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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58화 (158/250)

로엔의 마나뱅크 158화

“이곳이 정말 신이 지나간 통로인가요?”

“확실하지는 않지. 하지만 적어도 이곳이 신의 흔적이 있는 유일한 장소인 것은 확실하다.”

“그대들의 유희에 기한은 없는 겁니까?”

“없다. 게임에 참가하면 100년의 계약을 할 수 있고, 계약자의 영혼을 회수하거나 차기 계약자를 찾아내면 게임을 계속할 수 있지. 승자가 나타날 때까지 게임 자체는 끝나지 않는다.”

역시, 무한한 삶을 사는 자들이니 기간을 정해놓고 게임을 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지금도 새로운 참가자들이 오고 있겠군요.”

“잘 아는군. 이 세계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해지고 있다. 주인 없는 세계라니!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지금은 게임의 승자가 이 세계의 새로운 주인이 되기로 결정되었다. 우리들 사이에 힘의 우위를 인정받고 새로운 세계의 권리까지 얻는 게임이니 그야말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큰일이라 할 수 있지.”

“새로운 신이라, 어쩌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적어도 신이 없는 세계보다는 낫지 않을까? 나는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테타스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너와 손을 잡는 것인 것 같군. 네가 원한다면 나의 후계자를 소개시켜 주겠다. 그를 도와 세상을 지배하게 해 준다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게 해주지. 너와 너의 후손은 새로운 신의 가호를 받게 될 것이다.”

신의 가호를 받게 된다라, 나쁜 조건은 아니다.

영혼 상태로 있으니 상대의 감정과 의도가 적나라하게 전해져온다.

테타스는 나를 속이거나 현혹하여 조종하려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제안을 하는 중이다.

그가 사악하거나 흉포한 성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세계에서는 나름 좋게 평가받는 신급 존재일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 세계의 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신이 된다면 나에게 한 말을 지킬 것이다.

정말 이 세계는 새로운 신이 필요한 걸까?

나는 진심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곧 나는 망설임을 버리고 테타스에게 말했다.

“이미 나는 마족의 계약자들과 싸우기로 맹세했습니다. 마법사로써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맹세를 깰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군. 마법사를 버리면 대신관이 될 수 있었을 것을.”

“그대가 주는 힘으로 지금보다 더 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그건 결국 그대의 힘이 될 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너도 소환해서 소멸시켜 버릴 거거든. 본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의 영향력은 완전히 지울 생각이지.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파즈스가 정말 자신이 소멸한 것을 다른 게임 참가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구나. 나쁘진 않다.

테타스는 잠시 날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렉스에게로 돌렸다.

“그대를 건드리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지만 마수를 잡아 길들이는 것은 상관없지. 이 세계에 온 기념품으로는 훌륭하군.”

크왕!

테타스가 말을 하는 순간 묘한 기운이 일었고, 렉스는 급히 뒤로 물러나며 크게 울부짖었다.

렉스가 있던 곳 아랫부분에서 수십 개의 투명한 촉수가 뻗어 올라 렉스의 몸을 감으려 했지만 렉스가 조금 먼저 피한 것이다.

“호, 눈치가 빠르군.”

“억지를! 그리고도 불멸자인가.”

나는 강한 의지를 담아 외치며 삭풍의 창을 소환해 테타스를 찔렀다. 동시에 렉스도 허공으로 뛰어올라 그의 머리를 통째로 깨물려 했다.

용감한 렉스, 상대가 누구든 머리만 깨물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래, 한 번 제대로 물어 봐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깨무는 데 성공만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

그러나 테타스는 상당히 싸움에 익숙한 불멸자인 것 같았다. 그는 여섯 개의 팔로 무기를 번개같이 휘둘러 나를 튕겨내고 렉스의 몸통을 후려쳤다.

영혼을 파괴하려는 생각은 없는지 날이 없는 면으로 때린 셈인데, 그것만으로도 렉스는 큰 타격을 입은 듯 깨갱 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렉스는 굴하지 않고 더욱 흉포하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아주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다.

질 수 없지.

나는 삭풍의 창을 들고 테타스의 등 뒤로 돌아갔다.

상대는 불멸자. 등 뒤에서 노린다고 해서 통하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등 뒤에 서서 공격을 하면 렉스와 정 반대의 위치를 점하는 것이기 때문에 테타스는 무기를 한 번 휘둘러 우리 둘을 동시에 공격하거나 위협할 수 없다.

나는 이를 악 물고 계속 창을 찔렀다. 그럼으로써 테타스의 팔 두 개가 나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테타스는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냥 막거나 튕겨낼 뿐이다.

하지만 렉스 쪽은 달랐다. 렉스를 굴복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충격을 가했다.

