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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70화 (170/250)

로엔의 마나뱅크 170화

7장 그림자의 좌표

사람의 그림자에는 머리가 있고 팔이 있고 다리도 있다.

본체가 머리를 움직이면 그림자도 머리를 움직인다.

섀도우 플레인도 마찬가지다.

현실세계인 물질계를 투영하는 곳이니 이쪽의 특정 좌표는 섀도우 플레인의 특정 좌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내 이론은 이렇다.

신의 문 바로 앞에서 물질계와 섀도우 플레인을 연결하는 게이트를 열고, 물질계에서 그 게이트 안쪽으로 마나파동포를 쏘는 거다.

원래 보통 힘이라면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섀도우 플레인은 어떤 에너지도 존재하는 않는 공간이니까.

그런데 영혼까지 파괴하는 마나파동포라면 어떨까? 과연 마나파동포의 힘도 허무하게 소멸될까?

아니라고 본다. 엄밀하게 말하면 영혼도 에너지다. 불멸자들이 영혼으로 무기를 만들어 쓰고, 그게 물질계에서도 엄청난 파워를 보이지만 섀도우 플레인에서도 쓸 수 있는 것을 보고 내 머릿속에 핑 하고 떠오른 게 있다.

힘의 등급, 그러니까 물질계에서 작용하는 엘레멘탈이나 보통 마나같은 평범한 등급의 힘이 아닌 영혼이나 영혼을 파괴할 정도의 등급의 힘이라면 섀도우 플레인에서도 통한다고 봐야 한다.

결론은 신의 문 바로 앞쪽에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물질계의 좌표만 찾아내면 신의 문을 향해 마나파동포를 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그 좌표를 찾을 방법이 없다.

신의 문 앞에서 물질계로 통하는 게이트를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이트를 여는 방법은 마법의 의식이기 때문에 물질계에서만 행할 수 있다. 섀도우 플레인에서 이쪽으로 통로를 뚫을 수는 없는 건데, 불멸자들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수법이 있나보다.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서 섀도우 플레인을 통해 물질계까지 올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난 불멸자가 아니잖아? 그냥 평범한 9서클 대마법사의 환생일 뿐이라고.

필멸자는 필멸자답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오러클의 힘으로 정확한 지점을 알기는 어렵겠지?”

나는 일단 미리아를 영주의 관에 불러서 물었다. 당분간은 미리아의 집에 가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용무가 있으면 집무실로 부르는데, 의외로 미리아도 실비아 공주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실비아 공주는 귀족인 내가 애인이 있는 것에 대해서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 같고, 미리아는 애초부터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당분간은 이반 경의 충고대로 가능한 한 미리아의 집에 들락날락 하는 것은 자제할 생각이다.

“우웅, 그건 힘들 거 같아. 대략적인 지점이 아니라 정확하게 신의 문 앞으로 통하는 좌표는…….”

미리아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흐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대정령한테 물어보면 어때? 렌이라면 가능하잖아.”

“이미 물어봤어. 포트라가 정령은 섀도우 플레인에 절대 안 가기 때문에 좌표도 모르고 도와줄 수도 없데.”

“하긴, 정령에게 있어 상극인 세계니까. 그럼 마법으로도 못 찾아?”

“섀도우 플레인은 공간이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어서 계산할 수도 없고 마법도 안 통하니까.”

물질계가 평평한 종이라면 섀도우 플레인은 그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서 뭉친 것과 같다. 현실에서 한 달을 가야 하는 거리도 섀도우 플레인에서는 한 발자국으로 충분할 수도 있고, 반대로 바로 옆도 전혀 동떨어진 곳으로 이어진다.

“게이트를 막 뚫어서 우연히 얻어 걸리기는 힘들겠지?”

“게이트 만드는 비용도 문제고, 그건 확률이 너무 낮아.”

“그럼 어떻게 해?”

내가 묻고 싶은 이야기다.

발상은 좋았는데, 좌표를 알 방법이 없으니 이건 실행이 불가능하다.

“아아, 신에게로 가는 길이 어렵긴 어렵구나. 정말 내가 불멸자라도 되던가 해야지.”

“리치는 되지 마.”

“그건 불멸자라기 보다는 언데드니까 별로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불멸자도 되기 싫다. 불멸자는 그야말로 규칙에 영원히 자신을 묶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어!”

“좋은 생각이 났어?”

“리치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셰이드라면 좌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셰이드는 섀도우 플레인의 주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마법사 출신의 셰이드가 있다.

“좋은 생각인 거 같아. 미스틱 섀도우에 사는 거 셰이든 말이지?”

