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69화 (169/250)

로엔의 마나뱅크 169화

*

“그러니까 해적왕 갸로프가 데빌 베인에 가입하고 싶다는 건가요?”

갸로프의 사자가 와서 한 말은 조금 의외였다. 단순한 친목이나 의뢰가 목적이 아니라 정식으로 데빌 베인에 가입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선물을 보냈는데, 사자의 눈치를 보니 이게 저주받은 물건이라는 것은 정말로 모르는 듯 했다.

“그렇습니다. 동쪽 바다를 지키시는 갸로프께서는 마족의 힘이 바다에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데빌 베인에 가입하셔서 같이 싸우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냥 마족의 후계자가 있는 곳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면 알아서 처리해 드릴 텐데요. 굳이 같이 싸우시지 않아도 되거든요.”

“해적은, 절대로 자신의 적을 남한테 넘기지 않습니다. 이기든 지든 스스로 해결하는 게 법도죠.”

“그런가요?”

“예, 하지만 마족의 후계자는 강력하니 데빌 베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물론 도와드릴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징조를 발견했는지 알 수 있나요?”

“그건 갸로프님밖에 모릅니다. 데빌 베인에 가입이 되면 직접 오셔서 설명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좋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가입시켜 드리죠.”

동쪽 바다에 해적들은 결코 좋은 집단이 아니다. 그러나 마족의 후계자를 찾는 데 그들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갸로프가 왜 꼭 데빌 베인에 가입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본인이 직접 우리에게 말을 해야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이 돌은 어디서 구하셨나요? 보통 물건이 아니라 일반적인 마도가문에서는 만들 수 없는 물건이던데요.”

나는 살짝 말을 돌려 본론으로 들어갔다. 갸로프의 사자는 그들의 데빌 베인 가입이 본론인 줄 알겠지만 내 본론은 역시 저주받은 아이템이다.

“그건 갸로프님께서 유적을 탐사해서 얻은 고대의 보물이십니다. 오리지널이라 그런지 엄청난 힘이 있음을 알고 렌 경께 보낸 것이지요.”

사자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들의 선물이 가치를 인정받았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치를 인정받아서 이렇게 미리 불러서 바로 조직에 가입까지 시켜준다고 믿는 거겠지.

그나저나 오리지널 유적 발굴품이라, 그럼 누군가의 음모가 아니라 정말 우연의 일치인 걸까?

“그 유적은 이미 발굴이 끝났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금 진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오호, 그렇다면 유적과 마족의 후계자가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군.

엄청난 아이템이 나오는 유적을 발견해서 열심히 발굴을 하다가 갑자기 마족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걸 보면 뻔하지 않겠어?

나는 갸로프의 사자를 돌려보내고 이반 경과 상의를 했다.

“이 정도 저주물품이 나올 정도면 보통 유적은 아닐 거예요.”

“그렇겠지요. 한 번 가서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해적왕이 우리를 순순히 그 유적으로 안내해 줄지 모르겠지만, 조사는 해 봐야죠.”

저주받은 물건이 이것뿐이라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이게 저주를 받아도 전혀 모르고 오히려 좋게만 생각하는 물건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나만 해도 이걸 분석 안 하고 썼다면 저주에 걸렸을 거다. 물론 저주의 힘이 몸 안에 스며드는 순간 눈치 채고 차단을 했겠지만 고위의 마도사 이외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이반 경이 말했다.

“렌 경, 지금은 우선 결혼식에 전념하시죠. 해적왕의 일도 일단은 제가 먼저 가서 조사를 하겠습니다. 식을 올리자마자 영지를 나선다면 실비아 공주가 섭섭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맞다. 난 3일 뒤가 결혼식이고, 그 뒤에는 신혼인 거다.

신혼인 남편이 바로 마족의 후계자와 싸우러 떠난다면 아무리 실비아 공주라도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지.

일이 생기면 그쪽에 전념하게 되는 내 성격은 확실히 여자의 환심을 사는 데에는 좋지 못하다.

나는 이반 경의 충고를 받아들여 해적왕의 일을 이반 경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럼 전 섀도우 플레인 쪽을 계속 조사할게요.”

“그것도 당분간은 중지하는 게 좋을 겁니다.”

“왜요? 물론 섀도우 플레인이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라면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잖아요.”