렉스의 영혼이 약해는 게 느껴진다. 역시 이 상황에서 테타스 같은 불멸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무리인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강하고 약함이 변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마법사라 할 수 없다.

마법사는 마법을 쓰지 못해도 마법사이다.

“렉스야, 신의 결계 앞에 가서 서.”

크왕

렉스는 여전히 흥분상태였지만 내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노련한 마수답게 즉시 공격을 멈추고 신의 흔적이 있는 통로 바로 앞에 가서 버티고 섰다.

테타스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렉스를 따라붙으며 계속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렉스가 정말 통로 앞 결계에 딱 붙어서 서자 오히려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며 나를 돌아보았다.

“눈치가 빠르구나. 저곳에는 가능하면 접근하고 싶지 않지. 나뿐 아니라 불멸자라면 누구든지 말이야.”

“그동안 충분히 연구했으니까요. 신의 영역에 들어서면 불멸성이 사라지지요. 흔적만 남았어도 저 정도 거리면 영역 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맞았군요.”

불멸자는 자신이 불멸성을 잃을 수 있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 확률이 1억분의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테타스는 저곳에 접근하지 못한다. 접근했다가 혹시라도 공격을 당해 상처를 입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렉스는 확실한 피난처를 얻었다. 이제는 잡혀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냉정해야 한다. 아무리 렉스가 공격당했어도 내가 흥분해서는 안 되는 거다.

테타스는 잠시 고민하듯 나와 렉스를 번갈아 보았다.

이자의 의도는 명백하다. 렉스를 잡아 나에게 제약을 가하려는 거다.

마수는 건드려도 된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정말 그들의 게임 규칙에는 그게 통용되나 보다. 내가 게임 규칙을 확인한 것도 아니니 할 말은 없다.

“상관없겠지. 나는 이곳에 얼마든지 머물러도 된다. 저 마수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하지만 그대는 한계가 있는 것 같군.”

이런, 버티고 서서 렉스가 저곳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군.

아까 이놈이 나쁘지 않은 불멸자같다는 말은 취소다. 이놈은 그야말로 좀생이 같은 놈이다. 하는 짓도 치사하고, 아무튼 이런 놈이 세계의 신이 된다는 것은 진심으로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한다?

크르르르르

렉스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고는 나를 보았다.

가라고? 넌 여기 남겠다고?

삭풍의 창을 몇 번이나 써서 한계가 거의 오긴 했다. 그러나 렉스를 여기 놔두고 혼자 돌아가고 싶지는 않는데.

크르르르, 컹

렉스가 재촉한다. 그때 머릿속에 미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렉스가 나중에 다시 오래. 자기는 얼마든지 기다려도 된다고.”

그래,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하자.

“테타스, 먼저 돌아갈 테니 렉스와 같이 이곳을 지키고 있으세요.”

나는 차갑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등 뒤로 렉스의 시선이 느껴진다. 오늘의 이 굴욕을 잊을 수 있을까? 다시 섀도우 플레인에 돌아올 때까지 기필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겠다.

*

“크으으윽!”

영혼이 육체로 돌아오자 극심한 통증에 육체가 경련을 일으켰다. 역시 한계까지 섀도우 플레인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잠시 동안 고통에 몸부림치다 조금 진정이 되자 자세를 바로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육체와 영혼의 상태를 관조하며 살폈다.

별 다른 이상은 없다.

“괜찮아?”

미리아가 물었다. 그녀는 나와 렉스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괜찮아. 하지만 렉스는 당분간 섀도우 플레인에 갇혀 있어야 할 거 같아.”

“데리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아직은. 하지만 찾아봐야지.”

“응.”

“그래도 성과는 있어. 셰이든이 말한 통로를 찾았거든.”

“정말 신이 지나간 통로가 있어?”

“적어도 흔적은 확실해. 테타스라는 고위마족도 인정한 거니까 틀림없어.”

“그렇구나. 그래서 렉스가 그 앞에 남겠다고 한 거구나.”

“응, 너도 우리 둘의 대화를 엿들었으니 어느 정도는 알겠지만, 테타스라는 그지 같은 놈이 앞에 버티고 서 있어서 렉스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어. 그놈은 불멸자라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이쪽이 불리한 셈이지.”

“테타스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할 수는 없고?”

“있지. 사실은 한 가지 방법이 있어.”

“그게 뭔데?”

“테타스의 계약자를 찾아 처치하고, 그놈을 소환하는 거야. 그리고 소멸시켜 버리는 거지.”

나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섀도우 플레인에서 불멸자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곳 물질계에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그를 소환한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이미 파즈스도 그렇게 싸워 소멸시켰으니까.

테타스의 계약자를 찾자. 가능하면 빠른 시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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