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60화 (160/250)

로엔의 마나뱅크 160화

4장 어둠의 상인

‘돈이면 다 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다.’

‘빨리 돈을 벌어서 이 안개 낀 도시를 벗어나는 게 인생의 목표다.’

진살라도에 들어와 얻은 이 도시의 정서가 바로 이렇다.

이곳은 생각보다 공기도 탁하고 음식의 재료도 신선한 것이 거의 없다. 무역도시답지 않은 식재료라고 할 수 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이상하게 도시 안에서는 음식이 빨리 상하고, 채소도 금방 시들어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신선한 재료는 그야말로 부유한 상인들이나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노동자들은 대부분 푹 삶은 야채스프와 기름에 튀긴 빵으로 하루 끼니를 때운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여드는데, 이유는 바로 일자리 때문이다.

진살라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인길드의 기본방침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인데, 이것은 복지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한 진살라도 행정부의 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라 한다.

그러는 한 편 상인길드에서는 매달 한명씩 우수 노동자를 뽑아 상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데, 실제로 이 지원을 받은 사람 중 대부분이 나름 성공하여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은 가혹한 환경에서도 참고 견디며 언젠가는 자신들도 상인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굉장히 기술적으로 도시의 발전을 꾀하고 있군요.”

이반 경이 도시에 관한 보고서를 읽고 한 말이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실제로 이 도시는 노동자에게 그다지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지만 작은 희망과 당장 현재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다는 이유 때문에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추방하거나, 일을 해서 번 돈을 소비하게 만드는 향락사업도 발전시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희망과 꿈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도시의 어둠에 물든 채 시들어가는 것이다.

“여긴 너무 공기가 나빠. 단순히 나쁜 게 아니라 이상한 게 섞여 있어.”

미리아가 코를 막으며 말했다.

“이상한 거가 일종의 마비향이지?”

“응. 여기 오래 있으면 고통에 둔감해지고 피로를 무시할 수 있게 돼. 하지만 그만큼 몸에 무리가 가.”

미리아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 공기에 함유된 마비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도 눈치 챈 것이다.

“이곳이 마족과 관계없더라도 이 공기를 퍼뜨린 자는 나쁜 사람이야.”

“알았어. 조사해보고 잘 처리해보자.”

“마족의 계약자라면 역시 상인길드 측에 있을까요?”

이반 경이 화제를 살짝 바꾸어 우리의 원래 목적을 상기시켰다. 괜히 정의감에 휩싸여 우리와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다.

이반 경의 뜻도 일리가 있는 게, 한 가지 목표를 정했으면 그것에 집중해야지 괜히 눈에 걸리는 대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어차피 우리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어요. 상인길드부터 조사를 해서 마기를 가진 자를 찾아내보죠.”

“그럼 상인길드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렌 경께서는 미리아와 함께 있어 주십시오.”

“이반 경께서 수고를 해 주신다니, 저는 이 근처에 미리아가 쉴 곳을 만들면서 기다릴게요.”

“숲을 만들어 줄 거야?”

미리아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로 공기가 안 좋아서 속이 답답했나보다.

“숲까지는 몰라도 작은 집 하나를 사서 그 안에 결계를 친 후 풀과 나무로 내부를 채워 넣을게. 미리아 넌 그 안에서 나오지 말고 힘을 모아.”

“응, 명상하고 있을 테니 테타스의 계약자를 찾으면 말해줘.”

“이반 경이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어차피 테타스의 힘을 이용한 의식을 행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계약자의 존재도 알게 될 거야. 그자가 여기 있다면 3일안에 찾아낼 수 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3일이란 말이지? 알았어.”

미리아가 숲은커녕 풀떼기도 거의 없는 이곳에서 힘을 쓰려면 적당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힘을 모아야 한다. 3일이면 한 번 정도는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거다.

나는 즉시 시내 외곽에 적당한 집을 하나 찾아 집주인과 몰래 거래를 했다. 집을 통째로 부숴도 괜찮게 대금을 지불하고 대신 3일 동안 집주인을 가두어 두기로 했다.

집주인은 마법사인 내가 무서운 한편, 충분한 돈을 주었기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이렇게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 후 나는 즉시 집 바닥에 흙을 깔고 미리 마차에 실고 온 묘목들을 심었다. 그 다음에 성장의 마법진을 설치하는 반나절도 안 되어 집 전체에 풀이 나라고 묘목들도 거의 두 배나 커졌다.

“이렇게 갑자기 성장시키면 애들이 힘들어 하는데…….”

미리아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말했지만 내가 하는 일을 막지는 않았다. 그냥 묘목들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환경이 조성되자 미리아는 집 중안에 앉아 명상에 빠졌다. 이것으로 미리아의 준비도 끝난 셈이다.

