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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68화 (168/250)

로엔의 마나뱅크 168화

*

“렉스야!”

신의 문, 우리는 그곳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앞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렉스의 영혼을 보고 나는 반가움에 크게 외쳤다. 렉스 역시 내가 나타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꼬리를 흔들었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너는 진짜 렌인가? 또 테타스가 변신한 거는 아니지?”

“와, 테타스가 그런 짓까지 했단 말이야? 나 진짜 맞아. 내가 그리로 갈게.”

테타스가 신의 문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은 렉스의 옆에 가서 목을 쓰다듬은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때서야 렉스도 경계를 풀고 내 머리를 핥았다.

“테타스는 어떻게 되었지?”

“소멸시켜 버렸다. 마나파동포 한 방에 보내버렸지.”

“잘 되었다. 그놈이 숨어 있다가 가끔씩 나타나서 수작을 부리는데 렌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에는 정말 화가 나더군.”

“목소리는 무게도 있고 전사 같이 우직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의 성질을 가진 마족이었나 보네. 아무튼 일단 돌아가자. 넌 너무 오랫동안 육체에서 떨어져 있었어.”

“크르르, 알았다. 가자.”

나와 렉스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래도 몇 번 왔던 길이고 렉스를 타고 이동하니 몇 분 걸리지 않고 시작점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사이에도 렉스는 궁금한 점이 많은 듯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현실로 돌아가면 말을 하지 못하니 지금이라도 할 말을 다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렌이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내가 키워주겠다.”

“저기, 네가 안 키워도 유모가 알아서 키워주거든. 그리고 넌 수컷이라 애한테 먹일 밀크도 안 나와.”

“크르르, 그럼 나도 암컷을 하나들이겠다.”

“헛, 잠깐만. 지금 너한테 맞는 짝을 어떻게 찾지?”

“그건 나도 모른다. 찾다보면 찾아지겠지.”

“으, 그건 미리아한테 한 번 물어보자. 그러면 어느 순간 미리아가 오러클 능력으로 찾아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급한 건 아니니까.”

“그래, 애는 유모가 알아서 키울 테니까 조금 크면 같이 놀아주던가 해.”

“알았다.”

이제 실비아 공주와의 결혼식이 3일 남았다. 다행히도 계획했던 대로 식전에 렉스를 구출해 낼 수 있었으니 마음이 편하다.

우리는 무사히 물질계로 돌아왔고, 렉스는 영혼이 너무 오랫동안 육체를 벗어나 있어서 역시 몸을 뒹굴며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꾸앙, 꽝, 꾸우우웅.

훗, 내가 아파할 때 한심한 눈으로 보더니 너도 결국 고통을 느끼긴 느끼는구나.

저 큰 몸으로 뒹구니까 미리아가 얼른 나무뿌리를 움직여 주변을 막았다. 집이 무너질까봐 경계하는 것이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렉스가 몸부림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끄으으응

겨우 진정한 렉스는 기운이 없는 듯 웅크리고 앉아서 자신의 앞발로 목 뒤를 꾹꾹 눌렀다.

“고생했다. 당분간은 섀도우 플레인에 가지 말고 쉬어.”

꾸웅, 꿍

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갈 거라는 의미다.

“그래, 이번에는 그렇게 오래 머물 일이 없겠지. 결혼식이 끝나면 다시 같이 들어가 보자고.”

나는 렉스를 다시 다독거려주고 같이 미리아의 집을 나섰다.

*

영주의 관에 오니 결혼식에 참가하려고 온 사람들의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수준이다.

역시 사람이 유명해지면 선물이 산을 쌓게 되어 있구나.

전생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는데, 로엔의 나이 100살 때가 진짜 압권이었다.

선물 리스트만 해도 두꺼운 책으로 세 권이 나왔는데, 그 중 한 페이지만 찢어서 누굴 주면 그 사람은 평생 부자로 살 만큼의 재물을 얻는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대마법사의 생일, 그것도 100살 기념일이라는 타이틀이 걸리니 정말 대륙의 보물 중 10% 정도는 그날 모이는 게 아닌가 했다.

오늘 오는 선물들은 그때보다는 질도 조금 떨어지지만 역시 하나같이 귀중한 것들이다.

나는 집사가 작성한 선물 목록을 일일이 검토했다.

단순한 금은보화뿐 아니라 상당수가 마법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지도 정해야 했다.

난 현실주의자라 선물이 당장 쓸 데가 없으면 깔끔하게 해체해서 파워만 뽑아 버린다. 그걸 이용해 나한테 유용한 또 다른 마법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다.

“응, 이건?”

선물 리스트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사후하긴의 돌.

작은 자갈인데 입안에 물고 있으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고, 수압에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이다.

