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67화 (167/250)

로엔의 마나뱅크 167화

7장 통로를 여는 힘

“아무리 이세계에서라지만 너희 같은 필멸자들에게 내가 당할 줄 아느냐!”

“훗, 드디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군. 테타스, 지금 네가 한 말은 전형적인 악당의 마지막 발악성 대사다.”

그리고 저런 말을 하면 대부분 최후의 필살기를 쓰지.

내가 조롱을 하든 말든 테타스는 여섯 개의 손 중 네 개를 머리위로 치켜 올렸다. 그러자 손바닥으로부터 묘한 문양이 생겨나며 엄청난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좋지 않다. 저놈이 뭔 짓을 하는 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모이는 힘의 크기로 보아 9서클 이상의 파괴력을 발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정말 무리를 하면서까지 끝장을 낼 생각이군.

원래 이세계의 존재는 궁극에 해당하는 힘을 발휘하기 힘든 법이다. 그게 가능한 존재는 정식으로 물질계의 엘레멘탈 관리를 하는 대정령 정도?

자신들의 세계에서는 불멸자로써 10서클의 힘을 펑펑 쓸 수 있겠지만 이세계에서는 세계의 규칙 자체를 흔들 수 있는 힘을 사용할 수 없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이자들과 싸울 때 내가 유리한 면이 조금 있는 건데, 아무래도 테타스는 위험을 각오하고 허용된 힘 이상을 쓸 모양이다.

완전한 궁극 10서클은 아니고, 9서클을 살짝 넘어선 정도? 그것만 해도 자칫 잘못하면 본인이 소멸될 수도 있다.

물론 본체가 아닌 이곳에 넘어온 힘과 자아의 일부분만 손상이 가는 거지만 불멸자는 그것조차 끔찍하게 싫어해서 절대 무리를 안 하는 게 보통이다.

의외로 성격이 화끈하군.

“크리드 경, 피해요!”

나는 크게 외치며 동시에 두 개의 마법을 사용했다.

“리콜! 메이즈!”

리콜은 우리가 미리 준비해 놓은 안전장소로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마법이다. 그 안전장소라는 게 어디냐 하면 바로 땅속인데, 이반 경이 대지 정령을 부려서 만들어 놓은 거다.

메이즈는 그 안전장소 주변에 공간결계로 된 미로를 만드는 마법인데, 이걸 쓰면 외부에서는 이 장소를 찾을 수가 없다.

원래 메이즈는 남을 가두거나 침입자가 들어오다가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드는 마법이지만 지금은 테타스가 우리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이런 존재와 싸우다보면 회피가 불가능한 힘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긴급 회피용으로 이렇게 안전지대를 만들고, 순간적으로 몸을 피해서 숨을 수 있게 준비를 하는 게 만수무강에 도움이 된다.

우리들은 즉시 땅속 200미터 아래로 순간이동 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뿌우뿐인데 그는 내가 주문을 시전 할 때부터 전속력으로 하늘로 도망을 갔다.

쿠쿠쿠쿠쿠

상당한 진동이 느껴진다. 땅속 200미터에 주변에 메이즈까지 쳐져 있는데 진동이 느껴지다니. 도대체 어떤 힘을 쓴 거야?

[뿌우야, 상황이 어때?]

뿌우가 바깥에 남은 이유는 이곳이 밀폐된 공간이라 대기의 정령한테 별로 좋은 환경인 이유도 있지만 누군가는 남아서 테타스가 뭔 짓을 했는지 보고, 우리가 다시 나갈 타이밍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장난 아니당. 주변이 완전 쓸렸당. 미리아가 있던 산도 반쯤 날아가공.]

으, 거기가 반이나 날아갔다면 반경 1 킬로미터가 넘은 다는 거네. 뭐 저런 환경파괴범 같은 놈이 다 있지?

저 정도면 거의 궁극마법의 효과다.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범위 마법으로는 최고 등급이라 보면 된다. 사실 난 9서클 두세 배 정도로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테타스의 각오가 컸던 모양이다.

[그럼 테타스는 어떤 상황이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당. 아마 우리가 다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당. 앗, 나를 발견했당. 눈도 좋당.]

[그놈이 집중해서 탐색을 하면 바로 알려줘. 그리고 네가 위치를 잡아.]

[지금 집중하고 있당. 너를 찾으려는 것 같당.]

[좋아. 위치 잡아!]

[알았당. 근데 정말 이거 내가 위치 잡아야 하냥?]

[위치만 잡고 내가 쓰면 피해.]

[알았당.]

뿌우는 내키지 않는 목소리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작전은 바로 테타스가 절대적인 힘을 쓸 때 이곳으로 피신해 온 후, 테타스가 우리를 찾기 위해 집중을 할 때 땅속에서 마나파동포를 쓰는 거다.

그것을 위해 뿌우가 남아서 나와 테타스의 건너편에서 위치를 잡아주기로 했다.

그러면 난 내가 계약한 뿌우의 위치를 감지하고 그곳을 향해 마나파동포를 쏜다. 뿌우는 그 전에 피하고, 중간에 있는 테타스만 마나파동포에 맞게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뿌우에게 위험이 없다. 발사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마나파동포이기에 조준이 끝난 시점에서 뿌우는 피하면 된다.

그러나 뿌우는 잠시라도 마나파동포가 자신을 표적으로 조준된다는 게 싫은 모양이다. 그야말로 날카로운 칼을 목 아래에 대는 것과 같은 느낌이리라.

