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161화
우우우우우웅
의식이 절정에 달했다. 멈출 수 없는 힘의 소용돌이가 마법진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처럼 일어났고, 이반 경은 거의 몰아지경에 빠져 힘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 했다.
어느 순간 휘몰아치는 힘이 모두 이반 경에게 빨려 들어갔다. 의식의 완성이다.
“크윽.”
이반 경은 몸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코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 거렸지만 힘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눈동자가 커지며 허공을 보았다.
“저곳이군요. 할렘가. 도시에서 가장 어둡고 음습한 곳이 그자가 있습니다.”
“상인 길드가 아니라 할렘가였네. 설마 조직 같은 것을 운영하고 있는 건가?”
“그자가 저를 봅니다. 제가 그를 느끼듯이 그도 저를 느끼는 듯 하군요.”
힘의 소스가 같으니 의식의 효과가 저쪽에도 갔나보군. 그렇다면 정말 지금 그자와 우리와의 거리는 상당히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반 경이 갑자기 목소리를 바꾸어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어째서 나를 보는 거지?”
적인지 동료인지 구분이 안 가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대답해 줘야지.
“세상에서 테타스의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혼자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를 제거하고 테타스의 힘을 독점하겠다.”
“크크크, 역시 마족답게 신용이 없군. 설마 이중 계약을 하다니.”
아싸, 넘어간다. 그래, 그렇게 계약자를 의심하는 게 좋아. 그러면 그럴수록 네 힘이 약해지거든.
이번 상대는 대충 견적이 나온다.
상당히 똑똑해서 오히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대충 단서만 던져주면 알아서 분석하고 판단하는데, 그 단서의 진위성을 먼저 파악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철저히 이용하는 게 좋겠다.
“거기서 기다려라. 우리가 지금 가서 너와 네 동료들을 모두 제거해 주겠다.”
“크크크, 내가 앉아서 당하리라 믿는 건가? 오히려 내가 너희들을 찾아 죽여주지.”
그래, 오라고. 찾아가기 귀찮으니 네가 와. 우리는 준비하고 기다릴 테니.
내가 오라고 했으면 절대 안 오고 숨었을 거 같은데. 간다고 하니 온단다. 이게 바로 사람의 심리지.
“후훗, 누가 먼저 찾아내나 보자. 우리는 이미 너의 바로 근처까지 왔으니 이제 네 목에 칼을 꽂기만 하면 된다.”
“글쎄, 누가 누구 목에 칼을 꽂는지는 두고 봐야겠지.”
파앗
의식의 효력이 다했는지 순식간에 힘이 사라지며 이반 경이 숨을 거세게 몰아쉬었다.
“찾았습니다. 할렘가에 있는 낡은 저택에 있군요. 이름은 도암 캘린더. 어둠의 상인입니다.”
“어둠의 상인이라면 밀수업을 하는 건가요?”
“뭐든지 다 거래하는 듯합니다. 할렘가의 주민들은 그의 손님이자 상품인 셈이지요.”
이반 경은 도암 캘린더의 머릿속까지 침투했다고 한다. 그래서 반대로 도암도 이반 경의 머릿속에 침투를 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반 경은 의식이 성공하자마자 바로 마인드 블록이라는 정신보호마법을 써서 두뇌속 기억까지 읽히지는 않고 대신 나와 대화만 한 것이다.
이걸 보면 우선 상대가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둠의 상인이라고 했으니 상인 출신이겠지?
그리고 본인은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다혈질에 신중하지 못한 성격이다.
이런 자는 사업을 하면 백이면 백 다 망한다. 사기꾼에 걸리기 십상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쫓아버린다.
하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테타스와 계약을 하게 되고 이 도시를 암중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나는 뿌우에게 말했다.
“뿌우야, 그자들이 오기 전에 암살자 길드에 가서 도암 캘린더라는 사람이 뭐 하는 자인지 정보 좀 달라고 해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타락한 상업도시에도 암살자 길드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연결이 되어 있는데, 아직까지는 접촉을 안 했지만 이제 상대가 누군지 알았으니 정보를 얻어야 한다.
“알았당.”
뿌우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바로 날아갔다. 그리고 약 10분 후, 한 장의 종이서류를 들고 돌아왔다.
“지금 기록은 이것밖에 없단당. 앞으로 계속 감시한다고 했당.”
“어디 보자고.”
도암 캘린더
상인 길드의 수장 마이어 캘린더의 아들.
어렸을 때 계속 해서 사업을 실패하여 가문으로부터 의절당한 후 방황하다 돌아옴.
그 후 표면적으로는 할렘가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구호물자 사업을 시작. 사실은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사채업과 인신매매 등을 주로 함.