그렇게까지 귀중한 물건은 아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열 개는 만들어 낼 수 있는 건데, 이번에 선물로 들어온 것은 조금 다르다.

말하자면 상위 버전이라고나 할까?

“물의 정령의 축복을 받아 몸 주변의 물의 흐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또한 물의 온도도 자신의 체온과 거의 비슷하게 조절된다.”

이건 뭐지? 물의 흐름과 온도까지 바꿀 수 있다면 아티팩트 급인데, 평범한 사후하긴의 돌에 물의 정령이 어떤 축복을 걸었기에 이렇게 바뀌었다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가능하려면 물의 대정령 정도는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후하긴은 물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돌을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의 호흡기관과 체내 밀도를 바꾸는 것인데, 지금 이 돌은 물의 움직임과 온도까지 바꾼다고 쓰여 있느니 사실 상 전혀 다른 물건인 셈이다.

나는 일단 선물을 한 사람을 보았다.

무장상선단 갸로프.

“동부의 해적두목이잖아! 캬, 이 사람은 어째서 내 결혼식 축하선물을 보낸 거지?”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그냥 소문으로만 들은 바 있다.

대륙 동부 해안을 주름잡는 해적들 중 가장 유명한 자라고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해적들의 두목이 나한테 선물을 보낸 것이다.

나는 즉시 집사를 불러 사후하긴의 돌을 가져오라고 했다.

커다란 조개껍데기 속에 담긴 자갈돌은 분명히 사후하긴의 돌이 맞았는데, 자세히 보면 표면에 사람 눈으로는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글자가 빽빽이 새겨져 있다.

“정령어네. 진짜 정령의 힘을 이용해 아이템을 강화한 건가?”

기본적으로 완성된 마법 아이템에 새로운 힘을 넣는 것은 고급 기술에 속한다. 그것도 기존에 만들어진 것보다 더 큰 힘을 넣으면 아이템의 내구성에 문제가 생겨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사후하긴의 돌을 들고 연구실로 갔다.

“마리야, 이반 경 좀 부를래? 우리 이거 분석 좀 하자.”

“궁극 분석으로 하시려고요?”

“응, 단순한 분석 마법으로는 안 될 거 같아.”

궁극 분석은 9서클 마법이라 8서클 마법사인 이반 경이 마법진을 사용해서 써야 한다. 이때 들어가는 마법진 비용만 해도 상당한 고액이라 어쩌면 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풀어야 하는 법.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곧 이반 경이 와서 나의 설명을 듣고 그 역시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사후하긴의 돌을 살폈다.

“일반적인 물의 정령의 축복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제가 이미 비슷한 것을 만들었을 테니까요.”

이반 경은 물의 정령과 계약을 한 상태다. 물론 주로 쓰는 것은 대지의 정령이고, 물의 정령은 크리드 경에게 공동계약으로 넘긴 상태지만 그래도 알 건 다 안다.

“그렇죠? 이건 뭔가 사연이 있는 거니까 제대로 한 번 분석을 해보자고요.”

“예,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생각처럼 대박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기대하는 심정으로 이반 경이 마법진 안에 들어가 서자 그를 대신해서 궁극분석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그러자 곧 대상 아이템에 담긴 힘의 크기와 전체 성능이 모두 밝혀졌는데, 이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물건이다.

“저주 받은 물건이네요. 하하하.”

무식한 해적 같으니, 뭐가 물의 정령의 축복이야?

이건 물의 마수인 사이렌의 저주를 받은 돌이다.

이걸 입에 머금고 물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 안쪽이 점점 사이렌으로 변해간다.

사이렌은 물의 흐름도 제어하고 수온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몸이 바뀌게 되면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괜히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고, 몸에 물이 닿지 않은 상태라면 근력도 점점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저주인 것이다.

알고 보면 간단한 트릭이고, 결혼식 선물로 가져올 만한 물품은 아니다.

으, 이런 거 분석하기 위해서 궁극분석 마법까지 썼다니.

슬프다. 대박에의 꿈이 일장춘몽처럼 사라졌구나.

“고의일까요?”

이반 경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아닌 거 같아요. 상대는 해적두목이잖아요. 그냥 나한테 뭔가 부탁하거나 친밀하게 진할 일이 있어서 자기 보물 중 마법사가 좋아할 만한 것을 보낸 거 같아요.”

저주를 하려면 더 효율 좋은 게 많은데 굳이 이런 걸 보낼 이유가 없다. 모르고 보낸 거다.

역시 해적은 무식한 걸까?

“그럼 일단 선물을 가져온 사람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봅시다.”

나는 이반 경과 함께 응접실로 나가 해적두목의 사자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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