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64화
5장 테타스
파암의 말대로 도암은 어둠의 상인을 하면서 모은 재물로 온갖 기괴한 골렘들을 만들어 놓았다. 하나하나 굉장히 비싼 것들인데, 도암은 이걸 가동시키지 않고 본인의 힘만으로 우리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것들이 다 움직였다면 꽤 힘들었겠군요.”
이반 경도 말했다.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크리드 경은 이게 정말 그렇게 강하냐는 표정으로 이반 경을 보았다.
“저 블레이드 골렘만 해도 전신이 회전하는 칼날이고 몸 곳곳에서 화살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무척 상대하기가 어려운 놈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전장에 저놈이 나타나면 주변이 초토화 된다고 봐야겠지요.”
“그 정도인가요?”
“무엇보다 저놈들은 마법에 강합니다. 표면에 항마법진처리가 되어 있어서 마법으로 부수기는 쉽지 않지요.”
“음, 그럼 이 열대쯤 되는 놈들을 나 혼자 상대해야 되는 거였군.”
크리드 경은 그때서야 상황이 매우 안 좋게 흐를 수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 보니 도암의 능력은 본인의 힘에 있는 게 아니라 골렘 제작자로써 발현된 모양이다. 안 그러면 이정도 골렘들을 제작할 수 없다. 거의 내 수준으로 골렘을 제작할 수 있다는 건데, 아무래도 테타스 자체가 그의 세계에서는 제작의 신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들은 이반 경이 말했다.
“그렇다면 테타스라는 마족도 본체의 힘은 별로 강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그건 아닐 거예요. 오히려 테타스는 자신의 골렘들을 소환할 수 있을 가능성이 커요.”
“헛, 물질계에 자신의 골렘들을 소환한다고요?”
“급하면요. 급하지 않으면 그냥 네 개의 팔로 다 때려 부수겠지요.”
“네 개의 팔이라, 도암과 비슷한 효과일까요?”
“테타스는 무기를 들고 있었어요. 조금 다를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할 겁니까?”
“대응할 작전은 있는데, 하루 정도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네요. 일단 이 골렘들을 옮기죠.”
골렘을 옮기는 것은 쉽다. 나는 멈춰 있는 골렘들의 가동부를 찾아 그 안에 그려진 마법진을 살짝 바꿨다. 이게 바꾼다고 쉽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내가 분석해 내지 못하는 마법진은 없기에 몇 시간 만에 작업이 끝났다.
그 뒤로는 골렘을 가동시켜 새로운 주인인 내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되었다.
“나를 따라와.”
쿠잉, 쿵, 츠츠츠츠츠츠
가장 선두에 거미를 닮은 골렘이 따라오고 그 뒤로는 인간형 골렘들이 일렬로 서서 걸어왔다.
파암은 그것들이 실제로 움직이자 겁을 먹은 듯 했지만 조직의 본거지 밖으로 나가자 안도의 표정이 되었다.
파암은 우리가 밖으로 나서자 더 따라오지 않고 바로 문을 닫아 버렸는데, 한 마디 해주려다가 그냥 잘 먹고 잘 살라는 뜻으로 아무런 인사 없이 나왔다.
밖으로 나가는 입구에서 나는 골렘들에게 일일이 카멜레온 마법을 걸었다. 덩치가 커서 투명 마법을 걸면 금방 꺼져 버릴 것 같았다.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 마법은 오래 가고 멀리서 보면 잘 구분이 안 가기 때문에 이럴 때 좋다.
보호색으로 주변과 동화된 골렘들을 이끌고 도시의 할렘가를 지나서 밖으로 나온 우리는 마법으로 결계의 저택을 만들고 다시 회의를 열었다.
“테타스를 소환해서 싸우려면 그 일대가 쓸려버릴 가능성이 크니 시가지는 피해야 할 겁니다.”
“맞아요. 도암만 해도 주변에 민폐가 컸죠.”
사방에 충격파를 뿌려대면 산도 계곡으로 바뀌어 버릴 수 있다. 거기에 정말 골렘까지 동원해서 싸운다면 그곳은 바로 전장이나 다름없다.
나는 지도를 펴고 주변 지리를 살펴보며 말했다.
“어디 봐요. 여기는 어떨까요?”
“나쁘진 않군요. 왼쪽은 산이고 오른쪽은 강이니 물의 정령력과 땅의 정령력이 모두 강할 겁니다.”
“확실히 이곳에서 싸우면 도시까지는 피해가 미치지 않겠군요.”
“문제는 여기에서 테타스를 소환하면 그가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만.”
마족을 소환하려면 기본적으로 그가 선호하는 환경에 소환진을 만들어야 한다. 확실히 산과 강을 낀 평지는 테타스가 좋아하는 곳은 아니다. 그가 원하는 곳은 바로 음습한 도시의 음지인 것이다.