길드의 주요 고객 중 하나이자, 요주의 인물로 자체적인 암살자 그룹을 관리하고 있는 것 같음. 장래의 경쟁자가 될 수 있기에 기회가 되면 정리할 필요가 있음.
“오호, 암살자 길드에서 이미 낙인을 찍어 놨었군.”
분석한대로 이정도 어둠의 사업을 벌이려면 자체적으로 암살자 길드를 운영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나 아직 도암은 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 한 모양이다.
표면적 일인자인 마이어 캘린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일까?
마이어 캘린더는 자신의 아들이 마족의 계약자인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지금은 우선 적들과 맞서 싸워야겠지.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다.
나는 마리포즈를 보며 말했다.
“접근해 오는 자는 없어?”
“있어요. 모두 사십 명 정도. 그 중 여섯은 발자국 소리가 안 나는 것으로 보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암살자입니다.”
“뭐야. 왜 수하들만 잔뜩 보낸 거지? 도암 이자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조직간의 싸움이라고 착각하는 거 아냐?”
마족의 후계자 정도 되면 이런 허접한 인원은 아무리 많이 보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 텐데 말이지.
나는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마리포즈에게 말했다.
“마리야, 일단 네가 밖으로 나가 맞서라. 우리까지 나서기는 좀 그렇다.”
“알겠습니다.”
철컹
마리의 머리 위로 금속 투구가 씌워졌다. 제 2 전투모드로써 전신갑옷을 입은 기사의 모습이 된 것이다.
마리는 자신의 무기인 그레이트 소드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 시원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집 안에서 구경하며 도암 캘린더 본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리 양의 검술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군. 정말 인간이 아니라 인공자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크리드 경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요즘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하루 열두 시간 이상 수련을 하는데, 항상 생각에 잠겨 있어서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이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와 사방을 살피고 우리를 돕는다.
크리드 경이 어디까지 강해질지는 나도 의문이다. 정령기사의 힘은 본인의 검술에 대한 경지와 정령과의 친밀도에 의해 결정되어 지는데, 크리드 경의 정령친화력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이제는 정령빙의를 해도 전혀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마족의 후계자와의 격렬한 전투를 경험함으로써 기존에 있던 인간들 간의 싸움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검의 새로운 세계에 진입을 하려 하니, 이건 나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영역에 도달할 조짐이다.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런 크리드 경이 마리포즈의 검술을 칭찬하니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반 경, 도암은 오지 않나요?”
같은 힘을 받은 자들끼리는 서로를 느낀다. 이반 경은 잠시 집중을 하더니 말했다.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접근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단 수하들로 우리 힘을 시험해 보려는 모양이군요.”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상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바로 달려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마리포즈만 내보낸 거거든.
최소한의 전력노출만 보이고, 그러면서도 도암이 공격할 만 하다고 느끼게 해야 하니까. 도암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완전무장한 여기사 한명 정도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마리포즈는 단순한 여기사가 아니라는 게 함정이지만.
“옵니다. 빠르게 접근하는군요.”
“모두 준비하죠. 크리드 경은 일단 뒤로 빠지세요.”
“알았네.”
크리드 경이 처음부터 나서서 맞서는 것보다 미리아와 같이 있다가 도중에 끼어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동안에는 이반 경과 나, 그리고 뿌우 셋이 싸워야 한다.
상대가 마법사 둘과 정령 하나의 공격에 익숙해질 무렵에 미리아와 크리드 경이 참전을 하면 그야말로 효과가 절대적으로 날 것이다.
콰쾅
벽 한쪽이 통째로 무너지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호리호리하게 키가 크고 마른 사내다. 콧수염을 얇게 길러 좀 얍살스럽게 생긴 느낌이랄까?
“너로군. 테타스의 힘을 받은 자가.”
도암은 들어오자마자 이반 경을 보고 말했다. 그 역시 이반 경의 존재를 느끼고 우리를 찾아낸 것이다.
이반 경은 말없이 손을 저었다. 그러자 부서진 벽이 순식간에 원상태로 복귀 되었다.
“크크크, 도망가지 않을 테니 뒤를 막을 필요는 없다. 저런 기사나 하급 마법사 몇 명 데리고 왔다고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 싸움은 너와 나 둘만의 것이다.”
헛소리 하네. 도움이 되거든?
아무래도 도암이라는 자는 테타스의 힘에 매료되어 다른 어떤 무력도 하찮게 보이나보다.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라 할 수 있다.
이런 자를 믿고 계약을 한 테타스가 불쌍해 질 정도다.
그래, 테타스야. 이놈을 후딱 정리하고 너까지 치울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자 이반 경도 나와 타이밍을 맞추어 주문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더블 캐스팅. 우선 시작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