“그게 아니라 섀도우 플레인에 진입을 하려면 미리아의 집에 가야 하지 않습니까? 실비아 공주를 비롯해서 영지 사람들은 미리아가 렌 경의 애인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신혼부터 매일 그곳에 가면 좋지 못한 소문이 돌 수도 있습니다.”

“윽, 그렇군요.”

이것도 이반 경의 말이 맞다. 그리고 이건 오해라 할 수도 없는 게 미리아는 언젠가 내 애인이 될 거다. 지금도 누가 미리아에게 나와의 관계를 물으면 애인이라고 답할 거다.

“알았어요. 그럼 당분간 그쪽에도 안 가도록 하죠.”

신과 만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냐고?

난 당장 내 부인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마족을 정리하는 것도 다 내가 잘 먹고 잘 살자는 이유에서 시작한 거 아니냐는 거지.

“어차피 조사는 대충 끝났으니 이제는 이론적으로 정립을 해서 정식으로 통로를 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네요.”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십니까?”

“있기는 있는데 그게 정말 되려면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게 있어요.”

“무슨 방법인지 설명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별 건 아니에요. 영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서 영혼이 무기로 쓰이는 것을 확인했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면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라면 섀도우 플레인에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영혼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이라면 혹시 마나파동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그걸 섀도우 플레인 안에서 쓸 수 있는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로 통로를 열 수 있겠군요.”

“연다기 보다는 부수고 들어가는 거지요.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마나 뱅크의 게이트를 열어야 되는데, 그게 섀도우 플레인에서는 불가능 하거든요.”

“마나 파동포의 힘은 통로를 부술 수 있는데, 그걸 쏠 수가 없다는 거군요.”

“예, 그래서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가능한 방법이 요즘 생각나서 이번에 그 부분을 연구해 보려고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해적왕의 일은 제가 잘 처리하도록 하지요.”

이것으로 역할 분담은 끝났다.

이반 경이 크리드 경과 함께 해적왕의 본거지로 가서 사정을 듣고 가능하면 유적탐사도 하는 것으로 했고, 나는 실비아 공주와 신혼 생활을 즐기면서 섀도우 플레인에서 마나파동포를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는 거다.

동시에 그동안 밀린 영지 내의 대소사도 처리하면 꽤 바쁜 생활이 될 것이다.

*

드디어 결혼식 날이다.

전생에 못 해봤던, 나의 꿈 중 하나가 이루어지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는 미모의 실비아 공주, 조금 무뚝뚝한 면이 있지만 나름 나한테 애교도 떨려고 노력을 한다. 요즘에는 크리드 경에게 검술을 배워서 실력이 장난 아니게 되었기에 가끔 나와도 대련을 하는데, 솔직히 순수하게 무투술만으로 싸우면 내가 조금 밀린다.

하지만 오늘은 화려한 순백의 신부복을 입고 나온 모습이 여리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식은 정말 정신이 없이 끝났다.

신랑에게 있어 결혼식이라는 것은 카오스의 덩어리 같은 것인가 보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정신이 없었던 적은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실비아 공주도 마찬가지인지, 식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우리 둘 만 남았을 때에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실비아 공주는 나한테 살짝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겨우 끝났네요.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어요.”

“난 아까부터 내 몸에 마법을 걸어서 버티고 있거든요. 정말 두 번 다시 하기 힘든 행사네요. 결혼식이라는 게.”

“동감이에요. 호호호.”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리고 잠시 멍 하니 있다가 서로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래도 조금 쉬니까 또 새로운 힘이 솟아오른다.

그래, 당분간은 마족이고 마법이고 다 때려치우고 이 여자에게 집중하자.

어차피 내가 그놈들을 찾지 않아도 알아서 나와 엮이게 될 것이니 이쪽에서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나는 조용히 실비아 공주의 어깨와 몸을 쓰다듬다가 어느 순간 그녀와 키스를 했다.

피로 따위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광폭화 마법을 걸지 않아도 난 이미 흥분을 해 버렸다.

힘이 끊임없이 솟아난다. 좋다. 이게 바로 젊음이구나.

환생을 해서 정말 좋았다.

난 내 인생 목표의 절반을 이루었다. 대마법사는 역시 젊어서 되어야 의미가 있는 거다. 다 늙어서 대마법사가 되든 황제가 되던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날 밤은 정말 좋았고, 실비아 공주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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