“강제 소환진이라고 해도 기본 환경을 갖춰야 해요. 일단 소환은 도시 구석에서 하고, 싸우기 전에 테타스를 이곳까지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나는 설명을 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하나하나 문제점을 집어가면서 해결책을 말하고, 당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냥 생각해 본다고 하고 넘기니 금세 기본적인 작전이 정립되었다.
“마법으로 터널을 뚫어요. 지하에서 테타스를 소환한 후 결전장으로 이동해서 싸우는 걸로 해요.”
“그럼 터널은 제가 뚫겠습니다. 대지의 정령을 소환하면 하루 만에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전 결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할게요. 미리아야. 이쪽 산에는 나무가 많으니까 넌 여기서 대기해.”
“응, 그럼 난 그쪽 나무들이랑 친해질게.”
도암과의 싸움에 이은 더 격렬한 싸움이다. 그래도 도암이 남긴 골렘들을 우리가 이용하기로 해서 조금은 싸움이 쉬워질 수도 있겠다.
나는 우선 도시로 돌아가 소환마법진을 설치한 후 바로 결전장소로 가서 사방에 공간왜곡 마법진을 설치했다.
테타스가 강력한 충격파를 발산해도 우리가 피할 공간이 필요한데, 공간 왜곡 마법진을 설치하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기둥처럼 충격파의 흐름을 비틀어서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도암이 마지막에 쓴 검은 번개도 마찬가지, 공간 왜곡 마법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꼬여서 원하는 대로 조종이 안 되니 뒤에 숨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다.
그 사이 미리아는 산 쪽의 나무들에게 신성력을 주입해서 일대를 신성화 시켰다. 이번에는 매복을 하지 않고 처음부터 전력으로 부딪칠 계획이기 때문에 미리아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테타스를 소멸시킬 마지막 수단이다.
나에게는 그게 가능한 삭풍의 창과 마나 파동포가 있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삭풍의 창은 육박전으로 붙어야 하는 거고, 마나 파동포는 쏘는 데 시간이 몇 초 걸린다. 그 사이 테타스가 피해 버리면 답이 없는 것이다.
“마나 파동포를 쓰려면 적이 움직이지 못하거나 최소한 내가 이걸 쏘는 걸 몰라야 해.”
숨어서 저격하는 거라면 가능할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이게 조준성도 상당히 좋지 못하다. 원거리에서 노리고 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가지는 않는 것이다.
결국 근거리에서 쏴야 하는데, 등 뒤에서 쏘면 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밤이 되었다.
나는 일단 숙소로 돌아와 일행과 다시 상의를 했다.
“테타스에게 마나 파동포를 쓸 방법을 생각해 봤어요. 만약 이 순간이 오면 모두들 협조해 줘요.”
“오, 마나파동포를 먹일 수 있다면 확실히 좋지.”
크리드 경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는 고위 마족과 검으로 싸운다는 말에 투지를 불태우는 한 편 상당한 부담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의 싸움으로 볼 때 크리드 경 자신이 상당히 시간을 끌어주고, 결정적인 공격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래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나 크리드 경의 능력으로 고위 마족을 끝장 낼 수는 없다.
역시 마나파동포가 가장 믿을만하다.
그래서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나파동포를 쓰기 위한 것으로 짰다.
*
다음 날, 우리는 결전장소로 와서 골렘 하나를 가동시켜 놓고 모의 전투를 해 보았다. 덩치가 테타스보다 작았지만 위협적인 블레이드 골렘이기에 대충 견적은 나왔다.
크리드 경과 이반 경은 공간 왜곡 마법진 뒤로 숨는 연습을 했고, 나는 처음에는 몇 번 숨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안 피하고 받아치는 식으로 반격을 가하기로 했다.
역시 7서클이 되니까 쓸 수 있는 마법이 꽤 많아져서 주공격은 힘들어도 보조공격은 충분하다.
그리고 테타스가 날 큰 위협이 안 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 틈을 만들어 마나파동포를 쓸 것이다.
물론 먹히지 않을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거다. 하지만 한 방에 끝내고 싶다. 진짜로.
“자,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이반 경과 저는 테타스를 소환하러 갈게요.”
나는 미리아와 크리드 경을 남기고 마족 소환진이 있는 지하실로 돌아왔다. 옆에 커다란 구멍이 길게 뚫려있는데, 이걸 하루 만에 뚫을 수 있는 건 이반 경이 대지의 정령과 계약한 8서클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우선 마리포즈가 마법진의 상태를 조율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서고, 이반 경이 메인 소환자가 되었다. 나는 서브 소환자로 마력을 보태는 수준이지만 유사시에는 나 혼자서도 마족소환진을 유지할 수 있다.
마족소환진은 사실 소환능력보다 마족이 나타났을 때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게 만드는 결계라고 해야 할까? 소환 당시 마족이 우리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자동적으로 하게 만드는 장치가 중요하다.
내가 만든 마족소환진은 그쪽 부분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강화한 것이니 정식으로 도전을 하기 전에 기습을 당하지는 않으리라.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반 경이 집중을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묘한 주문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테타스를 강제소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