나는 일단 집 구조를 면밀하게 살피고는 마리포즈에게 말했다.

“옆집도 빌려야겠어. 그곳에서 의식을 행하고, 테타스의 계약자를 유인하자고.”

“이곳과 연동시킬 생각이신가요?”

“응, 싸움이 벌어지면 미리아는 이곳에서 힘을 쓰고, 우리는 옆집에서 싸우자고. 그리고 유사시에는 이곳까지 유인해서 승부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은닉과 보호 결계가 필요하겠네요.”

“그래, 준비는 다 되어 있지?”

“여기 올 때 가져온 재료면 도시 전체를 마법진으로 도배할 수 있을 거예요. 바로 시작할게요.”

마리포즈는 즉시 내가 구상한대로 집의 경계부근에 결계를 발생시키는 마법진의 기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핵심이 되는 부분은 내가 직접 손을 볼 테지만 기본적인 것은 마리포즈가 다 작업을 해 놓을 거다.

그 사이 나는 다시 옆집으로 가서 집주인을 찾아 협박과 회유를 했고, 집주인은 돈주머니를 끌어안고 지하실에 갇혔다.

이제 대충 준비는 끝났다.

나는 테타스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제단을 만들고 의식의 준비를 했다.

의식의 목표는 바로 강력한 힘을 지는 자를 찾아내는 것으로, 범위는 이 도시 전체로 했다.

그러니까 이 도시 내에 숨어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자를 찾아내는 탐색의 의식인데, 그걸 테타스의 힘으로 발현하는 거다.

“이렇게 해 놓으면 마족의 힘으로 마족의 계약자를 찾는 셈이지. 후훗.”

이건 이중의 탐색이다. 의식의 힘으로 한 번 찾고, 같은 힘을 쓰는 자들끼리 느끼는 감각으로 다시 탐색이 된다. 여기에 이반 경이 직접 발품을 팔아 상인길드를 뒤지고 있으니 이곳에 그자가 있기만 하면 무조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허당이면?

“있다고 믿자. 내 감각을 믿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게 되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일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하다.

*

3일이 지났다.

미리아는 여전히 명상에 빠져 있었는데,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힘을 모은 것 같다. 그리고 마리포즈와 나의 작업도 끝나서 미리아가 있는 집은 일종의 결계화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은신을 위한 환상 결계지만 누군가가 그 안으로 침입하면 그 순간 공간감옥과도 같은 지독한 구속의 결계가 발동된다.

아쉽게도 이반 경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상인 길드 내에는 마족의 기운을 풍기는 자가 없었다. 예상외로 마족의 계약자는 상인이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나보다.

어쨌든 우리는 이제 의식을 행할 준비가 끝났다.

“그럼 이반 경, 시작해 주세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이반 경이다. 8서클의 마나를 주입하여 발동시키는 고급 의식이고, 파워를 얻기 위해 고위마족의 힘을 쓰는 흑마법이기 때문에 일부러 이반 경이 직접 행하면서 경험해 보도록 했다.

또한 테타스가 과연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인지, 그리고 성격과 속성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 만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 내가 보조역을 맡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정심이에요. 마족의 힘을 끌어다 쓰는 과정에서 마족에게 유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백마법으로 정신을 보호하면 안 됩니까?”

“그러면 의식이 시작조차 안 될 거예요. 마법의 힘없이 오로지 정신력으로만 버텨야 해요. 하지만 일단 의식이 발동되면 그 후에는 백마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해도 되요.”

“그렇군요. 흑마법의 의식은 처음이라 정확하게는 이해를 못 하겠지만 어쨌든 근원적인 부분은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시작해요.”

나는 이반 경 뒤에 섰다. 보조역인데, 유사시에는 이반 경이 의식을 멈출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반 경은 잠시 정신을 집중한 후, 메뉴얼대로 의식을 발동시켰다. 마족 테타스의 이름으로 강대한 적을 찾겠다고 선언하면서 서서히 제단의 룬어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역시 테타스는 순순히 힘을 빌려주고 있다. 틀림없이 자신의 계약자가 의식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자신의 세계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지만 남의 세계에 오면 이런 사기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반 경은 이질적인 힘이 제단을 통해 시행자인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무엇인가 새로운 현상을 경험한다는 것은 마법사로써 즐거운 일인가보다.

우우우우우웅

드디어 제단 전체가 검붉은 빛을 말하며 주변의 공간을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제대로 힘을 받고 있다. 제단이 테타스의 힘으로 가득차면 의식이 완성된다. 나는 이대로 테타스가 속아 넘어가 주기를 바라며 이반 경의 상태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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