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59화 (159/250)

로엔의 마나뱅크 159화

*

테타스의 계약자가 누군지. 대륙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단서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큰 단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테타스라는 고위마족의 이름이다.

더군다나 나는 테타스의 모습도 보았다. 영체의 모습이었으니 거의 본체와 같은 형태였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제일 효율적인 것은 대륙의 요소요소에서 테타스의 힘을 빌어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대부분은 테타스가 힘을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의식이 실패해 버린다. 그걸 반대로 말하면 테타스가 힘을 빌려주면 의식이 성공하는 셈인데, 이게 계약자가 근처에 있으면 의외로 성공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러니까 테타스는 계약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조금 두리뭉실하게 감지할 뿐이고, 우리는 계약자인 척 하고 의식을 행하는 거다.

뭔가 정밀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어설픔이 보인다고? 원래 다른 세계에서 활동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고 한다.

테타스가 이 물질계의 불멸자가 아닌 이상 이건 통한다.

그럼 대륙 요소요소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테타스의 모습과 성격을 보아 숲이나 사막, 물속은 아니다. 산에서는 살 거 같기는 한데, 몸에 털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추운 지방도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니 트롤과 비슷한 모습이 살짝 느껴졌다. 그렇다면 땅속에 굴을 파고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해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환경에서 살아온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만적이고 무식하지는 않다. 나름 고상한 척 하고, 머리를 쓰고 상대와 교섭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문명과 지식을 지닌 자들에게 떠받들여 지고 있는 것 같다.

“혹시 지하세계는 아닐까?”

현재 우리 물질계에는 지하세계에서 문명을 이룬 종족은 없다.

그러나 테타스의 세계에서는 그런 자들이 있을 수 있으니 그와 유사한 습성을 가진 인간들이 머물만한 곳을 찾아 의식을 거행하는 게 좋겠다.

나는 지도를 펴고 동시에 대륙의 각 도시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는 책을 꺼내 읽어 내려갔다.

“이곳일까?”

어느 정도 찾아보니 느낌이 확 오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진살라도, 해가 뜨지 않는 도시.

이곳은 대륙 중앙부근에 위치한 무역도시인데 산맥 세 개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라 주변이 모두 높은 반면에 도시는 아주 낮은 지반에 위치해 있다. 말하자면 분지 형태의 지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옴폭 파였다고 할 만큼 주변과 도시 내부의 고저차가 심하다.

그리고 옆쪽에 상수원이 되는 호수를 하나 끼고 있는데 호수로부터 안개가 발생해서 열흘에 칠팔일은 짙은 안개가 낀다고 한다.

하지만 기온은 또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거의 아열대성의 온도라고 하니 중요무역로라는 장점이 없었다면 도시가 형성되지 않았을 정도의 환경이라 할 수 있다.

“보면 볼수록 여기가 딱이네. 테타스 같은 놈이 계약한 자라면 여기에 살면서 음흉하게 돈을 모으고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이야, 이거 맞으면 내가 바로 예언자라 자부해도 되겠다.

그야말로 가게 하나 내서 돋보기로 상대 관상을 보면서 예언을 해 줘도 대충 다 맞을 거 같은 느낌? 사실 나정도 되면 정말 그렇게 사이비 예언가 노릇을 해도 된다.

사람을 보기만 하면 현재 몸 상태와 정신 상태 등이 모두 느껴지니 말이다. 몸 주변에 흐르는 마나를 느끼고, 그것이 왜 저렇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거의 이해하니 가능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즉시 이반 경을 불러 진살라도 시티로 떠날 준비를 했다.

시간은 많지 않다. 아무리 렉스가 마수라고 해도 원래는 그냥 늙은 개였을 뿐, 초월자적인 존재는 아니기에 정신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섀도우 플레인에서 한 달 이상 머물게 되면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최대한 준비를 하세요. 혹시 이곳이 맞는다면 우리는 테타스의 계약자뿐 아니라 테타스를 소환해 본인과도 싸워야 할 겁니다.”

마족을 소환해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일에는 나와 마리포즈, 뿌우, 서피, 이반 경, 크라드 경, 그리고 미리아까지 동참했다. 그야말로 렉스만 빠졌을 뿐 총력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준비해 가는 장비도 그동안 모아 놓았던 재물과 마법 무구들 중 가장 뛰어난 것들만 챙겼다.

결혼식이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인지라 소문이 애매하게 날 수 있어서 우리가 영지를 떠나는 것은 대외비로 했고, 다만 실비아 공주에게는 상황을 설명했다.

실비아 공주는 우리가 없는 사이 사실 상 영지의 관리자이자 방어의 총책임자로써 정보와 사업운영을 담당하는 케이니 양과 함께 남기로 했는데, 그녀는 불안해하면서도 우리가 떠나는 것을 말리려 하지는 않았다.