어쨌든 작전대로 테타스는 우리를 찾기 위해 멈춰 서서 집중을 했고, 나는 미스릴 우산을 펴고 뿌우를 향해 마나파동포를 가동시켰다.

[마나파동포 조준 완료. 뿌우야. 이제 피해.]

[알았당.]

뿌우의 기척이 옆으로 이동하는 게 느껴진다. 소환자와 정령과의 감각공유와 인식능력을 이용해 지하에서 표적을 정하는 수법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방법이다.

테타스가 이걸 눈치 채기 전에 마나파동포가 발사될 것이다.

드드드드

땅속이라 그런지 진동이 더 심하다.

이반 경을 비롯해 일행들은 모두 한군데 모여 미스릴 우산으로 최대한 사방을 촘촘하게 막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충격파가 퍼지는 것이니만큼 반사되는 힘도 무시 못 할 것이고, 어쩌면 이 공간이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반 경은 대지의 정령을 소환해 자신들을 보호하도록 했다. 땅에 파묻혀도 구해줄 정령이 있기에 쓸 수 있는 작전이다.

천정에 큰 구멍이 뚫렸다. 엄청난 힘이 지표면을 뚫고 하늘로 날아갔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면 우려했던 대로 공간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지의 정령이 바위벽을 쳐서 붕괴를 막고, 구멍 뚫린 천정 역시 막아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아와 이반 경, 그리고 크리드 경은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는데도 충격이 너무 세서 고막이 상한 모양이다.

미리아가 끙끙 대며 치유의 능력을 쓴다.

나 역시 미스릴 우산과 결계로브의 힘으로 몸을 보호했지만 약간의 충격은 받았다. 마나파동포가 발사되면서 주변의 마나가 요동을 치니 결계로브의 힘이 약화된 모양이다.

그래도 난 코피도 안 흘리고 귀도 멀쩡하다. 그냥 가슴이 좀 아플 뿐이다.

[뿌우야. 어떻게 됐어?]

나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물었다. 조준이 정확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빗나갔다고 해도 테타스가 마나파동포를 발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만 눈치 못 채면 된다.

이게 빗나가도 테타스는 우리가 그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그때는 타협과 거래를 조금 해도 괜찮을 수 있다.

[후히히히힝,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고위마족 하나쯤은 골로 보낼 수 있당.]

[오, 명중이야?]

[제대로 맞았당. 팔다리 조각 몇 개 남았는데, 내가 돌풍으로 끌어올려 허공에 띄워놓고 있으니 빨리 와서 잔재까지 다 제거 해랑.]

[오케이, 바로 갈게.]

역시 뿌우는 일을 할 줄 안단 말이야. 고위 마족의 육체는 핏방울 하나도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걸 알고 싹 긁어서 모아 두었군.

생각할 줄 아는 정령 뿌우답다.

우리는 서둘러 땅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미리아는 반이나 희생된 숲을 보고 살짝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곧 남은 숲 절반에 신성력을 주입했다.

숲쪽으로부터 씨앗이 날아와 깊게 패인 크레바스에 떨어지고, 즉시 싹이 터서 잔디처럼 변했다. 그리고 잔디는 얼마 안 가 무성한 수풀이 되어 신성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됐어. 테타스의 잔해를 땅에 내려놓으면 이 아이들이 알아서 정화할거야.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수풀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될 때쯤이면 테타스의 육체의 잔해는 완전히 정화될 거라고 한다.

불쌍한 테타스, 엄하게 자신의 영혼 일부를 이세계에서 소멸시켜 버렸구나. 자존심도 상하고 실제로 힘의 하락도 일어날 거다.

염려 마라. 너 말고 다른 고위 마족들도 다 너처럼 만들어 줄 테니.

이제 둘, 파즈스에 이어 테타스도 처리했다.

계약자를 죽인 고위마족들도 나중에 모두 소환해서 처리할 계획이다. 그래야 두 번 다시 이쪽으로 넘어올 생각을 못할 테니까.

신이 떠났다고? 너희들에게 신이 아닌 필멸자에게 소멸당하는 굴욕을 맛보여주마.

나는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고는 미스틱 게이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어서 가서 섀도우 플레인에 있는 렉스를 데려오고 싶다.

그리고 나와 실비아 공주의 결혼식 때 렉스도 참가시킬 거다. 그 녀석은 내 첫 친구이자 동료인 셈이니까.

영지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마나파동포를 이용한 기본 전략을 정리했다.

결국 저격을 하는 게 최고다. 그리고 저격을 위해서 뿌우가 조준점을 잡아주고, 우리는 적의 탐지 능력이 잘 미치지 않는 안전한 공간, 그러니까 땅속 깊은 곳으로 피신해서 일을 벌여야 한다.

마나파동포를 제어하는 민민포즈와 마리포즈, 리콜을 쓸 수 있는 이반 경, 충격파의 피해로부터 우리를 치료해주고 적의 잔재를 정화할 미리아, 적을 궁지까지 몰아붙일 크리드 경과 렉스, 서피, 그리고 조준장치인 뿌우.

정말 우리 팀 전원이 힘을 합쳐야 겨우 성립되는 연합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조준을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적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기본 전술은 수립된 셈이다.

고위마족들이여. 이제 너희들은 거대한 똥침을 맞게 될 것이다.

바로 마나파동포라는 똥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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