있는 문자다.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와 문자는 모두 이로부터 파생되어 나왔다고 봐야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자를 한 글자씩 읽으며 의미를 파악해 나갔다. 조금도 틀리게 읽어서는 안 된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 정확하게 읽고 명확하게 뜻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떠난다. 이 세계의 유한자들은 나를 원망하게 되겠지만 아직 나는 신으로써 부족한 부분이 많다. 수많은 공간과 시간을 거치면서 나를 완전하게 만든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지금 생존하는 유한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젠장, 정말 우리를 버리고 떠난 거였어?
미치겠다.
이반 경은 털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살다살다 이런 무책임한 신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마족들이 신이 이 세계를 버렸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 떠나 버렸다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시 의식을 집중해서 빛의 구체를 보았다.
뭔가를 찾으려 하니 문자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빛의 구체는 어느 정도 자아가 있다는 소리다. 우리에게 뭔가 대답을 하기 위해 영겁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곳에 존재해 왔을 것이다.
과연 신은 이 빛의 구체를 남겨 유한자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려 한 것일까?
그냥 떠난다는 말만 남기기 위해 굳이 이걸 남겼을 리는 없다.
나는 의식을 집중해서 빛의 구체에게 질문을 했다.
“너는 왜 이곳에 존재하는 거지? 너의 의무는 무엇이지? 너는 누구지? 신이 너에게 무엇을 하라고 했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나는 조금씩 말을 바꾸어 계속 질문을 했다. 대사는 달라도 질문의 본질은 같았다.
신이 떠난 지금 신에 대한 질문은 의미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바로 이 빛의 구체뿐이다.
그러나 빛의 구체는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행동일까?
아니다.
이건 계속 해봐야 한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신념을 가지고 질문을 계속했다.
질문을 하는 데에 의지력이 계속 소모된다. 셰이드 한 마리를 퇴치하는 데 드는 의지력이 계속 깎여나가니 나는 곧 지쳐버렸다.
다시 돌아가서 쉬고 와야 할까?
내가 그렇게 고민할 때 빛의 구체안에서 문자가 떠올랐다.
[돌아갈 수 없어. 네가 들어온 게이트는 이미 닫히고 그걸 열기 위한 마법진은 파괴되었거든.]
“뭔 소리야?”
[너와 있던 셰이드가 물질계로 돌아가 조력자를 불렀어. 그들이 마법진을 파괴하고 너의 동료와 싸우고 있어.]
이런 젠장, 셰이든이 배신을 했구나.
망했다. 신의 문에 정신이 팔려 셰이든이 음모를 꾸미는 것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그가 부른 조력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만약 물질계에 남아있는 크리드 경과 미리아, 그리고 마리포즈와 서피가 그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나와 이반 경, 그리고 렉스의 육체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육체가 멀쩡해도 게이트가 닫힌 이상 우리는 미리아의 집에서 연 게이트의 장소까지 돌아가야만 한다.
어떻게 하지?
어찌되었든 한 시라도 빨리 미리아의 집 게이트까지 가는 게 나을까?
그러나 돌아가도 육체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분노를 참으며 빛의 구체와 다시 대화를 하려 했다. 그러나 빛의 구체는 그 문자를 끝으로 침묵을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