진살라도 시티는 영지에서 그리 멀지 않기에 마법을 써가며 일주일만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왕복 2주일, 그리고 그곳에서 의식을 행하고 테타스의 계약자를 찾고, 또 다시 테타스를 소환하는 등의 일들을 일주일 내에 끝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금 힘든 일정이기는 해도 빨리 끝내서 결혼식 전에 렉스 녀석을 구해내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길을 떠난 지 3일째 되는 날 아침, 미리아가 나한테 와서 말했다.

“렉스와 꿈에서 만났는데, 테타스가 보이지 않는데.”

“숨은 거 아닐까? 렉스가 방심해서 그곳을 나오도록 말이야.”

“나도 그런 것 같아서 일단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음, 혹시 나도 렉스와 만날 수 있니?”

“그거 된다고 전에 말했잖아.”

“좋아. 그럼 오늘 렉스와 만나보자.”

“그래, 그럼 오늘은 나와 껴안고 자.”

“잉, 그래야 되는 거였어?”

“그게 확실해.”

뭔가 조금 의심이 가지만 능력자가 그리 말하면 믿을 수밖에.

그날 밤, 나는 미리아와 가볍게 껴안고 누워 잠을 청했다. 나는 원래 누우면 바로 잠드는 체질인데 미리아의 숨소리가 느껴지니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미리아의 입에서 향긋한 약초 냄새가 난다. 허브티를 마셨나?

“안 자면 꿈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잖아.”

미리아가 살짝 눈을 뜨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지금 잘게.”

나는 마음을 맑게 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곧 미리아가 만든 꿈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예전보다 훨씬 편한데? 미리아 너의 능력이 좋아진 거니?”

“그런 면도 있고, 섀도우 플레인에 진입할 때는 항상 이 상태나 다름없거든. 익숙해진 거지.”

“하긴 그렇겠구나. 그런데 렉스는 어딨어?”

“저쪽에, 곧 올 거야.”

만약 꿈의 차원이 있다면 그건 섀도우 플레인보다 더 신비한 공간일 것이다. 렉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 앞까지 걸어왔다.

어느 새 미리아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아마 우리끼리 대화를 하라고 자리를 비켜준 모양이다.

나는 렉스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곧 너를 데리러 갈게.”

그런데 렉스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렌, 나의 어린 친구. 드디어 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구나.”

“어, 너 언제부터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니?”

“얼마 전부터 말은 못해도 생각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리아와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인간의 언어를 깨닫게 되었지. 비록 꿈속에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지.”

“허 참, 개가 꿈속에서 사람 말을 하는 꿈을 꾸는 건가? 이것 참, 개꿈인지 사람꿈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군.”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난 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니까. 내 염려는 마라. 이곳은 기분이 나쁘진 해도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 어떤 면에서는 편하기도 하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섀도우 플레인에 오래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하물며 네 육체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지금 동결시켜놓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영혼이 돌아올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육체, 그렇지. 너를 태우고 다닐 수 있는 육체는 필요하다. 잘 보관해 놔라.”

“으이그, 보관이고 뭐고 가능한 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널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알았다. 그리고 테타스가 모습을 감추기 전에 한 말이 있다.”

“뭔데?”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미 신이 이 세계를 버린 것은 거의 확실하고, 고위마족들은 계속해서 이곳에 들어올 거라 했다. 그러니 진심으로 이곳을 위한다면 차라리 게임의 심판이 되어 승자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을 정하고 그를 도와 세상을 지배하라고 했다. 계약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는 정말 드무니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현 상황에서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렌 너뿐이라고 했다.”

“쩝, 그 말도 일리는 있는데 말이야.”

테타스는 계속해서 나를 흔들고 있다. 내가 맹세를 깨고 새로운 신념을 가질 것을 권한다.

맹세를 깸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내가 지지하는 계약자와 대상인 고위마족의 힘으로 어떻게든 보상받을 수 있다.

솔직히 말이 되는 소리를 하기에 내가 자꾸 혀를 다시게 되는 거다.

그러나 나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맹세는 깨지 않아. 계속해서 마족의 계약자가 나타난다면 모두 찾아내서 제거할 뿐이지. 하지만 확실히 방법을 찾기는 찾아야겠어. 마족이 더 이상 이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지 않으면 내가 영원히 사는 불멸자가 아닌 이상 맹세를 끝까지 지킬 수는 없거든.”

불멸자가 되면 된다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불멸자가 되기 싫다.

차라리 환생의 비밀을 깨닫고 실제로 환생까지 해봤으니 계속 환생의 의식을 치루어 여러 번의 삶을 사는 것은 괜찮지만, 규칙에 얽매인 채 정지된 시간의 흐름 속에 내 영혼을 고정시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아무튼, 테타스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 공간에서 나오지는 마. 그놈이 숨어 있다가 기습을 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거든.”

“알고 있다. 테타스는 고위 마족, 숨으려 들면 나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 넌 거기서 푹 쉬어. 그럼 난 간다.”

너무 오래 꿈속 공간에 있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 섀도우 플레인에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위험이 있는 것이다.

나는 렉스와 작별인사를 하고 꿈속에서 나와 눈을 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