“응, 그자라면 어쩌면 좌표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무엇보다 셰이든은 마법진이 없이 섀도우 플레인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셰이든을 신의 문 바로 앞에서 물질계로 진입시켜서 좌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와, 난 천잰가 봐. 고민하면 해결책이 다 나와.”

“렌은 천재 맞잖아. 어쨌든 준비할게. 얼른 다녀와.”

미스틱 섀도우로 가는 마법진은 미리아의 집에 있다. 영주관에 따로 설치를 할까 생각해 봤는데, 유체이탈의 의식을 행하는 곳은 안전해야 하고 또 엘프의 숲의 기운이 의식의 안정성을 더해주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당분간 미리아의 집에는 안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나는 미리아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곧 바로 유체이탈 마법진이 새겨진 침대에 누워 미스틱 섀도우에 진입을 했다.

“왔는가?”

셰이든은 내가 나타나자 허공에서 스르륵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이 공간에 대해 상당히 익숙해진 듯 몸이 반쯤은 공간속에 녹아 있는 듯 한 모습이다.

“연구는 잘 돼가나?”

“이 공간은 매우 흥미롭다. 여기 있으니 내 몸까지 이곳에 동화된다, 이대로라면 나는 평범한 셰이드가 아닌 특이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 그것 참 신기하네. 그럴 의도로 만든 게 아닌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곳에서는 섀도우 플레인같은 침식현상은 없을 테니 어쩌면 서서히 네 몸이 정화될 지도 모르겠군.”

“침식 현상? 그게 무엇이냐.”

“거긴 멀쩡한 영혼도 점점 셰이드로 변질시키잖아. 하지만 여긴 그런 게 없으니 셰이드가 멀쩡한 영혼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지.”

“그건 불가능 할 거다. 난 일단 마족과의 계약으로 셰이드가 된 것이고, 아무리 침식현상이 없어도 한번 변한 셰이드가 다시 영혼이 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여기 있으면 의식은 흐려지지 않을 것 같군.”

“맞아. 내 생각이 맞는다면 침식현상은 의식까지 흐리게 만들어서 결국 본능만 남기는 거 같더라고. 그런데 오늘 내가 온 이유를 말해도 될까?”

“말해라.”

“너 섀도우 플레인에 좀 안 갈래?”

“무슨 소리냐?”

나는 셰이든에게 신의 문을 찾았고, 그걸 뚫기 위해 물질계에서 마나파동포라는 10서클 파괴마법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딱 그 앞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고, 물질계에서 마나파동포를 쏘는 거야. 그러면 신의 문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아.”

“10서클 파괴마법이라니, 대단하군. 그거라면 섀도우 플레인에서도 소멸 안 하고 통용될 거라는 소리군.”

“10서클이니까.”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확실히 나라면 그곳에서 물질계로 바로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괜찮은가?”

“뭐가?”

“나를 놔주면 난 돌아오지 않을 거다.”

“괜찮아. 네가 도망가면 또 잡을 거니까.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거는 넌 신의 문이 깨어지는 걸 보기 전에는 도망 안 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마법사니까, 10서클 파괴마법도 보고 신의 문이 깨어지는 것도 볼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도망가겠다고? 아마 영원히 후회할 걸.”

“크크크, 확실히 그걸 안 볼 수는 없지. 알았다. 일단 협조하도록 하지.”

역시 이 자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매드 메이지다. 솔직히 섀도우 플레인에 이자를 풀어놓으면 잡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적어도 마나파동포를 쏴서 신의 문을 열 때까지는 순순히 협조를 해 주고, 도망을 가도 그 이후에나 갈 것이다.

그리고 도망을 간다고 해도 솔직히 신의 문과 통하는 좌표를 찾는 것보다는 도망간 셰이든을 찾는 게 쉽다.

나는 셰이든과 정식으로 계약을 했다.

좌표를 찾아주면 그에게 신의 문이 파괴되는 광경을 보여준 후 자유롭게 풀어 주겠다고, 물론 그에게 허락된 자유는 섀도우 플레인과 미스틱 섀도우라는 공간뿐이다. 물질계로 들어오면 소멸시킬 거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마법사를 다 죽이겠다고 맹세한 몸이기 때문에 마법사가 있는 세계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렇게 우리는 타협을 보고 셰이든은 신의 문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나는 해적왕을 만나러 떠난 이반 경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편지를 보내 그쪽 일은 대충 정리하고 일단 돌아오라고 했다.

이제 이반 경만 오면 신의 문 안쪽을 탐사할 수 있다. 마족들은 둘째 치고 이 세계가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신에게 조금 따져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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